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29

알라딘: [전자책] 그대 가슴속에 살아 있고 싶다

알라딘: [전자책] 그대 가슴속에 살아 있고 싶다






그대 가슴속에 살아 있고 싶다 - 사랑하는 아내와 조국에 띄우는 영원한 청년 안창호의 러브레터
안창호 (지은이),윤병욱 (엮은이)샘터사2011-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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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12,000원 10,800원 (600원)
전자책정가
7,2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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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페이지수 320쪽, 약 9.2만자, 약 2.2만 단어

책소개
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 선생은 20세기 전반 한국의 최고 여행가이기도 했다. 항공 여행이 없던 시대에 증기선으로 태평양과 대서양을 건넜고 시베리아 횡단철도로 러시아, 독일, 영국에 이르렀다. 일본, 중국, 미국, 멕시코, 오스트레일리아 등 37년간 12개국 120여 개 도시를 찾았다. 이 모든 여정은 나라가 없던 시절, 해외 한인 공동체를 연결하고 이상촌을 세우려는 발걸음이었다. 세계 어딜 가든지 안창호는 아내에게 편지를 띄웠다.

이 편지를 받은 사람은 이혜련 여사다. 그녀는 옛 관습에 따라 약혼하였으나 굳센 의지와 용기로 사랑을 지켜 냈다. 안창호가 종교가 달라 혼인할 수 없다고 하자 신식 학문을 습득했다. 경제적인 이유로 유학 동행을 반대하자 여비를 마련해 따라나섰다. 결혼 생활 37년 동안 그들이 부부로 한집에 한 것은 10여 년에 불과하다.

이혜련 여사는 남편이 보내오는 편지를 소중하게 간직했다. 이렇게 모인 150여 통의 편지들에는 무국적자의 험난한 역정과 독립투사의 뜨거운 고뇌, 가족을 향한 간절한 그리움이 담겨 있다. 정감이 묻어나는 행간마다 '나와 남, 민족과 나라가 나가야 할 길은 무엇이며,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목차


당신은 놀라거나 슬퍼하지 마소서
- 옥중 서한(1932∼1938)

나는 방탕한 남자가 아니오
- 미국으로, 다시 한국으로(1902∼1910)

꽃보다 보낸 마음을 사랑합니다
- 망명의 길… 중국, 러시아, 미국(1910∼1919)

이 몸이 위험한 땅에 들어가더라도
- 상해독립운동(1919∼1924)

오직 혁명을 위하여 신명을 다할 뿐이외다
- 마지막 미주 순행과 민족통일운동(1924∼1932)

언제든 웃으며 지내거라
- 자녀에게 보내는 서한

있어야 할 사람 떠나니 : 안창호와 이혜련을 추모하며
참고 문헌


책속에서



나는 내일 도릭 호를 타고 동양으로 가겠소이다.
슬프다. 내가 오늘 수만 리 대양을 다시 건너 고국에 다녀오려고 하는 것은 무슨 경치를 구경하려 함이 아니요, 좋은 친구를 만나서 놀고자 함도 아니외다. 오늘 우리나라가 멸망하고 우리 2천만 동포가 멸망하게 되었는데 무엇이든지 내 힘으로 우리나라와 우리 동포에게 도움이 있게 할까 하여 다녀옴이라.

이 세상에 자기 나라를 위하여 죽는 남자도 많고 여자도 없지 아니하나, 이때를 당하여 우리가 죽음도 사양치 아니할 터이어늘 어찌하여 서로 이별하여 고생하는 것만 한탄하리요. 그대는 아이를 건강하게 기르고 너무 아파하고 심성을 상하게 하지 말기를 간절히 바라나이다.

- 1907년 1월 7일 오클랜드에서 접기



저자 및 역자소개
안창호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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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남도에서 태어난 안창호는 독립운동가, 사상가, 기독교인, 실천적 민족지도자였다.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로웠던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국내외 한민족의 통합과 자력 발전을 외치며, 올바른 가치관과 실천의 삶을 보여주었다. 1938년 병보석 출감 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는 단결된 민족과 지도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분열과 개인주의, 안일주의가 팽배한 현대사회에 그의 삶은 이 시대 참된 스승의 모습을 보여준다.


