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16
16세기 문화혁명 야마모토 요시타카 2010
16세기 문화혁명
야마모토 요시타카 (지은이),남윤호 (옮긴이)동아시아2010-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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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사 주간 22위, 역사 top10 2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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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100자평(7)리뷰(2)
940쪽
책소개
<과학의 탄생>의 저자 야마모토 요시타카의 책으로, 역사가들에게 홀대 받았던 16세기를 과학사적 의미에서 새롭게 조명한다. 역사에서 16세기는 흔히 '이름 없는 세기'로 불린다. 천재들이 주도했던 15세기 르네상스와 17세기 과학혁명. 그사이에 계곡처럼 존재하는 16세기. 그 시대에는 과연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16세기에는 그야말로 별처럼 빛나는 천재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17세기를 준비하는 지식 세계의 거대한 지각변동, 다시 말해 '16세기 문화혁명'이 진행되고 있었다. 한마디로 케플러, 갈릴레오, 뉴턴, 윌리엄 하비를 필두로 한 17세기 신과학의 천재들이 남긴 혁혁한 업적은 16세기 문화혁명이 밀어올린 지반 위에서 태어났다는 것이다.
저자가 주장하는 것은 르네상스기와 17세기에는 지식을 독점한 소수 엘리트 계층에 헤게모니가 있었던 것과 달리 16세기에는 오히려 수공업 직인으로서 예술가나 기술자에게 그 변혁의 헤게모니가 있었다는 점이다. 아니, 그들이 없었다면 17세기 과학혁명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역사의 가정까지 제시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수많은 도판과 사례와 자료를 제시하며, 지식의 공개와 누적적 진보라는 근대적 사상이 16세기 직인들의 기술과 실천을 통해 어떻게 싹텄는지를 한 장의 세밀화를 들여다보듯 생생히 그려낸다. 17세기 과학혁명의 토대를 일군, 16세기의 진정한 역사의 주인공들을 새롭게 조명한 책이다.
목차
한국어판 출간에 부쳐
서문 전체를 조망하다
제1장 예술가에서 시작되다
제2장 외과의의 대두와 외과학의 발전
제3장 해부학과 식물학의 도상 표현
제4장 광산업·야금술·시금법
제5장 상업수학과 16세기 수학혁명
제6장 군사기술혁명과 기계학·역학의 발흥
제7장 천문학, 지리학 그리고 연구의 조직화
제8장 16세기 후반의 잉글랜드
제9장 16세기 유럽의 언어혁명
제10장 16세기 문화혁명과 17세기 과학혁명
저자 후기
역자 후기
미주
참고문헌
인명 찾아보기
추천글
이 책은 종래의 과학 사상을 새롭게 해석한 ‘말 그대로의 노작’이다. 전작 『과학의 탄생』을 펴내고 불과 4년 만에 다시 1,000여 쪽이 넘는 대작을 완성한 저자에게 경외감을 느낀다.
- 노에 게이치 (도쿄대 과학철학 교수)
저자는 자타가 공인하는 원숙한 과학사가로서 대학 아카데미즘에서도 이루지 못한 일을 해냈다. 일본 대학에 대한 비판이 숨어 있는 듯한 점도 이 책의 색다른 맛이다.
- 네모토 쇼헤이 (과학사가, 일본 과학기술문명연구소장)
이 책은 어느 특별한 역사 애호가의 천착에 머물지 않는다.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이 이 책과 같은 발상을 이해하고 넓히는 일이 정말로 문화 발전에 공헌한다. 아니, 그 자체가 문화의 발전이라고 이 책은 말한다.
- 아타타 야보쿠 (평론가)
이제 우리 삶의 일부분이 되어버린 서구 근대성의 형성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흥미로운 책. 우리 자신을 알고자 한다면 지금 여기를 만들어내고 있는 담론의 터전을 파악해야하는 법인데, 이 책보다 더 포괄적이고 재미있게 그 배경을 설명해주는 책은 없다.
- 이택광 (문화비평가, 경희대학교 영미문화전공 교수)
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중앙일보
- 중앙일보(조인스닷컴) 2010년 3월 6일 깊이읽기 BOOK
동아일보
- 동아일보 2010년 3월 6일자
한겨레 신문
- 한겨레 신문 2010년 3월 5일자
저자 및 역자소개
야마모토 요시타카 (山本義降)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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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사가, 자연철학자, 교육자, 전 도쿄대 전공투 의장.
