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9-29

북한의 개혁·개방…베트남에 배운다 > 남북의창 > 정치 > 뉴스 | KBSNEWS

북한의 개혁·개방…베트남에 배운다 > 남북의창 > 정치 > 뉴스 | KBSNEWS

<리포트>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의 아침이 밝아옵니다.

거침없이 달리는 오토바이와 사람들.

새벽부터 붐비는 도심 거리는 역동적인 베트남의 축소판입니다.

활기찬 하루가 시작되는 도심처럼 변호사 레 응옥 뚜안 씨도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베트남에 투자하는 외국 기업들에게 법률 자문을 하는 레 변호사는 빈틈없는 일솜씨로 업계에서 주목받는 인사입니다.
     
올해 36살로 젊은 나이에 중형 아파트를 마련해 스스로를 중산층으로 여깁니다.

그동안 부지런히 일한 대가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뷰> 레 응옥 뚜안(변호사) : "대학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지금까지 모든 개개인은 항상 노력해야 하고 그렇게 노력하면,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을 얼마든지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레 변호사처럼 자신을 중산층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베트남에서 늘고 있습니다.

베트남 경제가 세계 최저 수준에서 중진국으로 한 단계 도약하는 등 베트남 경제가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1인당 국민소득은 지난 1988년 86달러에서 2008년 천 달러를 넘었고, 올해는 2천 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인터뷰> 짠 딘 티엔(베트남 사회과학원 경제연구원장) : "두드러진 성과는 베트남이 빈곤 국가에서 중간 소득의 개발도상국으로 한 단계 도약한 겁니다. 일본과 한국 같은 아시아 국가들이 많이 투자했는데, 경제 발전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글로벌 경제 위기 이후 성장세가 주춤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베트남의 전망은 여전히 밝습니다.

성장 잠재력과 투자 전망이 좋은 나라로 평가되는 11개의 신흥 경제국, 즉 NEXT 11가운데 하나로 베트남이 꼽혔습니다.

<인터뷰> 이규선(하노이 무역관장) : "저렴한 인건비 특히 풍부한 노동력, 인구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30대 이하의 노동력이, 앞으로는 베트남이 포스트 차이나를 담당할 세계의 생산기지로 기여하지 않을까 예상을 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2050년 베트남의 1인당 GDP가 2만 달러로 치솟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베트남의 경제성장은 28년 전 도이모이 정책에서 시작됐습니다.

당시 국회가 있던 이 자리에서 베트남 공산당은 경제적 변화를 추구하는 도이모이 정책을 채택했습니다.  

지난 1986년 열린 제6차 공산당 대회에서 경제 자유화와 대외 개방을 표방하는 도이모이 즉 쇄신 정책이 발표됐습니다.

당시 베트남이 쇄신에 나선 이유는 중앙집권적 사회주의 계획경제가 좌초 위기를 맞았기 때문입니다.

농업과 공업 등 산업의 집단화와 생산 수단의 국유화, 그리고 지나친 중공업 위주의 정책으로 극심한 경제난과 식량난을 겪으면서 정치적 경제적 위기가 고조됐습니다.

<인터뷰> 보 쿠완(베트남 전 부총리) : "당시 베트남은 심각한 공항 상태였습니다. 1986년 소비자물가지수는 약 800%, 1년간 782% 증가해 국민의 생활이 매우 힘들었습니다."
    
혼란이 최고조에 달하자 베트남 공산당은 전격적으로 시장경제 도입을 선언했습니다.

국영 기업에 경영 자율권을 부여한 뒤 소비재 생산을 촉진시켰고 수출주도형 성장 전략을 추진했습니다.

농민들은 수확한 농산물의 일정량만 국가에 납부하도록 하고 나머지는 처분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사회주의는 골격만 유지하고 속은 시장 경제로 채운 셈입니다.

<인터뷰> 보 쿠완(베트남 전 부총리) : "논도 그대로고 농민도 그대론데 단지 정책 하나의 변화만으로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도이모이 실시 이후인 1991년부터 쌀을 수출할 수 있게 됐습니다."

도이모이 정책 초기인 지난 1989년 옛 소련과 동구권이 잇따라 무너지면서 베트남은 사회주의 후원국들을 잃어버립니다.