최근작 : <미주지역 한국민족운동사 자료집 - 전5권>,<경성 엘리트의 만국 유람기>,<안창호 (한영합본)> … 총 11종 (모두보기)

윤병욱 (엮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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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서산 출생으로 1962년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경향신문 정치부 기자로 있던 1964년 6·3사태로 전국에 지명수배를 받았다. 1965년 주미특파원으로 도미한 후 유타주 Brigham Young University 신문방송학 석사(1967), Yuin University 명예경영학 박사(2004), World Mission University 명예사회인문학박사(2007) 학위를 받았다.
2004년 캘리포니아 주의회에서 ‘미주한인의 날’을 법제화하는 데 기여했으며 미주한인재단 전국총회장(2004~2006)으로 매년... 더보기


최근작 : <도산의 향기, 백 년이 지나도 그대로>,<그대 가슴속에 살아 있고 싶다>,<나라 밖에서 나라 찾았네> … 총 4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안창호는 파이오니어Pioneer다
20세기 초에 이미 37년간 12개국 120개 도시를 종횡했다
2007년 11월 9일은 독립운동가 도산島山 안창호(1878~1938) 선생의 탄신 129주년이다. 완전무결한 인격자이자 사상과 노선에 따라 분열된 상해임시정부의 좌우파를 이끌 유일한 정치적 지도자로 꼽히던 안창호 선생이 20세기 전반 한국 최고의 여행가라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는 항공 여행이 없던 시대에 증기선으로 태평양을 다섯 번, 대서양을 한 번 건넜고 시베리아 횡단철도로 러시아, 독일, 영국에 이르렀다. 일본, 중국, 미국, 멕시코, 오스트레일리아 등 37년간 12개국 120여 개 도시를 두루 돌아다녔다. 이 모든 여정은 나라가 없던 시절, 해외 한인 공동체를 연결하고 이상촌을 세우려는 발걸음이었다. 비록 삶의 이유를 나라와 민족에 맞추고 살았지만 그는 세계 어딜 가든지 아내에게 편지를 띄웠다. 결혼 생활 37년 동안 안창호의 아내 이혜련(1884~1969)이 그와 부부로 한집에 함께 산 것은 10여 년에 불과하다. 그동안 그녀는 남편이 보내오는 편지를 소중하게 간직했다.

안창호는 로맨티스트다
역사의 거센 소용돌이 속에서도 뜨거운 사랑을 가슴에 품었다
이 책에는 안창호 이혜련 부부가 미국 샌프란시스코 정착 후 보낸 첫 편지(1904년 3월 25일)부터 두 번의 투옥 끝에 병세가 악화되던 마지막 편지(1936년 8월 7일)까지 110여 통의 편지가 담겨 있다. 대한인국민회와 신민회 활동, 중국과 러시아로 망명, 멕시코, 미국 순행과 상해임시정부 참여, 민족통일운동 등 역사적인 행보를 따라가면서 그 이면에 숨겨진 개인의 고뇌와 감정의 편린들을 엿볼 수 있다. 30여 년 동안 안창호는 한결같이 편지 첫머리에 ‘나의 사랑하는 혜련’이라고 썼다.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인 조선왕조 말기, 신시가 나오기 한참 이전에 과감하게 사랑을 표현하는 용기는 그의 남다른 면을 보여 준다. 또한 항상 ‘하시옵소서’ ‘바라나이다’ ‘전하소서’ ‘대답하소서’와 같은 경어체를 쓰면서 부부 간의 법도를 지켰다. 안창호는 이혜련이 보내 준 말린 연꽃을 가슴속에 품고 다녔고(p.167), 상해에서 선물로 받은 한국 엿을 미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보내는(p.227~228) 등 편지를 통해 깊은 정을 주고받았다. “나는 내 손으로 가꾼 정원의 화초는 좋다는 말없이 속으로 사랑하는 사람이외다.(p.233)”라며 무뚝뚝하다가도 “사랑, 두 글자를 보내오니 당신의 사랑하는 남편이 옥중에서 보내는 선물로 받으소서.(p.37)” 뜨겁게 사랑을 고백할 줄 아는 로맨티스트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안창호는 리얼리스트다
현실 삶의 기반 위에서 독립의 구체적인 방략을 찾았다
안창호는 평생 독립운동에 전념하여 가정과 자녀에 대한 직무를 다하지 못하는 남편과 아버지의 심정을 편지로 전했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어린 자식을 교육하지 못하면 직책을 잃음(p.138~139)”이라며 자녀 교육에 심혈을 기울였다. 또한 “당신과 내가 이름은 부부라고 하나 일평생 단란한 가정생활을 못하였으니 늘그막에 아이들 데리고 한집에 모여 고락을 같이 하는 것”이 소원이라면서 “늙어가면서 아내가 지어 주는 음식이 제일 맛있다고 느낀다. 당신이 지어 주는 밥을 먹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p.61)”고 아쉬움을 털어놓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가 죽음도 사양치 아니할 터이어늘 어찌하여 서로 이별하여 고생하는 것만 한탄하리요(p.98)”와 같은 구절에서 보듯이 일생을 가족보다는 나라의 일에 초점을 맞추고 살았다. 노동자들을 만나 해외 현실을 듣고, 젊은 유학생들과 토론하며 조국의 미래를 보았던 기쁨을 아내에게 편지로 전했다. 다른 독립운동가들이 이념과 노선 대결에 열을 올릴 때, “사사로운 일을 돌아볼 여지가 없고 오직 혁명을 위하여 최후로 목숨까지 재촉할 뿐입니다.(p.278)”하며 대공大公주의를 천명하고 현실적인 독립운동 방략과 방향을 정했다. 평생 이상촌을 찾아다닌 것도 동포들의 안정적인 생활 기반을 마련하고, 군인을 양성하여 지속적인 독립운동을 뒷받침하기 위한 무실역행務實力行의 노력이었다. 무국적자의 험난한 역정과 독립투사의 뜨거운 고뇌, 가족을 향한 간절한 그리움이 담겨 있는 행간을 따가라며 100년 전 치열하게 살다간 한 젊은이의 생생한 모습을 만날 수 있다. 더불어 그의 거짓 없이 나라를 위한 열정적인 모습에서 ‘나와 남, 이웃과 나라가 나가야 할 길은 무엇이며,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깊은 메시지를 느낄 수 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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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안창호를 연설가 운동가로 알아왔지만 부인과 또 가족들, 자녀들에게 편지를 주고받는 것을 통해 또 다른 자상한 아버지와 남편의 면모를 볼 수 있는 책이다. 그리고 정말 문학가이다.
bookandlatte 2018-03-27 공감 (0) 댓글 (0)

