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한반도] 남북기본합의서 체결 20주년 > 남북의창 > 정치 > 뉴스 | KBSNEWS
<앵커 멘트>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12월 17일 토요일, 남북의 창 이현주입니다.
먼저 남북간 주요 이슈 현장을 찾아가보는 <이슈 앤 한반도>입니다.
지난 해 천안함과 연평도 사태를 겪으면서 남북관계는 6.25 전쟁 이후 최악이라고 할 정도로 냉각돼 있는데요.
정부가 남북관계를 풀기 위해 여러 가지 궁리를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시원한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합의 없는 대결시대‘가 계속 되고 있는데요.
사실 남북은 그동안 여러차례 의미있는 합의를 이뤄냈습니다.
그 중에 ‘남북기본합의서’가 있는데요.
남북관계를 규정하는 일종의 헌법 같은 문서입니다.
최근 체결 20주년을 맞은 남북기본합의서가 어떤 내용인지, 또 지금 이 시기에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정소라 리포터가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녹취> 문정인 : "남북관계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문건이라고 할 수 있죠."
지난 13일은 역사적인 남북기본합의서 체결 20주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남북기본합의서는 분단 사상 처음으로 상호불가침과 교류협력, 통일에 이르기까지 남북관계에서 필요한 모든 내용을 담은 역사적인 합의였습니다.
1991년 12월 13일, 남한의 정원식 총리와 북한의 연형묵 총리가 남북기본합의서에 서명했습니다.
1985년부터 7년간 이뤄진 42차례의 남북비밀접촉과 5차례에 걸친 고위급 회담의 결실이었습니다.
<녹취> "통일의 시간이 같이....역사적 사인이네요...하하"
남북기본합의서는 서문과 4장 25개 조항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1장은 남북화해입니다.
상호 체제 인정, 내정 불간섭, 비방 중지, 정전상태의 평화상태 전환 등을 담고 있습니다.
2장은 남북불가침입니다.
무력침략 금지, 분쟁의 평화적 해결, 군사분계선과 관할 구역 인정, 남북군사공동위원회 설치를 명문화했습니다.
3장은 교류협력입니다.
경제·문화·과학기술 분야 교류와 협력, 이산가족과 같은 인도적 문제 해결, 철도와 도로 연결, 국제무대에서의 협력 등이 명시됐습니다.
남북관계에서 필요한 모든 내용은 물론 구체적인 실천방안까지 담고 있어 파격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인터뷰> 문정인(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남과북이 서로 상호인정하고 남과북이 서로 교류협력을 하기로 합의를 봤고, 그 다음에 군사적 신뢰구축, 경제사회적 신뢰구축, 그리고 새로운 남북한 관계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든 문건이죠."
남북이 기본합의서를 체결한 배경은 한반도 주변 정세 변화였습니다.
1990년대 들어 구 소련을 비롯한 공산권이 붕괴됐습니다.
또 남한이 1990년 소련과 수교한데 이어 중국과의 수교도 추진하면서 북한은 국제적으로 고립무원의 처지에 놓일 상황이었습니다.
남북의 UN동시가입과 미국의 한반도 전술핵 철수, 노태우 정부의 적극적인 북방정책도 밑거름이 됐습니다.
남한은 기본합의서 체결 당시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북한은 핵개발 중단을 상호 약속하면서 남북은 기본합의서에 이어 같은 해 말 한반도비핵화 공동선언까지 체결했습니다.
하지만 남북기본합의서는 당시로서 획기적인 내용을 담은만큼 이행에 걸림돌이 많았습니다.
우선 국내 보수파들의 격렬한 반발에 직면했습니다.
기본합의서 내용을 실천할 추가 남북 고위급회담과 분과위원회도 순항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기본합의서 체결 1주년을 맞은 1992년 말, 남북기본합의서는 위기를 맞게 됩니다.
북한의 핵개발 조짐이 감지된데다 남한이 이듬해부터 한미연합훈련을 재개하겠다고 선언하면서 남북회담은 파국을 맞았습니다.
<인터뷰> 박철언(노태우 정부 대북비밀특사) : "잠정적으로 중단선언을 했던 한미 팀스피리트 훈련을 1993년부터 재개하겠다고 정식으로 발표를 해버리니까 북한은 이것을 또 빌미로 해서, 그 당시 1992년 12월 서울에서 열리기로 돼있던 남북 총리간의 회담을 취소시켰습니다. 그래서 좀 더 실천적인 세부적인 계획에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이 남북기본합의서가 말하자면 둥둥 떠내려가는 그런 상황이 돼버린 거죠."