1941년 오사카(大阪)에서 태어났다. 안보투쟁이 한창이던 1960년에 도쿄(東京)대학교 이학부 물리학과에 진학하여, 1964년 졸업 후 같은 대학원에 진학하여 입자물리학을 전공했다. 동학들 사이에서 수재로 촉망받던 그는 박사과정 3년 차에 베트남반전회의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도쿄대 전공투(全共鬪) 의장을 맡아 도쿄대 투쟁을 이끌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1969년 야스다 강당 공방전에 앞서 경찰의 지명수배를 받아 지하에 잠복했으나, 같은 해 9월 히비야공원에서 열린 전국 전공... 더보기
최근작 : <과학혁명과 세계관의 전환 1>,<일본 과학기술 총력전>,<나의 1960년대> … 총 7종 (모두보기)
남윤호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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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생으로 80년 보성고, 85년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후 87년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88년 중앙일보사에 입사해 중앙경제신문 편집부, 문화부, 정경부 등에서 일했으며, 96년 일본 호세이대 경영대학원에서 기업가 양성을 위한 연수를 받았다. 4년 간 중앙일보 도쿄특파원으로 활동했으며, 현재 영자신문인 <중앙데일리>의 비즈니스 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최근작 : <넥타이 맨 넝마주이> … 총 4종 (모두보기)
Editor Blog
2010 상반기 우수과학도서 - 일반 l 2010-07-29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는 상반기, 하반기로 나눠 1년에 두 차례 우수과학도서를 선정합니다. 각 출판사에서 한 차례 걸러 주요 도서를 제출하고, 이를 바탕으로 심사 과정을 거쳐 선별하기에 '상반기 우수과학도서'라는 이름에 부합하는 목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만화, 아동, 초등, 중고등 부문을 '어린이, 청소년'으로 묶어 1차로 정리했는데, 이번에...
출판사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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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뉴노멀의 철학>,<남극이 부른다>,<코로나 리포트>등 총 188종
대표분야 : 과학 3위 (브랜드 지수 413,466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역사에서 16세기는 흔히 ‘이름 없는 세기’로 불린다.
천재들이 주도했던 15세기 르네상스와 17세기 과학혁명.
그사이에 계곡처럼 존재하는 16세기.
그 시대에는 과연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세계 문화사의 공백으로 여겨지는 16세기를
과학사적 의미에서 재평가한 역작.
아사히신문저술상, 마이니치출판상에 빛나는 저자의
『과학의 탄생』을 잇는 또 하나의 세계적 업적!
◆ 전설적인 운동권 투사에서 세계적 학자로
도쿄대학교에 가면 지금도 불타버린 ‘야스다 강당’의 폐허가 남아 있다. 격동했던 한 시대의 교훈을 그들은 그렇게 기억에 보존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 야마모토 요시타카는 1960년대 말 일본의 가장 격렬했던 학생운동 시대의 도쿄대 전학공투회의(일명 전공투全共鬪) 의장으로 유명하다. 1968년 당시 ‘도쿄제국대학 해체’와 ‘자기부정’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야스다 강당을 점거하고 불태운 주인공이 바로 그였다. 하지만 격정의 시대가 끝나갈 무렵인 1969년 2월, 그는 《아사히저널》에 ‘자기부정에 자기부정을 거듭해, 평범하지만 자각한 인간이 되어 한 사람의 물리학도로서 생을 살아가고 싶다’는 수기를 싣는다. 일본 최초로 노벨상을 수상한 유카와 히데키 교수의 부름을 받고 교토대학교에서 소립자물리학 연구를 하면서 ‘차세대 노벨상 수상자’로 주목 받았던 그는 그렇게 대학을 떠났다. 그리고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대입학원인 ‘슨다이예비학교’에서 물리를 가르치며 재야에서 외로운 학문의 길을 걸었다.
“세계적 수준의 독창적 업적”이라 평가 받는 『과학의 탄생』(원제 : 『자력과 중력의 발견』은 그렇게 탄생했다. 저자 야마모토 요시타카는 원서를 읽기 위해 직접 라틴어와 프랑스어를 새로 배우고, 고서점을 훑으며 희귀한 문헌들을 수집,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방대한 분량의 자료를 독파하면서 20여 년의 노력 끝에 이 대작을 완성했다. 이는 결코 대학 강단에서는 이룰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책은 일본 과학 출판계에서 자그마치 10만 권 이상이 팔리는 베스트셀러로 등극하며 그해 마이니치출판상, 오사라기지로 상, 일본 과학기술진흥재단저술상 등 각종 상까지 휩쓸었다. 1949년 유카와 히데키가 일본인 최초로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이래로 지금까지 과학 분야에서 노벨상을 수상한 일본인이 모두 13명(물리학상 7, 화학상 5, 의학 1)이나 되는 배경에는 과학에 대한 이러한 일반인들의 높은 관심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근대 과학이 탄생한 배경을 인류 문명사의 장대한 역사를 통해 추적한『과학의 탄생』 이후 4년 만에 다시 펴낸 『16세기 문화혁명』은 여러모로 그 연장선상에 있다. 역사가들에게 홀대 받았던 16세기를 과학사적 의미에서 새롭게 조명한다는 의미에서도 그렇고, 천재들의 업적에 가려 빛을 받지 못했던 한낱 장인, 기술자에 불과한 이들의 업적에 고루 빛을 나누어 주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 조각난 역사를 하나로 잇는 세계적 업적.
