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촛불혁명 진전이냐, 엘리트 카르텔 복귀냐... 절실함이 승패 가른다"[창간 22주년 기념 인터뷰] 백낙청 교수 "이번 대선은 건곤일척의 대회전"
22.02.22
오연호(oy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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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낙청 서울대 영문과 명예교수는 1938년생이다. 일제 강점기와 해방공간에서 청년기를 보냈고, 한국전쟁과 유신독재 그리고 산업화와 민주화를 경험했다. 그 과정에서 백 교수는 1948년 1대 이승만 대통령부터 19대 문재인 대통령까지, 12명의 대통령을 겪어봤다. 그런 그에게 오는 3월 9일 치러지는 대통령선거는 어떤 의미일까?
이런 저런 역사의 산맥을 거쳐왔기에 이젠 덤덤할 수도 있을 터인데 그는 매일 대선 관련 뉴스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단다. 1964년 계간지 <창작과비평>을 창간하고, 1974년 출판사 <창작과비평사>를 설립한 그는 '품격있는 참여지성계'를 대표하는 문학평론가이자 사상가인데 "요즘은 주로 오마이TV를 비롯한 열린공감TV, 서울의소리 등 유튜브를 매일 본다"고 했다. 그는 그 이유를 "레거시미디어는 재미가 없기도 하지만, 나름의 간절함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간절함. 절실함.
이 두 단어는 <오마이뉴스> 창간 22주년에 즈음하여 그와 마주한 1시간 20분간의 인터뷰를 꿰뚫는 들보였다. 오마이TV의 <오연호가 묻다>에 생방송으로 출연(2월19일)한 그는 이번 대선은 "더 간절한 쪽이 이긴다"고 전망했다.
"이번 대통령 선거는 건곤일척(乾坤一擲)의 대회전"
백낙청 교수는 "이번 대통령 선거는 '건곤일척(乾坤一擲)의 대회전'이다"라고 했다. 국어사전은 건곤일척을 '운명을 걸고 단판걸이로 승부를 겨룸'이라고 풀이한다.
백 교수는 2017년 대선은 "처음부터 뻔했다"고 했다. "촛불 대항전의 결과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된 이후에 갑자기 선거가 치러졌고, 이쪽도 준비없이 '어어어' 하는 사이에 정권을 잡았고, 저쪽도 '어어어' 하는 사이에 정권을 뺏겨 버렸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2022년 대선이야말로 "양 세력이 전열을 가다듬고 치르는 최초의 본격적인 선거"라고 본다.
"촛불에 패퇴했던 세력은 그동안의 전열을 가다듬고 이를 갈면서 와신상담해왔지요. 이번에 한 번 더 깨지면 우리는 다 죽는다, 이런 절박한 심경을 가지고 나와 있어요. 그래서 만약 그들이 정권을 재창출한다면, 그간 이어져온 촛불혁명은 거기서 거의 끝난다고 봐야죠. 그래서 촛불혁명이 계속되느냐 아니면 좌절하느냐 하는 건곤일척의 큰 싸움이 이번 대통령선거입니다."
백 교수는 "선거는 더 간절한 쪽이 이기는데, 사실 이번에 민주당과 국민의힘 두 당만을 비교하면 국힘쪽이 훨씬 더 간절하다"고 봤다. 그는 그 간절함이 절실해서 "눈에 헛것이 보일 정도가 되었"고 그래서 윤석열 후보가 만들어졌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이번에 지면 당이 깨진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그들은 그간 권력에 붙어서 쭉 살아온 사람들인데, 이번에 지면 희망이 없다는, 간절함이 진짜로 있어요. 너무 간절하다보니까 상식이 있는 국민이라면 도저히 끝까지 밀어줄 수 없는 그런 후보를 내세웠어요. 상식적으로 보면 홍준표씨가 흠결도 덜하고 훨씬 안정감도 있는데, 그래가지고는 못 이기겠다, 간절함이 충족되지 못하니까 눈에 헛것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봅니다."
"'헛것'을 실드 쳐주는 엘리트 카르텔이 있다"
▲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이번 대선에 대해 "더 간절한 쪽이 이긴다"고 전망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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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백낙청 교수가 "헛것"이라고 부른 윤석열 후보는 한동안 여론조사에서 선두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 이유는 뭘까? 백 교수는 "한국사회의 엘리트 카르텔이 총동원돼 실드(shield)를 쳐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제가 헛것이라고 말한 것은 국힘이 후보를 잘못 골랐다는 뜻인데, 지금 많은 사람들은 (한동안 여론조사에서 1위를 하고 있으니까) 잘 골라서 이렇게 잘하고 있지 않냐, 그럴 거예요. 지금까지는 그 이가 꽤 기세등등하게 잘 하고 있는데, 그것은 우리사회의 기득권 카르텔이 철저히 실드를 쳐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백 교수는 이 기득권 카르텔을 형성하는 세력이 "야당인 국민의힘만이 아니"라고 했다.
