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한국문화인류학 54–1: 403~408(2021. 03) 한국문화인류학회
서평: 박옥경, 『제주 잠녀: 한국 해녀와 신유교, 이중의 신화』
Ok-Kyung Pak, 2018, The Jamnyo of Jeju, The Women Divers of Korea and Neo-Confucianism, a Dual Mythology, Genève: Fondation Culturelle Musée Barbier-Mueller
안미정*
* 한국해양대학교 국제해양문제연구소 부교수, gasiri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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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잠녀에 관한 여러 책들이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주목할 만한 하나 의 작품이 있다. 캐나다에서 은퇴한 한 인류학자의 손에서 탄생한 제주 잠 녀에 관한 이 저서는 비단 사회적으로 관심이 높아진 ‘해녀’에 주목하는 이들 외에도 한국 인류학계가 주목할 만한 저작이다. 이 책을 쓴 저자 박 옥경 교수는 1979년 10월부터 1981년 5월까지 모계 사회로 알려진 인도 네시아 수마트라 미낭카바우(Minangkabau)를 연구한 사회인류학자이다. 미낭카바우는 재산, 성씨, 토지가 어머니에게서 딸로 계승되는 모계 사회 로 알려지고 있다. 미낭카바우 사람들의 친족제도와 토지소유제, 여성의 사회적 위치 등에 주목해 온 박옥경 교수는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다 수의 저작을 발간하였을 뿐 아니라, 캐나다 정부에서 양성평등 자문위원 으로 활약하는 등 성 평등을 실천해 온 인류학자이기도 하다. 저자는 제주 대학의 초청으로 2011년부터 2014년까지 머물렀으며, 그리고 2016년 수개월 간은 우도(제주도 동쪽 섬)에서 현지조사를 하였는데 바비에뮬러 재단(Fondation Barbiere–Mueller)이 이를 후원하였다. 이 재단의 설립자 장 폴 바비에뮬러(Jean Paul Barbier–Mueller)는 스위스의 수집가이자 박물관 설립자로 세계 여러 지역의 부족 예술 컬렉션을 전시, 연구, 출판하는 데 전념해 온 인물이다.
책의 서문에서 서울대 전경수 명예교수는 “한국 사회의 지역적 변이성 을 탐구한 저자의 관점은 사회과학은 물론 한국 인류학 상 최초의 시도이 며, 세계 학술계의 한국학은 물론 한국의 인류학계에 눈을 뜨게” 해주는 책이라고 크게 호평하고 있다. 이러한 호평은 지나침이 없다. 제주의 역사 와 신화, 잠녀들의 어로와 의례를 아우르는 해외 영문 저작으로는 이 책이 처음일 것이다. 특히 저자가 친족제도 및 모계 사회를 연구해온 사회인류 학자로서 앞으로 제주를 연구하는 이들에게 좋은 귀감이 되리라 생각한다. 책의 제목처럼 ‘잠녀’를 중심에 두고 제주의 문화를 기술하고 있는 이 책이 기존의 다른 유사한 책들과 다르게 생각되는 것은, 단지 ‘살아 있는 문화유산’으로서 제주 잠녀를 세계적으로 알리는 연구서이거나, 혹은 ‘사 라져가는 위기의 문화’에 대한 기록을 담고 있어서가 아니다. 필자는 이 책이 하나의 제주도 민족지라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고 보며, 어느 누가 제 주도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고자 할 때 좋은 가이드가 되어 줄 수도 있고, 또는 국내 인류학계에서 미약한/열악한 친족 연구의 사례이자 그 가치를 보여주는 것으로서도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총 176쪽의 분량 안에는 그녀의 글을 돋보이게 하는 사진들이 다수 들어 있다. 