세계 문화사의 공백으로 여겨지는 16세기를 과학사적 의미에서 재평가한 역작.
역사 교과서에서는 흔히 14~15세기를 르네상스, 17세기 과학혁명의 세기라 일컫는다. 16세기에는 이렇다 할 만한 이름이 붙여져 있지 않다. 1492년 바스코 다 가마의 인도 항로 개척 이후를 ‘대항해 시대’라고 하지만 지리학적 발견만을 염두에 둔 것이므로 16세기 전체를 아우르기에는 무언가 부족한 점이 있다. 『블랙 아테나』를 쓴 역사가 마틴 버널조차 ‘16세기는 이름이 없다’ 혹은 ‘눈에 띄는 것이 없다’고 말했을 정도다. 게다가 예술사·사상사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인문주의(고전 연구)에 치중한 르네상스와 비교할 때 후기 르네상스라고 이름 짓기에도 무언가 석연치 않은 면이 분명히 있다는 점에서 저자는 의문을 제기한다.
보카치오나 라파엘로가 활동한 14~15세기의 르네상스와, 갈릴레오나 뉴턴으로 대표되는 17세기 과학혁명 사이의 계곡처럼 보이는 16세기. 이 시기에는 그야말로 별처럼 빛나는 천재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17세기를 준비하는 지식 세계의 거대한 지각변동, 다시 말해 ‘16세기 문화혁명’이 진행되고 있었다. 한마디로 케플러, 갈릴레오, 뉴턴, 윌리엄 하비를 필두로 한 17세기 신과학의 천재들이 남긴 혁혁한 업적은 16세기 문화혁명이 밀어올린 지반 위에서 태어났다는 것이다.
저자가 주장하는 것은 르네상스기와 17세기에는 지식을 독점한 소수 엘리트 계층에 헤게모니가 있었던 것과 달리 16세기에는 오히려 수공업 직인으로서 예술가나 기술자(직인, 외과의, 나아가 시장통의 산수교실 교사나 뱃사람들)에게 그 변혁의 헤게모니가 있었다는 점이다. 아니, 그들이 없었다면 17세기 과학혁명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역사의 가정까지 제시한다. 그들은 스스로 적극적으로 자신들이 소외당하던 학문 세계의 경계를 타 넘어 들어감으로써 그전까지 굳게 닫혀 있던 장벽을 와해시켰다. 또 속어(각각 그 나라의 민중들이 쓰던 언어. 영어, 독어, 프랑스어, 네덜란드어 등)로 책을 씀으로써 라틴어로 굳게 보호 받고 있던 대학 아카데미즘의 지적 독점에 바람구멍을 냈다. 이것은 종래의 스콜라 문화를 대신하는 새로운 지식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었다. 즉 그들은 자신이 익힌 기술의 비밀을 문서로 만들어 공개했고, 종전까지 천시되던 수작업과 기계적 기예의 가치를 분명히 밝혔다. 또한 여기에 그치지 않고 그 과정에서 봉착한 갖가지 문제에 대해 합리적 고찰을 했다. 이렇듯 당시 문서에 편중돼 있던 사변적 학문을 대체할 경험 중시의 과학의 중요성과 유효성을 명백히 해 나감으로써 17세기 과학혁명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소박한 경험주의’는 나름의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실험과 측정의 결과를 수학적으로 이론화된 ‘법칙’으로 확정하지 못한 것이다. 가설과 논증의 체계를 갖춘 하나의 이론으로 세우고자 하는 목적의식성을 지니지 못함으로써 16세기 직인들은 과학혁명으로 가는 길 바로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고 저자는 분명하게 선을 긋는다. 그럼으로써 17세기 지식 생산의 헤게모니는 다시 직인에서 상류계층의 과학자로 넘어가게 된다.
◆ 17세기 과학혁명의 토대를 일군, 진정한 역사의 주인공들을 새롭게 조명하다
그렇다고 해도 17세기 새로운 과학의 형성은 당시 아카데미즘 세계가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여겼던, 직인들의 수작업과 기계적 기예를 평가해 줌으로써 가능해진 것이었다. 과학사에서 적어도 17세기 신과학의 등장은 그 이전의 기술사, 직인들의 실천을 빼놓고는 언급할 수가 없다.
