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의 차별과 억압
최봉영 (지은이)지식산업사2005-01-10
한국 사회의 차별과 억압
수험서.외국어.컴퓨터.대학교재 4만원 이상, 라떼 유리컵/스톱워치/본투리드 볼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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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274쪽152*223mm (A5신)384gISBN : 9788942360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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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제1장 한국문화 속의 차별과 억압
1. 차별과 억압이 문제되는 이유
2. 관계 맺음의 두 방식
3. 차별과 억압에 따른 관계 맺음
4. 조선시대 유교문화와 차별과 억압의 문화요소
5. 민주화와 차별과 억압의 문화요소
6. 차별과 억압의 문화와 그 성격
제2장 왜 존비어체계를 문제삼는가
1. 언어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문화차이
2. 존비어 체계와 생각 및 소통
3. 존비어체계와 토론문화
4. 존비어체계를 바라보는 상반된 견해
제3장 존비어체계의 구실과 기능
1. 서열분화와 존비어체계
2. 존비어체계와 차별과 억압
3. 존비어체계와 유교의 차등적 윤리 규범
4. 민주사회에서 존비어체계의 구실과 기능
제4장 존비어체계와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과 연구
1. 존비어체계에 대한 관심과 연구
2.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과 연구
제5장 존비어체계와 한국인의 삶
1. 존비어체계와 형식적 권위주의
2. 형식적 권위주의의 다양한 모습
3. 존비어체계와 출세지상주의
4. 존비어체계와 호칭
5. 존비어체계와 호칭 부풀리기
6. 존비어체계와 거만과 비굴
7. 존비어체계와 능력 발휘
제6장 존비어체계와 사회 갈등
1. 존비어체계에서 말미암은 갖가지 어려움
2. 존비어체계와 가족 관계의 갈등 유발
3. 존비어체계와 업무 관계의 갈등 유발
4. 존비어체계와 사회 관계의 갈등 유발
5. 존비어 체계와 세대 갈등 및 충돌
제7장 글을 끝맺으며
1. 어떠한 점을 논의했는가
2.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접기
책속에서
오늘날 한국인은 수십년에 걸친 고난의 투쟁을 치루고 제도의 민주화를 이룩했지만, 아직도 차별과 억압이 강하게 남아있는 문화 속에서 살아간다. 한국인은 어딜가나 나이, 선후, 학번, 직위, 성별, 빈부, 학벌, 지역 등을 따져서 차별과 억압의 자료로 삼는다. 그러니 한국인의 삶 속에는 나이, 성별, 직위, 빈부, 학벌, 지역 등에 따른 차별과 억압이 일상화되어 있다. 한국인은 차별과 억압의 일상화를 매우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실제 생활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차별과 억압이 일상으로 되어 있어 그것을 의식하는 일조차 쉽지 않은 마당에, 그것을 문제로 자각하고 풀어가는 일은 기대조차 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이미 습관으로 굳어진 일상을 자각하고 변화시키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 없기 때문이다. 접기 - 임세원
한국에선 공적인 일뿐만 아니라 사적인 일에서도 상하를 따져 행동한다. 반면에 중국에서 아랫사람은 오로지 공적인 일에만 윗사람에게 복종한다. 이러한 예는 중국인 왕효령이 쓴 <<한국 리포트>>에 잘 드러나 있다. 그녀는 이 책에서 ˝작년에 중국에서 공무원 연수단이 경희대에 왔을 때 지도교수님과 연수단이 같이 식사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부성장(성은 한국의 도에 해당하는 행정단위) 급인 사람이 경리한테 라이터를 달라고 했는데 경리가 자기 라이터를 상사한테 던지는 장면을 보고 우리 교수님은 너무도 놀랐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중국이다. 직장 내의 위치 때문에 생기는 서열이기 때문에 일을 할 때에만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복종할뿐, 일을 떠나서는 동등한 인격체로서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고 생각한다˝ 라고 쓰고있다. 왕효령, <<한국 리포트>>(가람기획, 2003) 208쪽
한국인 교수가 크게 놀란 것은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라이터를 던져주는 중국인의 행동을 대단한 무례로 보았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공과 사의 경계를 명확히 긋지 않는 까닭에 아랫사람은 윗사람에게 무조건 최대한의 충성을 바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윗사람을 잘 섬기지 못하는 사람으로 오해받는다. 이 때문에 아랫사람은 윗사람에게 라이터를 공손히 가져다 바치는 것은 물론이고, 불까지 붙여 주려고 한다. 반면에 중국인은 공과 사의 경계를 명확히 긋는 까닭에 아랫사람은 공적인 일에 한해서만 윗사람에게 충성을 바쳐야 한다. 아랫사람이 사적인 일에 충성을 바친다면 그것은 비굴한 행동이다. 이처럼 동일한 사태를 두고서 한국인과 중국인은 정반대의 생각을 한다.
