2017-09-10

알라딘: 전쟁의 슬픔

전쟁의 슬픔 l 아시아 문학선 1

바오 닌 (지은이) | 하재홍 (옮긴이) | 도서출판 아시아 | 2012-05-10 | 원제 Noi buon chien tranh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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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연도과 관계없이 2011년에 가장 좋은 책으로 꼽힌 명불허전, 베트남이 낳은 세계적인 작가 바오 닌의 대표작. 베트남 땅에서 베트남 사람이 겪은 전쟁, 청춘을 전쟁에 점령당해야 했던 세대의 사랑, 울부짖는 영혼이 안개처럼 감도는 밀림을 그린 이 소설로 바오 닌은 베트남문인회 최고상을 받고, 1994년에는 이 작품이 영국 '인디펜던트' 지 최우수 외국소설로 선정되었다.

전쟁 이후 첫 건기, 주인공 끼엔은 전사자 유해발군단의 일원으로 부대원들이 전멸당한 전선으로 이동 중이다. 살아남은 단 열 명의 전사 중 한 명인 끼엔은 그 지역이 익숙하다. 그 패배가 낳은 수많은 혼령과 귀신을 마주하자 끼엔의 마음속으로 바로 작년까지 이어졌던 수많은 전투와 전투에 희생된 전우들, 그리고 전쟁이 갈라놓은 첫사랑 프엉이 찾아온다. '아시아 문학선' 1권.





작가의 말 나의 스승 낌 런의 가르침
전쟁의 슬픔
발문 바오 닌과『전쟁의슬픔』
옮긴이의 말 의심과 비난, 환영과 찬사
작가 연보



P.18 : 이곳에서는 해 질 녘 나무들이 바람결에 내는 신음 소리가 마치 귀신의 노랫소리와도 같았다. 그리고 숲의 어느 구석도 다른 어떤 구석과 같지 않고, 그 어느 밤도 여느 밤과 같지 않아서 누구도 이곳에 익숙해질 수 없었다. 방금 지나간 전쟁에 대한 가장 원시적...
P.66 : 전쟁이 끝나고 나서 지금까지 나는 날이면 날마다 밤이면 밤마다 이 기억에서 저 기억 속으로 떠다녀야 했다. 벌써 몇 년째인가? 멀쩡한 정신으로도 나는 사람들로 가득한 길 한가운데서 문득 길을 잃고 꿈속을 헤매기도 한다. 그런 날이 결코 적지 않다. 길가에 ...
P.94 : 그는 프엉을 잊으려 갖은 노력을 다 했다. 다만 한심한 것은 어찌해도 그녀를 잊을 수 없다는 것이었고, 더욱 가련한 것은 여전히 마음속으로 그녀를 갈망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는 이 모든 것이 곧 지나갈 것이며, 그의 나이 또래면 사랑마저도, 가슴속 슬픔마...



방현석 (소설가, 중앙대 교수)
: 작가 바오 닌은 전쟁에 대한 어떤 미화나 과장도 용납하지 않는다. 그는 다만 안타깝고, 끔찍하고, 잔인하며 아주 가끔 따듯했던 전쟁이 어린 연인들의 청춘과 사랑을 어떻게 미궁에 빠뜨렸는지를 냉정하면서도 격정적으로 진술하고 있다.
김남일 (소설가)
: ‘전쟁만이 아는 슬픔’을 잔인할 정도로 솔직하게 그려냈다. 기나긴 전쟁 기간 내내 끝없이 불안하고 불편한 잠을 자는 한 인간의 영혼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인디펜던트 (미국)
: 금세기의 위대한 전쟁소설『서부전선이상없다』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그러나『서부전선이상 없다』와는 달리 이 소설에는 전쟁 이상의 것이 담겨 있다. 이 책은 글을 쓴다는 것, 잃어버린 젊음, 그리고 아름답고도 애달픈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코노미스트
: 전쟁의 현실은 인성을 비인간화하는 광기어린 공격성이자 살해와 방자한 잔인성을 향한 부자연스러운 갈증을 창조하는 일이다. 베트남전의 고통은 서양에서 여러 차례 이야기되었다. 이 작품이 나올 때까지 몇몇 선전용 영화를 제외하면 북베트남은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뉴 스테이츠맨
: 고전이라는 말이 흔히 남용되지만, 이 작품을 제대로 설명할 말이 그것 말고는 없다.
뉴욕뉴스데이
: 전쟁소설이자 사랑의 이야기인 이 소설은 전쟁을 정당화하는 정치가들의 이데올로기적 수사의 허구성을 폭로한다.



