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8-28

손민석 2010년대 초반의 서울의 운동권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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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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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 초반의 서울의 운동권의 모습에 대해 알고 싶으면 내게 술 한번 사면 된다. 내가 얘기해줄게. 심지어 그 저격 어쩌고 시리즈에 나온다는 인간들 중에 몇몇이 그때 당시에 뭐했는지도 말해줄 수 있다. 이런 건 공적으로 다룰 얘기가 아니다. 내가 운동판에 발을 들였을 때 이미 여기는 인정욕구밖에 없는 사회적 도태자들 모임이었다. 좋은 기억,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실패를 논하는데 지쳐 실패를 논하는 것의 실패를 논하다가, 그것마저도 실패했다고 선언하고 있었으니까.. 우리 세대가 논해야 할 건 사회운동의 특정한 지점을 붙잡고 비난하거나 앞선 세대를 비판하는 게 아니라 우리 세대에서 왜 사회운동이 하나의 조직체로까지 성장하지 못하는가? 이 지점이어야 한다. 

 내가 학내에서 처음 마주한 운동권(?) 문헌은 운동권 커리큘럼이었는데 2010년대에 1980~90년대에 생산된 자료, 책, 문건들과 다함께 조직 등에서 나온 20살짜리 학부생이 봐도 조잡하다고 느꼈던 신자유주의 비판론이었다. 박세길의 책이 한국현대사 커리큘럼에 있었으니까. 내가 제일 먼저 한 게 당시 뉴라이트 쪽의 역사책들,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1, 2> 같은 책들 모아서 애들과 세미나 하면서 비판하는 거였다. 해설서도 많이 읽었다. 한윤형의 <뉴라이트 사용후기>, 김기협의 <뉴라이트 비판>, 주종환의 <뉴라이트의 실체 그리고 한나라당>, 박찬승 등의 <뉴라이트 위험한 교과서, 바로 읽기>.. 몇몇은 그 과정에서 뉴라이트 쪽의 담론도 합리적이라는 생각을 하며 거창하게 표현하면 전향(?)하고 그랬다.

 어쨌든 이것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를 논하면서 나는 역사관의 중요성을 깨닫고 한동안, 사실 지금도 변하지 않았는데 좌파 역사관의 재구성이나 정당의 교육기능 등에 대해 말하고 다녔다. 알튀세르, 지젝 등을 접하게 된 것도 이데올로기로서의 역사관에 대한 관심을 당시에 유행하던 철학 담론으로 좀 설명해보고 싶은 욕망 때문도 있었고. 유행하기도 했었으니까 안 읽을 수가 없었다. 지금 보면 수준낮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때는 뭐가 그렇게 어려운지. 아무튼 내가 그때 운동권을 보면서 많이 느낀 건 하나의 가치로 사람들을 묶을 "교육"을 할 주체도, 내용도, 수단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운동판이 사회의 여기저기서 홀로 배워 독단으로 가득한 인간들로 가득할 수밖에 없었고.. 그런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 입히는 건 정말 쉬운 일이었다. 

 어느 누구도 이들을 하나로 묶어내서 조직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저 선후배 간의 인간관계로 얽히고 얽혀 있는 인적 결합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많은 이들이 마르크스, 레닌, 트로츠키, 박헌영 등을 입에 담았지만 내가 그들에게 가르침을 구했을 때 그들 모두 당황했다. 정작 자기도 한번도 읽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자기네들은 NL과 다르다고, NL처럼 멍청하게 하지 않는다고 하는 이들도 그랬다. 사실상 운동경험(?)을 거쳐 형성된 인적 관계가 그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기제라는 점에서는 별반 차이가 없었다. 그러니 공부는 안 하고 술자리만 돌아다녔겠지.. 술 참 많이 마셨다.
 열정을 가진 선배들, 좋은 선생님들이 많았지만 졸업하면 끝이었다. 연속성을 가지지 못하고 학생운동권의 조직이든 사회운동의 조직이든 하나의 연속적이고 역사적인 조직체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학부생 후배들을 모아 세미나를 만들고, 졸업한 선배들, 직장인들을 모아서 선후배가 만나서 같이 공부하는 모임을 만들었다. 졸업 이후에 무언가 지적 열망을 갖게 됐는데 바쁘고 어디 가서 하기도 애매하고 그런 선배들과 공부 열정은 가득하지만 사회경험이 부족한 후배들을 연결시켜주는 사업이었다. 돈은 선배들이 내고 후배들은 지식을 제공하는 사업으로 반응이 괜찮았는데 내가 빠지면서 없어졌다. 나도 제도화, 조직화에 실패한 셈이다. 내 개인적인 인적 네트워크를 넘어서지 못했다.
 대학에 처음 들어가서 진보신당의 당사에 간 적이 있다. 가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담당자에게 이 당에 대해 내가 더 알고 싶은데 혹시 당의 역사에 관한 자료들이 있냐고 물어봤다. 그때 그 담당자의 표정은 지금도 내게 굉장히 강렬하게 남아 있다.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은 처음이라는 말과 함께 대단히 당혹스러워 하면서 당의 역사요..? 라고 되묻던 그 40~50대 중년 남성의 곤혹스러운 표정이란. 이제 막 고등학교 졸업한 내 앞에서 그 아저씨가 쩔쩔매면서 주변의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던 그 표정을 보고 나는 이 당에 미래가 없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당의 과거도 알지 못하는데 현재와 미래가 어디 있겠나. 그냥 흘러가는 이들이다. 당내에 수많은 계파가 얽히고 설켜 있는데 새로 들어온 이에게 그걸 정리해주는 당의 입장이 없고 그저 구전으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있었다. 이런 걸 갖고 대체 무슨 운동을 하고 정치를 할까?

 조직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어떻게 사람들을 교육시킬 것인가, 어떻게 특정 가치를 설득시킬 것인가, 열정을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 열정을 어떻게 모을 것인가 등등 내가 지금까지 화두로 잡고 있는 주제들은 모두 위에서 말한 운동권 경험..은 아니고 '구경' 속에서 배태되었다. 왜 제도화가 안되는가? 왜 장기지속되지 않는가? 물적 토대라 부르는 돈은 어디서 어떻게 끌어낼 것인가? 이런 고민에 몇년이 날아갔다. 남들 다 졸업하고 취업하네 뭐네 할 때 나는 폐기물이 되어 구석에 처박혀 있었다. 무언가 만들어내지 못했으니 어쩔 수 없겠지. 그래도 아직도 나는 고민한다. 이론적 작업으로라도 무언가 기여하고 싶다. 후배들이 나같은 시간낭비를 안 했으면.. 무언가 쌓인 곳에서 교양을 얻고 사회운동의 경험을 얻고.. 그랬으면 좋겠어서 아직도 고민한다. 근데 안될 것 같다.. 우리는 모래알처럼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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