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8-19

황대권 - 제국주의 - 예단 - SNS에서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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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대권
2 h  · 
예단
SNS의 제한된 공간에 글을 쓰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 새삼 실감한다. 

아무리 조심스럽게 써도 언어 자체의 한계와 특정단어를 받아들이는 독자의 해석이 제각각이다 보니 원래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와는 전혀 다른 반응을 마주치게 된다. 많은 고전 작품들이 진짜 메시지를 글 사이에 숨기고 우화나 은유기법을 사용하는 이유가 다 있는 거다.
- 사람들은 민족이나 자주, 통일 이런 단어만 나오면 무조건 주사파를 연상한다. 주사파들이 그 단어들을 많이 사용하는 것은 맞지만 그런 말을 쓴다고 다 주사파는 아니다. 나는 주체사상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고 자부하지만 결코 주사파는 아니다. 내가 주체사상을 공부했던 것은 동족인 북한사람과 북한을 이해하기 위해서였지 정치적으로 그와 함께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런데 이곳 남한에서는 단어 몇 개만 보고 무조건 주사파 취급을 하고 놀려댄다. 
- 아프간 사태에 대한 나의 글은 외세인 미국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아프간 인민들이 실질적인 주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것에 대한 기쁨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탈레반이라는 정치세력을 미국보다 못한 반인권적인 테러조직으로 보고 그 치하에서 살아야만 하는 아프간 민중의 고통을 외면하는 반생명주의자로 매도한다. 심지어 어떤이는 ‘생명평화운동가’라는 나의 타이틀을 조롱하기도 한다. 
- 현실과 역사를 냉정히 보자. 탈레반은 무자헤딘과 함께 미국이 키운 테러조직이다. 자기가 키운 새끼 사자에게 당한 것이다. 이런 일은 제3세계 전반에 너무도 흔한 스토리다. 테러조직으로부터 인권옹호를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무리이다. 이스라엘 총리를 지낸 메나헴 베긴은 건국 당시 악명 높은 테러리스트였다. 그가 이끈 테러조직은 나중에 이스라엘군의 일부가 된다. 테러리즘을 뺀 이스라엘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나름 민주화에 성공하여 오늘날 선진국 대접을 받고 있다.
- 미국이 아프간을 침공한 것은 자신들의 정치군사적인 목적을 위해서지 아프간 인민들의 인권을 위해서가 아니다. 미국은 남의 나라 쳐들어갈 때에 꼭 인권타령을 한다. 철군한 마당에도 미국 언론들은 탈레반의 폭력을 보도하는 것에 목을 매고 있다. 자신들의 잘못을 그런 식으로 커버하는 것이다. 어느 국회의원이 조직폭력배를 이용하여 지역구를 장한한 뒤 실컷 해처먹구 조폭에게 약점을 잡혀 쫓겨나서는 TV에 나가 “저놈들 폭력배래요!”라고 고발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 탈레반은 불과 몇 달 만에 아프간 전역을 장악했다.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다. 이는 미국과 미국이 세운 아프간 정부가 아프간 인민들로부터 전혀 신뢰받고 있지 못하다는 증거다. 탈레반은 지난 20년 동안 끈질기게 저항했고 그 결과 다른 무장조직들을 제치고 아프간 전체의 지배권을 확보했다. 이 상황에서 인권을 이유로 탈레반을 제거하고 다른 정권을 세우려는 발상은 아프간을 또 다시 폭력의 악순환에 빠뜨릴 뿐이다. 혁명세력이 집권 후에 독재로 빠지는 일은 거의 역사적 패턴에 가깝다. 자신들의 의도대로 사회를 재구성하자면 그럴만도 하다. 그러나 그 독재정권을 민주화하는 것은 온전히 아프간 인민들의 몫이다. 
- ‘제국주의 문제’는 내 평생의 화두였다. 어쩌면 평생에 걸쳐 제국주의를 공부했다고 볼 수 있다. 내가 생명평화운동가를 자처하게 된 것도 폭력적인 제국주의 질서 아래에서 어떻게 평화적으로 생명의 원리에 맞게 살 수 있을지를 고민하다가 그리되었다. 제국주의는 그 역사가 오래되다 보니 이제는 거의 공기와 같아서 잘 느끼지 못할 정도이다. 제국주의는 비서구 세계에 ‘근대화’라는 ‘선물’을 안겨주었고 이제는 AI까지 장착한 ‘인류의 문명’이 되었다. 서구와 가깝게 지내는 나라의 인민들은 그 문명의 혜택을 어느 정도 누리고 있기에 제국주의의 실상을 잘 모르고 있다. 그저 주어진 세상의 질서려니 한다. 제국주의 문명은 인류에게 행복을 가져다주기보다 불평등과 억압, 착취와 폭력, 그리고 사회 지도층의 부패를 더욱 악화시켰다. 제국주의 문명의 가장 큰 악은 ‘생명의 경시’이다. 제국주의 질서의 유지를 위해서라면 인간의 생명은 물론 다른 생물종의 생명마저도 무자비하게 유린한다. 그 결과 우리는 ‘생명권의 총체적 위기’ 앞에 직면해 있다. 사실 그동안 제국주의 세력이 중동에서 저지른 모든 악행과 폭력에 비하면 탈레반의 폭력행위는 어린애 장난에 불과하다. 이 말을 가지고 내가 탈레반의 폭력을 옹호하는 것으로 곡해하지 말기 바란다. 어떠한 사소한 폭력도 나는 반대한다. 다만 아프간에서 저질러진 폭력의 상대성을 지적하는 것이다.
- 내가 지난 글에서 “끝내야 한다!”고 쓴 것은 이 폭력의 악순환을 끊자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제국주의가 키운 폭력조직 탈레반을 또 다시 내모는 것은 아프간 인민들을 영원히 폭력의 악순환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도 탈레반은 안 된다고 믿는 분들이 계시면 부디 아프간 평화를 위한 대안을 제시해주시기 바란다. 
* 며칠동안 아프간 문제에 신경쓰다보니 밭에 풀이 지천이다. 자연농을 하는 나는 여름 내내 풀뽑는 게 일이다. 당분간 아프간에 대한 언급은 이것으로 끝이다. 충분히 내 의견을 밝혔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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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효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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