전쟁 이후 첫 건기, 주인공 끼엔은 전사자 유해발군단의 일원으로 부대원들이 전멸당한 전선으로 이동 중이다. 살아남은 단 열 명의 전사 중 한 명인 끼엔은 그 지역이 익숙하다. 그 패배가 낳은 수많은 혼령과 귀신을 마주하자 끼엔의 마음속으로 바로 작년까지 이어졌던 수많은 전투와 전투에 희생된 전우들, 그리고 전쟁이 갈라놓은 첫사랑 프엉이 찾아온다….
끼엔은 열일곱 살 나이에 이 전쟁에 뛰어들게 된다. 조국의 독립과 통일을 위해서라면 끼엔처럼 전쟁에 나서지 않은 젊은이가 없었다. 그러나 그에게 막 피어나기 시작한 첫사랑은 어쩌란 말인가…
전쟁은 일상을 파괴하고 대지를 할퀴며 인간의 영혼을 상처를 입혔다. 끼엔에게는 그의 첫사랑 프엉만이 마음속에 유일한 실체다. 처절한 전쟁은 아군과 적군, 군인과 민간인, 남자와 여자, 어른과 아이 구분 없이 너무나 많은 목숨을 앗아가고, 끼엔의 영혼은 전쟁 속에서 메말라 간다. 그리고 믿기지 않는 종전.
지옥보다 끔찍한 전장을 경험한 끼엔에게 종전은 전쟁보다 실감나지 않는 현실이다. 그리고 더욱 믿기지 않는 첫사랑 프엉과의 재회!
하지만 전쟁은 프엉과의 추억을 앗아갔을 뿐만 아니라 그녀를 변화시키고, 그에게도 그녀에게도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방황하는 끼엔이 할 수 있는 것은 글을 쓰는 일! 끼엔은 자신이 기적처럼 살아남은 전장에서의 죽음을 쓰기 시작한다…






저자 : 바오 닌 (Bao Nin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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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물결의 비밀>,<전쟁의 슬픔>,<전쟁의 슬픔> … 총 10종 (모두보기)
소개 :
1952년 1월 베트남 중부 꽝빈 성 동허이 시 바오 닌 마을에서 태어났고, 두 살 때 하노이로 이주했다. 본명은 호앙 어우 프엉(Hoang Au Phuong). 바오 닌은 그의 필명이자 고향의 지명이다. 아버지는 훗날 국립국어원장을 지낸 언어학자였고, 어머니는 중학교 교사였다.

1969년 열일곱 살 나이로 쭈 반 안 고등학교를 졸업한 바오 닌은 인민군대에 자원입대, 3개월간 사격 등 군사훈련을 받고 10연대에 배치되었다. 곧바로 베트남 남부전선에 투입된 그는 첫 전투에서 동료 소대원들 대부분이 전사하는 바람에 5개월 만에 하...





역자 : 하재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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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 총 5종 (모두보기)
소개 : 경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했으며, 호치민인문사회과학대 베트남문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하노이대학 한국어과 강사, 서울대 교육종합연구원 객원연구원을 지냈다. 옮긴 책으로 『그대 아직 살아있다면』 『끝없는 벌판』 『전쟁의 슬픔』 『낮에도 꿈꾸는 자가 있다』(공저)가 있고, 지은 책으로 베트남어 교재 『엄마 아빠와 함께 배우는 베트남어』(공저)와 문화교양서 『유네스코와 함께 떠나는 다문화속담여행』(공저)가 있다.



바오 닌의 한 마디
내게 전쟁은 인생에서 접한 가장 커다란 비극이었습니다. 전쟁은 내게 결코 바래지 않는 고통과 슬픔을 안겨 주었습니다. 나날이 더욱더 분명하게 깨닫게 되는 끈질긴 고통 중 한 가지는 이런 것입니다. 나와 전쟁터에서 적으로 만났던 이들이 본래는 서로를 존중하고 애정을 나누고 친구로 사귈 수 있는 존재들이건만 서로를 죽이려 들었다는 사실입니다. 베트남, 한국, 미국의 수십만 젊은이들이 아무런 원한 관계도 없이 서로를 죽이면서 흐르는 핏물로 강물을 만들었습니다. 어찌 이렇게 잔인하고 야만적이고 부조리한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베트남의 대작가이자 나의 스승인 낌 런은 내게 이런 가르침을 주었습니다.“자네처럼 전쟁을 겪은 작가는 말이야, 전쟁 속에서 사람이 사람에게 저지른 잔인한 폭력과 끔찍한 적개심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되네. 물론 전쟁에 대해서 글을 쓸 때는 반드시 적개심으로부터 멀리 벗어나야 해. 왜냐하면 전쟁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은 곧 사랑과 인도적인 성품과 관용에 대해 쓰는 것이고, 전쟁에 관한 글은 곧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니까 말이야.”

하재홍의 한 마디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살벌한 전쟁터, 조금 전까지 밥을 같이 먹던 전우가 총에 맞아 죽고, 어젯밤에 어머니와 애인을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리던 친구가 방금 포탄에 맞아 형체도 없이 사라지는 현장에서 역지사지는 절대로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대로 놔두고 가면 아군의 인명 피해가 계속 발생할 게 분명하기에 마을 주민들에게 무시무시한 보복을 가하는 것 역시 당연한 전략입니다.
그럼에도 바오 닌은 전쟁이 몰고 온 당연한 살육, 희생자들을 영웅시하고 신격화하는 시절 동안 무명무실 무감하게 사라져 간 모든 것들에 진심으로 위로를 건네고자 합니다. 1994년『전쟁의 슬픔』판금 조치 당시의 심정을 물으니 바오 닌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관심 없었다. 그건 그들의 일이니까.’개런티 옵션을 포기하고 할리우드와 결별을 선언할 때도‘관심 없다. 이젠 너희들의 일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바오 닌의 시선이 머문 곳에서 평화를 꿈꿀 수 있기를 바랍니다.






