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의 사회운동과 민노당의 정당활동이 결합된 전략이 실패로 끝난 뒤에 사실상 별다른 전략이라는 건 있을 수가 없고, 지금 제일 중요한 건 정의당이든 노동당이든 좌파정당들이 민주당과 역사관, 세계관을 다르게 해서 독자적인 길을 걸어야 한다. 세계관을 새로 만들기 위해서는 이쪽이 지닌 유일한(?) 장점인 굴러다니는 대학원생들, 솔직히 박사급을 지금의 좌파정당들이 막 포섭하기는 어렵고 석사급 이상의 사람들 최대한 모아서 학술운동과 정치운동을 겸하는 수밖에는 별도리가 없다. 거기서부터 출발해서 점점 넓혀가면서 다시금 사회운동과 정당활동이 결합되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 맨날 이런 얘기를 하고 다닌다.
근데 이게 사실은 이미 실패한 민노당 - 민주노총 모델을 좀더 잘해보자, 이런 주장이라 얘기하면서도 민망할 때가 많다. 앞서서 활동하신 분들이 못난 분들도 아니고, 그분들도 실패한 걸 다시 하자는 게 참 얘기하면서도 좀 민망하다. 그렇지만 어쩔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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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Jong-joo Jeong and 33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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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이상의 아저씨들이 류호정 싫다고 난리치는 걸 보니 즐겁다. 내가 전부터 그랬잖아, 류호정 감각 있다고. 너네가 욕해봐야 못 막아. 이준석 그렇게 욕해봐야 별 소용없는 것처럼.. 나이든 인간들 문제가 어린애하고 싸워서 지들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니까.. 반말만 해도 기분 나빠 죽으려고 하는 인간들이.. 쯧쯧.. 반말만 해도 기분 나빠하는 권위주의적인 걸로 어떻게 이기겠다는건지.. 답답하다 답답해. 부모 안부 묻는 게임 문화에서 자란 애를 어떻게 그런 걸로 이겨먹으려고 하니.. 가서 자식새끼나 이겨먹고 오세요.
나는 기본적으로 류호정 같은 스타일 근본이 없어서 안 좋아한다. 류호정을 지켜보면 알겠지만 이 사람은 지식인적인 면모가 거의 없다. 이 사람이 잘하는 건, 류호정이 잘하는지 보좌진이 잘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갈등관계를 파악하고 어느 지점에서 자기가 끼어들어가야 구경꾼을 끌어모을 수 있는지 그걸 감각적으로 파악하는 걸 대단히 잘한다. 이걸 퉁쳐서 BJ적 감각, 인터넷 논객 감각, 유튜브 감각 등이라고 부르는건데, 이 사람은 이 감각을 대단히 잘 활용한다. 그리고.. 조심스러운 발언이지만 예쁘다. 여성혐오적 발언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말하는건데 원피스 사건 때도 그렇고 이번 타투 때도 그렇고 류호정은 자신의 상품성을 대단히 잘 활용해서 이미지적으로 충격을 주는 법을 안다. 류호정을 비하하는 게 아니라 예쁜 것도 중요해. 그걸로 자기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하면 되는거야. 조국이나 문재인도 잘생겨서 여기까지 온거라고. 그런 외적인 요소까지 잘 활용할 줄 아는 영악함까지 포함해서 감각적이라는거다.
근데 여태까지 류호정이 찍은 것 중에서 여론상 논란? 갈등의 증폭이 제대로 안 된 건 사실 역설적이게도 '노동' 문제밖에 없다. 여기에 류호정의 한계가 있는데 이 사람은 인터넷 여론에서 문제가 될 게 뭔지, 어떻게 그 여론을 증폭시키는지, 갈등구도를 어떻게 짤지 등등에 대해서는 감각이 있는데 문제는 거기에 의존하다보니 그런 감각적인 걸로 접근할 수 없는 노동문제에서 막힌다. 노동문제에 대해서 끊임없이 말을 하고 활동을 열심히 하는 건 SNS만 봐도 알 수 있는데 그게 파급이 안된다. 류호정의 또다른 정체성인 "민주노총 상근자"는 보이지 않는다. 이 점에서 이준석과 비교해보면 좀 흥미로운데 이준석은 안티페미니즘이라는 인터넷 여론을 능력주의, 공정성 등으로 담론화 해서 당대표까지 어찌됐든 밀고 들어갔는데 류호정은 노동으로 담론화를 하지 못하고 있다. 자기 지지기반을 창출해내지 못하고 있는건데 이게 한국 사회의 특질이 반영된 것인지, 아니면 두 플레이어의 차이인 것인지 등에서는 계속 봐야겠지만 둘다 있다고 본다.