문외한 인 필자가 보기에도 사진가 고성미(Koh Sung–Mi)의 사진들은 본문의 내 용들을 시각적으로 이해하기 쉽도록 전하는 역할 외에도, 작가의 시선은 현장의 사실성이나 예술적 심미성에 집착해 있는 것이 아니라 잠녀 문화 에 대한 작가의 해석을 포착해 보여주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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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내용에 있어서는 여러 주제들, 즉 제주 섬 문화에 대한 생태학적 해석 외에도 잠녀들의 어로와 샤머니즘 의례, 여성들의 경제활동을 통한 사회적 위치 등을 아우르는 동시에 제주의 친족제도와 한반도에서 유입 된 유교주의를 두 축으로 하여 제주문화를 총체적이고 구조적으로 접근 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저작은 인류학의 전통적 주제, 즉 친족과 종교를 중심에 두고 제주 문화를 총체적으로 해석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제 주의 현실(reality)을 다루고 있는 도입 부분에서는, 제주 사회가 잠녀에 주 목하는 현상을 잠녀가 제주 정체성의 일부분으로 이에 집착(몰입)하는 것 이라고 보았다. 이는 2016년 12월 유네스코에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가 이슈가 되었던 제주 사회의 모습을 지적한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현상을 기존 제주 사회와 잠녀를 둘러싼 주요 담론들을 보여주며, 제주의 정체성을 다루기 위해—그것은 곧 인류학자에게는 문화의 해석을 요구하 는 것이므로—, 제1장의 내용을 신화와 역사로 시작한다. 제주 사람의 기원을 중국의 곤륜산으로 언명하고 있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이지만, 설문대 할망의 신화를 시작으로 최근의 변화까지를 통사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제2장의 제주 친족 시스템을 분석한 데에 있다. 제주의 친족 연구에 관해서는 최재석(『제주도의 친족조직』, 1984) 과 김혜숙(『제주도 가족과 궨당』, 1999)가 널리 알려져 왔는데, 이 책에서는 문화인류학자 김창민(『환금작물과 제주농민문화』, 1995) 교수의 연구에 기반 해 저자가 여성의 교환(혼인)을 중심에 두고 분석하고 있다. 아울러 저자는 자신이 이 책을 쓰기 위해 모델로 삼은 것이 Living Kinship in the Pacific(Toren and Pauwels ed., 2015)과 What Kinship Is … And Is Not (Sahlins 2013) 였음을 말하고 있다. 친족 연구가 인류학의 전통적 영역임 에도 불구하고 한국 인류학계가 이에 대한 연구가 미약하다는 현실을 떠 올려 보면 이 책이 던지는 시사점은 자못 크다. 또 저자에게 있어서도 이 책은 자신의 삶의 여정을 담고 있는 작품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1980 년 인도네시아 모계 사회를 연구하기 시작했던 그 연장선상에 제주 잠녀가 있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다만, 세계 여러 곳에서 현장연구를 했던 수십 년의 시간을 지나서, ‘모국’의 한 지역 제주도라는 섬을 대상으로 비교연구를 실현한 결과물인 것이다. 제3장의 제주의 여성 잠수부인 잠녀들 의 어로 문화와 역사를, 제4장에서는 샤머니즘 의례를, 제5장은 신유교주 의 영향을 내용으로 한다. 3장과 4장은 필자를 포함 여러 연구자들이 잠 녀 연구에서 주목해 온 영역으로 인류학 외에도 민속학과 법학, 경제학, 역사학, 사회학 등 여러 분야의 연구들이 이어져 왔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제주 잠녀를 제주도의 안과 밖을 동시에 한 앵글에 두고 바라봄으로 써 이 문화의 ‘위치’를 다시금 조명하여 우리의 시선을 붙잡아 둔다. 그 까닭은 그동안 세계 여러 지역에서 조사연구 활동을 해온 저자의 활동이 이러한 저력을 만들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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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이 이 책에서 얻을 감응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필자는 제주도 출신이자 제주 잠녀 문화에 관심을 두어 온 한 연구자로서 그리고 친족연구가 왜 힘을 발휘하는가를 조금씩 알아가는 위치에서 주목하는 내용 두 가지만을 언급하고자 한다.