도서출판 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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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이 세상의 똘똘하고 경이로운 것들>,<계간 아시아 제45호 2017.여름>,<반려동물을 잃은 반려인을 위한 안내서>등 총 241종
대표분야 : 책읽기/글쓰기 12위 (브랜드 지수 8,487점),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26위 (브랜드 지수 19,911점)







전쟁에 관한 모든 소설을 뛰어넘는 전쟁소설,
그리고 전쟁보다 아픈 사랑 이야기…

전쟁과 첫사랑, 가장 비극적인 충돌의 역사가 그려진다!
베트남전쟁 종전 37주년.
베트남에서 <전쟁의 슬픔>을 뛰어 넘는 소설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발행 연도과 관계없이 2011년에 가장 좋은 책으로 꼽힌 명불허전,
베트남이 낳은 세계적인 작가 바오 닌의 대표작 <전쟁의 슬픔>

발문 | 방현석(소설가), 바오 닌과 『전쟁의 슬픔』에서
바오 닌은 끼엔이 프엉과 함께 성장했던 하노이의 공동 주택을 떠나 전쟁터로 갔다가 돌아오는 여정을 따라 서사를 펼쳐 나간다. 그러나 이 어린 연인이 걸어야 했던 아픈 사랑의 여정은 이 소설 속에서 실낱처럼 가늘고 희미하다. 더구나 이 여린 사랑의 서사는 자주 피에 잠기고 화약 연기에 덮여 밀림 속에서 길을 잃어버리곤 한다.
사랑은 짧고 전쟁은 길었다.
이 소설의 모든 페이지는 전장의 피비린내로 가득하다. 그러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난 독자를 아프게 만드는 것은 그 피비린내가 아니다. 이 소설은 어떤 이념도 집단도 증오하지 않는다. 옹호하지도 않는다. 광포한 살육의 나날을 견디는 힘은 이념도 집단도 아니다. 더없이 거칠고 한없이 허망한 전쟁도 끝내 무너뜨리지 못한 것은 애틋하고 간절한 사랑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사랑과, 사랑할 나이에 전쟁을 해야만 했던 끼엔의 전쟁 비망록이다. 사랑과 이별하고 전쟁을 하며 보낸 10년은 사랑이 아니었던가.
바람처럼 흩어져 버린 10년, 그러나‘한평생보다도 긴’10년이『전쟁의 슬픔』이다. 프엉을 오해하여, 울며불며 자신을 찾아다닌 그녀를 뒤로하고 끼엔은 홀로 전쟁터로 걸어 들어갔다. 그 전쟁터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가. 이 소설은 바로 그 전쟁터의 끔찍한 맨 얼굴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작가 바오 닌은 전쟁에 대한 어떤 미화도 용납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엄살을 떨며 과장하지도 않는다. 그는 다만 안타깝고 끔찍하고 잔인하며, 아주 가끔 따듯했던 전쟁이 어린 연인의 청춘과 사랑을 어떻게 미궁에 빠뜨렸는지를 냉정하면서도 격정적으로 진술하고 있다.
누군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누군가 쓰러져야 한다. 그것이 전쟁이라고 바오 닌은 말한다.
베트남전쟁이 인류에게 남긴 유산은 많을 것이다. 그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하나가 바오 닌과 그의 소설『전쟁의 슬픔』이다. 이 유산은 베트남전쟁이 남긴 유산 중에서 인류에게 가장 오래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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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당사자의 시선으로 보는 베트남 전쟁. 항미 전쟁, 항미 전사라는 명칭조차 낯설다. 미국, 미국의 동맹참전국이었던 한국의 시선으로보는 베트남 전쟁과는 사뭇다르지만 전쟁이 왜 일어나면 안되는지 보여줌 잔인하고 끔찍하지만 그 아래 깔려있는 애틋한 사랑
훌라댄서 ㅣ 2017-05-02 l 공감(1) ㅣ 댓글(0)



폭풍우 같이 세찬 흐름, 혼란스런 설정. 끼엔의 외부도 내부도 디테일이 너무 살아 있어 괴롭다. 그를 가장 고통스럽게 한 것은 전시성폭력. 그 생존자인 프엉은 끼엔과 절연하고, 대신 벙어리 여인이 그의 작품을 살려낸다. 슬픔이 결국은 삶으로 돌아서는 힘 되며 예술은 그 힘의 표현이라는 전언.
SJ ㅣ 2016-07-07 l 공감(0) ㅣ 댓글(0)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전쟁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베트남 전쟁의 슬픔과 참혹함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리리나친위대 ㅣ 2016-01-14 l 공감(0) ㅣ 댓글(0)



전쟁의 아픔과 고통을 느껴볼 수 있습니다...
jenne ㅣ 2016-01-11 l 공감(0) ㅣ 댓글(0)



