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8-19

손민석 | 아프가니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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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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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 읽으면 좋을 논문 하나 추천해줄게. 이웅현 선생의 "점령군 철수 이후 아프가니스탄의 ‘국가건설’ 문제: 근대화의 도식은 여전히 유효한가?"를 읽자. 
이웅현 선생의 주저인 <소련의 아프간 전쟁>은 정말 좋은 책인데 나도 못 구했다. 고려대출판부에 연락해봤는데도 없다고 한다. 

알라딘 중고샵에서 5만5천원에 팔길래 안 샀다.. 빌려서 PDF로 만들든지.. 누구 있으면 나한테 팔아줘요.. 비싸게 사줄테니.. 아무튼 이분의 아프간 상황에 대한 일련의 연구만 읽어도 지금 상황에 대한 이해를 넓히기 좋은데 일단 이 부분이라도 읽고 말을 하자. 선생의 다른 논문인 "아프가니스탄 철군의 정치학", "아프가니스탄 반군의 계보" 같은 논문들도 읽으면 좋다. 공부를 해야지, 왜 이상한 소리를 해. 이광수 선생의 "탈리반 정부 치하 아프가니스탄의 국가 성격"도 시간이 좀 지났지만 읽어보면 지금 상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 공부를 해 인간들아.. 이런 훌륭한 연구자들의 훌륭한 연구가 공짜로 다 공개돼 있잖아..


KCI.GO.KR
점령군 철수 이후 아프가니스탄의 ‘국가건설’ 문제: 근대화의 도식은 여전히 유효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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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령군 철수 이후 아프가니스탄의 ‘국가건설’ 문제: 근대화의 도식은 여전히 유효한가?
‘Nation-building’ in Afghanistan After the Withdrawal of the Occupation Forces: Still Valid the Modernization Model?
2018, vol.9, no.2, 통권 27호 pp. 527-540 (1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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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웅현 /Woong-Hyeon Lee 1


1고려대학교

이 논문은 한국연구재단 지원과제의 연구결과물입니다. [KRM 바로가기]
[2015년 중견연구자지원사업] 점령군 철수 이후 아프가니스탄의 ‘국가건설’ 문제: 근대화의 도식은 여전히 유효한가?
초록 
본 논문의 목적은 점령군 철수 이후의 아프가니스탄 ‘국가건설’의 문제를 고유의 문화적, 역사적, 지형적 관점에서 그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과거 아프가니스탄의 독자적 ‘근대화’ 혹은 ‘국가건설’의 노력 그리고 점령 외국의 개혁과 근대화 정책을 아프가니스탄 정치사의 변화과정과 함께 기술한다. 그 토대 위에서 현재의 ‘국가건설’ 정책이 지니고 있는 문제점을 발견하고, 그 변화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고유의 문화적 특성과 중앙권력으로부터의 독립성을 지닌 아프가니스탄에 서구의 ‘근대화 모델’을 적용하기 어렵다는 점이 강조될 것이다. 중앙아시아의 이 특이한 전통사회에 대해서는 서구의 합리적인 접근방법과 함께 지역적 특색을 고려한 접근방법이 병행되어야 한다. 창의적인 발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서구의 근대화 모델은 많은 국가들에 적용되어 성공적인 국가건설에 기여한 바 있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의 ‘국가건설’에 근대화 모델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지역 고유의 정치적, 문화적 요인들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전통적인 근대화 모델을 아프가니스탄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수정과 변형이 요구된다.