공방에서 교육 받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물론이고, 화가이자 수학자인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 상업수학을 기초로 복식부기를 널리 보급한 루카 파치올리, 유리 직인 출신의 도공으로서 지질학과 고생물학을 연구한 베르나르 팔리시, 탄도학에서부터 정역학에 이르기까지 연구를 거듭해 갈릴레오를 선도한 독학의 산수교사 타르탈리아, 수리(數理)기술자이면서 일하는 틈틈이 대수학의 기초를 닦아 비에트와 데카르트로 이르는 길을 닦은 라파엘 봄벨리, 지상에서 나타나는 자연현상의 정량적 측정을 시작한 윌리엄 길버트, 그리고 그의 등장을 준비했던 선원 출신의 직인 로버트 노먼과 자수성가형 선원 윌리엄 버로, 정밀한 분석화학의 기초를 닦은 야금·시금 기술자인 이탈리아의 비링구초와 보헤미아의 라자루스 에르커, 정확한 천체관측은 물론이고 측량술과 지도학에도 정통한 덕분에 천체관측용 기구를 지상의 정량적 관측에 활용할 수 있었던 남부 독일과 네덜란드의 수리기능인들 그리고 응용수리과학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깨달은 잉글랜드의 존 디와 디그스 부자…….
모두 우리에게는 낯선 이름들이다. 저자 야마모토 요시타카는 천재들에 가려 역사에서 제대로 평가 받지 못했던 수많은 기술자·장인들의 삶과 업적을 손에 잡힐 듯 묘사함으로써 그들에게 비로소 온전한 이름을 부여해 준다. ‘무지렁이’라 천대 받던 장인, 기술자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폐쇄적인 스콜라 문화를 대신하여 새로운 지식의 모습을 보여준 것은 그 자체로 혁명이라 할 만하다. 비전(秘傳)에 의존하던 폐쇄적인 학문 풍토에서 지식의 공개와 누적적 진보를 몸소 실천한 것은 말 그대로 삶의 양식과 사고방식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온 ‘문화혁명’이었다. 고대의 문헌에 의지하던 학문 풍토에서 경험을 중시하고, 실험과 측정을 가능케 하였을 뿐 아니라 이를 속어로 기록하여 널리 공개하고, 누구든 거기에 새로운 사실을 덧붙일 수 있도록 한 16세기의 장인, 기술자들의 업적은, 설혹 그들이 당시 그 의미를 스스로 깨닫지 못했다 하더라도 의미 있는 것이었다는 얘기다.
◆ 닫힌 지식에서 열린 지식으로, 우리가 몰랐던 새로운 지식 탄생의 역사
200여 장의 풍부한 도판과 수백 권의 자료를 통해 생생히 되살리다
16세기 이전까지 학문은 어디까지나 문서 편중의 지식이었다. 또 그때까지 “학문이라는 것은 하느님이 부여한 신성한 것으로, 선택된 사람만이 전승하는 것으로 아무에게나 가르쳐 주어서는 안 된다. 일반 대중은 사악한 마음으로 신의 지식을 악용하려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이에 반해 16세기의 도예공 베르나르 팔리시는 문자 문화의 세계에서 소외당하던 당시 직인, 예술가, 외과의(당시 수술을 하거나 붕대를 감는 등 손을 더럽히는 일은 이발외과의, 즉 직인의 일이었다)들이 자신들의 언어(속어)로 발언해야 함을 분명히 밝힌다. “질병이나 기타 해로운 질환에 듣는 훌륭한 치료법은 비밀로 다뤄져서는 안 됩니다. 농업의 비법도 감춰져서는 안 됩니다. 항해의 장애물이나 위험도 은폐되면 안 됩니다. 하느님의 말씀도 비밀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국가에 도움이 되는 모든 과학도 비밀로 취급되어서는 안 됩니다.”
15~16세기에 걸쳐 고대 라틴어 문헌이 엄밀히 복원되고 인쇄되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다 16세기 중반 이후에 그러한 책들이 각국의 언어(속어)로 번역돼 출판된 것은 문화·사상사에서 그리 주목 받지 못했다. 저자에 따르면 속어 번역은 정확한 고전어의 번역만큼의, 혹은 그 이상의 중요성과 의미를 지닌다. 이를 통해 학문의 공개성이 보증되고, 또한 연구 활동에 수많은 사람들의 참여를 촉발시키기 되기 때문이다. 또한 3차원 공간의 풍경을 2차원 평면에 비추는 투시도법(원근법)의 발견은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와 건축가들의 손에서 이뤄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공학·기계학·건축 설계에 필요한 분해조립도법·단면도법·투명도법, 혹은 뒤에 화법기학학으로 불리게 된 기술의 원형도 15~16세기 화가와 직인들이 고안한 것이다. 실제로 제대로 된 전문용어가 정착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들 도판은 지식 전달에 필수 불가결한 것이었다.
이 밖에도 저자 야마모토 요시타카는 수많은 도판과 사례와 자료를 제시함으로써 지식의 공개와 누적적 진보라는 근대적 사상이 16세기 직인들의 기술과 실천을 통해 어떻게 싹텄는지를 한 장의 세밀화를 들여다보듯 생생히 그려낸다. 실제로 200년이 지나 프랑스혁명 이후 학문이 모든 사람에게 진정하게 공개되고, 누구나 노력과 능력만 있으면 공부하여 습득할 수 있다는 생각이 정착되었다 하더라도 이를 최초로 생각하고 실천하기 시작한 것은 16세기의 생각이고, 이것이 진정한 ‘16세기 문화혁명’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접기
평점
분포
9.8
16세기의 문화혁명이 있었기에 17세기 과학혁명을 이룰 수 있었다.
