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 왜 늦은 나이에 그런 길을...
유태영 박사
중앙뉴스 2009.05.19
뉴욕에서 유태영 박사가 황석영에게 보내는 편지
유태영박사(재미동포통일운동 원로,은퇴목사)
편집자 주: 이 글은 뉴욕에서 해외통일운동진영원로로서 그리고 미국의 제국주의적 본질을 파헤치는 예리한 논객으로서 통일운동과 집필활동을 함께 열렬하게 펴 나가고 있는 은퇴목사이자 시인인 유태역 박사가 보내온 공개편지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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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필자가 듣고 체험한 사실적 근거와 함께 필자의 추측도 담겨있는데 상대방의 인격을 고려해서인지 그 추측의 근거를 충분하게 제시하지 않고 있어 이 글이 자주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다는 점을 미리 밝힌다.
만약 상대방이 반론을 원한다면 자주민보에서는 그것도 충실히 소개할 것이다.
▲ 유태영 박사 ©자주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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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선생에게
요새 일간 신문들의 보도와 인터넷에는 황석영 선생에 대한 보도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 중에서 나에게 제일 충격적인 것은 오늘 아침 '서프라이즈' 안효용 님의 글에서 <당신을 흠모했던 사람들에게 기관총을 난사하는 것이다>라고 썼던 글입니다.
필자도 황석영 선생을 흠모했던 사람들 중의 한 사람으로서 기관총에 난사당한 마음의 상처와 아픔을 안고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필자가 황 선생을 직접 대면한 것은 1990년 8월 14일 백두산 천지를 배경으로 수백 군중들이 백두산 산상에서 <제1차 범민족대회 출정식>을 거행하던 때였습니다.
다음 날 아침 백두산 산장에서 조반 식사 전에 황 선생이 고 여연구 여사와 함께 아침산책을 하는 길에서 필자와 마주쳐 인사를 교환한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르고 있습니다.
황석영 선생은 그 날 그 <백두산 범민련 출정식>에서 불을 뿜어내듯 열변을 토하면서 <쇠붙이는 물러가라>라고 웨쳤습니다. 너무나도 멋진 열변이었으며 강력한 구호의 웨침이었습니다.
그 날 황 선생이 웨친 그 멋진 구호는 6.25 전쟁 당시 월북한 시인 백인준 문예총위원장이 첫 번째 펴낸 그의 시집 첫 페이지에 쓰인 반미반제를 부르짖는 멋진 구호와 꼭 같은 구호였습니다.
황석영 선생은 남쪽 민예총 대변인뿐만 아니라 남측 범민련 대표로 백두산 범민련 출정식에 참석하고 1990년 8월 15일에는 판문점에서 제 1차 범민족대회에 남측 대표로 참석하여 민족통일의 선구자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얼마 후 황 선생은 독일에서 대한민국 여권 만료로 정치망명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있었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황 선생은 미국의 뉴욕에 있는 L대학의 사회정치학 교수이신 J 박사님 그 대학의 총장에게 부탁하여 그 총장 초청으로 New York에 와서 몇 년을 지내다가 김영삼 대통령이 당선되어 청와대 비서실장 J. N. Kim을 배경삼아 귀국 결행을 하게 되었고 필자에게는 Kim이 청와대에 있는 한 3개월 정도 감옥에 가 있으면 될 것이라고 말한 기억이 잊히지 않고 있습니다.
황석영 선생이 New York City 번화가 고층건물에 사무실을 임대하여 활약을 개시하면서 <동아시아문화연구소>를 개설하여 우리들 몇 사람은 축하의 화환을 들고 가 기쁨의 다과시간을 가졌던 기억도 뇌리에 남아 있습니다.