This study analyses the possibilities of Afghanistan’s state-building after the withdrawal of the U.S. troops with the perspectives of its proper cultural, historical and geographical characteristics. It describes Afghanistan’s past and present experiences of ‘modernization’ or ‘nation-building’ policies of domestic origins and enforced from without. Based upon these intellectual process it tries to find out problems and barriers of the present ‘state-building’ policy of the U.S. in Afghanistan. This thesis emphasizes that ‘modernization model’ or ‘theories of development’ of the Western traditional thoughts for the state-building policy of the Third World’s pre-modern states should be considered from the creative viewpoints, and that traditional theoretical models of ‘modernization’/ ‘nation-building’ should be changed to the regional political characteristics of each sta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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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comments
Joseph Oh
좋은 소개 감사합니다. ‘소련의 아프간 전쟁’을 검색해보니, 교보문고에서 ebook으로는 팔고있군요.
 · Reply · 14 h

손민석
Favourites  · 22 h  · 
탈레반의 아프간 장악이 민족해방투쟁의 승리이고 자주성의 발현이고.. 말장난이야. 자주성의 기준을 뭘로 잡느냐에 따라서 북조선 놓고도 자주적인지 아닌지 말할 수 있어. 인민들 먹을 것도 보장을 못해줘서 외부 지원을 받는 나라가 자주적일 수가 있나? 도와달라고 요청하는 마당에 자주성?
 한 나라, 민족, 사회를 그냥 개인이라고 생각해보자고. UN 같은 세계인들, 나와 다른 타인들이 모여서 사는 사회가 있는데 거기서 내가 내 마음대로 하겠다고 돌아다는 게 자주의 의미에 가까울까? 아니면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계약적 관계든 뭐든, 하나의 주체적 개인으로서 룰에 복종하고 내 몫을 잘 하고 그러고 사는 게 더 자주적일까? 나를 억압하는 것에 대항할 수는 있겠지만 그 억압이 사라진 상태 자체가 곧 자유롭고 독립적인 주체와 등치되는 건 아니라고. 사회화라고 하잖아.. 사회 속에서 주체적이어야지..
 위대한 수령 동.. 아, 이게 아니라 정치를 대국적으로 한 불행한 군인 박정희 선생 말씀을 인용해보자면 자조하는 개인이라야 자립할 수 있고, 자립하는 개인이라야 자주적일 수 있다. 그러니까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를 도우려고 하는 개인이 되어야 경제적으로도 자립할 수 있고,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개인이라야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자주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 이런 얘기이다. 자조도 자립도 못하는 자주는 허상이다. 박정희 선생이 그렇대.
 좀 이런 말장난에 집중하지 말고 탈레반의 복권 이후에 그 지역에 어떻게 자본주의적 세계시장의 문명화 작용이 기능할 수 있는지, 그 조건이나 좀 말을 하는 게 좋지.. 자꾸 무슨 제국주의 어쩌고.. 이라크는 훔쳐갈 석유라도 있지, 아프간에 뭐가 있어. 돈낭비, 인력낭비만 했는데.. 아프간 점령이 이 지역을 최대의 마약 수출 지역으로 만들어서 유럽과 미국 사회의 병리적 현상만 심화시켰잖아. 결국 미국을 비롯한 서구의 다국적 연합국은 자기 사회 병들게 만들어 나온 돈으로 무장한 집단하고 싸워왔다고. 그 어리석음에 대한 비판만 하면 됐지, 뭘 자꾸 민족해방이 어쩌고.. 남의 나라의 불행에 별소리들 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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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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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이란의 이슬람 공화국하고 관계개선만 잘하고 했어도 이 지경이 되지는 않았을텐데..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등이 얽혀서 그렇겠지만 이라크도 그렇고 이란도 그렇고 미국이 서남아시아에 근대민족국가가 만들어지기만 하면 가서 다 박살내버리니.. 이제 어떻게 되나.. 답답허다..

손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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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은 본래 아프가니스탄에 많은 이해관계를 갖고 있었다. 소연방 내부의 이슬람 지역들이 아프가니스탄을 경유해 이란의 이슬람 공화주의 혁명의 자장을 받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소련으로서는 가지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에서 아프가니스탄 내부의 정치적 상황이 친親서방으로 돌아설 수도 있다고 하자마자 소련은 곧바로 군투입을 고려한다. 이런 상황에서 1979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사건이 터진다. 헤라트 반란으로 반란진압에 나선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이 반反정부군에 가담하면서 소련 군사고문 1명과 소련 민간인 2명을 살해하고 그 시체를 막대기에 꽂아 거리에 전시하는 만행을 저지른다. 