거북이 2012-03-28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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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삽화로 이해를 높여줍니다. 당시 서양의 해부학 관련 도판만 보더라도 동서양의 차이를 확연히 느낄 수 있네요. 놀랍습니다.
밭고랑 2014-11-12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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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 내내 우리나라의 16세기는 어떠했는가 하는 비교를 해보게 되었습니다. 잘 쓰여진 책입니다
MooMin 2012-02-27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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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탄생`을 보고 저자의 다른책도 보고 싶어서 찾아보게되었음.
051 2012-02-22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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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빈치,뒤러 그리고 루터에 이르기까지 16세기 문화에 대한 분석을 통해 17세기 과학혁명의 배경을 논리적으로 설명한, 아주 멋진 책입니다.
소자연 2014-11-15 공감 (0) 댓글 (0)
16세기 문화 혁명 : 혁명의 시대를 위한 준비... 우리의 아쉬움
16세기 문화혁명이 외면적으로는 학문의 주역 교대, 그리고 그 표현 언어의 변화로 나타났다. 다시 말해 직인, 예술가, 상인들이 속어로 자기표현을 시작해, 당시까지 라틴어가 단독으로 지배하던 문자 문화의 영역으로 월경해 들어감으로써 지知의 독점 구조의 일각을 허물어 냈던 것이다. 이런 분야에서 그들은 무엇보다 정확한 관찰과 정밀한 측정 그리고 정확한 기록을 중시했다. 그런 방식으로 새로운 인식이 나타났으며 나아가 자연에 대한 지식이 어떠한 것이어야 하느냐는 진리관에 근본적 전환이 일어났음을 의미한다. 이것이 16세기 문화혁명의 기본적인 의미다.(p689) <16세기 문화혁명> 中
야마모토 요시타카(山本義隆, 1941 ~ )는 <16세기 문화혁명>을 위와 같이 정의한다. 저자에 따르면 15세기 르네상스(Renaissance)와 17세기 과학혁명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16세기는 우리에게 어떤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시기인가. 저자는 책에서 16세기 문화혁명의 여러 요인을 미술, 의학, 상업, 군사학, 기계학, 수학, 천문학, 지리학 등 여러 관점에서 살펴보고 있다. 이번 리뷰에서는 효과적으로 내용 정리를 위해 16세기 문화혁명을 가능하게 만든 몇 가지 요인을 책 순서와 조금 달리해서 정리해 본다.
<16세기 문화혁명>에서 저자는 16세기가 이전 세대와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바로 속어(俗語)로 쓰여진 서적의 등장이었음을 지적한다. 기존에 유럽에서 학문어로서 역할을 하던 라틴어 대신 각국의 언어로 쓰여진 책이 출간되었으며, 이로 인해 각 나라의 언어가 발달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발달은 과학에만 한정되지 않고, 문학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이는 영국의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 ~ 1616), 프랑스의 몽테뉴 (Michel Eyquem de Montaigne 1533 - 1592)를 통해 입증된다.
[사진] 셰익스피어(출처 : 위키백과)
16세기에 이르러 속어로 쓰인 과학서가 등장한 과정을 통해 원래 민중의 대화체 언어였던 속어가 어휘를 풍부하게 더해 가며 사상과 학문의 기술에도 적합하게 성숙되었다.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문법의 정비나 철자법의 확정을 통해 표준화가 이뤄졌다. 이것은 '국어'로서 자리 잡을 요건을 갖춘 언어가 형성돼 갔다는 사실을 의미한다.(p645) <16세기 문화혁명> 中
16세기 문화혁명의 지표는 대학과 인연이 없던 직인, 예술가, 외과의들이 속어로 고학서와 기술서를 쓰기 시작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즉, 당시까지 문자 문화에서 소외되었던 사람들이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경험과 사고를 공표함으로써 학문 세계로 월경해 지식의 독점 구조에 바람 구멍을 뚫기 시작했던 것이다. 16세기 문화혁명은 언어혁명과 병행해 진행됐다.(p617) <16세기 문화혁명> 中
그리고, 이러한 국어(國語)의 발달을 가져온 것은 바로 인쇄술의 발달이었다. 이전 세기 구텐베르크(Johannes Gensfleisch zur Laden zum Gutenberg, 1398 ~ 1468)에 의해 유럽에서 처음으로 사용된 금속활자는 사상의 전파에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루터(Martin Luther, 1483 ~ 1546)의 종교 개혁이 독일 전역으로 확산될 수 있었으며, 과학에서는 해부학과 식물학에 있어서 도상 표현이 가능하게 되었다.