그런 면에서 이번 타투 사건은 나한테 약간 애매한 지점이 있다. 류호정의 감각이 유감없이 발휘된 사건이면서 동시에 노동을 류호정이 어떻게 다룰 것인지 보여준 것 같은데, 이게 얻어걸린건지 아니면 이 사람이 앞으로 계속 이런 식으로 노동을 다룰 것인지는 좀 지켜봐야 할 문제 같다. 이번에 '감각적'이라 할 지점은 이런거다. 류호정이 타투 법안을 낸 뒤에 제기된 비판은 두 축으로 구성돼 있는데 1. 내용적으로 더 나은 박주민 등의 민주당 법안이 있는데도 관심을 끌기 위해 했다, 2. 기존의 활동하던 타투 노동조합을 류호정이 무시했다 이다. 1에 대해서는 앞으로 합의하는 과정을 보면 되고 문제는 2였는데 류호정은 보란듯이 타투유니온, 조합원 등과 함께 한 자리에서 퍼포먼스를 해버렸다. 좆까라는거지. 나는 여기서 아, 역시 감각이 있구만.. 했던 것이고.. 야.. 얘 좀 봐라? 감탄했다.
문제는 퍼포먼스도 좋고 그런데 국회의원으로서의 류호정의 위치가 뭔가? 류호정은 그저 특정한 노동의제, 노동집단 등을 홍보하는 역할만 하는 건가? 그 감각을 이렇게만 쓰는건가? 그러니까 사회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류호정이라는 '상징'으로 묶어내기 위해서는 류호정 자체가 좀더 다차원적인 면모를 드러내야 할 필요가 있는데 BJ적 감각을 홍보용, 선전용으로만 사용하는 게 아닌가. 물론 노동의제가 류호정을 통해서 갈등이 증폭되고 여론이 모이고 그러면 좋은 일이지만 나는 그가 좀더 추상화 되기를 바란다. 이 지점에서 타투 사건은 좀 애매한 측면이 있다. 류호정의 감각과 노동의제가 잘 결합했지만 동시에 이게 그냥 우연적으로 결합한 것으로만 느껴지고 그 결합조차도 따로 노는 두 개가 우연하게 붙은듯한 느낌이라 곧 분리될 것 같기 때문. 이준석은 나름대로 신자유주의니 뭐니 하는 보수 이데올로기의 상징성을 획득해서 무슨 시대정신의 아이콘처럼 됐는데 류호정은 진보판 이준석, 진보판 상징성을 획득했나 하면 글쎄.. 여기에 이제 차이가 있다고 본다. 그걸 만들면 이 사람은 큰 정치인이 된다. 이미 이준석이 시대의 한 부분을 얻어낸 이상 진보판 이준석이 나올 필요도 있다. 같이 망해야지..(?) 아무튼 구경꾼의 평은 이렇다.
153YoonSeok Heo and 152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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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걸 보면 좀 답답해지는데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2009년 ‘명박산성’이 2011년 헌재에서 위헌으로 판결난 건 시민의 이동권을 제한한 게 “과잉”이었다고 헌재가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경찰은 이후에 2015년 민주노총 파업과 세월호 추모집회, 그리고 세월호 분향소 설치 등을 막기 위해 차벽 설치를 감행하면서도 위헌 논란을 피하기 위해 중간중간에 틈을 만들고 심지어 안내경찰의 배치까지 고려하면서 시민의 이동권을 보장하려고 하였다. 이동권 제한이 없으니 과잉이 아니고 차벽 설치는 정당하다는 것이었다. 내 기억으로 당시 법원도 이를 받아들였다. 2015년의 ‘근혜산성’이 이렇게 정당화되자 2020년 ‘재인산성’도 동일한 논리로 정당화 되고 있다. 산성이 몇 개야 벌써.. 아래의 포스팅은, 본인은 문재인 정부를 수호하기 위함이었겠으나 역설적이게도 박근혜 정부를 수호하고 있다.
애당초 차벽 설치의 목적 자체가 공권력이 선제적으로 공간을 점거하여 시위대의 공간 점거를 차단하려는 것이었다. 시민의 이동권이 제한되든 보장되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공간을 누가 점거하는가, 그 점거의 의미가 집회•시위 등의 결사권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 등의 문제이다. 너무나도 평이한 이 논리가 큰 반발에 직면하는 걸 보면 여러모로 참.. 너무 당연한 얘기라 나는 다 동의하고 위헌 소송 내고 근혜산성 운운하면서 비판하는 줄 알았지 뭐야.. 하하하.. 3개의 정부를 거치면서 경찰조직의 시위 대처•진압은 정당화되고 있는데 보수, 진보 지지자들은 상황, 정치세력 등을 따지며 각자의 이해관계 관점에서만 판단하고 있다. 경찰 조직만 살판 났다.