 '무적의 세계공산제국'이었던 소련은 격노했고 이참에 아프가니스탄의 공산정권과 협력해 아프가니스탄 전체를 갈아엎어 이슬람주의의 확산을 차단하고 확고한 지정학적 우위를 차지할 생각으로 군대를 파견하며 소련 - 아프간 전쟁이 시작된다. 개전 초기 소련군은 과연 무적에 가까웠다. 특수부대 스페츠나츠(Spetsnaz)를 비롯한 소련군은 파죽지세로 주요도시를 점령했고 무자헤딘들을 거의 학살에 가까울 정도로 일방적으로 정리해버렸다. 1980~1982년동안 무자헤딘은 무려 11만명이나 소련군에게 사살당했다. 무제헤딘은 이란, 파키스탄 등의 인접 지역으로 도망쳤으며 조직은 와해되어 사실상 끝난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1983~1985년부터 무자헤딘에 대한 외부의 지원이 증가되었다. 지정학적 이해관계를 갖고 있던 중국, 이란, 미국 등의 지원에 이슬람국가의 무자헤딘들이 세계공산주의와의 성전을 선포하며 속속들이 아프가니스탄에 집결하기 시작했다. 같은 공산형제국이었던 중국이 지원한 다련장 로켓포는 소련군의 밀집대형에 큰 피해를 줬다. 무자헤딘들의 전술도 이 시점에 바뀌어서 기존과 달리 소규모 게릴라 부대가 다방면에서 동시적으로 습격하는 전술을 채택한다. 소련군은 사방에서 터지는 공격을 동시적으로 방어해야 했는데 그를 위한 기동력의 보충, 즉 항공기 지원은 1986년부터 막히기 시작한다. 소련군의 연평균 희생자는 1,200명정도였는데 1983~1985년 시기에는 2,300명으로 2배 가까이 됐다. 

 1986년을 기점으로 미국이 스팅거 미사일을 지원하면서 소련은 막대한 항공전력을 상실하게 된다. 소련군의 전방위적 공중작전과 게릴라 소통작전이 스팅거 미사일로 인해 막히자 특수부대로 맞게릴라 작전까지 펼쳤지만 유럽 및 미국과의 전쟁을 상정하고 훈련된 소련군은 허허벌판과 산지로 가득한 아프가니스탄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연동원 인원은 60여만명을 상회할 정도였지만 실제로 현지에 주둔하고 있던 소련군은 10여만밖에 되지 않았다. 그 군대로 아프가니스탄 전체를 장악해야 했으니 쉽지 않은 문제였다. 결국 1988년 소련은 유엔 중재로 평화협정을 맺었다.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침공도 소련군의 행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순식간에 탈레반 정부를 퇴출시킨 미군의 막강함은 주둔 이후의 지리멸렬함과 대비를 이루며 소련군의 실패를 반복한 것으로 보인다. 소련이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내가 보기에는 궁극적으로는 외세에 의한 '나라만들기'의 한계가 근본적인 원인이다. 외세의존적 민족국가의 형성은 일단 그 자체로 모순적일 수밖에 없다. 소련군의 지원을 받는 아프가니스탄 중앙정부의 권위와 능력에는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으며, 전쟁의 장기화는 근대국가의 구심력보다 지역의 부족들의 원심력이 더 강해지게 만들었으며 그것이 다시 전쟁의 장기화를 낳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아프가니스탄은 파슈툰족이 38%, 타지크족이 25%, 하자라족이 19%, 우즈벡족이 6% 등 수많은 소수민족으로 구성된 민족연합국가이다. 지르가(부족회의) 같은 구심점 역할을 하는 제도적 장치가 있지만 부족끼리의 반목 상황이 상존하고 있고 복수의 언어가 존재했기에 하나의 통합된 민족국가로 결집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소련과의 전쟁 와중에도 외부의 지원을 두고 부족끼리 충돌한 사례들이 있었을 정도로 결집이 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중앙정부가 전쟁으로 무능함을 드러내면 더욱더 결집이 어려워진다. 

