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석
26 May at 20:08 · Public
적어도 위안부 문제에 접근할 때 그것을 식민지 문제의 차원에서 보든 여성 문제의 차원에서 보든, 어떠한 점에 주안점을 두든지와 상관없이 적어도 피해자 분에 대한 인신공격이나 비난, 조롱 등의 모욕을 주어서는 안된다는 사회적인 합의랄까 '선'이 있어야 하는데 최근에는 일본 사회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에도 그러한 '선'이 없다는 게 여실히 드러난다.
피해자 분이 자신의 정파적 입장에 맞지 않는 발언을 한다고 하여 '노욕'이니 돈 때문에 그랬다느니, 배후가 있다느니, 기억이 왜곡됐다느니, 발언에 일관성이 없다느니 이런 말들은 기존의 위안부 피해자 분들을 모욕하던 주로 일본인이었던 비판자들이 주로 사용하던 논법이었다. 피해자 분들의 발언이 바뀌고 그렇다고 할지라도 나름대로의 일관성은 계속해서 추출할 수 있을 정도로 존재했다.
예를 들어 지금 이용수 피해자 분의 발언이 문제가 되는 건 이분이 그 이전에 한국과 일본의 우익들로부터 증언의 신빙성을 두고 계속해서 비판받았던 분이시기 때문이다. 1993년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 1권에서는 위안부로 모집된 시기를 1944년 가을이라 증언한다. 그런데 그뒤로 1942년, 1944년 10월, 1943년 여름, 1943년 10월, 1943년 가을 등으로 계속해서 증언이 변한다. 1945년 1월부터 위안부 생활을 시작해 종전까지 계속 이어갔기에 이 증언의 변화에 따르면 최소 10개월에서 최대 3년까지 위안부로 계셨던 기간이 달라진다.
이를 두고 비판자들, 주로 한일 우익들이 증언이 거짓이라는 식으로 비난을 많이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증언의 일관성이 계속해서 관측된다. 즉 대체로 늦여름에서 가을(10월)이었던 시기에 모집된 것이라는 게 설사 연도가 계속 바뀔지라도 30년 가까이 계속해서 일관적으로 나타난다. 연도의 차이는 그럴 수 있다고 넘어갈 수 있는 문제이다. 본질인 그 모집되었던 시기, 날짜, 계절 등에 대한 이미지는 변한 게 없다. 이런 점에서 증언의 신빙성과 일관성이 내가 보기에는 담보된다.
모집 경위에 대한 것도 1993년 증언록에서는 친구와 가출했다가 친구의 부모님에 의해 취업사기의 형태로 인신매매 당해서 위안부가 되었다고 증언하는데 그뒤로 총검에 의한 강제연행을 주장하셔서 논란이 많았다. 지금도 부정론을 취하는 일부의 사람들은 이걸 근거로 정대협이 옆에서 꼬시는 바람에 증언이 점점 폭력적으로 변하게 되었다고 주장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구체성은 사라졌을지라도 끌려가던 시점에서의 그 이미지는 증언 전체를 관통하는 일관성을 보여준다. 본인이 누구에게 끌려갔는지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니 강제연행인지 인신매매인지가 다소 애매해지는 것인데 그 부분을 제하고 보면 폭력성에 대한 이미지는 증언 전체에서 관측된다.
그러면 누구에게 끌려갔는가, 이게 제일 문제인데 1993년 증언록에서는 국민복 형태의 군복을 입은 일본인 남성이었다가 그뒤에 증언이 "일본군"으로 바뀌어 또 많은 비난을 받았지만 이미 1993년 증언에서부터 군복 같은 옷을 입은 남성이라 군인인지 누구인지 헷갈린다는 식으로 말씀하셨다. 그 "군복 같은 옷을 입은 일본인 남성"이라는 이미지 자체는 증언록 전체를 관통하여 일관성을 보인다.
피해자 분들의 증언에서 뺄 부분은 빼고 그 관통하는 일관성을 갖고 논의를 해야 하는데 몇몇 디테일을 갖고 증언 전체를 부정하거나 특정 증언에만 주목하는 식으로 반응하는 경우가 많다. 검증할 것은 검증하되 발언의 일관성에 기초하여 사건을 재구성하고 보다 큰 관점에서, 사회를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는데 이 작은 디테일들에만 집착하고 마치 그것으로 위안부 문제의 모든 것들이 판별되는 것처럼 하니 대립이 격화되고 그럴 수밖에 없다.