30Jong-joo Jeong and 29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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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에 가면 민주당 계열과 맞팔이 많아서 그런지 민주노총•한국노총의 노조 기득권 운운하는 글만 보고, 페북에 가면 좌익 계열이 많아서 그런지 임금삭감, 문재인 성토 글만 보인다. 정권 수호 대 촛불•노동의 양상인데 시발.. 보기만 해도 너무 힘들다. 이번 개정은 통상임금 범위로 사용자들이 장난질쳐서 이용해먹을 지점이 없는 것도 아니다. 복리후생비 어쩔거야. 이런 걸 어떻게 고칠건지, 한국사회 혹은 노동정책 전반이 어디로 가야 되는지 등등에 대해 깊이 분석하고 논의하는 글은 보기 힘들다. 나는 찬반을 지금 확실하게 말을 못하겠는데 다들 진짜 어떻게 그렇게 확신들을 하는지.. SNS는 이제 떠날 때가 된 것 같다. 유투브나 정말 준비해볼까.. 책값이나 후원해주십쇼.
2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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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나는 베네수엘라 차베스나 마두로 정부 정말 안 좋아한다니까.. 21세기 사회주의라는 것 자체가 말도 안되는 소리고.. 실제로 차베스 정부 집권 이후의 행태를 보면 사회주의 지향, 친노동적인 것처럼 보여도 차베스 본인이 당시 베네수엘라는 사회주의 단계이기 때문에 노동조합 같은 건 필요없다고 주장했을 정도였다니까.. 그래서 베네수엘라의 계급주의 계파들이 차베스한테 스탈린주의의 과오를 반복하지 말라고 해서 논란이 되고 그랬는데. 이거는 무슨 사회주의적인가 아닌가를 논할 문제가 아니라 소위 말하는 정치적 아웃사이더의 정권 창출 및 지지기반 다지기라는 굉장히 보편적인 정치적 현상으로 이해해야 하는 문제라 본다. 작금의 마두로도 마찬가지이고. 차베스와 그 이후의 베네수엘라를 마르크스의 역사발전 단계론에 입각한 사회구성체 이행 과정으로 이해하면 곤란하고, 산업화가 덜 된 후진사회에서의 좌파 지향 정치집단의 집권과정 속에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패턴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사실 꼭 좌파 지향도 아니고 차베스 정부 내에서의 노동조합 내부에서의 논쟁이나 이런 걸 보면 크게 한국노총 대 민주노총, 민주노총 내에서의 NL파와 계급주의파 간의 논쟁 이런 거랑 거의 비슷해서.. 노무현 정부를 부르주아 정부로 볼 것이냐, 그래도 진보 정부이니 비판적 지지해야 한다 이런 비슷한 논쟁을 한다고. 노동계급은 일단은 차베스를 지켜야 한다, 아니다 노동계급의 조건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하고 노조 조직률을 올려야 한다 뭐 이런 논쟁이기 때문에.. 진보 성향의 정치세력이 집권했을 때 어디서나 나타날 수 있는 일들인데 거기에 이제 산업화의 부진이라는 제3세계적 맥락이 접합되어서 정치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고 봐야 우리가 객관적으로 비교사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것이지, 무슨 미제국주의 혹은 좌파 포퓰리즘 어쩌고 하기 시작하면 이거는 객관성을 잃어버리고 본인이 그 플레이어로 논쟁에 뛰어드는 꼴이기 때문에 학문적인 분석이나 객관적인 이해는 불가능해진다는거지. 내 탐라나 주변인들 중에 베네수엘라 사태에서 미제국주의 운운하며 비판하는 사람들 많은데, 그렇게 보면 그거는 전혀.. 차라리 미국이 개입해서 마두로 정부 정리하고 우익 정부 세운 다음에 권위주의적 산업화 추진하게 도와주는게 더 나을 수도 있어 역사발전에 있어서는. 차베스 정부가 가장 곤란을 겪었던게 수출산업을 키우고 싶어도 시장이 없었다는거라.. 중남미 국가들의 산업화에 있어서 가장 문제가 되는게 물론 내부적으로 임노동의 형성도 쉽지가 않고 자본축적도 쉽지 않고 뭐 이런 것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한국처럼 일본이 옆에 있고 미국이 있어서 수입가공전략을 쓰고 싶어도 쓸 수가 없었다는게 가장 큰 문제라.. 시장문제를 차라리 해소시켜달라고 미국한테 요구하는게 훨씬 나을 수도 있다. 이거는 우리가 냉정하게 봐야 하는 문제이지, 거기에 논자가 개입해서 그러기 시작하면 이해를 할 수가 없게 된다. 다시 말하지만, 논평을 할 때는 그 상황에서 벗어나서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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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는 역시 전제주의의 나라, 노비들의 나라라 인간들이 민주노총 같은 이익단체 하나 때려 잡으면 다 되는 줄 안다. 국가와 개인 사이를 메울 두터운 직업단체, 이익단체 등이 없으면 개인은 그저 국가의 전제적 지배 앞에 놓인 노비에 지나지 않는 것을.. 몽테스키외부터 수많은 정치철학자들이 중간집단에 대해 그렇게 말을 많이 했는데도.. 국가가 아무리 약해도 개인이 국가를 전복할 수는 없다. 일본한테 힘 한번 제대로 못 써본 대한제국의 고종의 군대도 국내 인민들의 봉기 진압에서는 무적의 화력을 보여줬다. 어디 민주노총 다 없애고 노동정책 한번 펼쳐보시라.. 머저리들..