베트남전쟁의 시대적인 참혹함을 되돌아보고, 애틋한 사랑이야기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나라로라 ㅣ 2016-01-09 l 공감(0) ㅣ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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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 13편




책갈피 SJ ㅣ 2016-07-06 ㅣ 공감(0) ㅣ 댓글 (0)






꿈은 끼엔의 영혼을 흔들어 깨웠다. 끼엔에게도 한때는 젊은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지만 마음과 외양, 끼엔이라는 인간 자체가 아직 전쟁의 폭력과 야만에 훼손되기 전의 시절, 욕망과 도취와 열정으로 가슴에 거품이 가득 일던 시절, 어리석을 만큼 무모했던 시절이었다. 사랑의 고통으로, 질투와 회환으로 마음이 갈기갈기 찢기던, 지금의 저들처럼 사랑스럽던 시절이 그에게도 있었다. 아아! 전쟁이란 집도 없고 출구도 없이 가련하게 떠도는 거대한 표류의 세계이며 남자도 없고 여자도 없는, 인간에게 가장 끔찍한 단절과 무감각을 강요하는 비탄의 세계인 것이다. 끼엔에게는 자기의 영혼이 황폐해지는 것을 막을 기회가 없었다면 그의 젊은 부대원들만큼은 반드시 일상의 구속과 억압에서 벗어나 아직 남아 있는 사랑의 마지막 한방울이라도 누려야 했다. 내일이면 모두 사라져 버릴 것들이니. (47)



˝그래, 곧 전쟁터로 간다지? 내 너를 말릴 생각은 없다. 난 이미 늙었고 넌 아직 젊은데 네 의지를 어찌 꺾을 수 있겠느냐. 다만 내 마음을 이해해 주면 좋겠구나. 세상에 대한 인간의 의무는 살아가는 것이지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아니란다. 그것은 삶의 여러 가지를 두루 경험하는 것이지 거부하는 게 아니야.... 네게 목숨이 가장 중요하다는 충고를 하려는 게 아니다. 하지만 네가 죽음으로써 무언가를 보여 주려는 인간의 모든 유혹을 경계하길 바란다. ...˝
놀라웠다.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었지만 끼엔은 의붓아버지의 말에서 신의를 느꼈다. ... 그리고 문득 왜 어머니가 남편과 자식을 버리고 이 여린 남자에게 갔는지 이해할 것도 같았다. (80)



˝네 어머니와 나의 시대는 끝났다. 아들아... 지금부터 넌 혼자다.... 최선을 다해 네 시대를 살아가야 해. 이제 곧 새 시대가 올 거야. 눈부시게 아름답고 멋진 시대가.... 커다란 불행 같은 건 없을 게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슬픔이란 것은 사라지지 않겠지.... 여전히 슬픔은 남을 거야.... 슬픔은 대를 이어 계속되겠지. 아버지가 네가 남겨 줄 거라곤 아무것도 없구나. 슬픔이란 것밖에는....˝
아버지는 그림조차 남겨 주지 않았다. 평생 동안 쉬지 않고 그리고 또 그렸던 소중한 보물들을 몽땅 불태워 버렸다. 죽음의 신이 저승길을 재촉하는 것을 예감한 어느 날 밤, 아버지는 당신의 그림을 한 점도 남기지 않고 깨끗이 불태웠다. ... 인생의 소중한 세월을 한참 더 흘려보내고 나서야 끼엔은 아버지의 마지막 말에 담겨 있던 고통과 괴로움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고, 아버지가 마지막 순간에 자신에게 중요한 말을 남기고 싶어 했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168)



베트남-미국 전쟁에서 나는 그와 같았고, 평범한 병사들과 같았다. 같은 운명으로 수많은 우여곡절, 승리와 패배, 행복과 고통, 잃은 것과 남은 것을 함께 나누었다. 그러나 우리들 개개인은 전쟁에 의해 각자의 방식으로 파멸되었다. 개개인의 마음속에서 개별적인 전쟁을 시작한 날부터 공통의 전투와는 전혀 다른 싸움을 따로 하게 되었다. 사람에 대해, 전쟁 시절에 대해 가슴 깊은 곳의 인식이 지극히 달랐으며, 당연히 전후의 운명이 제각각 달랐다. 우리가 서로 같다고 말할 수 있는 점은 전쟁에 쫓고 쫓기는 심각한 과정 속에서, 서로 완전히 같아 보이는 환경이지만 서로 완전히 다른 처지에 처해 있었다는 것이다. (324)



그러나 우리는 같은 슬픔, 전쟁의 거대한 슬픔,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행복보다 고귀한, 고상한 슬픔을 가지고 있었다. 슬픔 덕에 우리는 전쟁을 벗어날 수 있었고, 만성적인 살육의 광경, 무기를 손에 쥔 괴로운 광경, 캄캄한 머릿속, 폭력과 폭행의 정신적 후유증에 매몰되는 것도 피할 수 있었다.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는 길은 아마도 전혀 행복하지 않고 죄악이 가득할 수 있지만 그것만이 우리가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삶의 길이다. 왜냐하면 평화로운 시대의 삶이기 때문이다. 분명 그것이 작가가 작품에서 정말 말하고자 하는 것이었으리라. (324)