일본제국이 전쟁기간동안에 식민지 노동력을 이용하는 방식 자체를 문제삼는다면 우리는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까. 나는 이 지점에 대해 많은 논의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게 여전히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근대국가가 공동체의 구성원을 노동력의 형태로 조직하고 동원한다고 할 때 좌파적 입장에서 그것을 어디까지 비판할 수 있으며, 어디까지 해야 하는가. 이론적으로 공동체의 역사적 존재양태부터 시작해서 미래의 공동체에 대한 구상까지 여러 지점에 대한 논의를 통해 위안부 문제를 보다 진지하게 다뤄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예컨대 남성 노동력에 대한 동원이 징용 문제로 나타났다면 여성 노동력에 대한 동원은 위안부와 정신대 문제로 나타났다. 여성 노동력을 위안부 형태로 조직하는 것만을 문제삼을 것인가? 아니면 징용 문제에서와 마찬가지로 피식민자를 근대국가가 노동력의 형태로 조직해 동원하는 것 자체를 문제삼을 것인가? 그러한 비판이 자국의, 한국의 근대국가에게로 향하지 않을 수 있는가?
근대국가의 이런 작동을 부정한다면 어디까지 근대국가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 동원의 '피해자'의 범주를 어디까지로 설정할 수 있는가? 개인적으로 이런 여러 결들에 대한 이론적 분석과 종합적인 이해를 중심으로 대중적인 차원에서 시민권과 인권의 교육 차원에서 위안부 문제가 논해지는 방향으로 앞으로 나아갔으면 하는데 사안이 정치화되면서 지나치게 디테일에 집착하며 마치 그런 작은 디테일들이 사건의 본질을 규정할 수 있다는듯이 행동하는 것도 모자라 피해자 분들에 대한 인신공격으로 이어지는 모습을 보면 착잡하기 그지없다. 나는 이전에 어느 발제글에서 이런 식으로 위안부 운동을 계속 한다면 언젠가 우리는 또 다시 국가와 정치의 이해관계에 따라 위안부를 사용하는 우를 범하게 될 것이라 지적한 적이 있었는데 설마 이런 형태로, 위안부 운동을 주도한 이들에 의해 사회적으로 논란이 일어나는 형태로 그 지적이 실현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이제 비난은 위안부 피해자 분들이나 위안부 운동을 넘어서 아예 시민사회, 시민단체, 시민운동 전반에 대한 것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런 식으로 가다보면 결국에는 시민사회에서 나타나는 모든 형태의 운동들이 국가로 수렴되게 된다. 국가를 장악하는 이만이 자신의 이해관계에 맞춰 시민사회의 다원적인 욕구를 충족하고 실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국가를 둘러싼 갈등은 더 커질 것이고 그 두 축의 충돌이 사회적으로 미치는 파장 또한 점점 더 커질 것이다. 헤겔이 말했듯이 국가가 직업단체 등의 시민사회를 통해 점차로 자연적으로, 자동적으로 여러 다원화된 욕구를 정치에 반영하여 사회적 갈등이 점차로 작아지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데.. 너무 어려운 것 같다. 다들 피해자 분을 비난하지 않는다는 선은 꼭 지켜줬으면 좋겠다. 적어도 내 탐라에는 아직 그런 글이 보이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다.
Comments
Soo Hyun Kim
맞아요. 피해자분을 비난 하지 않는다는 선이 중요합니다 근데 자꾸 왜 그렇게 몰아가는지 ㅠㅠ슬퍼진짜 슬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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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석
선이 없는 사회..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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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ongRak Park
'정리'가 아니라 새로운 관점과 해석을 제시하는 걸로 세를 만드는 경우가 너무 많아졌는데 처음의 여러 좋은 취지를 떠나서 그것이 시간이 지나 고여 있다가 곪아 터져 나오고 있어 슬픕니다. 새로운 시각의 언어로 표현하는 선발자이점으로 너도나도 시장을 형성하는 가치의 춘추전국시대같아요. 사실 68혁명 즈음을 기점으로 주욱 그래왔기에 여기까지 온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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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eon Seok Kim
후..정말이요. 특히 친여권 성향의 고등학교시절 선생님들 중에 선을 넘는 분들이 많네요. 제가 선을 넘고 싶어집니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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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석
김현석 ㅠㅠ 힘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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