마이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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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가슴속에 살아있고 싶다를 읽고...


책 표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젊은이들아 도산을 읽어라.

평소 도산 안창호 선생하면 조국의 독립과 평화를 위해 힘쓰신 애국자라고 알고 있었다. 학교에서 배움을 게을리 했기에 그이상은 잘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안창호 선생은 애국자이면서 애처가이고 자식을 무척이나 사랑하신 분이었다. 특히 아내를 향한 사랑은 책을 읽는 내내 구구절절히 다가왔다.
항상 조국의 광복에 힘쓰면서도 가족에 대한 사랑을 게을리 하지 않았던 모습이 참으로 인상깊었다. 1935년 3년간의 형무소 생활을 마치고 나왔을때 그를 배웅하기위해 4천여명의 군중이 모인 장면에서는 정말 감동을 느낄수 있었다. 참으로 본받을게 많다. 꼭 이렇게 살지는 못하더라도, 그를 본받고 싶다.
젊은이들아, 도산을 읽어라. 이 한마디에 모든것이 담겨 있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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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화이트 2007-11-30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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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감동적인 이 책, 우리 아이들에게 많이 읽혀졌으면 좋겠다.





[서평]그대 가슴속에 살아 있고 싶다.

학교 다닐 때 배웠던 도산 안창호
그의 업적과 정신은 후세에 길이 빛나도록 드높고,
대단히 고매한 인품과 업적의 소유자로 배울 점이 많은 분이었다.
그때의 감동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이 책이 너무 읽고싶었다.
책을 받아들자마자 바쁜 일정에도 책 읽는 기쁨을 놓칠 수 없어 어딜 가더라도 한 손에는 내내 책을 놓지 않고 들고 다녔다.
그대 가슴속에 살아 있고 싶다.
도산 안창호님을 다시 보게 하는 책이었다.
사랑하는 아내 혜련에게 절절히 띄우는 사연이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안창호님이 더 인간적으로 느껴지고 가까운 이처럼 느껴졌다.
아내 이름이 혜련이었구나.
이름도 참 예뻤다.
아내에게 보통 하대들을 많이 하는데