"미국의 마이클 존스턴이라는 학자는 부패를 여러 가지로 분석했는데 한국은 엘리트 카르텔형 부패라고 했어요. 우리 사회에는 곳곳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있는 기득권 세력, 소위 엘리트 카르텔이 있어요. 그들이 지금 총동원되어 나오고 있죠.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만의 촘촘한 결탁관계가 있는데 이재명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자기들이 편안하지 못할 것이라는 걸 잘 알기 때문에 아주 전면적으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언론계도 그렇고 검찰, 법조계, 학계에도 엘리트 카르텔이 있어요."
백 교수는 '헛것'을 실드 쳐주는 일에 "레거시 언론들도 함께하고 있다"면서 "주류언론이 검증을 잘했으면 선거는 벌써 끝났다"고 했다.
"미국의 레거시미디어들, 예컨대 <뉴욕타임스>나 <워싱턴포스트>를 보면 엘리트에 속하지만 우리보다 훨씬 더 건전하고 다른 엘리트를 견제합니다. 만약 우리나라의 주요언론들이 <뉴욕타임스> 같은 기능을 해서 후보 검증을 했더라면, 선거는 벌써 끝났습니다. 이미 승패가 다 끝났다고 봐요. 저는 그렇게 봅니다."
백 교수는 대한민국의 언론지형을 분석하면서 "그동안 소위 진보매체로 불리던 것들(<경향신문> <한겨레>를 지칭)을 포함한 레거시 미디어 전체가 한쪽으로 많이 기울었다"고 진단했다. 그 이유로 조중동 등 보수언론은 "내놓고 기득권 세력을 옹호하고 있는데" 진보매체는 "기계적 중립성이니 성역 없는 비판이니 하면서 사실상 (기득권 엘리트 카르텔에) 동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우리는 국민이 살아있어요"
▲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2022년 대선의 주인은 거대 양당도 아니고, 후보들도 아니고, 유권자 시민이다. 촛불"이라고 말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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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도 백낙청 교수는 희망을 말했다. 그 엘리트 카르텔에 저항하는 국민들이 있고, 풀뿌리 언론이 있다는 것이다.
"다만 우리는 국민이 살아있어요. 시민들이 살아있고, 유튜브 등 풀뿌리 언론이 있어요. <오마이뉴스>가 '모든 시민은 기자다'를 내세운 것도 풀뿌리 언론과의 연대죠. 그런데 엘리트 카르텔은 이 시민과 풀뿌리 언론이 (우리 사회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가질만한 영역까지 올라가는 것을 죽기살기로 차단합니다. 완고한 벽이죠. 만약 우리가 그 벽을 뚫고, 엘리트들이 '헛것'에 실드 쳐주는 것을 뚫고, 촛불혁명을 진전시킨다면, 그땐 아마 세상이 많이 달라질 겁니다."
백 교수가 잊혀져가는 촛불을 소환했기 때문일까? 생방송으로 인터뷰를 하는 내내 오마이TV의 실시간 댓글 창에는 1초에도 수십 개씩 시민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눈이 번쩍 띄인다", "촛불을 잊고 있었네!", "우리가 주인이다!".
백 교수는 지난해 11월 펴낸 책 <근대의 이중과제와 한반도식 나라만들기>(창비)에서 "촛불혁명이 시작된 후로 '주인노릇'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면서 근현대사 속에서 2016~2017년 촛불의 의미를 본격적으로 재조명했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물게 많은 시민들이 자발적, 평화적인 시위를 끈질기게 벌이며 스스로 나라의 주인이자 삶의 주인임을 과시했기 때문"이란다. 백 교수는 그런 점에서 "촛불은 과거지사가 아니라 지금도 진행중"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이날 인터뷰에서도 힘주어 말했다. "2022년 대선의 주인은 거대 양당도 아니고, 후보들도 아니고, 유권자 시민이다. 촛불이다."
그런 점에서 백 교수는 "2022년 대선은 엘리트 카르텔의 절실함과 촛불시민들의 절실함의 싸움"이라고 본다. 그는 민주당에서 후보로 이재명을 선택하게 된 과정도 "촛불혁명이 여전히 진행중에 있다는 증거"라고 했다.