58Lee Phil, YoonSeok Heo and 56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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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글에 좋아요 누른 분들 차단하려고 공유. 좋다고 생각하면 알아서 저 차단하고 가세요. 저는 '때 묻은' 사람이라 "떼 묻"은 분들 무서움요.
<세월호를 기리며, 나도 가만 있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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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한 가지 확실히 하고 가자. 세월호 침몰 사고. 참으로 안타까운 사고였다. 무려 295명이 사망하고, 9명이 실종된 이 충격적인 참사에 그 누가 슬퍼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무엇보다 사고 희생자 대부분이 설레는 마음으로 수학여행을 떠났다가 변을 당한 어린 학생들이라는 사실이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짓눌렀다. 누구나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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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이런 당연한 말로 글을 여는 이유가 있다. ‘세월호’라는 단어가 언젠가부터 성역 속에 들어가버렸기 때문이다. 세월호에 관한 대다수의 견해에 조금이라도 다른 생각을 이야기하면 단번에 피도 눈물도 없는 사이코패스로 매도 당하기 일쑤다. 세월호 사고가 슬프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세월호 사고가 정치로 연장되는 것에 반대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정치적 차이를 도덕적 둔감으로 치부해버린다. 국민들의 슬픔을 정부에 대한 분노로 끌고가는 그 못난 정치꾼들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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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우리가 세월호에 대해 이야기할 때다. 학생들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입에 재갈을 물린 그 부도덕하기 짝이 없는 프로파간다에 대해 이야기할 때다. “너는 세월호 사고가 슬프지도 않냐” 따위의 반론은 정중히 거절한다. 누구보다도 슬프다. 떼 묻지 않은 아이들의 죽음이 정치적으로 착취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더욱 슬프다. 그리고 노엽다. 국민들의 순수한 슬픔을 오도하여 자신들의 정치적 잇속을 챙기려 드는 그 못난 정치꾼들 때문에 너무나 노엽다. 이번 파트에서는 이 슬픔과 노여움으로 세월호에 관해 쓰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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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책임이 된 세월호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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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세월호 사고를 통해 대한민국의 민낯을 봤다. 정부의 상황대처능력이 상당히 떨어진다는 것을 실감했고, 기관 간의 소통에도 문제가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언론은 또 어땠는가? 오보의 연속이었다. 시청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부적절한 내용을 서슴지 않고 방송하기도 했다. 이 참사를 가지고 서로 경쟁이라도 하는 모양새였다. 구조작업에도 노이즈가 많았다. 혼란의 현장에서 침착하게 일처리를 했어야 했건만, 우왕좌왕하는 관료들에 휘둘리랴, 소리치고 분노하는 시민들에게 휘둘리랴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오죽 답답했으면 민간잠수사들이 나섰을까. 그렇다. 세월호는 우리에게 대한민국의 민낯을 보여줬다. 정말 다양한 분야에서 문제들이 발생했었고, 재앙으로 이어졌다. 여기까지는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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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서 왜 갑자기 대통령을 걸고 넘어질까? 세월호 참사는 박근혜 대통령 탓이니 사퇴하란다. 참 웃기는 소리다. 대통령이 박근혜여서 일어난 사고란 말인가? 그러니까, 문재인이 당선되었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사고란 말인가? 박근혜 대통령이 임기 2년 했다고 일어나지 않았을 사고가 일어나지는 않는다. 세월호 사고는 짧은 기간에 엄청난 압축 성장을 이룬 대한민국의 문제점이 쌓이고 쌓이다 터져나온 비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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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로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하는 이들이 주로 사용하는 단어가 있다. “컨트럴타워”. 일련의 사태에서 컨트럴타워 역할을 했어야 할 청와대가 없었단다. 누가 들으면 현장경험이 전무한 박근혜 대통령이 게임 스타크래프트를 하듯 모든 기관을 일일이 조종하는 줄 알겠다. 미안하지만 대통령은 초능력자가 아니다. 대통령이 누구냐에 따라 구조작업의 효율성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문재인이 대통령이었다면 더 많은 승객들을 구할 수 있었을까? 천만에. 정부기관들의 상황대처능력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는 매뉴얼에 따라 수없이 반복되는 훈련을 통해 쌓아가는 것이다. 세월호가 침몰하고 있는 그 시점에 현장은 물론이고 모든 기관들이 혼란에 빠졌다. 