이분은 역시 존대를 했다. 그것조차 참 멋지게 생각되었다.
읽고 우리도 서로 존칭을 쓰자고 했더니 콧방귀를 뀐다.
극존칭까지는 아니더라도 하오 정도라도 쓰자고 의견을 내 놓아 보았다.
서로 가볍게 보는 마음이 없어지고 말에 무게가 실리니 존중하는 마음이 깊어지고,
다툼이 일어나도 커지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존칭하자고 한 것인데 반응이 시큰둥하다.
아, 이 책을 꼭 읽어보게 하고 싶다.
그럼 생각이 달라질테니.
꽃보다 보낸 마음을 사랑합니다.
정말 구절구절, 편지마다 가득한 사랑이 내 가슴을 일렁이게 했다.
읽고 있는데 눈물이 핑 도는 것이다.
참 따뜻한 마음을 지닌 사람이다. 도산 안창호.
뜨겁고 굳세고 따뜻한 성품을 지닌 사람이다.
선각자.
그를 떠올리면 이 말이 생각났었다.
그의 러브레터 속에 나타난 사랑의 대상-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조국.
남들이 쉽게 하지 않는 일을 하고,

가기 어려운 길을 갔으며,
미래를 내다보며 예측하고 앞서 나갔다.
그래서 그를 선각자라 부르나 보다.
러브레터와 함께 관련 업적을 상세히 실어주어 더 좋았다.
사진과 친필 편지 등 볼거리도 가득했다.
20세기 초에 이미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니고 새 문화를 접하고 두려움 없이 진취적인 기상을 펼치고 나라 사랑의 마음이 굳센 바위처럼 굳었다.
참 대단하고 멋지고 훌륭했다.
정말 감동적인 이 책, 우리 아이들에게 많이 읽혀졌으면 좋겠다.
이 땅에 자라는 우리 아이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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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가는향기 2008-02-27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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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가슴속에 살아 있고 싶다
구한말부터 일제 강점기를 지나면서 우리의 뇌리에 깊이 박혀 있는 열사들의 손으로 셀수조차도 없다.
우리의 영원한 언니이자 누나인 유관순도 있고 저 먼 중국에서 일본군과 싸웠던 김좌진 장군도 있다.
한국인의 정신적 지주였고 지금도 그런 김구 선생님도 계시고 이토히로부미를 저격하신 안중근 의사도 있다.
더 말해 무엇하리.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때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국가를 위했던 헌신에 절로 고개가 수그려지고 지금의 우리의 모습을 보면 목숨을 걸고 지켰던 나라를 부흥시키지 못함에 부끄럽다는 것이 옳은 심정일 것이다.
그 중 춘원 이광수가 우리민족의 선각자로 교육자로 혁명가로 칭했던 도산 안창호는 올곧은 생각과 인격으로 많은 사람들의 귀감이 되고 현실에 기초하여 독립의 방향을 잡아 흔들리던 상해 임시정부를 이끌고 갈 수 있던 유일한 분으로 칭송받던 분이다.
독립투사라 하면 그저 감옥에서 고문을 받고 음지에서 독립자금을 모으고 먼 타국에서 군대를 이끌고 그런 모습만 생각했던 내게 한국 최고의 여행가로서 배와 기차를 타고 러시아, 영국 미국,멕시코 오스트레일리아등 37년간 12개국 120여 도시를 돌아다녔다는 것은 너무나도 새로웠다. 도산께서 아내 이혜련과 주고 받은 편지 모음 속에서 따뜻함과 넘치는 사랑과 함께 가장으로서 가정을 책임지지 못하고 떠도는 미안함과 아이들에 대한 걱정과 발견할 수 있었다. 조국에 대한 걱정과 희망찬 미래에 대한 확신을 보이지만 번뇌하고 체력적으로 힘들어하는 모습은 독립군이기 이전에 한 사람임을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사진으로만 봐도 자그마한 체격에 다부진 얼굴은 누구나 의지하고 기대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확신에 찬 결연한 의지가 보이며 가족과 함께 있는 사진은 그가 아버지임을 알게 한다. 청년으로서는 잘 상상이 되지 않기는 하지만 그의 대부분의 일생이 가족과 떨어져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아이들의 담담함과 바르게 자람은 오롯이 아내의 이혜련의 몫이었고 책임이었다. 그래서 그럴까? 편지 글의 "나의 사랑하는 혜련에게" 라는 서두에는 아내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 담겨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당신은 편지쓰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지 않다는 말을 하시지만 여행을 하며 ,교도소에서, 중국에서 흥사단을 이끌며 보낸 가족에게 보낸 수 많은 편지들은 평범한 일상속에 감추어진 도산의 인자함과 세계를 보는 시선에 애국심까지 더해져 있고 가족들이 그 서신들을 하나하나 소중히 모으고 간직한 정성에서는 함께 할 수 없었던 그리움이 묻어 나온다.

