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설] 음력설을 쇠지않는 우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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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력 설을 쇠지 않으면 <민족 정신>이 없는 건가?
- 우리 집에서는 "옛날" 부터 음력 설을 쇠지 않고, 양력 설을 쇠어 왔기 때문에, 밑의 글 [1]에서 처럼, 음력 설은 <일제가 강제로 쇠게 만든 것>이고, 양력 설을 쇠면 <민족 정신을 잃는 것>이란 식의 말을 들으면 불편하다. 나와는 먼 세계의 사람들의 생각이라는 생각이 든다.
- 나는 한국떠나 산지 오래되어 한국식 <민족정신>같은 것도 없고, 그것이 중요하다도 생각하지 않지만, 음력설을 쇠지 않는 북조선이 남한보다 민족정신이 모자르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민족 정신 생각한다면, 음력 설을 쇠지 않는 것 걱정하는 것보다 서양화해가는 <한국문화>부터 걱정해야 되는 것 아닐까 생각한다.
- 그런데 (부모를 포함한) 우리 집에서는 왜 음력 설을 쇠지 않는가? 라는 질문의 답을 얻이려면, 우선은 우리는 한국에 살 때, 그러니 1950년대와 한국을 떠난 1964년 까지 양력 설을 쇠었기 때문 일 것이다. 그렇게 떠났기 때문에 58년이 지나도 양력 설을 쇤다.
- 사실은 양력 설도 쇤다고도 말하지 못할 정도이다. 떡국끌여 먹는 정도가 전부이다. 아마도 한국에 있었다면 친척과의 왕래도 있었겠고 현재 한국인들이 음력설 쇠는 것 처럼 양력 설을 쇠엇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 그렇다면 1964년에는 한국에 양력 설을 쇠는 사람이 얼마나 되었을까? 숫자 적으로 얼마가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한국 정부에 의해 양력 설이 설날이었다. 밑의 글 [2]에서 말하는 것처럼, 당시에는 음력 설은 공휴일도 아니었다. 음력 설이 공휴일이 된 것은 우리가 한국을 떠난지 21년 후인 1985년이었다. 음력 설을 설날로 지정한 것은 1989년이었다고 한다.
- 우리 집안이 한국에 살 때 양력 설을 쇤 것은 일제의 강제 때문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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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Panim Kim (세종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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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설날이면 아버지께서 너무나 경건한 자세로 차례상을 차리신다. 경건하다 못해 엄숙하기까지.
어머니는 떡국과 나물들. 전들을 설날 전에 준비하시고 아버지는 설날 당일 아침에 과일을 깎으시고 날밤도 깎으셔서 차례상에 올리신다.
향불을 피우기 위해 향나무도 깎으셨다. 아버지가 깎아 놓은 것들은 정성 가득한 최고의 예술이었고 아버지가 하신 일은 나의 눈엔 수도사의 경건과 같은 모습이었다. 그것은 설의 본연의 의미를 보여주신 행위였다. 험한 세상에서 자신을 지키며 또 다시 일 년 살기 위한 세레모니!
아버지는 설날을 절대로 구정이라 부르지 말라 하셨다. 그건 일본에 의한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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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의 뜻
음력 1월 1일 정월 초하루를 '설날' 이라고 합니다.
'설' 은 "사린다, 사간다." 란 옛말에서 유래한 것으로 "삼가다, 조심하다." 의 뜻을 가지고 있으며,
"쇠다." 는
"몸가짐이나 언행을 조심하여 나쁜 기운을 쫓아낸다." 는 말입니다.
즉 설날은 일년 내내 탈 없이 잘 지낼 수 있도록 행동을 조심하라는 깊은 뜻을 새기는 명절입니다.
'설' 을 언제부터 쇠기 시작하였는지는 정확한 기록이 없어서 잘 알 수가 없지만, 중국의 사서에 있는 "신라 때 정월 초하루에 왕이 잔치를 베풀어 군신을 모아 회연하고 일월신(日月神)에게 배례했다." 는 내용으로 보아 상당히 역사가 오래된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구한말인 1895년에 양력이 채택되면서 그 빛이 바래기 시작했고 1985년 "민속의 날" 로 지정, 이후 설날 명칭을 되찾아 사흘간의 공휴일로 결정되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아직도 구정(舊正)이라고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구정이란 이름 그대로 옛 '설' 이란 뜻입니다.