각 기관들이 침착하게 자신들의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 아쉬움은 남지만,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군대를 다녀온 남성들은 자신들의 군부대를 떠올려보면 된다. 미리 짜맞추고 하는 훈련도 그렇게 우왕좌왕하는데, 실제 상황이 터지면 과연 얼마나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을까? 상황대처능력은 기계적인 훈련의 반복으로 체득하는 수 밖에 없다. 각 기관들이 매뉴얼에 따라 정확하고 침착하게 자신들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그리고 이는 오랜 세월이 걸리는 작업이다. 단기간 압축성장한 대한민국이 아직 따라가지 못하는 선진국들의 보이지 않는 자산이다. 따라서 청와대라는 ‘컨트럴타워’가 없어서 이 사단이 났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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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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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와 같은 구조의 배를 ‘로로선(Ro-Ro ship)’이라 한다. 이 로로선 구조의 배는 결함이 있어 사고의 위험성이 높다고 지적받아왔다. 2009년 11월, 미쓰비시 중공업이 건조하여, 일본 마루에이 페리사가 운행하던 로로선 타입의 아리아케호가 침몰한 바 있다. 마루에이 페리사는 사고 이후 나미노우에호를 퇴역시킨다. 나미노우에호가 침몰한 아리아케호와 선박 디자인과 배수량이 유사한 로로선이었기 때문이다. 왜 갑자기 일본 배 이야기를 하느냐고? 이때 퇴역한 배 나미노우에호가 바로 세월호이기 때문이다. 청해진해운은 퇴역한 나미노우에호를 싼값에 수입하여 1년간 개조한다. 그리고 2013년 3월, 배 이름을 세월호로 개명하고 운행을 시작했다. 1년 1개월 후 세월호는 진도 앞바다에 침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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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당초 세월호는 결함이 있던 배였다. 여기다 불법적인 증축과 개조를 했다. 게다가 과적 문제도 있었다. 노후된 선박에 최대 적재량의 2~3배에 이르는 화물을 실었다. 그만큼 무게를 줄이기 위해 배의 균형을 잡아주는 평형수를 뺐다. 과적 화물들은 제대로 고정되어 있지도 않았다. 이러한 복합적인 문제들을 안고 있던 세월호는 물살이 빠르기로 유명한 맹골수도에서 경험이 부족한 조타수의 급격한 변침(항로 변경)에 의해 무게중심을 잃고 한 쪽으로 쏠렸다. 그렇게 세월호는 바다 속으로 가라앉게 되었다. 청해진해운의 불법 행위와 안전불감증. 매번 그래왔으니 이번에도 별 문제 없겠지 생각하고 한 행동들이 연쇄반응을 일으켜 참사로 이어졌다. 즉 ‘지켜야 할 것들’을 지키지 않는 이 후진국적 행동양식이 세월호를 만든 주범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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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세월호 사고가 터지고 난 후 여론은 이 사고의 제일원인은 무시하고, 누구 탓이냐를 놓고 갑론을박하고 있었다. 모두가 대통령 탓, 청해진해운 탓, 선장 탓, 유병언 탓 하는 동안 사고의 본질이 잊혀졌다. 심지어 박근혜 대통령도 해경에게 책임을 묻겠다며 해체를 선언했다. 이 참사의 원인으로 대상 하나를 지목하고, 다같이 돌을 던진 다음, 그냥 그렇게 덮어두면 무엇이 바뀐단 말인가? 세월호 사고는 안전불감증에 젖어있는 대한민국 사회 전반에 울린 경종이다. 빠른 성장을 해온 대한민국은 성장 속도와 효율의 대가로 안전을 지불했다.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가장 먼저 배우는 말이 ‘빨리빨리’라는 우스갯소리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뭐든지 빨리빨리, 대충대충이라는 사고방식이 규제와 법을 우습게 만들었고, 매뉴얼을 쓸모없게 만들었다. 세월호 참사를 바라보며 가슴 속 무언가가 끓어올랐다면, 모든 문제를 대통령 책임으로 돌려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을 하는 게 아니라, 법과 질서를 우습게 여기는 시민의식에 대해 반성하고, 이 잘못된 관행과 문화를 뜯어고치려 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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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고가 있고 반년 쯤 지났을 무렵 판교에서 환풍구가 추락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야외공연에 참석했던 사람들이 걸그룹의 공연을 보고자 환풍구 위에 단체로 올라갔다가, 환풍구가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추락한 것이다. 16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부상을 당했다. 안타까운 사고가 일어나자 또 정부를 탓하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정부가 안전시설을 제대로 만들어두지 않아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둥 다양한 비판의 목소리가 일었다. 공연을 더 잘 보기 위해 올라가서는 안 될 곳에 올라간 사람들의 안전불감증은 논의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다시 반년이 지나고 세월호 사고 1주기가 되었다. 추모 집회에 모인 대규모의 사람들이 정권 퇴진 시위를 시작했다. 정해진 시위 장소를 벗어나 가두행진을 감행한 불법 시위였다. 시민들 사이에서 폭력이 등장했다. 무법자와 같은 모습이었다. 세월호가 바로 그런 태도에 의해 침몰하지 않았던가? 그야말로 아이러니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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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규제, 질서, 매뉴얼 등을 가볍게 여기는 이 문화를 청산하지 않으면 세월호와 같은 참사는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이는 국민의식 차원의 문제제기다. 