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석학들, 학문의 세계에 검열 우려
수업 중 발언으로 감옥 가는 나라 돼서야
싫어하는 사상 소유자도 옹호해야
8월 21일 자 월스트리트저널에는 일본군위안부가 한 일을 매춘의 일종이라고 수업시간에 말한 것 때문에 형사 법정에 선 류석춘 교수에 관한 기사가 실렸다. 보도를 추동한 것은 72명의 한국, 일본 그리고 미국 등 영어권 대학 교수가 서명한 공동성명이었다. 공동성명은 류 교수가 수업시간에 "위안부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매춘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말로써 학자의 견해를 표명했을 뿐 학생들로 하여금 자기의 관점을 취하도록 강요할 의도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기소됐음을 알리면서, 그러한 조치가 "한국 고등교육에 매우 나쁜 해악을 가져올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리고 "개방적인 논쟁과 자유로운 생각의 교환을 소중히 여겨야 할 학문의 세계에 검열 문화가 서서히 침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류 교수에게 유죄판결이 내려진다면 "자유로이 말할 권리와 학문의 자유를 위태롭게 하는 위험한 선례가 될 것"임을 경계하면서 "대한민국 헌법이 규정하는 민주적 가치들을 침식하거나 위축시키지 말 것"을 법원에 당부했다.
공동성명에 서명한 사람 중에는 급진적 학자로 잘 알려진, 놈 촘스키 외에도 법철학자인 예일대의 브루스 애커먼, 사회학자인 뉴욕대의 스티븐 륙스, 하버드대의 인지심리학자 스티븐 핑커 등 세계 정상급의 학자들이 포함되어 있다. 세계적 석학이라 해서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내용 및 그 문제가 한국과 일본에서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또 이런 일이 있을 때 늘 그렇듯이 서명이 이루어진 배경이나 맥락을 잘 모르고 서명한 후 철회를 요청하거나 후회한다고 말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공동성명의 배경, 특히 한국과 일본에서 서명을 주도한 사람들의 의도, 그리고 서명자가 얼마나 문제의 본질을 이해했느냐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다. 중요한 것은 대학에서 수업시간에 한 발언 때문에 감옥에 갈 수도 있는 나라가 한국이며, 그 점이 세계의 공론을 주도하는 석학들을 비롯해 지구시민들의 머릿속에 각인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기들의 명예도 훼손했다고 류석춘을 고소한 정의연(정대협)과 같은 위안부 관련 단체에 대한 명예훼손을 처벌하는 입법을 추진한다는 것까지는 알지 못한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일본군위안부를 매춘부라 말하는 것은 위안부 본인들에게 형언할 수 없는 상처를 줄 뿐만 아니라 많은 국민들의 공분을 자아내는 폭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위안부를 prostitute(매춘부)로 묘사한 2차대전기 버마 전선의 미국 전시정보국 보고서를 비판적으로 분석해 위안부를 매춘부로 규정하는 것의 잘못을 지적한 강성현의 저서 '탈진실의 시대, 역사부정을 묻는다'를 보더라도 이 문제는 학문의 영역에서 다투어질 만한 주제임을 알 수 있다. 류석춘의 위안부 발언이 폭력을 선동하는 혐오표현에 이른다고 볼 수도 없다. 폭력과 반헌법적 행위를 선동하지 않는다면 단지 마음의 상처를 준다는 이유로 대학 교실에서 행한 발언에 형사책임을 지워서는 안된다.
나는 류석춘을 포함한 뉴라이트 계열의 역사 서술, 그리고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부정하는 박유하의 언설을 격렬히 비판한다. 그러나 그 이상의 강도로 이들의 말할 자유, 학문의 자유를 옹호하려 한다.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표현의 자유는 표현 대상의 실체적 내용을 묻지 않는다. 내용에 따라 내 편 네 편을 가르고, 내 편의 자유만 주장하고 네 편의 자유를 부정하다 보면 내로남불이 된다. 결국 나의 자유를 빼앗기게 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오리건대 신문방송학과의 언론법 전문가인 염규호 교수의 말을 인용했다. "우리는 우리가 죽도록 싫어하는 사상을 가진 사람들을 옹호해야 한다. 열린 민주주의는 우리에 동의하는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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