그러자 베트남은 오히려 도이모이에 속도를 냅니다.

캄보디아를 침공했던 군대를 불러들이고, 중국과 아세안 국가에 접근하는 등 주변국과 평화공존을 모색했습니다.

또 선진자본주의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을 희망하는 등 대외개방을 적극 추진했습니다.

'과거를 잊고 미래로 나아가자'며 베트남 전쟁에 참여했던 한국과 수교하고, 1995년에는 미국과도 외교관계를 수립했습니다.

아세안과 APEC에 가입해 아시아와 태평양 국가의 지지를 얻었고 2006년에는 WTO 즉 세계무역기구의 회원이 됐습니다.

<인터뷰> 짠 딘 티엔(베트남 사회과학원 경제연구원장) : "세계 여러 선진국들이 따르고 있는 체제를 선택함으로써 다른 국가들과 협력 관계를 맺는 것이 가능해졌고, 국가 발전을 위해 그들의 원조를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하노이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한 이불 공장입니다.
    
직원 1,200명의 이 한국기업은 베트남 침구 시장에서 14년째 시장점유율 1위입니다.

지역마다 다른 문화적 차이를 적극 공략한 덕분입니다.

<인터뷰> 이재은(에버피아 사장) : "베트남은 남북의 길이가 2천 킬로미터가 되다보니까, 남쪽의 소비자들이 좋아하는 밝은 색깔, 북쪽에는 좀 따뜻하고 어두운 제품들을 출시했습니다."
    
이 업체가 베트남 시장에 투자한 건 한국과 베트남의 수교 직후인 지난 1993년입니다.

한국과는 체제가 완전히 다른 공산권에 대한 투자여서 고민과 어려움이 적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이재은(에버피아 사장) : "공산권 국가는 사장이나 일반 직원이나 공원이나 평등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럼 너희들도 똑같이 사장의 생각을 갖게 하면 어떻겠느냐 해서 주인의식을 갖게하고.."

외교 관계가 맺어지지 전부터 시작된 한국의 베트남 투자는 건수로는 일본을 제치고 1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10억 달러가 넘는 대규모 투자가 줄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지난 2009년 박닌성 옌풍 공단에 15억 달러를 투자해 연산 1억5000만대의 휴대전화 생산공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공장에서 지난해 모두 215억 달러어치를 수출해 베트남 수출의 18%를 차지했습니다.
    
베트남은 삼성전자의 휴대전화 수출 덕분에 수십년 계속된 무역적자에서 벗어나 2년 전부터 흑자 기조로 돌아섰습니다.

<인터뷰> 심원환(삼성전자 베트남 법인 전무) : "베트남 공장을 가동하면서 시장상황의 변화가 저희들 수익이나 제품 구조와 맞았고, 베트남 현지 직원들의 인적 자원이 우수하다보니 저희들이 조기에 가동하는데 굉장히 도움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삼성전자와 함께 진출한 협력업체만도 54개에 이르고 삼성전자와 이들 업체들이 지역 사회에 만든 일자리가 10만 개를 넘었습니다.

한국기업이 베트남의 개혁개방을 사실상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베트남 한국기업의 경험은 북한이 개혁개방에 적극 나설 경우 큰 자산이 될 수 있습니다.

공산권 국가인 베트남에서 성공한 한국 기업들의 경험에다 같은 언어와 문화, 정서를 공유하는 한민족이라는 점이 결합될 경우 적지 않은 시너지 효과가 기대됩니다.

다만 북한이 배워야 할 점은 주변 국가들과 평화 공존을 선택한 베트남의 선택입니다.

한반도 비핵화에 적극 나서는 등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겠다는 의지 없이는 한국과 일본 등 주변국의 도움과 미국 등 국제사회의 지원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레 당 저아잉(베트남 중앙경제연구원장) : "북한은 자신들의 정책을 바꿔야 합니다. 북한 정부는 핵무기 때문에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미국과 우월한 위치에서 협상을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베트남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베트남은 과거를 보지 않고 미래를 봤습니다. 그래서 미국과 협상했고, 관계를 정상화했습니다."

집권 3년째,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특구 정책 등을 통한 경제 회생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김정은식 개혁개방에 나선 북한이 베트남의 개혁개방 성공 사례를 철저히 연구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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