전쟁은 젊음뿐이 아니라 사랑도 훔쳐갔습니다 처음처럼 ㅣ 2015-06-21 ㅣ 공감(1) ㅣ 댓글 (0)


지난 해 하롱베이와 앙코르와트를 연결하는 여행을 다녀오기 전까지 베트남에 대한 기억은 청룡부대와 맹호부대가 부산항을 떠나던 장면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그밖에도 우리소설로는 황석영님의 <무기의 그늘>, 이상문님의 <황색인>, 안정효님의 <하얀전쟁> 등을 읽은 기억이 있는데, 대체로 전쟁의 참상이나 비인간성을 고발하는 내용이나 베트남 전쟁의 근원까지 다루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밖에도 로빈 윌리엄스가 주연한 <굿모닝 베트남>이나 로버트 드 니로가 주연한 <디어 헌터> 등, 역시 전쟁이 인간의 정신을 얼마나 황폐화하는지를 적나라하게 그려낸 영화 등이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 작품들은 모두 베트남전쟁에 뛰어든 외부인들의 시선으로 전쟁을 바라본 것이었습니다. 과연 베트남사람들은 베트남전쟁을 어떻게 치렀는지, 그리고 전쟁이 그들에게 남긴 것은 무엇인지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았습니다. 베트남전쟁 직전의 베트남사회를 그린 <하얀 아오자이>나, 베트남의 정글을 누비며 전투를 치른 참전작가 반레(본명은 레지투)의 <그대 아직 살아있다면>이나 바오 닌의 <전쟁의 슬픔> 등이 우리나라에 소개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전쟁의 슬픔>을 읽게 되었습니다.



작가 바오닌은 1969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열일곱 살의 나이로 베트남인민군대에 자원입대하여 3개월간의 군사훈련을 받고 B3 전선에 투입되었는데, 소대원 대부분이 전사한 첫 전투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입대 5개월 만에 소대지휘관이 되어 6년여에 걸쳐 전쟁이 끝날 때까지 최전방을 누비며 전투를 치렀다고 합니다. 베트남 전쟁에서는 전후방 개념이 분명치 않았다고 들었습니다만.... 마지막 작전은 사이공진공작전으로 소대원들과 함께 떤 선 녓 국제공항 점령 전투에 투입되었다(우리는 탄 손 누트 공항으로 알고 있습니다). 남베트남 공수 부대와 치열한 교전 끝에 공항을 장악했을 때 살아남은 소대원은 그를 포함하여 단 두 명이었다고 합니다. 전쟁이 끝난 뒤 그는 전사자 유해발굴단에 참여하여 옛 전투지역을 누비며 전우들의 시신을 수습했는데, 이 모든 과정이 <전쟁의 슬픔>에 녹여져 있습니다. 전쟁터에서 돌아온 퇴역군인들이 심각한 PTSD(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기도 한다고 들었습니다. 바로 자전적 소설이라고 할 <전쟁의 슬픔>에서는 작가 또한 PTSD로 어떤 고통을 받았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작품의 초반에는 주인공 끼엔이 전사자의 유해를 발굴하면서 그 지역에서 벌였던 전투장면을 회상하고 있는데, 작가의 입장에서는 기억의 심연에 묻어버리고 싶은 전투장면들이 저절로 살아나오는 고통을 다시 겪어야만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인지 현재와 과거가 마구 뒤섞이는 것 같아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이 버거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의 영혼은 그 시간들에 붙박여 있었다. 내게는 내 삶처럼 내 영혼을 바꿀 재주가 없었다. 직감적으로 나는 과거가 내 주변에 몸을 숨기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 때로는 눈만 감아도 내 안에서 기억이 스스로 몸을 돌려 옛길을 쫓고 오늘의 현실은 통째로 풀밭에 내던져지곤 했다.(64쪽)”



전쟁터에서 있었던 일만 적었다면 아마도 작가는 이야기를 마무리할 수 없었을 것 같습니다. 너무나도 끔찍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전장의 이야기에 더해진 끼엔의 사랑 이야기는 더욱 안쓰럽고 슬픈 것 같습니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뜨겁게 사랑하던 두 사람이었기에 전장으로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보려는 욕심이 화를 불러 사랑하는 이를 곤경에 빠트렸던 것인데, 끼엔은 그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전쟁이 지나가는 6년의 세월은 많은 것이 변하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전쟁이 끝나고 돌아온 집에서 만난 그녀를 안았을 때 끼엔은 그녀의 우아한 몸에서 한없는 행복감에 뒤섞인 혼란과 두려움과 당혹스러움이 전해져 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뭐가 잘못 되었을까요? 전쟁은 사랑을 망가뜨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망가뜨립니다. 지나친 욕심과 오해가 끼어들면 더욱 그렇습니다. 치열한 전투에서 살아온 사람은 또 다른 전쟁을 마주하게 됩니다. 전쟁에서는 승리했을지 몰라도 그 전쟁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은 희생자가 되는 셈입니다.