그 때 황석영 선생은 동남아시아의 유명한 문인들과 작가들과 교류의 폭을 넓히겠다고 역설했으며, 황선생의 유명 장편소설 <장길산> 영화 제작을 북과 남 공동으로 추진하겠다는 강한 뜻을 말했습니다. 사무직원으로 함께 일했던 김 씨가 전하는 말에 의하면 북남합작 <장길산>을 위하여 북측과 상당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었으나 그 결과에 대해서는 김 씨는 전혀 아는 바 없다고 했습니다.
필자는 황석영 선생이 New York에 체류하고 있는 기간에 황 선생과 함께 비행기를 타고 Boston 대학과 Wisconsin 대학을 방문하여 한국 유학생들이 <장길산>의 황석영 선생과 새벽이 되도록 대화를 나누며 흥분하고 행복해하던 그들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간직하고 하고 있습니다.
그 때 비행기 안에서 또 자동차 안에서 대화를 통하여 <황해도 신천>이 황 선생 부친과 필자의 한 고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자연히 <신천 박물관 미군학살> 사건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필자는 10대 후반 청소년으로서 고향동리 기독교인들이 무지막지하게 한 동리의 <빨갱이>들을 구덩이에 밀어 넣고 휘발유를 뿌려 죽였다고 이야기를 했으며 그때 그 동리의 기독청년들이 모두 월남하여 목사들이 되었는데 그 목사들은 지금도 그 때 일을 뉘우치지 않고 오히려 반공이데올로기로 정당화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필자는 황 선생에게 이야기했습니다.
그 때 유엔군이 사리원을 지나 평양으로 북진하는 것을 보고 필자의 동리의 기독교청년들은 일제히 봉기하여 동리 <빨갱이>들을 몽땅 잡아 무지하게 죽였던 것이라고 황석영 선생에게 한탄스럽게 이야기했습니다.
황 선생은 뛰어난 소설가로서 나의 <산천군 남부면 부정리> 약 100호 정도의 집들이 모여 사는 작은 기도교화 한 동리에서 이런 나의 이야기를 테마로 삼아 <손님>이라는 어마어마한 명작 소설을 창작하셨습니다.
뛰어난 소설가의 창작능력과 상상력에 감탄케 한 <손님> 출판을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필자와 필자의 형님을 <손님> 중에서 손님이 아닌 <주인공> 유요섭, 유요한으로 등장시킨데 대하여 소설가의 창작능력과 솜씨에 대하여 또 다른 감탄사를 보냅니다.
하지만 황 선생에게 이 기회에 그동안의 침묵을 깨고 꼭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것은 필자가 작가인 황석영 선생에게 들려주었던 작은 동리에서 내가 개인적으로 겪은 경험과 또 나의 민족관과 우리 민족에 대한 나의 역사인식 그리고 6.25 전쟁 때 우리민족이 당한 수난과 점령군 미군에 대한 나의 분노 등은 <손님>에 등장한 유요섭에게 전혀 반영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 배치된다는 사실입니다.
<손님>이라는 작품에서 함부로 써 갈긴 역사적 사실에 대한 왜곡, 그것이 야기한 혼돈 그리고 <손님>을 읽은 많은 독자들의 그 왜곡에 대한 비판에 대해 황석영 선생은 그 책임을 져야합니다.
물론 필자는 작가의 창작력과 상상의 세계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말하고 싶은 것은 <손님>이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메시지와 <손님>이 가지고 있는 소재의 허구적 구상들은 필자와 또한 신천의 역사적 사실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 딴 이야기들이라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싶은 것입니다.
그 후 황석영 선생은 New York에 올 때 마다 필자를 불러 함께 점심 식사를 한 데 대하여 늘 기쁘게 생각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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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지난 대선이 한창 뜨거울 때 필자는 민주당의 정동영 후보가 당선되면 좋겠다고 발언했더니 황 선생은 뜻밖에도 <아니지 이명박이 되야지>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때 필자는 기분과 감정표현을 어떻게 처리할지 몰라 순간 난감했습니다.
