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北으로 간 철학자 윤노빈 ‘신생철학’ 재출간
중앙일보
입력 2003.06.13 14:56
권위주의 권력에 저항했다가 여러 차례 옥고를 치른 시인 김지하, 분단을 상징하는 지식인으로 '경계인'을 자처하는 송두율 교수(독일 뮌스터대), 그리고 한때 서양 철학을 뛰어 넘어 한국적인 철학의 비상을 꿈꾸다 홀연히 가족을 데리고 월북해버린 윤노빈 전 부산대교수(철학). 각자 처한 사정은 달랐지만 분단과 그로부터 파생된 억압적 질서에 저항한 희생자들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남과 북, 그리고 해외에 흩어져 있는 이 세사람이 한자리에 모였다. 윤노빈씨의'신생(新生)철학'(학민사刊)이라는 책을 통해서다. 윤씨가 월북하기 전에 철학적 문제의식을 담아 쓴 이 책을 다시 출간하면서 김시인과 송교수의 글을 함께 실었다.
윤씨가 엄혹하던 1983년에 월북했기 때문에 이 책을 다시 출간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는 않았다. 부산의 작은 출판사에서 출간했던 이 책을 윤씨가 82년 서울대 교환교수로 있으면서 재출간을 위해 새롭게 고쳐 썼다. 그러나 재출간 되기 전에 그는 월북했고, 이 책은 학계에서 사라졌다. 김지하 시인은 '왜 윤노빈은 월북했을까'라는 의문으로 그와의 만남을 시작한다. '나의 친구이자 스승'이었다고 고백할 정도로 사상적으로 영향을 받았다고 시인한 김시인도 끝내 그 의문을 풀지는 못한다. 원주에서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내고 70, 80년대를 함께 겪으면서 오히려 그때의 시대적 고통에 익숙해져 버렸기 때문은 아닐까. 하지만 윤씨가 월북하기 직전 정전(停電)과 침묵 속에 이뤄진 윤씨와 김시인의 기괴한 마지막 만남, 윤교수가 긴 옥살이에서 풀려난 김시인에게 선물한 스피노자의 '윤리학'은 그의 월북이 나름의 고통스런 철학적 사색의 결과였음을 보여준다.윤씨가 남긴 '신생철학'의 내용 중에 그 단서들이 보인다.
그는 헤겔의 변증법, 스피노자의 윤리학, 베르그송의 생명의 철학을 통해 궁극적으로 수운 최제우의 동학에 이른다. 그가 동학을 통해 설계한 한국적 생명철학이나 그의 시적 표현을 보면 김시인이 '친구이자 스승'이라고 한 이유를 알수 있다."우상(偶像) 앞에서의 아첨이 기도는 아니다. 허수아비 앞에서의 애걸이 주문은 아니다. 기도와 주문은 부활과 신생(新生)에의 대함성이며, 해방과 탈출의 대기원(大祈願)이다." 세계관.고통.악마.언어 등의 범주를 통해 자신의 철학을 전개하고 있는 그의 '신생철학'이 가장 치열하게 부딪히고 있는 지점은 분단이다. "생존은 '통일된 상태'에서만 유지되며 확장된다. 인위적으로 통일성을 쪼개고 끊음으로써 고통이 생긴다. 분열은 생존의 감소이며 생존의 파괴이다."윤씨의 철학적 치열함은 비장하기까지 하다. "철학은 안락한 의자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철학이 기록되는 장소는 창백한 종이(tabula rasa)가 아니다. 한숨과 고통의 종이이며 눈물과 피가 철학의 잉크이다."
윤씨의 철학적 화두가 분단인만큼 송두율교수와의 만남은 자연스럽다. 윤씨가 1971년 프랑크푸르트대학을 떠나며 송교수에게 남긴 투박한 커피잔에 대한 회상으로 시작한 송교수의 글은 북한에서 이뤄진 20년 만의 재회를 소개하고 있다. '자꾸 대머리가 되는데 독일에는 좋은 약이 없는지'따위의 허허로운 대화 속에 분단이 가져다준 지식인의 비극이 느껴진다. 대학시절 4.19와 5.16을 경험한 세대인 윤씨가 월북을 한 이후 민중의 메아리 방송에서 선전문 작성 활동을 했으며 '지성인의 각성'등을 저술했고, 북한 국기훈장 1급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출판사는 재출간에 맞춰 윤씨의 새 글이나 대담을 싣고자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윤씨의 북한 내 활동은 현재 알려지지 않고 있다. 지난 3월 말 평양에서 개최된 통일포럼에서 송교수는 기자에게 "우리 세사람은 우리 시대 지식인의 삶의 한 방식을 보여주고 있으며, 윤씨의 '신생철학'은 그것을 철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창호 학술전문기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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