 이렇게 나눠져 있는 상황에서 주류 부족인 파슈툰족은 자기 부족의 독립성을 부정하는 어떠한 세력도 거부하는 강경한 태도를 지니고 있다. 외세와 결탁한 중앙정부를 결코 용납하지 않는 불굴의 저항정신은 대영제국과 소련제국을 모두 침몰시켰다. 3차례에 걸친 전쟁 뒤에 영국과 맺은 조약에 아프가니스탄의 독립과 자유를 조항에 새겨넣었으며 소련 또한 이러한 파슈툰족의 저항에 결국 아프가니스탄 장악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아프가니스탄의 산지 지형은 비대칭전을 지속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대영제국과 소련 모두 대규모 군대를 동원해 속전속결로 적을 격파하는데 특화되어 있는 군대를 지니고 있었다. 아프가니스탄의 저항세력은 이런 정규군대와의 전투를 피하면서 산지를 중심으로 게릴라전을 이어가며 소련군이 아프가니스탄을 면의 형태로 지배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런 산악 지형을 이용한 게릴라전은 세력균형을 꾀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유리한 후원자와 결합되면 더욱 장기적인 저항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아프가니스탄이라는 지역의 주변에는 인도, 영국, 미국, 러시아, 중국, 터키, 이란, 중앙아시아 이슬람공화국들 등의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이 각각 나름대로의 지정학적 전략을 갖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영제국이나 소련, 그리고 미국처럼 특정한 국가가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해 독자적인 지정학적 우위를 차지하려고 할 때 주변의 다른 국가들은 아프가니스탄의 저항세력을 지원함으로써 지정학적 우위를 차지하고자 하는 특정국가를 손쉽게 견제할 수 있다.

 대영제국은 영국령 인도를 방어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에 개입했고, 소련은 중앙아시아에서의 이슬람주의의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개입했다. 두 연방제국 모두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지정학적 우위를 차지해 연방의 안정적인 유지를 위해 개입했는데 결과적으로 아프가니스탄 개입의 결과로 연방의 결속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대영제국은 인도에만 집중하느라 다른 지역에서의 제국의 이완을 초래했으며, 소련 또한 중앙아시아에서의 결속 유지를 위해 개입했으나 결국 민족공화국들의 이탈 속에서 해체되게 된다.
 대영제국과 소연방에 비해 연방으로서의 결속력이 강한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철퇴에도 불구하고 제국 해체라는 비극적 상황에 직면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중국, 터키, 이란 등의 반反서방 세력의 결집을 강화시킬 것이며 아프가니스탄을 통과하는 가스망 등의 에너지 전략이 지정학적 조건들과 결합하면서 유라시아에서의 미국의 영향력의 쇠퇴로 이어질 가능성은 다분하다. 오바마 시절부터 시작된 대중국 포위망의 한 축인 중앙아시아 쪽이 뚫리기 시작하면 한반도, 남중국해에서의 중국견제는 형해화 될 수 있다. 미국이 러시아와 결속하는 모양새를 보이는 것도 이러한 상황의 변화와 긴밀하게 연결돼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지정학적 정치놀음과 달리 현실을 살아가는 아프가니스탄인들은 다시 탈레반의 통치로 귀속될 것이다. 이슬람주의에 입각한 강력한 중앙정부가 다시 들어서서 미군의 점령 속에서 분권화되고 형해화되던 근대국가가 기능하고 근대화가 시작될지도 모르겠지만 반反근대화를 지향하는 이슬람주의 독재 속에서 근대의 보편성이 작동할 것인가? 가스망 등의 근대 시장경제의 물결이 아프가니스탄을 통과함으로써 근대화가 진전되기를 기대한다. 후퇴한 여성인권 등의 여러 문제들은 앞으로 수십년간 정체될지도 모르겠다. 근대화의 비용이라 해야 할지, 단순한 후퇴라 해야 할지는 앞으로의 역사의 전개에 달려 있을 것이다. 다음에는 누가 아프가니스탄이라는 제국의 무덤에 뛰어들까? 중화제국이 들어갈 확률이 높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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