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2-22

Park Yuha 세상에 대한 태도

(19) Facebook: Park Yuha 
세상에 대한 태도
이번학기엔 학생들과 "이노우에 히사시의 "아버지와 살았더니"(父と暮らせば)라는 작품을 원어로 읽었다. 대화가 히로시마 사투리라 처음엔 많이 어려워 하더니 중간고사 무렵엔 꽤 익숙해진 눈치였다. 젊음은 역시 세다.
이 작품은 도서관 사서를 하면서 살아가는 딸과 그 아버지가 주인공이다. 어느날 도서관을 방문한 젊은 대학조수를 좋아하게 되지만 딸은 그에게로 향하는마음을 억누르려 한다. 그런 딸을 아버지는 답답해 하면서 "사랑의 응원대장"역할을 자임한다.
그러면서 아버지는 "두근거리는 네 가슴이 나의 심장을 만들었고, 뜨거운 네 한숨이 나의 몸통을 만들었고, 보일듯 말 듯 희미한 너의 바램이 나의 팔다리를 만들었단다.." 라고 말한다. 아버지는 실은 죽은 아버지의 혼백이였던 것.

그리고 히로시마 원폭때 무너진 지붕에 깔린 아버지를 미처 구하지 못하고, 도망치라는 아버지의 말에 따라 딸만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딸은 이후 아버지에 대한 죄의식때문에 자신이 행복할 권리가 없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새로 찾아온 사랑의 감정을 억누르려 했던 것이다.
아버지는 그러한 딸의 심리를 섬세하게 읽어내면서, 딸이 행복해질 수 있도록, 그런 감정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딸은 결국 사랑을 택하게 된다.
미군의 검열을 피해, 히로시마의 기억을 어떻게 계승할 것인지 고민하는 젊은이들도 이야기의 또 하나의 주축을 이루지만,그런 부녀간의 애틋한 사랑을 절묘한 언어유희를 섞어 다루고 있는, 꽤 감동적인 작품이다.
학생들은 다행히 이 작품을 즐겨 준 것 같았다."부녀간의 사랑"에 대해 특히 여학생들이 긍정적인 감상을 말했고, "히로시마 비극을 통한 반전작품"이라고
말해준 학생도 있었다.
하지만 그중엔 "일본의 피해의식"이 드러난 작품이라면서 약간의 불편함을 표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그런데, 내가 굳이 나서기 전에 부녀지간사랑이나 반전을 읽어냈던학생들이 그런 학생들에게 반론을 펴기 시작했다.