1993년, 김영삼 정부가 출범하면서 남북기본합의서는 본격적인 사문화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북한의 핵개발과 이에 따른 남한의 북한 적대시 정책이 결정적이었습니다.
특히 1994년 7월, 김일성 주석이 김영삼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갑자기 사망하면서 남북관계는 급속도로 냉각됐습니다.
1994년 일어난 1차 북핵 위기로 북미 관계도 다시 악화되고 말았습니다.
남과 북 모두 지키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으면서 기본합의서는 결국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지난 2000년 6월, 분단 55년 만에 남북 정상이 처음 만났습니다.
두 정상은 자주적 통일 추진과 인도적 문제 해결, 교류 활성화를 골자로 한 6.15 공동선언문을 발표했습니다.
5개 조항 모두 남북기본합의서를 그대로 계승했습니다.
6.15 공동선언 내용이 실행에 옮겨지면서 본격적인 변화가 시작됐습니다.
우선 분단 후 처음으로 대규모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시작됐습니다.
경제사회분야 교류도 확대됐습니다.
노무현 정부 역시 화해협력 기조를 이어갔습니다.
개성공단이 문을 열었고 경의선과 동해선이 연결됐습니다.
2007년에는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10.4 공동선언을 발표했습니다.
10.4선언은 6.15공동선언을 재확인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한 세부지침을 담고 있습니다.
<인터뷰> 문정인(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남북기본합의서에 기초해서 나온 게 제 1차 정상회담이고, 정상회담의 문건인 6.15공동선언은 남북기본합의서의 실천적 이행이라고 보면 되거든요. 그리고 10.4정상선언, 2007년에 있었던 10.4정상선언이라고 하는 것은 6.15공동선언을 또 이행하는 실천적 세부지침이란 말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남북기본합의서의 기본 정신은 아직도 도도히 흐른다고 볼 수 있겠죠."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초 남북기본합의서의 실천을 강조했습니다.
<녹취> 이명박(대통령 /2008.3.26 통일부 업무 보고) : "가장 중요한 기본 남북한 정신은 91년도에 체결한 기본합의서의 정신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
하지만 북한은 도발을 멈추지 않았고, 우리도 강경하게 대응하면서 남북기본합의서는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녹취> 정원식(남북기본합의서 체결 당시 남측 총리) : "기본합의서만 그대로 이행이 됐으면 사실은 남북간에 화해도 되고 또 연평도 사태와 같은 그런 불상사가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런 어려운 과정을 통해서 이 합의가 됐는데, 그만 그것이 지금 시대에 되지 못하기 때문에 당시에 그 기본합의서를 도출하는데 관계했던 사람의 한사람으로서 무척 아쉽게
생각된다는 말씀을 드리게 되고.."
기본합의서를 비롯해 남북간 합의가 모두 지켜지지 않으면서 남북은 사실상 합의없는 대결시대를 맞고 있습니다.
<인터뷰> 문정인(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남과북이 합의한다고 하는 건 특수관계의 합의도 있지만 두 개의 주권국가의 합의라고 볼 수 있거든요. 그런 합의는 지켜져야 되겠죠. 결국 그럴려고 보면 남북관계가 정치화돼선 안될 겁니다. 정권이 바뀌어도 남북관계가 지속될 수 있는 그런 정책을 우리가 견지해야 될 것입니다. 남북합의서가 그런 점에서 상당히 중요한 문건이고, 그것을 실행하는 게 문제지 더 새로운 무슨 대안을 만드는 게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남북기본합의서 20주년을 맞아서 이 문건이 갖는 역사적 의미는 매우 크다고 하겠습니다."
남북간의 합의는 지키지 않으면 사문화되지만, 지키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바로 생명력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합의를 하면 반드시 지키는, 상호신뢰가 필요한데요.
앞으로 남과 북이 자주 만나고 또 서로 힘을 합칠 기회가 많아졌으면 합니다.
그래야 믿음이 생기겠죠.
신뢰를 바탕으로 기존의 합의들을 서로 지키고, 또 새로운 합의도 차곡차곡 쌓아간다면 통일도 금세 오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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