그들을 이해하기 위하여 - 바오 닌, 『전쟁의 슬픔』 smellslikeyou ㅣ 2014-04-18 ㅣ 공감(2) ㅣ 댓글 (0)


지난달에 여행을 다녀왔다. 지방 소도시의 변두리에서 버스를 타고 이동하던 중 공단 지대를 지나게 됐다. 피부색이 낯선 몇몇 외국인들이 버스에 올라탔다. 아마도 동남아시아 또는 파키스탄이나 네팔 등지에서 돈을 벌려고 온 노동자들이리라. 버스는 공단 구석구석 정류장을 돌며 외국인 노동자들을 태웠고 어느새 버스는 낯선 얼굴들과 언어들로 가득 찼다. 여행 온 낯선 지방에서 토착민이 아닌 이방인들과 마주치니 기분이 이상했다. 솔직히 불편했다. 왠지 이상한 체취와 향수 냄새, 생전 처음 듣는 외국어, 마치 버스를 점령한 듯 거리낌 없이 서로 대화를 주고받는 모습. 기사 아저씨를 제외하면 버스 안에 있는 한국 사람은 나와 동행 두 사람뿐. ‘혹시라도 저 사람들이 괜히 말이라도 던지거나 시비를 걸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들었다. 평소 머릿속으로는 ‘가난한 나라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들의 권익이 중요하지.’ ‘외국인 노동자들이 차별받지 않고 한국 사회에서 정당한 대우를 받아야 하지.’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그들’과 마주했을 때는 편견이 발동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나 자신의 올바르지 못한 태도를 곱씹으며 가책을 느꼈다. 그때 떠올린 것이 얼마 전에 읽은 바오 닌의 소설 『전쟁의 슬픔』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그간 내가 베트남 전쟁에 대해 접해 온 정보들이 얼마나 일방적이었는지를 다시금 깨달았다. 예비군 훈련의 안보 교육에서는 베트남 전쟁을 ‘안보에 취약하고 무심했던 남베트남이 북베트남의 공산주의 세력에 의해 적화 통일된 뼈아픈 사례’로 취급한다. 이때 당시 월남에 파병된 한국 군인들은 ‘자유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싸운 숭고한 용사’가 된다. 시사 프로그램에서는 베트남 파병 후 제대로 보상도 받지 못한 채 고엽제 피해 등으로 엄청난 후유증을 겪는 퇴역 군인들의 얘기가 다루어지도 한다. 그 외에 베트남 전쟁에 대한 이미지란 철저히 미국이라는 거울에 비쳐 우리 앞에 나타난다.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빽빽한 밀림 속을 누비는 미군들과 그들을 기습하는 신출귀몰한 베트콩들을 그린다. 때로는 영웅적인 전투와 전공이, 때로는 비참한 패배와 전쟁의 참상이 제시된다. 1960~1970년대를 뒤흔든 대대적인 반전 운동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주제 중 하나다.




하지만 우리는 베트남 전쟁이 ‘베트남에서’ 일어났음은 잘 알면서도 막상 그것이 ‘베트남인들이’ 겪은 전쟁임은 간과하곤 한다. 그들이 실제 전쟁을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였는지, 전쟁에서 무엇을 느꼈으며 잃거나 얻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베트남인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수밖에 없다. 『전쟁의 슬픔』은 베트남인이 직접 쓴 베트남 전쟁 소설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이 소설에서 주를 이루는 것은 전쟁이 불러온 비극과 안타까운 사연들이다. 누군가는 허무하게 목숨을 잃고 누군가는 정신병자가 된 듯, 비가 쏟아지는 밀림의 전장을 유령처럼 배회한다. 누군가는 인간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잃고 누군가는 전후의 무기력과 허탈에 빠져든다.




주인공 끼엔은 전쟁 때에 겪었던 고통스러운 경험들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에게 전쟁은 비극 자체이자 끝없는 슬픔의 원천이다.



정의가 승리했고, 인간애가 승리했다. 그러나 악과 죽음과 비인간적인 폭력도 승리했다. 들여다보고 성찰해 보면 사실이 그렇다. 손실된 것, 잃은 것은 보상할 수 있고, 상처는 아물고, 고통은 누그러진다. 그러나 전쟁에 대한 슬픔은 나날이 깊어지고, 절대로 나아지지 않는다.(266쪽)



이렇듯 전쟁이 끝난 후에도 슬픔과 절망은 끼엔을 놓아주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글을 쓰고 작가가 된다. 글을 써 내려가면서 슬픈 기억을 떠올리고 되짚는다. 글쓰기에 몰두함으로써 전쟁 후 방향을 잃고 무기력해진 자신의 상황(여기에는 여자 친구 프엉과의 비극이 얽혀 있다.)을 잊을 수 있다. 글쓰기는 끼엔이 존재하는 이유, 사는 이유이다.