"이재명 같은 사람이 촛불혁명 이전이라면 어떻게 민주당 후보가 됩니까? 민주당 국회의원 다수와 정부의 각료들이 볼 때는 이재명은 속되게 말해서 완전히 '듣보잡'이죠. 그 사람이 됐다는 것도 촛불 시민들의 기운으로 된 거예요. 이재명 후보의 탄생은 우리가 촛불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촛불혁명이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증거의 하나라고 봐야죠."
백 교수는 "민주당 국회의원들을 보면 그 절실함이 국민의힘에 비해 덜하지만, 촛불시민과 이재명은 절실함이 있다"면서 절실함의 연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재명 후보가 완강한 기득권 카르텔의 벽을 뚫고 당선이 되려면 그 촛불 시민들의 선한 기운과 그 당당한 기상을 되살려놓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못이기죠. 그렇지 않고, 현 정부가 잘못했다고 사과나 자꾸 하고, 이것 저것 해주겠다고만 하면 한계가 있어요. 그렇게 해주는 게 꼭 나쁘다는 게 아닙니다. 나에게 몇푼 주면 찍어주겠다는 것과 촛불 시민은 너무나 다른 차원이지 않습니까. 지도자가 그렇게 국민을 쪼잔하게 취급하면 국민들이 쪼잔해져요. 그리니까 좀 크게 놀아야죠. 크게 놀면서도 얼마든지 실용주의자로서의 면목을 보여주는 길이 있다고 봅니다."
백 교수는 "민주당 캠프 일부에서는 지금 촛불 이야기 해봤자 남는 장사가 아니다, 중도를 잡기 위해 괜히 과격한 이미지만 줄 수 있는 촛불 이야기 자꾸 하지 마라,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서 "그런 자세야말로 촛불을 지우려는 기득권 카르텔 세력이 만들어낸 '정권교체 프레임'을 깰 수 없다"고 했다.
"정권교체 프레임을 깨라, 촛불 + 유능이 시대정신"
▲ 탄핵 가결 후에도 꺼지지 않은 "촛불의 바다" 2016년 12월 10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다음 날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정권 끝장내는 날"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박근혜 즉각퇴진"을 외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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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낙청 교수는 "촛불과 유능을 연결시키는 프레임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재명 후보는 '유능한 경제대통령'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지금 이 시점에서 유능한 경제대통령이 필요한가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촛불을 끌어내야 하지요. 1기 촛불정부(문재인 정부)는 준비없이 들어가서 여러 사람을 실망시켰는데, 2기 촛불정부는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같이 유능한 경제대통령이 필요하다, 이렇게 연결해야죠. 이재명 후보가 전에는 그러지 않다가 최근에는 이 점을 강조하기 시작한 거 같은데 저는 대단히 반갑게 생각합니다."
백 교수는 "보수언론이 여론조사에서 자주 사용하는 '정권교체냐, 정권유지냐'의 프레임은 촛불을 지우는 최고의 수단"이라면서 "이것을 '촛불정신의 계승이냐, 기득권카르텔의 정권 재창출이냐'의 프레임으로 바꾸는 것이 시대정신"이라고 말했다. 그는 '3월 9일 선택의 기준'은 "어느 후보가 2기 촛불정부를 이끌기에 가장 적합한가에 있다"고 말했다.
백낙청 교수는 1964년 <창작과비평> 계간지를 창간한 이후 59년간 독자와 교감하며 살아왔다. 매체 베테랑의 눈에 비친 22살 <오마이뉴스>는 어떨까?
"세계언론사에 한국이 내세울 수 있는 건, 현재까지 살아있는 매체 중에서는 두 개죠. 국민주신문인 <한겨레>와 '모든 시민은 기자다'를 내세운 <오마이뉴스>. 창간 22주년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싱싱함을 유지하고 있는 것에 대해 축하드립니다. 앞으로도 더 발전하고, 촛불정신을 함양하는데 큰 기여를 해주기 바랍니다."
백 교수는 '대회전', '전면전', '절실함'을 이야기하면서도 인터뷰 내내 조용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의 책 서문을 읽다가 밑줄 친 이 문장이 떠올랐다.
'느긋한 마음으로 변함없는 희망을 품다.'
덧붙이는 글 | 백낙청 교수 전체 영상인터뷰는 오마이TV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qS7zojlfrTU) 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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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론 엘리트
동학 30만 피해
일제
해방 이승만 분단에 기득권과 손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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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하는 ‘2기 촛불정부’를 만들려면
등록 :2021-12-31
[특별기고]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현재 촛불혁명이 진행 중이라는 게 사실인가? 사실이라면 어째서 대선 국면에서 이를 호명하는 후보가 거의 전무한가? 아니, 한때 촛불대항쟁에 깊이 관여했던 시민단체들마저 촛불혁명을 인식하며 활동하는 경우가 어찌 이리 드문가?
