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북한] 北 정치범 수용소 > 남북의창 > 정치 > 뉴스 | KBSNEWS
북한 내부를 심층 분석해보는 <클로즈업 북한>입니다.
굶주림 속에 하루 12시간 이상 강제노역에 시달리고 고문과 공개처형이 일상적으로 이뤄지는 곳, 바로 북한의 아우슈비츠라 불리는 ‘정치범 수용소’입니다.
최근에는 정치범 수용소의 규모가 10년 전에 비해, 대폭 확대된 것이 위성사진을 통해 확인됐는데요.
권력의 3대 세습이 이뤄지는 정치적 불안정기를 맞아 수감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여 국제사회의 우려가 높습니다.
오늘 <클로즈업 북한>에서는 북한 정치범 수용소를 살펴봅니다.
<녹취> “매일 죽음의 시체가 있어요. 하루에도 죽는 시체가 한 작업반에 2-3건... 없는 날이 없습니다.”
국제사면위원회는 최근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 4곳을 찍은 위성사진을 공개했다.
위성사진을 분석한 국제사면위원회는 지난 2001년에 비해 수용소 규모가 커졌다고 밝혔다.
양귀비 재배지역이 15배나 늘어났으며, 수감자 건물도 10개동 이상신축된 것으로 나타났다.
수용소 수감 인원도 10년 전에 비해 2배 가까운 20만 명으로 늘어난 것으로 추정했다.
<인터뷰>샘 자리피(국제사면위원회 아시아태평양 담당관) : “북한에 적어도 6개의 정치범 수용소가 있다고 봅니다. 매우 거대한 규모입니다. 여섯 개 정치범 수용소에 약 20만 명이 수감돼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지난 2004년 일본 후지tv를 통해 최초 공개된 북한 정치범 수용소의 실상은 충격적이었다.
영상 속의 장소는 함경남도 위치한 요덕수용소로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곳이다.
수용소는 고압전류가 흐르는 철조망이 에워싸고 있다.
초소에서 군인들이 수용소를 감시하고 무장한 경비병이 순찰을 도는 장면도 포착됐다.
수감소 정치범들은 혹한의 날씨 속에서 강제노역을 했다.
누더기 옷을 입은 여성들이 쉴 새 없이 분뇨를 퍼 날랐다.
누가 볼 새라 꽁꽁 언 배추 잎을 허겁지겁 먹는 모습도 촬영됐다.
<녹취>김영순(탈북자/요덕수용소 출신) : “도주하지 못하거든요. 철조망으로 휘둘러 있고 200m 포대경이 하나씩 있어요. 높은 포대경 만들어 놓고 보초선 곳이 있고, 바깥은 가는 모래로 빙 둘러싸여 있고, 또 그 다음에 홈을 이만큼 한 몇 미터 파서 나무를 뾰족뾰족하게 철조망 딱 밑에 홈을 파서 나무를 다 세워놨거든요.”
북한은 지금껏 정치범 수용소 존재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정치범 수용소의 실태는 수용소 출신 탈북자들의 증언과 위성사진 등을 통해 드러났다.
북한이 운영하는 정치범수용소는 현재 확인된 것만 6곳이다.
평안남도 개천의 14호, 함경남도 요덕의 15호, 함경북도 화성의 16호, 평안남도 북창의 18호, 함경북도 회령의 22호, 청진의 25호 수용소이다.
북한의 정치범수용소는 크게 두 종류로 분류된다.
한번 들어가면 죽을 때까지 못 나오는 ‘완전통제구역’과 희박하게나마 석방될 가능성이 있는 ‘혁명화구역’이다.
<녹취>오경섭(세종연구소 연구위원) : “혁명화 구역은 최소 3년 이상 복역하다가 출소해서 다시 사회로 나와서 생활할 수 있는 수용소입니다. 그러니까 일정한 혁명화 과정을 거쳐서 사회로 복귀할 수 있는 수용소인데요. 이것은 15호 요덕수용소 일부 지역이 유일하게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모든 수용소는 완전통제구역입니다.”
18호 북창수용소 1곳만 우리의 경찰청에 해당하는 인민보안성 관할이고, 나머지 5곳은 우리 국정원에 해당하는 국가안전보위부가 운영한다.
북한 형법은 반국가 또는 반민족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김일성과 김정일에 반대했거나 그럴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과 그 가족들이 수감돼 있다.
통일연구원이 지난 2007년 발간한 북한인권백서를 보면 정치범수용소 수감 죄목은, 김일성과 김정일의 가족관계와 사생활을 유포했거나, 김일성 부자를 비난한 사람, 김정일 비자금 조성에 부정적 영향을 준 사람 등이다.
권력 투쟁에서 밀려난 고위급 인사와 지주, 탈북자와 월남한 사람, 기독교 신자와 그 가족도 정치범으로 간주된다.
한마디로 김일성, 김정일 유일영도체제에 걸림돌이 되거나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누구든 정치범 수용소도 보내진다.
<인터뷰>김영순(15호 요덕수용소 출신 탈북자) : “김일성 머리에 혹이 났다고 말해서 들어온 사람, 김일성의 석고상을 깨서 들어간 사람, 또 김일성의 초상화를 오손시켜서 들어간 사람, 또 남한 방송을 들어서 간 사람, 남한 비디오를 본 사람... 형형색색 층계가. 농민으로부터 최상위에 이르는 직급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수용소입니다.”
가족 중 한명이 정치범으로 몰리면 가족 모두가 수용소로 보내지는 연좌제가 적용된다.
재판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영문도 모른 채 평생을 수용소에 갇혀 지내는 경우가 많다.
<인터뷰>오경섭(세종연구소 연구위원) : “정치범 수용소의 대략 60% 정도는 아무런 이유도 모르고 자신의 가족 중 한 명이 정치범이라는 이유로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된 사람들입니다.”