소설 밖으로 나와서 글쓰기의 의미를 달리 찾아볼 수도 있다. 책 앞에는 작가의 말이 실려 있는데 거기에서 바오 닌은 한국을 방문했을 때의 추억을 떠올린다. 한국에서 그가 만난 이들 중에는 다름 아닌, 베트남전 참전 문인들도 있다. 바오 닌은 과거에 서로 총을 겨누었을지도 모를 이 사람들이 마치 오랜만에 만난 친구라도 되는 듯 함께 술잔을 기울인다. 소설로 다시 탄생한 베트남전과 그 비극, 그리고 그것을 읽으며 과거를 떠올리고 서로의 아픔을 나누는 사람들. 글을 쓰고 읽는다는 것은 깊은 공감과 이해를 필요로 하는 소통의 장을 펼치는 일이다.




『전쟁의 슬픔』을 떠올린 나는 그날 버스 좌석에 앉아 생각했다. ‘저 외국인 노동자 중에 혹시라도 베트남 사람도 있지 않을까?’ 그러자 앞서 엄습했던 불안감이 잦아들고 조금은 호기심과 관심이 싹트기 시작했다. 외국인들이 저녁 메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지 서툰 한국말이 들려왔다. “목살.”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버스가 시내에 들어서자 그들은 두서넛씩 정거장에 내려 시야에서 사라졌고 나는 동행과 함께 시간을 때울 요량으로 작은 카페에 들어섰다. 카페에 앉아 있을 때 문을 열고 들어서는 또 한 무리의 외국인들. 이번에는 흰 피부에 배낭을 멘 익숙한 이들이다. 아마 여행을 온 이들 같았다. 버스에서 외국인 노동자들과 마주쳤을 때와는 달리 편안했다. 서툰 영어로 응대하는 카페 직원들의 웃음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새삼 다시 느꼈다. 아직은 내가 이해해야 할 사람들이 많고 따라서 읽을 책도 많다는 것을.

멀리 떠난 프엉을 찾고 싶다. 문텐해월 ㅣ 2013-07-25 ㅣ 공감(2) ㅣ 댓글 (0)


『전쟁의 슬픔』 바오 닌/ 아시아



베트남 소설을 처음 읽다.

뭐 전쟁소설이라 하지만 사랑이야기가 중심에 선다.

전쟁이 심어준 트라우마가 참전군인들을 둘러싸는 속에서 현실과 전장이 혼미하면서도 주인공 <끼엔>의 가슴엔 <프엉>이 항상 들어있어 끼엔에게 미치는 전쟁의 트라우마는 차원 높은 사랑의 서사詩로 승화될 지경이다.



십자성, 청용, 맹호부대원을 실은 호송함의 출항을 환송하는 날은 학교 수업시간이 단축되거나 바로 귀가하면 되었기에 우리학교가 환송행사에 동원되는 날이면 좋았던 기억이 난다.

월맹군과 베트콩은 괴뢰군이며 특히 베트콩은 쥐새끼를 연상하게 했다. 파월장병들이 공산군을 무찌르고 무사귀환하길 기원도 했다. 미국이 조작한 통킹만 사건을 꼬투리 삼아 당시 월맹을 폭격하면서 전선이 확대되었고, 그 수요에 부응하여 우리의 젊은이들이 파월되어 피를 바쳤던 월남.

당시 월맹군과 베트콩에 대한 적개심(?)은 없어졌지만 소설에 비친 북베트남(월맹) 정규군인 끼엔의 면모는 잠깐이나마 날 당혹하게 했다. 월맹이나 베트콩은 오직 사악한 무리들이라 그들에게 사랑이, 잃어버린 사랑에 대해 배회하는 젊은 영혼이 건재한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다.

흑백논리로 아군과 적군을 가르는 이분법에 매몰된 과거 교육의 산물로 굳어진 사고력이리라.



베트남의 역사는 한국과 유사하게 외세의 침략에 내내 시달려왔지만 우리가 부러워하는 점이 있다. 연약할 듯 하면서도 불굴의 정신으로 항거하여 나라를 지켜낸 점이다. 특히 현대사에 있어 강대국 프랑스와 미국을 상대로 민족과 나라를 지켜낸 값진 성과는 빛나는 금자탑이다. 베트남에 비해 경제적으로 월등한 비교우위의 한국이고 전후 베트남으로 진출하여 甲의 지위에서 우월함을 과시하고 있는 우리라지만 민족성이나 정신적인 측면에서는 비교열위일 뿐이다.



전쟁소설 세편.

레마르크作 <개선문>에서 라비크, 조앙마두.

조정래作 <태백산맥>에서 정하섭, 소화.

비오 닌著 <전쟁의 슬픔>에서 끼엔, 프엉.



조앙마두는 철저히 라비크에게 의존한다.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죄다 외과의사 라비크의 기반아래 두고 임시방편으로 나래를 펼치다 궁지에 몰려서는 다시 라비크를 찾으며 임종을 맞게 된다.

반해서 프엉은 끼엔보다 한 수 위에 있다. 폭격 당하는 아비규환 속에서 몸을 버리는 수모를 겪고 잠깐 자괴감에 빠지고, 곧 끼엔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려 했으나 그뿐, 철저히 자기의 길을 고수하려 한다는 점에서 끼엔에게 의지하지 않는다. 도리어 정신적으로 끼엔을 성장시켜주는 자양분이 된다. 정하섭과 소화는 읽은 지 오래되어 희미하다.

