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햇발] 싱하이밍, 김여정, 왕이는 왜? / 박민희
입력2021.08.10.
박민희 기자
7월26일 웬디 셔먼 미 국무부 부장관(왼쪽)이 중국 톈진에서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을 만나고 있다. 왕이 국무위원은 대만, 신장, 홍콩, 티베트에 대한 중국의 주권을 미국이 침해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톈진/AP 연합뉴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외교안보 인식은 예상대로 위태로웠다. 윤 전 총장은 지난달 15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중국이) 사드 배치 철회를 주장하려면 자국 국경 인근에 배치한 장거리 레이더 먼저 철수해야 한다”고 했다. 주한미군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가 중국과 무관하며 북한 미사일을 방어하기 위한 것이라는 한국 정부의 공식 입장과 맞지 않는데다, 한-중 관계를 위태롭게 할 무책임한 발언이었다.
의외였던 것은 싱하이밍 중국 대사의 반응이었다. 싱 대사는 이튿날 곧바로 “중한 관계는 한미 관계의 부속품이 아니다”라는 제목으로 ‘윤석열 인터뷰에 대한 반론’을 기고했다. “중국의 노골적 대선 개입” “21세기 위안스카이(원세개)”라는 비판이 확산됐다. 한국 상황에 정통한 전문 외교관인 싱 대사는 왜 이런 비난을 자초했을까. 중국 외교가 상대를 강하게 압박해 굴복시키려는 ‘늑대전사’ 외교로 변했기 때문이다. 시진핑 주석과 소수의 핵심 측근이 주요 사안들을 결정하고, 외교관들은 중국의 노선과 이익에 어긋나는 상대국의 행보를 강경하고 일사불란하게 공격하면서, 국내 애국주의 여론의 환호를 이끌어내는 현상이 뚜렷해졌다. 싱하이밍 대사의 기고는 늑대전사 외교가 한-중 관계에서도 변수가 되었음을 확인시켰다.
‘중국 포위망’을 강화하려는 미국과 미국의 동맹을 흔들려는 중국의 대결이 격렬해진 것도 한국 외교를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1971~1972년 키신저와 닉슨 방중을 통해, 서로의 영향권과 영토 문제에 대해 암묵적 타협을 했던 미-중은 이제 앞다퉈 50년 전에 맺은 ‘탈냉전 합의’를 뒤흔들고 있다. 대만을 둘러싼 무력시위는 ‘전쟁 위기론’ 수위를 넘나들고 있고, 중국 서부 변경의 신장위구르자치구와 티베트를 둘러싼 각축전도 위태로워지고 있다.
지난 7월21~23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티베트를 방문해 중국공산당이 티베트를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음을 과시하자, 28일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인도를 방문해 티베트 망명정부 대표와 만났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28일 신장위구르자치구 정세에 중요한 변수로 떠오른 아프가니스탄의 무장세력 탈레반 대표단을 초대해 회담하고 중국이 탈레반의 든든한 우군이 되었음을 공개했다. 27일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북방 4개 섬을 둘러싼 일본과 러시아의 분쟁에 대해 “반파시스트 전쟁(2차 대전)의 결과가 존중되고 유지되어야 한다”며 러시아 편을 들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한-미 연합훈련이 “북남 관계 앞길을 더욱 흐리게 하는 재미없는 전주곡이 될 것”이라는 지난 1일 ‘김여정 담화’는 이런 맥락 속에서 나왔다. 6일엔 왕이 외교부장이 “미-한 연합군사훈련은 현 정세 아래서 건설적이지 않으며, 미국이 정말 북한과 대화를 회복하고자 한다면, 정세를 긴장하게 만드는 그 어떤 행동도 취하면 안 된다”며 북한과 보조를 맞췄다. 한-미 연합훈련이 시작된 10일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다시 담화를 내어 “남조선 당국자들의 배신적인 처사에 강한 유감을 표한다”며 “미군이 남조선에 주둔하고 있는 한 조선반도 정세를 주기적으로 악화시키는 화근은 절대로 제거되지 않을 것”이라며 주한미군 철수도 거론했다.
북한이 정말로 한-미 훈련 연기를 원했다면, ‘김여정 담화’는 역효과만 예고된 이해하기 어려운 카드였다. 남북·북-미 협상을 통해 풀어야 할 문제를 담화로 압박하는 이런 식의 행보는 한국 여론의 반발을 증폭시키면서, 남북 관계 개선과 북-미 협상 재개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한국 정부의 운신의 폭만 좁혀놨을 뿐이다. 오히려 북한이 미국의 포위망을 약화시키려는 중국과 공조해 한-미 동맹의 틈을 벌리려 했다고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적지 않다. 미-중 관계의 긴장이 높아질수록 북·중의 공동 행보는 늘어날 것이다.
이런 맥락을 고려하면, ‘김여정 담화’ 이후 보수세력이 ‘하명 논란’을 부추긴 것도, 범여권 의원 74명이 한-미 훈련 연기 성명을 낸 것도 안보 문제를 둘러싼 국내 갈등만 증폭시킨 바람직하지 않은 대응이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미-중 갈등의 격렬한 지정학이 한반도에도 깊숙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 상황을 직시하고, 한반도가 신냉전의 최전선이 되지 않고 평화와 공존, 번영을 위한 최선의 길을 만들어내기 위한 장기 전략이다. 대선도 어떤 후보가 이 길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하고 공부한 적임자인지를 찾아내는 장이 되어야 한다.
minggu@hani.co.kr
박민희(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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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uk Bom Kwon
이 짧은 칼럼은 현재 동북아시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신냉전의 내용과 성격을 압축적으로 다루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 글의 저자인 한겨레 박민희 논설위원은 매우 균형잡힌 시각을 보여준다.
마지막 단락은 북한의 김여정 담화, 한국 보수세력의 대응이나
범여권 의원 74명의 한미훈련 연기 성명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내세운다.
동아시아 국제정치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꼭 읽어봐야 할 칼럼이다. 가을 학기에 개설되는 '국제정치학의 이해'에서 학생들에게 꼭 읽히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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