[사진]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출처 : 게티이미지코리아)
정밀한 도판이 딸린 과학서, 기술서는 그 뒤 16세기에 이르러 잇따라 인쇄돼 근대 자연과학서, 공학서의 원형을 형성하게 된다. 아그리콜라 Georgius Agricola의 광산학, 에르커 Lazarus Ercker의 천체관측용 기기, 그리고 오르텔리우스 Abraham Ortelius 나 메르카토르 Gerard Mercator의 지도책 등이 대표적이다. 이는 언어 해석에 일관하던 스콜라 학을 초월한 것이었다.(p274),,, 언어에 의한 전달이 거의 절망적이던 시대에 인쇄된 도상은 거의 유일한 전달 수단이었다. 정확한 도판이 목판(나중엔 동판)을 통해 원화와 똑같이 몇 장이나 복제될 수 있게 돼서야 비로소 이들 과학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p276)<16세기 문화혁명> 中
이러한 상세한 도상 표현은 유럽 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가. 저자는 <16세기 문화혁명> 안에서 이러한 변화가 기술자 계급에서 발생했으며, 기존 기득권이었던 소수 엘리트 지식인과의 대립(對立)을 가져왔다고 파악한다.
16세기 문화혁명은 선진적인 직인, 기술자와 알베르티와 같은 소수 엘리트 지식인이라는 양 진영의 긴장감을 내포한 채 진행됐던 것이다.(p65) <16세기 문화혁명> 中
라틴(Latin)어와 스콜라(scholasticu) 철학으로 대표되는 소수 엘리트 지식인들에 대해 속어와 근대 과학 철학을 가진 기술자들이 등장하면서 이들의 경쟁이 16세기 문화 혁명을 가져온 동인(動因)이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 자연학은 질의 자연학이다. 거기엔 정량화를 지향하려는 의식을 희박했다. 이에 비해 근대에 이르러 정량화를 추구하려는 인식이 나온 배경에는 다름 아니라 상품생산과 화폐경제의 확대가 존재한다.(p302) <16세기 문화혁명> 中
16세기에 플라톤(Platton, BC 427 ~ BC 348)과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 ~ BC 322)로 대표되는 질(質)의 자연학, 형이상학적 기하학(幾何學)은 뒤러(Albrecht Durer, 1471 ~ 1528)로 대표되는 현실의 필요에서 비롯된 대수학(代數學)으로 대표되는 현실 기술의 거센 도전을 받게 되었다.
[사진] 뒤러와 원근법(출처 : 위키백과)
뒤러는 기하학에서 유클리드의 탄탄한 논리의 철감을 벗겨내, 실용적으로 도움이 되는 기법으로서 직인과 기술자에게 제공했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뒤러가 현실 세계에 대한 수학의 광범위한 적용 그리고 근대적 수학의 유용성을 공공연히 논했다는 점이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에서 기하학은 이데아의 세계 - 인간의 감각으로 느끼는 외형적 세계의 배후에 있는 영원히 변치 않는 진실적 존재의 세계 - 에 대해서만 적용되는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뒤러의 기하학은 다름 아닌 '목수의 기하학'이다. 이는 그 이전엔 학문적 고찰의 대상에서 제외됐던 분야이며, 문장으로 기술된 적도 없었다. 그러나 뒤러는 '목수의 기하학'을 저서로 펴냄으로서 그것이 현실 인식에 매우 유용한 존재임을 보여주었다.(p105) <16세기 문화혁명> 中
이러한 경쟁과 도전을 통해 과학(science)와 기술(technology)가 결합되어 17세기 과학-기술이 탄생하게 되는데, 이는 특히 수학(mathematics)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구체적으로 17세기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 ~ 1650)에 의해 대수학과 기하학이 결합되면서 결실을 맺는데, 이를 근거로 저자는 16세기 문화혁명이 과학혁명을 가능하게 했다는 주장을 편다. 저자는 책에서 말하고 있지 않지만, 후에 칸트(Immanuel Kant, 1724 ~ 1804)에 의해 대륙의 합리론과 영국의 경험론이 종합되었던 사상의 종합 역시 이 시기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추론해 본다.