이유 중 하나는 ‘촛불혁명’을 2016~2017년의 ‘촛불대항쟁’과 동일시해서 5년 지난 과거지사로 여기는 경향 때문이리라. 더 중요하게는 1기 촛불정부를 자임한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실망과 분노가 팽배해 촛불혁명을 들먹이는 것이 ‘남는 장사’가 못 되기 때문일 것이다.
1기 촛불정부는 실화
그래도 문재인 정부가 촛불정부인 건 엄연한 사실이다. 촛불 아니고는 집권이 불가능했을 뿐 아니라 통상적인 민주정부라면 아무리 정치력이 뛰어난 대통령이 나섰어도 해내지 못했을 엄청난 일들을 촛불의 기운을 타고 해냈기 때문이다.(신간 졸저 <근대의 이중과제와 한반도식 나라만들기> ‘서장: 촛불혁명과 개벽세상의 주인노릇을 위해’ 14~15쪽)
하지만 촛불정부라는 사실은 축복인 동시에 독배이기도 했다. 평화적으로 집권했기 때문에 혁명 과업도 기존의 헌법과 제도를 존중하며 수행할 수밖에 없었던데다, 촛불시민들의 기대는 너무나 크고 다양하여 누구라도 감당하기 힘들게 마련이었다. 게다가 2020년 총선에서 국민들이 벼르고 벼르던 야당 응징을 드디어 해내고 집권당에 압도적인 의석을 마련해주었지만, 정부·여당이 보인 자세는 촛불정신과 너무도 거리가 멀었다. 그 후과로 오히려 정권교체 여론이 한때 압도적이었고 여전히 만만치 않다. 이러다가 내년 대선에서 국민의힘이 승리한다면 1기, 2기를 따질 것 없이 촛불혁명은 5년 만에 끝장난 ‘미완의 혁명’으로 역사에 남을 판이다.
똑똑한 사람들이 왜 자꾸 이상해지나
그렇더라도 지금도 여전히 혁명의 과정이라 볼 수 있는 것은 이른바 2030의 ‘반란’도 촛불을 들었던 세대의 이반이요, 반촛불세력의 결사적 반격도 여기서 촛불혁명을 끝내지 않으면 자기네가 끝장이라는 절박감의 표출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사회 폐습들의 민낯을 드러낸 것이야말로 혁명적인 변화라 할 수 있다.
똑똑하기로 이름난 사람들이 자꾸 이상해지곤 하는 것도 요즘 세상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그냥 똑똑한 게 아니라 진취적이라는 명성마저 얻었던 이들도 많다. 특히 머리 좋고 학벌 좋은 사람들의 변화가 눈을 끄는데, 극우세력이나 할 법한 소리를 어느새 내뱉기 시작하는가 하면 교묘한 양비론으로 쟁점을 흐리고 민중의 기운을 빼곤 한다.
이런 현상을 나는 불가에서 말하는 ‘중근’(中根)의 고비 내지 ‘중근병’의 일부로 규정한 바 있지만(‘세상의 민낯을 본 뒤에 무엇을 할까’, <한겨레> <창비주간논평> 2020년 12월30일치, 같은 책 471~472쪽), 그것이 개인 차원의 문제라기보다 ‘능력주의’를 절대시하고 그런 ‘능력’을 넘어서는 지혜와 깨달음을 향한 수행을 교육과정과 사회의 운행 원리에서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근대세계의 본질 문제라는 점이 중요하다. 똑똑한 사람들이 자꾸 이상해지는 현실 하나만 봐도 혁명기의 급격한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면 그냥 정체하는 게 아니라 퇴행하게 마련이라는 진실을 실감케 되며, 설혹 2기 촛불정부가 탄생하더라도 그 앞길이 얼마나 험난할지 짐작할 수 있다.
2016년 11월19일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4차 촛불집회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려 시민들이 행진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기 촛불정부의 전망과 성공 가능성
물론 2기 촛불정부를 탄생시키는 일이 선결과제다. 현실적으로 민주당 정권이 아닌 촛불정부를 상정하기 어려운 만큼 여당의 정권 재창출을 포기할 수는 없지만, 다수 유권자는 4기 민주당 정부 수립에 냉담하거나 오히려 적대적이라는 난제가 가로놓여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여당 후보 자신이 그런 난제를 아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촛불혁명이 아니고서는 애당초 민주당 공천을 받을 가능성이 희박한 인물이기도 했지만, 민주당 후보답게 정권 재창출을 외치면서도 자신의 당선이 여야 간 교체 이상의 변화가 될 것임을 설득하려 애쓰고 있다.