군에서는 대대급 이상의 부대장에게 전용차량과 운전병을 지급한다. 부대장은 차량과 운전병을 공적 업무에만 사용하도록 규정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 만약 부대장이 술을 좋아하여 밤늦도록 술집을 순회하는 경우에 운전병은 계속 부대장을 모시고 다녀야 한다. 공적인 일과 사적인 일에 대한 초보적인 구분조차 하지 않는 까닭에 부대장과 운전병은 그러한 사태를 당연한 일상으로 받아들인다. 비록 운전병이 자신의 처지에 강한 불만을 갖고 있더라도, 엄청난 불이익을 각오하지 않는 한 그것을 표현할 방법이 없다.
오늘날 한국인은 유사신분관계로 묶여서 살아가기 때문에 아랫사람의 경우에는 조선시대 노비보다도 못한 처지에 놓이는 일이 많다. 공과 사의 구분이 모호한 상태에서 아랫사람은 일과시간에 공노비의 역할을, 일과시간을 넘어서는 사노비의 역할을 아울러 수행해야 할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러니 한국인이 민주공화국의 국민 자격을 갖고 있지만 오히려 왕조시대의 노비보다도 못한 삶을 살아간다는 아이러니와 마주하게 된다. 실제로 오늘날 사회의 곳곳에는 조선시대 노비보다도 못한 처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널려 있다. 그렇지만 유사신분관계에 젖어 있는 까닭에 이것을 깨닫는 일조차 매우 어렵다. 접기 - 임세원
저자 및 역자소개
최봉영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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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항공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서울교육대학교와 건국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4년 현재 바탕공부 연구모임 회장을 맡고 있다.
최근작 : <영조와 사도세자 이야기>,<한국인에게 나는 누구인가>,<한국 사회의 차별과 억압> … 총 10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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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말은 미완성이다. 새창으로 보기 구매
이책은 한국말이 존비어체계로 인해 서로를 어떻게 옭아매는지, 한국말 때문에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피곤하게 살아가는 지 보여준다.
한국말은 개인을 개인으로 인식할 수 없는 언어이다. 오로지 상대방 나이나 직위를 기준으로 나와 상대방이 어떤 ‘관계’이냐에 입각해 내가 쓸 언어가 정해진다. 내가 쓰는 언어의 자유를 누리자면 상대방이 쓰는 언어의 자유까지 보장되어야 하는데 한국말은 상대방의 언어에 희생을 요구하며 내 언어의 자유만을 고집한다. 나와 상대방의 언어가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범위는 오로지 동갑을 만날 때이다. 나이를 알고나면 내가 사용해야할 언어의 범위가 정해지기 때문에 한국 사람은 사람을 만나면 상대방의 나이에 예민하다.
한국말은 이미 언어 자체가 인간관계를 좌우해 버리는 희한한 언어이다. 나이가 많거나 적으면 나와 대등한 언어를 사용할 수 없다. 일찍 태어나고 늦게 태어남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일인데, 한국사람들은 이런 태생적 문제에 의미를 부여해 인간을 상하로 구분해 놓고 스스로를 들들볶으며 살아간다. 똑같은 인간이라는 코드로 접근하자면 내가 늦게 태어났다고 해서 상대방에게 나를 낮출 이유가 없다. 나이가 많으면 소중한 존재이고, 나이가 적으면 덜 소중한 존재이기라도 한 건 지 사람들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일단 한 수 먹고 들어가려고 한다. 나이가 많지 않아 존대를 해야하는 사람들은 존비어체계에 이의를 제기하기보다 자신도 언젠가는 나이 어린 사람으로부터 존대를 받을만큼 나이를 먹는다는 사실에 희망을 갖는다. 저자의 말처럼 오히려 존대를 해야만이 예의를 지킬 수 있다고까지 생각한다.
일상에서 “내가 나이 더 많으니까 말 놔도 되지?” 주로 이런 말을 듣다가 언제부터인가 “저보다 나이 많으니까 말 놓으세요.” 이런 말을 더 많이 듣게 되었다. 이런 말은 참 사람을 불편하게 만든다. 아니, 불편한 것보다 서글프다. 나이라는 장벽 앞에서 나와 상대방이 대등한 눈높이의 대화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아무리 친하고 싶은 사람이 있어도 나이가 무기인 언어의 장벽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한 나라의 언어는 그 나라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쓰는 언어이다. 그런 언어가 왜 나이가 많은 사람과 적은 사람을 가르고 나이가 많은 사람만에게만 유리하게 작용할까? 이런 점에 주목할 때마다 난 한국말이 조폭언어라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한국 사람들이 ‘친구’를 비롯해 조폭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도 한국말 자체가 조폭의 발상을 담은 언어라 사람들에게 그런 영화가 호소력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다. 일상이, 한국말이 조폭문화, 조폭언어가 아니라면 그런 영화에 거부감이 들었을 것이다. 또, 유난히 또래 문화가 발달하고, 끼리끼리 패거리주의가 유난히 발달한 이유도 한국말이 가지는 폐쇄성 때문이라고 본다.