근대 대수학은 16세기 후반의 비에트와 17세기의 데카르트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해석기하학과 미적분도 17세기 데카르트, 뉴턴, 라이프니치의 손에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런 성과는 르네상스 시대 대수학의 발전에 힘입는 바 크다. 르네상스 대수학은 상업수학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상인과 산수교사의 손에서 시작돼 16세기 중반 하나의 결말을 봤다고 할 수 있다. 바꿔 말하면, 근대수학의 단서는 상인들이 주도한 상업수학이었다.(p431) <16세기 문화혁명> 中
이처럼 16세기는 유럽에 있어서 17세기 산업 혁명과 18세기 정치 혁명을 만들어내기 위한 동력을 쌓아가고 있었던 시기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잠시 책을 덮고 우리에게 16세기의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유럽과는 달리, 우리에게 16세기는 너무도 아픈 시기였다. 우리의 16세기는임진왜란(壬辰倭亂, 1592 ~ 1598)과 병자호란(丙子胡亂, 1636 ~ 1637)이 이어지면서 이전 시대까지 축적되어온 많은 것들을 잃어버린 시기였다. 그리고, 이러한 상실 속에서 우리는 정치적으로는 우암 송시열(宋時烈, 1607 ~ 1689)로 대표되는 노론(老論)이, 사회적으로는 종법(宗法)이 지배하는 시대가 되었음을 생각하게 된다. 16세기가 우리에게 '상실의 시대'였기에, 경직되고 움츠러들었던 사회의 모습 속에서 이 시기가 우리에게 주는 아쉬움은 클 수 밖에 없다.
[사진] 우암 송시열(출처 : 위키백과)
다시 책으로 돌아오자. <16세기 문화혁명>은 우리에게 유럽 근대화의 맹아(萌芽)가 16세기부터 싹트고 있었음을 여러 분야를 통해 잘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 또한, 이러한 가능성이 언어 혁명과 인쇄술의 발달로 인한 사상의 확산에서 비롯되었음을 우리는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16세기와 마찬가지로 인터넷(Internet)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해 주고, 과거 우리 조상들의 아픈 역사를 돌아보는 계기를 준다. 이처럼 여러 면에서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주기에 <16세기 문화혁명>은 읽고 생각할 가치가 있는 책이라 생각하면서 이번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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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9-01-05 공감(46) 댓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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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과학혁명을 위한 디딤돌 시대.
뉴턴이 만유인력을 발견한것은 사과가 떨어지는것을 보고 나서라고 한다. 그런데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게 그때뿐이었을까? 아마 사과나무가 생긴 이래로 쭈욱 그렇게 떨어졌을것이다. 그리고 그 떨어지는 사과를 본 사람도 한두명이 아닐것이다. 그런데 왜 뉴턴이 그것을 보고 그 위대한 법칙을 알게 되었을까. 그것은 그 법칙으로 가는 수많은 이론과 논리를 공부했기 때문이다.
아무나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그런것을 생각해내진 않았을것이다. 결국 그런 큰 발견이나 발명은 그전에 이미 밑바탕이 된것이 있기에 그런것이다.
이책은 17세기의 과학혁명과 18세기 산업혁명의 근간이면서도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16세기의 문화적인 의미에서 대해서 주장한 책이다. 한마디로 위에 예를 든 것첨 17.18세기의 찬란한 업적이 결국 16세기에 여러가지가 쌓여서 일어난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 중요한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시대에 비해서 16세기는 그리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과학사에 나오는 유명한 인물들이 16세기에는 상대적으로 적어서 그런것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결코 16세기의 업적이 결코 경시될 것은 아니다. 16세기가 없었다면 17,18세기의 그 변혁이 한참 뒤쳐졌을것이다.
그런데도 관심은 다른 세기처럼 많이 받지 못하고 있다. 16세기 앞의 15세기 르네상스에 비해서도 특출난 인물이 없고 어떤 큰 이론이나 법칙이 두드러지게 나온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에 대해선 이유가 있다. 15세기나 17세기의 변화를 이끈것은 사회 엘리트계층이었다. 말하자면 배운 소수의 사람들이었단 뜻이다. 그들중에서는 그야말로 천재급이 많아서 여러가지 법칙이나 현상을 발견해냈는데 그거 때문에 그 시대를 이야기할 꺼리가 있는것이다. 그런데 16세기의 변혁을 이끈 사람들은 한마디로 무명의 사람들이었다. 그것도 엘리트 상층부가 아니라 일반 보통 직업을 가진 사람들. 그것도 고대부터 철학자들이 천하게 여겼던 육체노동자들에게서 일어났다. 그들은 자신이 가진 직업의 발전을 위해서 혹은 지적인 호기심등의 이유로 여러가지 법칙에 대해서 알아내게 된것이다.