구정은 일제가 한민족의 혼과 얼을 말살시키기 위해 신정(新正)이란 말을 만들며 생겨났습니다.
모두 일본식 한자어이며 설날이 바른 표현입니다.
조선 총독부는 1936년 "조선의 향토오락" 이란 책을 펴 내 우리의 말, 글, 성과 이름까지 빼앗아 민족문화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고, 이 때부터 '설' 도 구정으로 격하해 우리 민족정신을 말살시키려 했습니다.
이제부터는 꼭 설날이라 하시고 " '설' 잘 쇠십시요, 쇠셨습니까?" 로 불러 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그리고 떡국은 나이 한 살 더 먹으라는 게 아니라,
희고 뽀얗게 새로이 태어나라고 만든 음식입니다.
순백의 떡과 국물로 지난 해 묵은 때를 씻어 버리는 것입니다.
즉 순백은 계절에 흰 한복을 입고 흰떡을 먹으며,
묵은 그림을 버리고
하얀 도화지에 한해의 새로운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묵은 때를 씻어버리고
설 잘 쇠시고 한해의 아름다운 그림을 새롭게 시작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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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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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o Kalia
좋은 배움😊
선친도 차례 준비는 경건 자체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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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음력) 설날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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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개혁에 따라 1896년부터 태양력이 시행되면서 음력이 폐지되었으나 양력은 낯선 것이었고 그동안 음력에 맞춰 살아온 사람들은 음력 1월 1일을 새해 첫날로 보내었다.[13]
일제강점기 때도 마찬가지로 양력 1월 1일이 공식적인 새해 첫날이었고 음력의 과세(過歲)[14]를 구시대의 관습으로 여겨 타파하고자 하였으나 음력 1월 1일을 새해 첫날로 지내던 풍습은 여전히 계속되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초기에는 신정만 연휴였고 양력 1월 1일부터 1월 3일까지 쉬었으며 음력 1월 1일은 공휴일은 아니었지만 재량에 따라 음력 1월 1일에 휴무하는 기업은 많았다. 여전히 사람들은 음력에 맞춰 친척과 만나 제사를 지내고 성묘와 세배를 지냈다. 이렇게 태양력 도입 이후에도 음력 1월 1일을 새해 첫날로 여겨 명절로 보내는 풍습은 꾸준히 유지가 되었기 때문에 이에 음력 1월 1일을 공휴일로 지정해야한다는 사회의 목소리는 이전부터 꾸준히 제기되었다.[15]
음력 1월 1일을 공휴일로 지정하는 것을 검토한 첫 사례는 1976년이었으나 혼란이 가중된다는 이유로 흐지부지되었다. 이러던 중 전통 민속 문화를 계승·발전 시키자는 취지로 1985년부터 음력 1월 1일을 민속의 날로 호칭하고 공휴일로 지정되기 시작하였고 1989년부터는 음력 1월 1일을 설날로 호칭하고 연휴기간을 3일로 연장하여 오늘날까지 유지되고 있다.[16]
대신 신정 연휴는 1990년부터 3일에서 2일로 줄이고, 아예 1999년부터는 1월 1일 하루만을 공휴일로 지정하였으며, 명칭도 신정에서 그냥 1월 1일로 변경하였다.[17]
이는 신정을 일제 잔재로 간주하고 근로 효율성 문제를 감안한 결과이기도 하다.
젋은 세대로 갈 수록 실생활에서 양력의 사용 비중이 늘어나고 있고 음력은 그 비중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설날(음력 1월 1일)을 새해의 첫 날을 기념하기 위해 지낸다기보다는 설연휴 그 자체로서 지내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설의 본래 목적인 새해의 첫 날을 기념하는 행사(타종행사, 해돋이 관람 등...)는 양력 1월 1일에 하는 추세이다.
다만 1990년대 이후 출생 세대들은 과거 한국에서도 양력설을 연휴로 쇘다는 사실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고, 오히려 부모나 조부모 시대에 음력설이 없었고 양력설이 연휴였다는 것에 세대 간 컬처쇼크를 느끼기도 한다.
지금까지도 연휴로서 신정을 쇠는 집안도 있으며 그런 경우 공무원 집안이 많다고 한다. 음력설을 쇠지 않았을 시기에는 정부 산하 공무원들이 솔선수범하여 신정을 쇠도록 독려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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