세 소설의 공통점은 전쟁으로 굵은 선을 그을 수 밖에 없는 여성들의 수난이다.

특히 남자에게 미치는 전쟁의 후유증에 비해 여성에게는 치명타이다.

우리의 소화는 정하섭을 찾아 어디론가 떠나 영영 잊혀진 인물이 된다.

조앙마두의 끝은 불꽃으로 돌진하는 나방이다. 암울한 전쟁의 여파가 우울한 사랑을 연출하고 그 우울은 조앙마두의 트레이드마크가 된다.

프엉은 전쟁에서 일탈을, 그 일탈은 그녀만의 자주성을 열게 한다.

끼엔을 사랑하되 사랑하는 만큼 지켜준다 했던가 끼엔의 순수와, 그녀의 일탈과 연장선상의 자주성과 타협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그녀는 영원히 끼엔을 사랑하는 방안을 찾은 것이다.

하! 내가 쓰는 이 글이 말이 되나? 모르겠다……



전쟁의 폐해가 젊은 남녀의 사랑을 흔들어놓아 파국으로 달리게 했으나, 그 파국은 치유의 과정을 거치게 되고, 치유 후에 오는 것은 인간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어쩌면 오늘밤에도 끼엔은 땅거미 짙은 밤을 배회하며 프엉의 환영을, 추억을 더듬어 볼 것이며 방황하기도 할 테다. 방황이 깊을수록 먼동이 터올 것이고, 나날이 마음이 건강해지는 끼엔으로 거듭 날게 될 것이다. 이런 끼엔이 전후 베트남 재건의 구심점이 되어 그들의 역사를 새로 쓰게 된다.



옮긴이 <하재홍>님께 대해 감사를 드리고 싶다.

베트남어를 바로 번역하였는데 여느 국내소설과 똑같다.

마치 국내소설인 것 마냥 매끈하게 한글로 탄생시켜 군더더기가 전혀 없다.

역자의 정성이 담긴 번역의 노고가 없었다면 이런 책이 탄생하지 못했다.





마광수교수의 상상력이 더해진다면 더욱 흥미로울듯! 그대는별이죠 ㅣ 2012-09-03 ㅣ 공감(0) ㅣ 댓글 (0)


지구상에 수많은 민족들이 이념,사상, 이해관계 를 달리하는 만큼 한가지 전쟁을 놓고 다양한 해석들이 존재할수 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베트남 전쟁역시 어느 편에서서 참전했느냐에 따라 감상과 평가가 다를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런 수많은 이념논쟁, 과오에 대한 지적을 넘어 전쟁에 관한 수많은 이야기들중 이처럼 애잔하고 슬픈 이야기가 또 있을까.



프엉과 끼엔을 보면서 지나간 시간뒤로 이제는 잘 기억도 나지않는 미니시리즈 '여명의 눈동자'의 최대치와 여옥이를 떠올릴수 있었다.

물론 다른상황이긴하나 여명의눈동자에서도 전쟁의슬픔에서도 순수한 젊은영혼들, 그리고 그들의 사랑이 전쟁을 겪는동안 안타깝게도 돌이킬수 없이 엇나가게되는 모습을 무척 슬프게 그리고 있었다.



무엇이 그들을 변하게 한걸까.

그들은 여전히 서로를 갈망했지만 왜 오래전 그날들 처럼 온전히 하나가 될수 없었던걸까.



이 소설은 10년동안의 전쟁이 그 모든 것들을 바꾸어놓았다고 얘기하고 있다.

전쟁터에서 돌아온 끼엔은 분명 변했다. 여전히 프엉을 사랑하는 그였지만, 둘사이는 자꾸만 어긋난다.

하지만 굳이 전쟁이 아니라도 10년이라는 시간은 너무도 길지 않을까? 시간의 흐름에따라 성숙해지고 새로운것으로 채워지면서 변할수 밖에 없지 않을까..



베드신이 조금더 나왔더라면 좀더 흥미진진했을텐데 하는 아쉬움을 중간중간 느꼈다.

아랫집에사는 이쁜누나가 반공호를 파달라고 했을때 아슬아슬하게 그냥 지나친것도 그렇고

거의 창녀급이 된 친구의 여동생을 구해줬을때 그의 방에서 시작될것같은 야릇한 분위기도 그렇고

전쟁이 시작되기전 호숫가에서 프엉과 보냈던 마지막 저녁씬도 그렇고

아버지의 화실에살던 벙어리 여자와의 관계에서도 그랬고

왜 베드신이 생길듯 말듯하면서 아슬아슬하게 빗겨가는지.. 가장 안타까운 부분이랄까!!



이럴때 마광수교수의 상상력을 조금 동원한다면 더욱 멋진 작품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할수있었다.



아직 김훈소설을 읽어본적이 없지만 모든이들이 찬탄을 보내는 그의 묘사력과 필력을 상상해보건데, 바오닌과 거의 견줄만하지않을까싶으며 간만에 번역이 훌륭한 소설을 읽은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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