예를 들어서 18세기 근대 화학의 출발점이라는 라부아지에의 이론은 이미 16세기 이탈리아의 기술자 반노초 비링구초에 의해서 정량적인 실험이 행해졌고 거의 원리에 근접하는 측정값을 얻어서 기록을 했던것이다. 이런 바탕 위에서 18세기의 이론이 정립될수 있었지 그냥 나온것이 아니란 뜻이다. 이런 직인들의 현실적인 자료들이 16세기에 광범위하게 축적되어 갔다. 다만 이들의 신분이 엘리트가 아니었고 정론화된 이론 체계를 갖출수있는 학자가 아니었기에 다른 시대에 가려진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그럼 중세를 벗어나서 17-8세기 근대를 열게한 가장 근본적인 원동력은 무엇일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기본적으론 언어의 혁명에 있다고 본다. 기존의 시대에선 라틴어를 필두로 해서 이른바 고급언어만 학문의 언어로 규정이 되었고 그 소통은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한정되었다. 일반 민중에게까지 파급이 되지 않았다는것이다. 그러나 16세기의 종교혁명을 보면 알겠지만 각 지역의 종교혁명이 일어난것은 자국어로 된 성경의 보급에 있다. 사제급이 아니면 읽을수도 없었던 라틴어로 된 성경이 아닌, 자신들의 언어와 글자로 인쇄된 성경의 보급이 결국 종교혁명으로 이끈 큰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기술쪽으로도 생각할수있다. 기존의 이론을 기술자들도 알게 되면서 자신들의 경험과 실험을 접목시킬수있게 된것이다. 결과적으로 원래 알려진 이론이 틀린걸 알게되고 이것은 곧 기존 권위의 붕괴를 뜻한다. 이른바 배운 사람들이 내새운 것이 사실이 아니란것을 알게되는데 그들에게 존경할 생각이 들겠는가. 그들은 자신들이 직접 책을 쓰게 되었고 물론 자국어로 출판하면서 점점 지식이 아래까지 전파되게 되었다. 사회 계층도 꿈틀거릴수 있는 계기가 된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한마디로 르네상스를 이끈 진정한 주인은 천하다고 여겼던 직인, 기술자였다는 것을 주장하는것은 아닐까한다. 이들의 쌓여진 내용들이 17세기 이후로 상위층에서 받아들여서 이론화함으로써 사회변혁을 이끌었으니 말이다. 한마디로 민중에 의한 문화혁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것을 우리나라와 비교해서 생각해봤다. 비록 시대는 다르지만 우리에게도 분명 이론이 아닌 실제적인것을 중시여기는 사람들이 나타났던 시대가 있다. 바로 조선 후기의 실학이다. 물론 그때도 이론과 경험을 겸비한 상류 양반 실학자들이 있었긴 하지만 조선 후기의 문화를 이끈 원동력은 이른바 중인이었다. 청나라로 가는 사신편에 같이 갔던 통역사도 중인이었는데 그를 비롯해서 무역을 위해서 갔던 상인들을 통해서 선진문물을 받아들였고 이 중인들이 그것의 전파 매개체가 되었던 것이다. 안타까운것은 그런 기운이 서양과는 달리 상류 양반층에게 폭넓게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소수의 실학자들에게는 잘 접목이 되었지만 문제는 집권 세력과 대부분의 양반 계층은 시대 떨어진 주자학에만 몰두해 있었고 중인들이 밑받침된 실학의 기운은 결국 계승 발전되지 못했다.
그에 반해 서양은 비록 천한 육체노동자라고 무시해 왔었지만 16세기에 축적된 광범위한 지식의 기록은 17세기에 상류층 이론가들에게 받아들여져서 결국 산업혁명을 위한 기본 토대로 사용된것이다. 그것이 결국 우리가 망하게 되었던 한 축이라고 생각하니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은 아주 어려운것도 아주 쉬운것도 아니다. 여러 전문적인 용어도 나오고 기본적으로 서양사에 대해서 조금은 알아야 이해를 하기 쉬운 내용이다. 17-18세기가 어떤 시대였는지 모르는데 16세기의 의미를 알긴 좀 어려울것이다.
지은이인 '야마모토 요시타카'는 전작인 '과학의 탄생'을 통해서 이미 무시무시한 필력을 선보인바있다. 이 책은 그 책의 연장선상에서 쓴 책이라고 하는데 전작의 연장선이라는 말은 겸손이고 이 책 또한 전작만큼 대단한 책이다. 지은이의 이력을 보면 전혀 이런 쪽의 역사학자도 아니고 관련되는 학자도 아닌데도 이렇게 써낸거 보면 정말 엄청난 내공을 가진거 같다. 어떻게 보면 무명의 작가인셈인데 이런 능력자를 배출해내는 일본 출판계가 참 부럽기도 하다.
책은 알려진 사실들을 각 분야별로 나열하는 형식이어서 좀 건조한 맛은 있다. 그리고 일반적인 16세기 역사를 다룬게 아니라 과학, 기술 영역에서 각 직인들이 쌓은 사실들을 밝혀내고 있어서 조금 진도가 잘 안나가는 면도 있다. 게다가 책 분량도 두껍다. 본문만 800여쪽이니.
하지만 과학이나 기술사에 관해서 알고 싶은 사람에겐 시간이 걸리더라도 꼭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사실에 대해서 좀더 깊게 알수있게 한다랄까. 이름있는 학자가 아닌 이름없는 민중들에게서 이루어진 16세기 문화혁명. 긴 인내심과 함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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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에르 2010-12-06 공감(1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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