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일과 친일을 오간 모순적 인간…이광수 평전 출간
입력 : 2016.09.06 15:46:44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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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이광수, 일본을 만나다'
"'인제는 망국민이다' 하는 생각을, 한참 길을 걸은 뒤에야 할 수가 있었다. 나는 중도에 앉아서 얼마 동안인지 모르게 혼자 울었다. 나라가 망한다 망한다 하면서도 설마설마하고 있었던 것이다."
춘원 이광수(1892∼1950)는 1948년 펴낸 자서전 '나의 고백'에서 1910년 한일병합 소식을 접한 뒤 받았던 충격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당시 그는 일본 유학을 마치고 고향인 평안도 정주로 돌아와 오산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이로부터 30년 뒤인 1940년 이광수는 가야마 미쓰로(香山光郞)로 창씨개명을 했다. 그러고는 일본과 조선이 하나라는 '내선일체'(內鮮一體) 사상을 주장한 일본어 소설 '진정 마음이 만나서야말로'를 발표했다.
반일과 친일을 오간 논쟁적이고 모순적 인물인 이광수의 삶을 다룬 평전 '이광수, 일본을 만나다'가 출간됐다. 저자는 30년 전 춘원의 소설 '무정'을 읽은 뒤 오랫동안 이광수의 문학 세계를 연구해온 하타노 세쓰코(波田野節子) 일본 니가타대 명예교수다.
이광수는 한국 근대 문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일본에 협력했다는 전력으로 인해 반역자라는 낙인이 찍혀 있다. 한국문인협회가 최근 이광수 문학상을 제정하려다 진보 성향 역사단체의 반발에 부딪혀 철회했던 일을 떠올려보면 그에 대한 평가가 여전히 상반돼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춘원의 행적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지 않는다. 그 대신 이광수가 쓴 글을 중심으로 그의 삶을 세밀하게 추적해 나간다.
몰락한 집안에서 태어난 이광수는 열 살에 부모를 여읜 뒤 친척 집을 전전하는 방랑 생활을 했다. 열한 살에 동학에 입문해 교주의 말을 전하는 전령을 하다 상경한 그는 운 좋게 일본 유학의 기회를 잡게 된다.
조선보다 근대화된 일본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그는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에서 일했고, 1938년 동우회 사건으로 기소된 뒤 사상전향서를 제출하고 친일 인사로 돌아선다.
이광수의 말년은 행복하지 않았다. 1949년 반민족행위처벌법에 따라 수감됐고, 한국전쟁이 발발한 직후인 1950년 7월 북한군에 강제 연행돼 평양으로 이송됐다. 그는 그해 10월 폐결핵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춘원의 생애를 살펴본 하타노 명예교수는 그의 사상에서 특히 '힘에 대한 욕망'에 주목한다.
이광수는 경술국치의 원인을 힘의 차이에서 찾았다. 그는 "일본은 힘으로 우리나라를 빼앗았다. 빼앗긴 나라를 도로 찾는 것도 '힘'이다! 대한 나라를 내리누르는 일본 나라의 힘은 오직 그보다 더 큰 힘을 가지고야 밀어낼 수가 있다"고 말했다.
춘원은 1944년 난징에서 열린 대동아문학자대회에서 평론가 김기진으로부터 일본정신 함양을 강조한 글을 썼느냐는 질문을 받고 "조선인은 일본인보다 우수한 민족이다.
따라서 선거권을 가지고 국정에 참여한다면 대신도 나올 것이다. 그러면 일본인은 조선인이 일본을 장악할 날이 머지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합방한 것을 취소하자고 할 것이다"고 답했다.
김기진은 이광수의 답변을 '망상'으로 여겼지만, 하타노 명예교수는 조선인의 힘을 믿은 춘원의 진심이 담긴 말이라고 지적한다.
저자는 "이광수의 삶에서 볼 수 있는 것은 19세기 후반부터 근대화를 목표로 질주해온 일본의 모습"이라며 "이광수는 일본인에게 창(窓)과 같은 존재"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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