1] 우선, 제주 마을의 구성이 한반도(제주에서 일컫는 “육지”)와 다르다는 것은 여러 학자들도 지적해 왔다. 제주도의 마을들은 여러 성씨 집단으로 구성되어 있어 마을 안에서 혼인이 이뤄지므로 마을 전체적으로 친족관계가 형성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저자는 이를 ‘마을 내의 혼인’으로 족내혼이라고 말하고 있다. 필자는 마을 내 혼인이 성씨가 같을 때에는 회피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족내혼이라고 부르는 것은 무리가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디까지 ‘마을사람’으로 하나의 동족성을 인식하고 규정하는 지는 또 다른 연구를 기대해야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실제 제주 마을 사람들이 하는 친족 호칭을 보면, 일상적으로 이 웃의 다른 성씨 집단의 사람에게도 “삼춘(삼촌)”으로 부르거나 “사돈의 팔촌”으로 사회관계를 표현하는 말들은, 제주의 유연한 친족 시스템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온다. 그러면 친족이 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를 생각해볼 때, 살린스는 같은 이름, 같은 음식을 공유하는 것도 서로가 위험을 넘기고 살아남기 위해 도움을 주는 친족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혈연 공동체보다 마을이라는 공동체 의식이 보다 강하게 표출되는 제주 문화는, 제주에 서 친족이란 ‘같은’ 장소나 경험, 그리고 기억이나 의례, 신화 등 무언가를 함께 공유하였고 또 현재 공유하고 있다는 지금의 시점에 준거해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이러한 유연성이 육지와는 다른 모습으로 제주의 괜당 문화를 생동시키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2] 또 한 가지는 잠녀들의 경제활동을 통해 생각해보게 되는 제주 사회에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에 관한 것이다. 저자가 수마트라 미낭카바우에서 현지조사 했던 시점은 제주도 우도에서 조혜정 교수가 현지조사했던 때 와 거의 일치한다. 동시대를 살았던 두 여성 인류학자가 시간차를 두고 같 은 지역에서 하나의 주제에 몰입하였다는 것은 무얼 말하는 것일까?
조혜정 교수는 우도의 현지연구를 통해 ‘양편비우세론’을 제기하였는데, 남자 는 제사의 영역을, 여자는 경제의 영역에서 우위적 역할을 하므로 어느 한 쪽의 성이 지배하는 사회가 아니라고 말하였다. 이후 이 주장은 제주 잠녀 및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설명하는 하나의 공고한 틀이 되어 왔다. 저자는 제주에서 여성중심성의 또 다른 요소로 제주의 친족제도(“괜당”) 가 여성에게 유리하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마을 내에서의 혼인이 이뤄짐 으로써 여성은 부계 혈연의 친족제 안에서도 유연하게 친정 부모의 집을 돌볼 수 있는 평등한 사회관계가 이뤄진다는 것이다. 이는 제주도가 본토 (한반도)의 성리학을 그대로 수용하였다기보다는 섬의 자연적 환경 속에 살아야 하는 타협적인 결과이며, 이러한 제주의 친족 시스템은 여성의 경제적 자율로부터 이뤄진 것이라고 보았다. 저자는 제주의 “괜당”이라는 친족 개념을 양친의 결혼으로 연관된 사람들 모두를 포함하는 문화적 범주라고 말한다. 괜당은 부모자식, 형제자매, 결혼과 관련된 시댁을 통해 관계된 사람들이다. 어머니와 성이 같고 출신지가 같은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도 괜당이다. 이처럼 조사지였던 마을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괜당이 라는 친족 관계 안에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괜당은 공유재산을 가 지지 않으며 공동의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영구적인 것도 아니다. 그것 은 종종 노동력을 확보하거나 정치적 목적의 지원을 받을 수도 있다. 이 같은 괜당은 김창민 교수가 지적했듯이 제주환경에서 토지 소유보다 더 가치 있는 “노동의 저수지(labour reservoir)”가 된다는 것이다. 나아가 저자는 괜당이 신유교주의 원칙을 과시하는 가까운 친척의 결혼으로 이어 질 잠재적 파트너들의 저수지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이 책의 내용들은 잠녀의 어로, 노동을 제주사회의 괜당 친족 시스템 안에서 해석함으로써 여성의 역할과 지위가 육지에서 유입된 신 유교주의와 어떻게 결합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여러 가지 면에서 독자들은 이 책의 구성과 내용이 구조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될 것 이다. 책머리에서 밝혔듯이 모계 사회를 연구했던 저자가 그녀 자신이 제주에 거주하기 시작한 ‘어머니를 따라 가게 되면서’ 잠녀를 알게 된 것이 이 책의 시작이었다. 잠녀문화를 해석하기 위한 무대 위에, 제주의 신화와 역사가 등장하고 여성의 지위를 해석하기 위해 친족시스템과 의례, 신유 교주의가 등장한다. 그리고 말미는 에코 페미니즘이 맡고 있다. 긴 시간을 관통하는 긴 이야기가 있지만 그녀가 정작 하고 싶은 말은 자신의 어머니 를 따라 제주에 오게 되었던 연유처럼, 이 책의 가장 핵심적 키워드는 여성–모계라는 말로 압축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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