세월호를 침몰시킨 것은 어떤 특정 개인이 아니다. 이러한 문화를 만들어내고 방치한 우리들이다. 무단횡단 같은 아주 사소한 일상 속 잘못된 습관부터 반성하고, 고쳐나가는 것이 세월호에 대한 제대로 된 반성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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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팔이, 그 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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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좀 이상하지 않은가? 세월호 사고는 도대체 왜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으로 이어졌던 걸까? 세월호 사고 희생자들을 위로하는 것과, 박근혜 대통령을 하야하게 만드는 것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도대체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분노했던 걸까? 광우병 때를 떠올려보면 된다. 특정 정치 세력이 개입하면서 세월호라는 국가적 재난은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로 변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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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직후 온갖 유언비어가 난무했다. 실종자를 사칭하여 세월호 객실에 승객 6명이 살아있다는 허위 내용을 작성한 후 유포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민간잠수사를 자칭하며 뉴스 인터뷰에 나가서 물 속에서 선실 내부에 남아있는 사람들과 대화를 했다는 둥, 정부 관계자들이 잠수하지 못하게 막았다는 둥 이상한 소리를 한 사람도 있었다. 사람들의 관심을 정신병적으로 갈구하는 사람들이 이런 허위사실을 유포하여 상황을 더욱 더 혼란스럽게 했고, 현장에 있는 유족들의 가슴에 더욱 더 큰 상처를 남겼다. 경찰은 사고 일주일 후 이런 악성 유언비어 총 87건을 적발했고, 조치를 취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런데 이 유언비어 목록을 살펴보면 기가 찬다. 명백한 정치적 목적을 띤 유언비어들이 상당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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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이 정부의 자작극이라는 헛소리, 국정원이 사주한 일이라는 헛소리, 누군가가 고용한 용역깡패들이 유가족들을 폭행하고 있다는 헛소리, 대통령 방문의전 때문에 3시간 수색을 멈췄다는 헛소리, 한미연합훈련 때문에 사고가 났다는 헛소리, 사고 원인이 미군 잠수함이라는 헛소리 등등. 이상한 헛소리가 너무나 많아서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 정도다. 이런 선동적이고 자극적인 음모론은 언제나 많은 이들의 관심을 얻기 마련이다. 한동안 SNS는 이런 류의 괴담에 의해 떠들썩했다. 이를 본 여론이 어땠겠는가? 댓글란은 정부에 대한 분노, 박 대통령에 대한 분노, 미국에 대한 분노로 가득했다. 반정부적이고 반미적인 여론 선동. 어째 익숙한 패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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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그런 거다. 슬픔이란 수동적인 감정이다. 한편 분노라는 것은 능동적이다. 사람들은 그저 주어진 상황에 슬퍼하기 보다는, 무언가에 대해 적극적으로 분노하는 것을 원한다. 실제로 심리학에서는 ‘분노하는 것’을 슬픔을 받아들이는 주요 과정 중 하나로 인식한다. 그래서 이런 사건사고가 있을 때마다 대중들은 쉽게 분노하고, 집단적 분노에 이끌린다. 그렇게 특정 대상에 대한 분노는 유행이 된다. 문제는, 나쁜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이 분노를 나쁜 방향으로 끌고가는 경우다. 바로 세월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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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참사에 의해 온 나라가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이들은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움직였다. 열심히 반정부적, 반미적 음모론을 유포하여 대중들을 선동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세월호와 관련한 정치집단을 조직한 이들도 있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다. 여기에는 여중생 범대위, 광우병 대책위의 핵심인물들이 그대로 포진해있었다. 전교조, 참여연대, 민주노총과 같은 좌익 단체들을 포함해 무려 618개의 단체가 결집하여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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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이렇게 ‘컨트럴 타워’도 생겼겠다, ‘그들’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시위를 기획하고 주도한다. 세월호 참사가 반정부 시위로 이어지는 과정은 ‘효순이 미선이 사건’ 때와 놀라우리만큼 흡사하다. 먼저 사고 희생자들의 죽음을 기리는 촛불추모제가 개최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자의 넋을 기리는 순수한 마음으로 이곳에 참석하여 슬픔을 공유한다. 여기까지라면 참 바람직한데, 속이 시꺼먼 사람들이 수작을 부리기 시작한다. “비극의 원인”을 지목하는 것이다. 효순이 미선이 때는 “미국 제국주의”가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세월호 때는 “박근혜 정부”였다. 