도산의 인간적인 면과 더불어 시대의 아픔도 역사의 흐름속에 국외에서 생활하게 된 유학생 미주이민자들, 중국의 독립투사들의 생활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되었다. 간간히 있는 사진들과 도산과 안부인(이혜련여사)가 직접 쓴 엽서와 글들은 낯익지 않는 글자체로 인해 읽기가 힘들지만 1920-30년대까지도 쓰고 있던 한글 받침들이 보여 사실 좀 신기해 보인다. 어투도 ~하노라 ~하나이다. ~하였는지요. ~소이다. 등 생경하지만 부부지간에도 정감있으면서도 예의를 갖추는 모습이 본받을 만하다. 사랑을 전하는 편지 행간마다 묻어나는 그 마음을 담아 나도 가족들에게 편지를 써 보아야 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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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이모 2008-02-21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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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조국에 띄우는 안창호 선생님의 러브레터


어제는 삼일운동이 일어난지 89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아직 100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일제 시대의 참혹한 기억이 가물가물 잊혀지고 있는 것을 반영하듯, 이명박 대통령은 어제 삼일절 담화에서 '일본의 과거사를 묻지 않겠다'는 말을 했단다. '역사의 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되지만'이라 단서를 달았지만, 그 단서는 '그렇다고 해서 언제까지 과거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는 말로 가볍게 부정되었다고 개탄하는 진중권 씨의 칼럼은 참 씁쓸했다.
그런 의미에서 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 선생님이 조국과 아내에게 띄운 편지 모음집인 <그대 가슴 속에 살아 있고 싶다> (안창호 지음, 2007, 샘터)는, 도산 안창호 선생님의 개인사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상황을 모두 조망하는 비망록이자 질타처럼 느껴졌다.

안창호 선생님(1878 ~ 1938)은 37년간 12개국 120여 개 도시를 돌아다녔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여러 단체를 조직하고 해외 동포를 규합하는 등 많은 일을 해냈다. 그러다 결국 광복을 보지 못하고 형무소에서 사망한다.
1902년부터 1938년까지 그의 일상을 찍은 사진들로 책을 시작한 후, 독립운동을 하다가 옥에 갇힌 시기인 1932~1938년의 편지들을 제일 먼저 배치하였다. 그 뒤로 1902~1910년의 '미국으로, 다시 한국으로', 1910~1919년의 '망명의 길-중국, 러시아 미국', 1919~1924년의 '상해독립운동', 1924~1932년의 '마지막 미주 순행과 민족통일운동', 마지막으로 자녀에게 보내는 편지들로 그의 일생을 나누어 그 시기에 아내에게 보낸 편지들을 수록하였다.
필요한 경우에는 그 배경이 되는 상황 설명이 들어 있다. 그의 생활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조국의 상황과 연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편지의 수신인인 이혜련 여사(1884 ~ 1969)는 결혼생활 37년간 겨우 10여 년만 함께 했으나, 아이들을 키우고 생활을 하느라 고생이 많은 가운데에서도 남편에 대한 사랑과 믿음을 잃지 않았다.

아내에 대한 미안함과 사랑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국을 위한 사명감은 그의 편지의 전부이다. 어떤 감옥생활이 편할 수 있을까마는 가족들이 걱정할까봐 한사코 가볍게 이야기하는 깊은 마음이 잘 전달된다.
다양한 사진 자료와 편지를 통해 지금까지 알아온 교과서적이고 평면적인 인물에서 벗어나, 가족을 사랑하는 자상한 남자이자 독립운동가로 살아 숨쉬는 도산 안창호 선생님을 만나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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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로움 2008-03-02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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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 안창호 그는 로맨티스트였다!!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들을 책으로 만들었습니다.

1900년대 이지만 늘 그는 사랑하는 혜련에게라고 편지를 쓰시고있습니다.

아내에게 보내는 말 하나하나에 존경과 사랑을 가득담아 보내시고있습니다.

그러니 10년정도 밖에 할께 살지 못했지만 죽을때까지 서로를 아끼고

그리워하며 살아갈수 있었던게 아닐까 생각됩니다.

조국을 위해 모든것을 희생하며 살아간 그의 삶이 참 존경스럽고 감동스러웠습니다.

항상 겯에 있어주지 못하고 떠돌기만 남편이라서 아버지라서

늘 미안하다고 말하는 그의 마음이 편지 속에서 절절히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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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이야기 2007-11-28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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