이명박의 흠점과 부정부패 사실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황석영 선생은 이명박이 대통령에 당선된다고 예언처럼 말하는 것을 보고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은 충동을 받았습니다.
판단력이 둔한 필자는 오늘에 와서야 <아니지 이명박이 돼야지>라고 말한 황석영 선생의 정체를 알게 된 듯합니다.
필자의 견해로는 제국주의 미국의 CIA의 공작에 의하여 이명박이 대통령으로 당선 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하나의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황석영 선생이 그 때에 했던 <이명박이 돼야지>라는 말이 지금에 와서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사실은 바로 3주 전 지난 4월 말에 황석영 선생은 New York에 또 와서 필자와 32가 한국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황 선생은 필자가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몽골-투코리아 구상을 열렬이 말했습니다. 필자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묵묵히 듣기만 했습니다.
그 말이 이명박 대통령과의 순방동행과 또 이명박 정부에서 타이틀을 획득한다는 말이었던 것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황석영 선생은 이어서 분명히 필자에게 <이명박 대통령은 기껏해야 제 임기나 겨우 채우고 물러날 것이다>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필자는 민주당 개혁세력에서 뚜렷한 지도자가 나와야 하는데 큰 걱정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황 선생은 <민주당 개혁세력은 저희들끼리 싸우니 아무 희망이 없고 이명박 이후에는 박근혜이다>라고 필자에게는 폭탄 갈은 말을 했습니다.
이전에 정동영은 안된다고 하면서 <이명박이 돼야지>라고 하던 그 때의 황석영 선생의 모습이 필자의 머리에 다시 떠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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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로서는 미국의 CIA 의 배후조정으로 인하여 이명박이 대통령이 될 것을 황 선생은 미리 다 알고 예언을 했었는데, 그러면 이번에도 역시 황석영 선생은 <박근혜가 이명박 이후에 대통령이 될 것이다>를 벌써 다 알고 필자에게 예언을 하고 있다고 필자는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최근 조, 중, 동의 논조를 보면 겉으로는 이-박 계열이 서로 싸우는 것처럼 언론플레이를 하고 있으면서도 내막은 은근히 박근혜 세력 확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을 필자는 눈여겨보고 있습니다.
황석영 선생과의 대화 속에서 필자는 가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박근혜가 미국의 정가와 활발하고 긴밀히 접촉하고 있는 모습도 황 선생의 암시와 무관하지 않다고 봅니다.
끝으로 황석영 선생에게 감히 쓴 소리 한마디하고 끝을 맺겠습니다. 이것은 필자가 평소에 그 누구보다도 황 선생을 흠모하고 친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황석영 선생은 <내년 상반기까지 남북관계를 풀면—느슨한 연방제>라는 터무니없는 언어를 사용하면서 정신병자 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 누가 대한민국에서 보수이든 진보이든 그리고 개혁주의자들이든 그와 같은 황석영 선생의 허황한 말을 믿겠습니까?
한국에서도 벌서부터 변절자, 배신자, 이중인격자라는 말이 돌고 또 돌고 있었는데 이번 이명박 정부와의 밀착으로 인하여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영원한 변절자로 대한민국 역사에 기록이 될 것 입니다.
더욱이 북쪽에서 황석영이 남북화해라는 말을 한다면 마이동풍으로도 여기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삶은 소대가리가 웃을 일로 여길 것 입니다.
안호용 님의 말대로 왜 나이 늦은 황석영 선생이 그런 길을 택했는지 필자는 분통을 터뜨리면서 황 선생이 꼭 그래야만 될 어떤 깊은 이유라도 있는가를 묻고 싶습니다.
어쨌건 이전에 뉴욕에 오시면 필자에게 꼭 전화를 한 것처럼 앞으로도 언제라도 이곳에 오면 함께 한 잔하면서 만나기를 바라겠습니다. 속에 있는 분노를 솔직히 다 털어 보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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