슬슬 ‘추모’하려고 모인 자리에 시위 슬로건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정권퇴진을 외치는 선동적이고 자극적인 문구들이 나온다. 이제 사람들은 분노하기 시작한다. 희생자들의 안타까운 죽음에 무기력하게 눈물을 흘리던 사람들은 이제 맞서싸울 대상을 가지게 되었다. 분노는 빠른 속도로 전이된다. 효순이 미선이 때의 분노는 반미의 촛불이 되어 타올랐고, 세월호 때의 분노는 반정부의 촛불이 되어 타올랐다. 모든 것이 ‘그들’이 원하는 대로 흘러갔다. 차이점이 있다면, 효순이 미선이 때와는 달리 세월호 때에는 유가족들이 전면에 나섰다는 점이다. 큰 슬픔을 겪고 있는 유가족들에게 ‘정부'라는 분노해야 할 대상을 인식시키며 그들의 자식 잃은 슬픔을 정부에 대한 분노로 이끌어냈다. 그렇게 유가족들을 반정부 여론의 최전방에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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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는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순수한 추모의 형태로 이루어졌다고 주장하는 촛불 집회가 사실은 반정부 시위로 흘러갔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다. 또 이 시위의 근거가 정당하지 않다는 사실은 앞에서 충분히 언급했다. ‘정의’, ‘슬픔’, ‘공감’ 등의 그럴듯한 단어로 치장된 촛불시위의 추악한 이면을 일일이 들추어내는 것에 더이상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와 관련한 자료는 인터넷에 검색 한 번만 해도 넘치도록 얻을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시위 주동 세력의 확산 플랫폼이었던 SNS의 발달 덕에 ‘추모집회자’들이 경찰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버스를 부수는 행동들이 사진에 담겨 고스란히 인터넷에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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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시위 주동자들은 이후 ‘4.16연대’를 구성한다. 참여연대, 전교조, 민주노총 등도 당연히 여기에 소속되어 있다. 이들은 마치 80년대 운동권 때처럼 세월호라는 키워드를 일종의 사상운동으로 발전시켰다. ‘세월호 교실’, ‘눈먼 자들의 국가’, ‘나쁜 나라’ 등 세월호와 관련된 다양한 컨텐츠들을 꾸준히 개발하고 있다. 참으로 화나는 일이다. 세월호 사고 희생자들의 대부분은 정치의 정 자도 모르는 어린 학생들이었다. 그들의 죽음을 이용해 정치공작을 펼치는 나쁜 어른들이 너무 많다. 덕분에 수많은 시민들이 이제 세월호라는 단어만 들어도 치를 떤다. 노란 리본을 보면 인상부터 찌푸린다. “이제 좀 그만해라”라는 말이 나온다. 시위주동자들에 대한 불쾌함이 세월호 사고라는 안타까운 사건 자체에 대한 불쾌함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 같다. 애꿎은 사고 희생자들이 나쁜 어른들의 정치공작에 휘말려 괜한 미움을 받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희생자들의 존엄을 위해서라도 정치투쟁의 볼모로 잡고 있는 세월호를 이제 그만 놓아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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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점도 효순이 미선이 때와 참 닮아있다. 효순 양과 미선 양의 아버지는 미군들이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며 그들을 용서한다고 했다. 또 딸들의 더 이상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아달라고 간곡하게 부탁까지 했다. 그러나 소용이 없었다. 효순이 미선이의 죽음을 이용하는 이들은 끊임없이 두 소녀의 이름을 외치며 슬픔을 팔아왔다. 세월호도 똑같이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애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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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9월, 낚시배 ‘돌고래호’가 전복되는 사고가 있었다. 좌익 세력은 어김없이 세월호를 들먹이며 반정부 시위를 구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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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잘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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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이야기를 끝내기 전에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정부의 잘못. 재난 상황에서 드러난 행정적 미숙함과 무능함은 다들 잘 알고있는 사안이다. 물론 앞서 말했듯, 이 부분은 ‘박근혜 정부의 잘못’이라고 콕 찝어 말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박근혜 정부의 ‘명백한’ 잘못은 바로 ‘줏대없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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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고 직후 슬픔과 분노를 자양분 삼아 거대한 여론이 형성되었다. 그 중심에는 세월호 희생자들의 유족들이 있었다. 야권 정치인들과 좌익 정치단체들에 의해 급격히 정치적으로 변해가던 유족들은 세월호에 의해 형성된 반정부적 여론을 한 데 모으는 태풍의 눈이 되었다. 유족들에게 측은함을 느낀 국민들이 자연스럽게 유족들을 배려하고, 편들게 되면서 반정부 여론이 급격하게 팽창한 것이다. 유족들은 ‘피해자’라는 위치에 있었고, 이는 그들의 주장을 일종의 성역에 넣는 역할을 했다. 피해자와 같은 ‘약자’들은 언제나 착하고, 올바를 것이라고 착각하게 되는 대표적인 ‘언더도그마 현상’이다. 