북한은 해방 직후 특별노무자수용소를 설치해 지주, 친일파, 종교인과 같이 사회주의 체제에 적대적인 사람과 그 가족을 수감했다.
특별노무자수용소는 1956년에 일어난 종파사건을 계기로 정치범 수용소로 개편됐다.
김일성 유일독재에 반대하는 소련파와 연안파가 김일성이 소련을 방문한 틈을 타 김일성 축출을 시도하다 무산된 사건이다.
<인터뷰>오경섭(세종연구소 연구위원) :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의 증언에 따르면 1958년 그러니까 1956년 8월 종파사건이 발생한 후에 김일성이 통제구역을 설치하라고 지시를 했다고 합니다. 김일성은 그 종파 분자들은 머리 꼭대기까지 잘못돼 있기 때문에 그 가족들까지 완전히 사회로부터 격리해서 수용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을 수용할 수 있는 통제구역을 설치하라고 지시를 했다고 합니다.”
김일성의 지시에 따라 북창군 탄광지대에 정치범수용소가 최초로 설치됐고, 소련파와 연안파와 그 가족들이 수감됐다.
그 이후 김일성은 수용소를 반대세력을 제거하는 핵심수단으로 활용했다.
북한은 남한과의 체제경쟁을 벌이던 1960년대에 대대적인 성분분류사업을 벌여, 지주, 친일파, 월남자와 그 가족들을 적대세력으로 분류해 수용소로 보냈다.
정치범 수용소는 1970년대 김정일이 후계가 되기 위해 치열한 권력투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대폭 확대됐다.
김정일이 권력투쟁에서 패배한 반대파를 무자비하게 숙청하면서 정치범 수용소는 한때 10곳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인공위성 사진과 수용소 출신 탈북자들의 증언을 통해 정치범 수용소의 실태가 국제사회에 알려지자, 북한은 국경지대에 있는 수용소를 일부 폐쇄했다.
정치범 수용소의 인권유린은 매우 심각하다.
수감자들은 가혹한 강제노역에 동원된다.
계절에 따라 하루 평균 12시간에서 15시간 정도 농사와 목재 채취, 탄광작업을 해야 한다.
작업량을 채우지 못하면 식량 배급 못 받고 잠도 잘 수 없다.
강도 높은 강제노력에 시달리지만 식량은 목숨을 부지할 정도만 배급된다.
한 끼에 옥수수죽 2~300그램이 전부다.
<인터뷰>김영순(탈북자/요덕수용소 출신) : “산나물이 나면 다 뜯어먹고, 날아다니는 거 다 잡아먹고 기어 다니는 거 다 잡아먹고 돋아나는 풀 다 뜯어먹는 것이 수용소의 참상이라고 생각하면 되고...”
국제사면위원회는 1999년부터 2001년 사이에 수용소 수감자 10명중 4명이 영양실조로 숨졌다고 밝혔다.
주거 환경도 매우 열악하다.
가족을 꾸리고 있는 세대는 이른바 ‘하모니카 집’에서, 독신자들은 수용시설에서 생활한다.
<인터뷰>김영순(탈북자/요덕수용소 출신) : “하모니카 주택에 다닥다닥 붙은 주택에 옥수수 대로 부엌 테두리를 두르고, 진흙 부뚜막에 무쇠 가마를 걸어놓은 곳에서 다 생활을 합니다. 물만 갈아서 옥수수를 갈아서 해 먹고.. 그렇게 살죠. 일곱 식구가 산 게 3평 정도 돼요.”
수용소에선 성폭행, 낙태, 구타, 고문, 공개처형과 같은 인권침해가 일상화돼있다.
여성들은 보위부 간부들의 성노리개가 되고 있으며, 임신할 경우 낙태를 강요받게 된다고 탈북자들은 증언하고 있다.
굶주림과 인권탄압을 견디다 못해 탈출을 시도하다 체포될 경우 갖은 고문을 당한 뒤 공개처형된다.
<인터뷰>오경섭(세종연구소 연구위원) : “정치범수용소에서는 공개처형이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공개처형을 당하는 횟수는 강철환 씨가 요덕수용소에서 10년 동안 수감생활을 했는데 자신이 목격한 횟수가 15차례에서 20차례의 공개처형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바 있습니다.”
국제사회는 북한에 정치범 수용소 폐쇄를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은 요지부동이다.
북한에서 정치범 수용소는 김일성과 김정일 유일영도체제에 반대하는 세력의 싹을 자르는, 체제유지의 핵심수단이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기능은 공포통치 수단으로서 정치범 수용소 존재 자체다.
<인터뷰>오경섭(세종연구소 연구위원) : “정치범수용소의 존재 자체가 지배 엘리트들과 인민들에겐 공포의 대상이 됩니다. 그래서 지배 엘리트들과 인민들은 스스로 반김일성, 반김정일 활동을 억제하게 되고 통제하게 됩니다.”
국제사면위원회는 북한의 권력이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 이양되는 정치적 불안정기에 정치범 수용소 규모가 더욱 커지고 있는 것에 대해 큰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권력의 3대 세습이 주민들의 자발적 지지를 받기 힘들고 정당성이 부족하다는 측면에서 김정은은 공포통치의 유혹을 더욱 크게 느낄 수밖에 없다.
<인터뷰>오경섭(세종연구소 연구위원) : “김정은이 자신의 정권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배 엘리트층의 쿠데타를 차단하고 주민들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김일성, 김정일이 사용했던 정치법수용소와 같은 공포통치 수단을 유지해야 그 공포통치 수단에 의존해야 자신의 정권의 정당성을 얻을 수 있고 정권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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