“비록 강력한 차별과 억압이 존재할지라도 일상화되면, 그것을 의식하는 일조차 쉽지 않다. 이런 까닭에 오늘날 한국인은 차별과 억압의 일상화로 갖은 괴로움을 겪고 있지만, 그것의 원인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1장 첫머리에 쓰여있는 말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수도없이 한국말이 가진 모순을 지적했지만 사람들은 나를 이단아 취급했고, 내가 건드리지 말아야할 부분을 건드린 신성구역 침범자로 여겼다. 한 예로, 한국말은 나이를 기준으로 자기가 사용해야할 말의 범위가 결정되는 언어라 너무 답답하다고 누군가에게 얘기한 적이 있는데, 그 사람의 말이 자신은 회사에서 인정을 받는 자리에 오르고 보니 자신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 자신한테 존대말을 써준다며 존대말이 꼭 나쁜 것도 아니며, 존대말이 꼭 나이 기준으로 쓰인다고만 볼 수도 없다며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식으로 얘기를 했다.
대학 때 영국 친구가 한국말을 배우는데 너무 어렵다고 하소연을 했다. 그래서 한국말을 빨리 배우는 비결 중의 하나가 나이를 기준으로 어투가 어떻게 달라지는 지를 익히면 빨리 배울 수 있다고 가르쳐주었다. 몇 년 후 그 친구가 하는 말이 “한국말은 비인간적이다. 똑같은 인간인데 어떻게 나이를 기준으로 자기가 쓰는 말이 달라질 수 있냐?” 고 했다. 주변 사람들한테 이 얘기를 해주었다. 그 영국친구는 한글이 얼마나 과학적인 글자인 지도 모르냐, 어른을 공경하는 문화랑 개인주의가 발달한 서구랑 같냐... 별의별 반박이 다 나왔다.
그런데, 이 모든 게 정말 한국말의 차별 문제이기만 할까?
나이차별이든 성차별이든 결국 차별문제는 파고보면 개인을 개인으로 보지 못한다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그렇다면, 가정에서부터 개인을 개인으로 인식해 위냐 아래냐를 구분해 ‘관계’에 의한 호칭으로 부르는 일이 없이 서로가 서로를 대등한 주체로 인식한다면 가정을 넘어선 밖에서도 개인을 개인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든다. 가정에서부터 형, 누나, 언니, 오빠, 동생... 이렇게 줄을 세우는데 학교에서, 직장에서라고 다를까?
앞에서 한국말은 개인을 개인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언어라고 했지만, 개인을 개인으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존비어가 발달한 걸까? 존비어가 발달해서 개인을 개인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서로를 ‘관계’에 의한 호칭으로 부르는 걸까?
저자 역시 너무 존비어에만 비중을 두다보니 호칭문제를 간과해 버렸다. 232페이지에 “또한 형이 재혼을 한 경우에, 새로 들어온 형의 처가 시동생이나 시누이보다 나이가 훨씬 적은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시동생이나 시누이는 형의 처를 형수님이나 언니로 부르면서 높임말을 써야 한다.” 이런 내용이 보인다.
이 말은 이상하다. 일단, 이말대로라면 남편의 남동생은 ‘시동생’인데, 여동생은 ‘시동생’이 아니라는 얘기다. 동생이라는 말은 남자와 여자 모두에게 쓰는 말인데 남편의 여동생은 시동생이 아니라 ‘시누이’라는 호칭이 따로 있다. 더 웃긴 건 남편의 남동생은 시동생이고, 남편의 형은 시아주버니이고, 남편의 누나는 ‘형님’이고, 남편의 여동생은 ‘시누이’다. 그리고, ‘시동생이나 시누이는 형의 처를 형수님이나 언니로 부르면서 높임말을 써야 한다’는 부분에서 남편의 남동생 입장에서는 형의 처가 되겠지만 남편의 여동생 입장에서는 오빠의 처가 된다. 이런 호칭 문제가 바로 개인을 ‘개인’으로 부르지 못하고 나이에다 성별까지 대입한 ‘관계’를 파악한 호칭으로 부르다 보니 생기는 문제다.
사정이 이런데, 이땅의 여성운동은 서구이론만 열심히 쏟아내고, 제도적 차별 제거에만 급급하다. 언어적인 차원에서 보자면 한국의 여성운동은 엘리트 여성들만의 잔치라는 게 확연해진다. 그렇지 않다면, 한국말이 가정에서 어떻게 차별되는 지 주목했어야 했다. 제도적 차별이 제거된다한들 언어적 차별이 제거되지 않는다면 그게 평등인가?
옛날엔 생활에 필요한 모든 정보가 어른의 경험에서 나왔기에 나이는 곧 생활의 지혜와 정보가 쌓임을 말했다. 오늘날은 정보가 발달함에 따라 굳이 어른들의 경험을 빌지 않더라도 삶에 필요한 생활의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왜 그들이 어른이라는 이유만으로 존대를 해야만 하는가?
존대어는 ‘상하존중’이 아닌 ‘상호존중’일 때 의미를 가져야 한다. 상하존중은 조폭집단에서나 가능한 발상이다. 민주사회는 상호존중이 요구되는 체제다.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나라에서 언어가 민주적이지 않음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걸 보면 한국사람들은 민주주의가 뭔지도 모르면서 민주주의 타령을 하는 게 아닌가.
- 접기
사고뭉치 2005-03-30 공감(20) 댓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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