촛불혁명의 진로에서 또 하나 다행이라면 다행인 게 있다. 반촛불세력의 정권 탈환 욕망이 워낙 간절한 나머지 눈에 헛것이 보이는 경지에 이른 것 같다는 점이다. 노련하고 비교적 흠결이 적지만 승리를 자신할 수 없는 후보 대신에, 제1야당은 우리 국민이 바보가 아닌 이상 끝까지 지지할 가능성이 희박한 인사를 굳이 택해버린 형국이다.
이재명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성공한 2기 촛불정부’가 될지는 전혀 다른 문제다. 그의 개혁성과 추진력이 상당 정도 검증되었다고 하지만, 우리 역사에 깊이 뿌리내렸을 뿐 아니라 선진국들에서의 민주주의 후퇴라는 대세마저 업은 적폐세력의 실체를 그가 얼마나 깊이 통찰하고 준비를 갖췄는지는 두고 볼 문제다. 예컨대 그는 자신이 성남시 공무원을 장악하는 데 2년이 걸렸는데 경기도에서는 1년이 소요됐으며 중앙정부의 공무원은 6개월이면 되리라고 자신한 걸로 알려졌다. 그러나 국회와 언론, 군부와 외국 정부 등의 갖가지 압력에 더해 단임 제한마저 안고 가는 대통령에 비하면 지방자치단체 내부에서 단체장이 갖는 권력은 실로 ‘제왕적’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도 화천대유 사태를 통해 드러났듯이, 중앙의 정치권력과 금융·법조·언론 등 각계의 적폐세력이 지자체의 사업에 일단 작심하고 달려들면 장악력이 제법 강한 시장도 거의 속수무책이 되기 십상인 것이다.
국내 언론을 통해서도 알려졌지만 미국의 정치학자 마이클 존스턴 교수는 한국의 독특한 부패구조를 ‘엘리트 카르텔형’으로 분류한 바 있다. 관료, 정치인, 청와대, 군, 동일 지역 또는 동일 학교 출신 엘리트들이 뭉쳐서 권력기반을 유지하고 부패를 통한 이익을 추구하는 유형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지방공무원들과 달리 중앙관료(적어도 간부직 이상의 관료)는 ‘엘리트 카르텔형 부패’의 몸통의 일부이다. 대통령의 관료 장악 시도는 바로 정계와 법조·언론·군부·학계를 망라하는 다업종 카르텔과의 전면전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존스턴 교수는 엘리트 카르텔형 부패의 또 다른 예로 이탈리아를 들었는데, 우리는 한국과 이탈리아의 결정적 차이에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곧 한국은 분단국이며 분단이 체제화한 사회라는 점이다. 그 결과 한국의 엘리트 카르텔은 분단체제에 힘입어 한결 악성적으로 작동하는가 하면, 분단체제 없이 엘리트층 부패가 뿌리내린 이탈리아에 비해 한층 불안정한 카르텔이고 가변적인 현실이기도 하다. 남북관계 발전과 분단체제의 완화 내지 해소에 따라 크게 흔들릴 소지가 없지 않은 것이다. 더구나 우리는 이탈리아와 달리 촛불혁명을 일으킨 국민 아닌가. 한국의 적폐세력이 남북의 화해협력에 기를 쓰고 저항하며 촛불에 대한 전면적인 반격전에 나선 것도 무리가 아니다.
2기 촛불정부가 성공하려면 이런 현실에 대한 치열한 성찰과 면밀한 준비가 필수적이다. 어차피 5년 임기의 대통령이 완수할 수 있는 과제에 한계가 있다는 냉정한 인식을 갖고, 스스로 임기 내에 끝낼 수 있는 일과 촛불혁명의 지속을 위해 일단 준비작업이라도 해놓을 일을 식별해서 진행하는 지혜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그 일을 정부에만 맡기지 않고 시민들 스스로 개인 또는 다양한 집단을 통해 세상의 주인 노릇을 하는 일이 관건이다. 당장에 내년 대선에서도, 마치 백화점에 쇼핑 나온 사람처럼 누구는 이래서 안 되고 누구는 저래서 안 된다고 ‘높은 안목’을 과시하기보다, 역사의 큰 흐름에서 이번 선거가 어떤 건곤일척의 대회전인지 직시할 일이며, 선거 이전부터도 ‘성공하는 2기 촛불정부’ 만들기에 자기 나름의 최선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창작과비평> 명예편집인,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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