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ngYeon Hwang
14 May at 12:05 · Public
나는 '당사자'와 '배후'를 구분짓는 건 궁극적으로는 불가능하고 그래서 부적절하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복수의 '당사자성'이 존재한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물론 나는 그 복수의 '당사자성' 모두가 완전히 '동등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
이용수님의 견해들을 보다 보니 2015년 위안부 합의에 관련된 정의연 측의 대응 방식이 그 분에게는 크리티컬 포인트가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든다. 그 분 개인이 그 합의에 찬성했나 반대했나와는 별도로, 그 합의에 대한 정의연 측의 대응 방식이 그 합의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당사자들을 소외시키는 것으로 그 분에게는 보인 것 아닌가 하는 생각.
.
내 개인 입장은 2015년 위안부 합의 역시 일본의 국가적 책임 문제를 우회한 것이고 따라서 받아들일 수 없는 합의라는 것이다. 그 지점에서 내 입장은 정의연의 입장과 일치한다(아마도 이용수님의 입장과도 그리 다르지는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있다).
그렇지만 그 입장을 관철해 나가는 방식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의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당사자의 입장과 같다 혹은 다르다 이런 방식으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정의연 그리고 그 비판자들 모두 같다 다르다 식의 구도에서 못 벗어난 것 같지만) 어떤 당사자성에 터를 잡아서 다른 당사자성과 어떻게 상호작용할 것인가의 문제로 봐야 할 것이다. 정의연이 (이 경우에는 이렇게 표현될 수 있는) 합의 거부라는 당사자성에 터를 잡은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지만(위에 썼다시피 나도 거기에 터를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옳은' 혹은 '유일한' 당사자성으로 사고하고 움직인 것이 문제이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아마도 그런 활동 방식의 주체적/객관적 조건 중의 하나가 민족주의일 것이고.
.
이용수님의 기억이 달라졌을 수 있다는 정의연 측의 발언이 당사자의 기억에 의지하여 해 온 운동을 싸그리 날리는 소리라고 비판을 받고 있던데, 내 생각엔 그런 위험성이 없지는 않지만 과장되었고, 그 발언에 대한 비판으로 부적절한 측면도 있지 않나 싶다. 그런 발언이 가능했던 것은 정의연 측이 처음 이용수님의 문제제기를 "왜 우리 이름 걸고 돈을 받아서 우리에게 안 주냐"라는 정도로만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보이기 때문이다. 이용수님의 문제제기를 그렇게밖에는 해석할 수 없었던 것이 이 지점에서의 근본적인 한계가 아니었을까.
.
언젠가 이 담벼락에서 한국과 필리핀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아시아여성기금 때문에 "거부한 사람"과 "받는 사람"이 갈렸을 때, 한국은 후자를 왕따시켰고, 필리핀은 전자의 입장에 서면서도 후자를 포용했다고.
한국이 왜 필리핀처럼 하지 못했나라는 질문이 생각보다 더 큰 후폭풍을 불러올 수 있는 질문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 질문에 답해야 하는 건 정의연만이 아닌 한국 사회 모두겠지만.
Comments
Luke Lee
2015년의 합의 때 정의연이 처음에 찬성했다가 직전에 반대로 돌아선 건 적이 있는데 그 일의 영향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누가 알겠습니까만.
· Reply · 1 w
박인용
중심 인물인 이용수 당사자가 던지는 운동의 오류라는 지적에 깊이 성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대협을 모금기관으로 전락시키고 전 정부에 끌려다닌 윤미향씨는 2015년 사퇴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Reply · 1 w
YongTaek Jeong
다음 호 웹진에 이 글 발전시켜서 기고해주시면 좋겠습니다
· Reply · 9 h
YongYeon Hwang
음... 생각해 볼께. 오늘 기자회견 보니 이용수님에 관해선 내가 좀 잘못 짚었나 싶은 것도 있어서.
· Reply · 9 h
Write a reply...
Hyun Ju Kim
대부분 동의가 됩니다.
못 알아들은 건 빼고.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