유족들의 요구와 주장은 거스르기 까다로운 것이 되었다. 그것을 거스르면 이는 곧 국민정서에 맞서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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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들을 배려하는 행동과, 유족들에게 끌려다니는 것은 엄연히 다른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모습은 후자에 가까웠다. 사고의 가장 큰 피해자인 유족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그들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도록 노력하는 ‘배려’ 차원을 한참 넘어서서, 유족들 앞에 바싹 엎드려 여론의 비위를 맞추는 데에 급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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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하여 정부와 대통령의 실망스러운 모습들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세월호 사고 구조가 실패하고 한달여가 지나고 박근혜 대통령은 대국민담화를 발표해 해양경찰 해체 선언을 한다. 또 “국민안전을 최종 책임져야 할 안전행정부도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며 안행부를 분리해 국가안전처와 신설된 행정혁신처로 이관시켰다. 대국민담화의 마지막은 박근혜 대통령의 눈물로 마무리되었다. 국민들의 정서와 자신의 인기를 고려해야하는 것이 정치인의 운명이라지만, 이는 도가 지나쳤다. 구조작업이 완벽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어쨌든 생존자들을 구조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한 해경을 해체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1만 6천이나 되는 해경들에게 너무나 잔혹한 처사였다. 국민들 앞에서, ‘이 참사의 원인이 해경의 무능력함 때문’이라고 선언한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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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쇼’다. 이름하여 해경 해체 퍼포먼스 쇼. 실제로 말만 ‘해체’지 소속기관 말고 실질적으로 달라진 건 크게 없다. 오히려 구조개편에 의해 혼란만 가중되었을 터다. 해경들이 박 대통령의 입에서 해경 해체 이야기가 처음 나왔을 때 얼마나 당혹스러웠을까 싶다. 이들이 무슨 잘못인가. 안전행정부 이관도 같은 맥락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해경이나 안행부에게 책임을 묻고 분노를 표했으면 안됐다. 대중여론을 고려한 처사라지만, 자충수다. 이런 식으로 사고책임을 따지며 하나하나 올라가게 되면 그 권력 라인의 정점에는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박 대통령이 자신에게 최종적 책임이 있다고 선언한 바 있지만, 해경이나 안행부의 간접 책임을 문책하는 뜻에서 이들을 해체하고 이관시키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도 간접 책임이 있으니 문책 당해야 한다는 논리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책임을 지고 대통령 직을 사퇴하라는 좌익 정치꾼들의 이상한 논리에 동조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신중하게 결정되어야 할 행정기관 개편을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 수학여행 가다가 사고가 났으니 수학여행을 없애버리자는 것과 같은 근시안적인 태도로 해경을 없애고, 안행부를 없애는 것, 이는 박근혜 정부가 얼마나 원칙없고, 줏대없이 국가를 운영했나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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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도 마찬가지였다. 새정치민주연합을 필두로 한 야권이야 이런 사건사고가 있을 때마다 정치적으로 이용할 궁리를 하니 그렇다 쳐도, 여기에 맞장구치며 슬픔팔이, 감성팔이에 동참한 여권 정치인들을 보며 할 말을 잃었다.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특별법, 세월호 희생자들에 대한 국가 차원의 과도한 보상 (나라를 지키다 바다 위에서 전사한 천안함 용사들에 대한 보상보다 규모가 크다), 세월호 생존 학생들에 대한 대학 입학 특혜 등 원칙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 많이 일어났다. 감성이 이성을 억누르고, 헌법 위에 떼법이 생겨났고, 정치인들은 여기에 영합해 본인들의 인기를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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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이라면 국가를 위해 일해야 한다. 본인의 자리를 지키고자 순간적인 여론에 편승해서는 곤란하다. 일시적으로 들끓는 여론에 맞서는 한이 있더라도, 그간 고수해오던 원칙을 줏대있게 지켜나갈 때 질서가 생기고 체계가 잡힌다. 유감스럽게도 정치권은 세월호를 통해 좋지 않은 선례를 만들었다. 슬픔에 호소하며 여론을 이끌고 원하는 것을 얻을 때까지 밀어붙이면 된다는, 떼쓰기 방식이 먹힌다는 사실을 알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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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는 스스로 '선진국'이라 착각에 빠진 대한민국의 민낯을 알린 참사였다. 그리고 2주기인 오늘, 2016년 4월 16일. 우리는 2년 전보다 얼마나 더 발전했나? 가만 있지 않겠다던 그 수많은 사람들은 법과 원칙이 지켜지는 안전한 나라를 만들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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