"작가는 서문 부분에서 이미 일본의 가해사실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피해체험인 건 사실 아닌가""미국의 인종차별도 히로시마원폭 투하와 관계없지 않다더라.""원폭을 떨어뜨리지 않아도 승전할 수 있었다더라."등.
똑같이 작품을 읽어도 이런 식의 차이를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어쩌면 지식과 이론 이전의 "세상에 대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혹은 작가가 만들어낸 등장인물들의 목소리에 마음을 열고 귀기울이는 태도. 상대가(작가가 )과연 무엇을 지향하며 썼을지를 이해하려 하면서 읽는, "작가에 대한 존중".
즉 눈앞에 존재하는 대상에 대해 함부로 재단하면서 다 안 것처럼 생각하는 게 아니라, 그를 아직 다 모르는 우주로 대하는 존중의 태도다.
나는 그런 감성을 "세상에 대한 태도"라고 부르고 싶다. 한 일본인페친이 한 얘기인데, "고추장 속 단맛"은 가만히 음미해야 알아낼 수 있다. 음미하려는 자세가 없으면 고추장은 그저 매운 것으로만 존재한다.
가만히 음미해 단맛을 감지해 내는 혀와, 매운 맛만을 느끼고 거부하는 혀 중 어느 쪽이 행복한 혀일지는 분명하다.
복잡한 결을 보는 일은 시간을 요한다.그러다 보니 대상을 단순화하려는 경향이 곧잘 일어난다.
하지만 분명한 건, 단 맛까지 알아내는 혀의 주인이, 자신은 물론, 타자까지 행복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한권의 책에서 부녀간 사랑을 읽어내고 자신과 아버지와의 관계와 기억의 계승과 인간의 삶에 대해 생각하며 가슴을 데우는 사람과, 피해가 아니라 피해"의식"을 애써 읽어내며 차갑게 식은 가슴으로 책을 덮는 이들 중 누가 세상을 평화롭게 만들지도 자명하다.
오바마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에 대해, "일본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 아닌지, 그래서 "가해국에서 피해국으로 만드는 것"이 아닌지등 의심의 눈초리가 많다.
하지만 오바마대통령이 뭘 한들, 일본이 국가로서의 아시아가해국이자 그 때문에 수십만의 원폭 피해를 입은 유일한 국가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정치가의 애도를 그저 정치적인 것으로 보려면, 독일의 빌리브란트의 사죄도 정치적인 것으로만 봐야 한다.
오바마를 향한 의심들이,오히려 우리 안의 사대주의를 보는 것 같아 민망하다. 애도는 애도일 뿐.
우연히 그 땅에서 희생당한 조선인은 물론, 순식간에 참혹하게 죽어간 사람들은 누구든 애도받을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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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希修, Soon Ae Choi and 290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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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oshio Haraguchi
    魅力的な書名ですね。読んでみ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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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oshio Haraguchi
    そういえば映画がありましたね。観てないんです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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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oshio Haraguchi repli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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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원천
    자격인지 권리인지는 이야기, 좀 더 하여야 하지만....어쨋건 일부에서 외에는 조선인 원폭 피해자 언급은 없지요, 더구나 공식 문서나 자리에선
    1
    Park Yuha repli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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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黃薔
    이 점 저도 지적하고 싶었습니다. 고맙습니다.
    "Get to the point! 한국인에게 가장 부족한것 하나를 꼽으라면 나는 단연 이 '겟 투 더 포인트'를 꼽는다. 보이는데로 읽히는데로 보고 읽지 못함은 불행이다. 의심하고 그 배경을 유추하여 단죄를 주던지 상을 주려고 작정한다. 마치 자신들이 독심술의 전자전능한 절대자인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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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eungyong Jung
    한권의 책에서 부녀간 사랑을 읽어내고 자신과 아버지와의 관계와 기억의 계승과 인간의 삶에 대해 생각하며 가슴을 데우는 사람과, 피해가 아니라 피해"의식"을 애써 읽어내며 차갑게 식은 가슴으로 책을 덮는 이들 중 누가 세상을 평화롭게 만들지도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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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eungyong Jung
    명문이라서 한번 더 읽으시라고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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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k Yuha repli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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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동석
    감사합니다. 고추장 맛 아주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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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정환
    '공유'하면서도 코멘트를 달았습니다만..
    아버지가 딸에게 보이는 딸이 만들어낸 환영이라면 그 아버지는 딸의 자책을 극복하려는 욕망이 현현화된 것 아닌가요. 딸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이라기 보단 자신을 살려내고 죽은 아버지를 매개로 자기 자신을 극복하려는 주인공의 의지일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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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정환
      좀 더 적극적으로 말하자면 독자가 이를 주인공의 자기극복이 아닌 아버지의 사랑으로 읽었다는 것은, 그만큼 주체는 남성이어야 하고 여성은 수동적인 위치에 서는 것에 익숙한 독해 아니냐는 질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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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ark Yuha
      날카로운 분석.^^ 그렇게 볼 수 있지요.
    • Park Yuha
      다만 그렇다면 죽은 아버지의 뜻이 문제일텐데 아버지는 분명 딸이 더 살아가길 원했고 그렇게 말했지요. 그렇다고 한다면 그저 아버지를 이용했다기 보다 보이려 아버지의 뜻을 제대로 살린 삶을 살겠다고 한 걸로 볼 수 있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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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ark Yuha
      젠더론적 의문제기를 해야 할 작품은 많지만 이 작품은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될 듯 합니다. 아버지 사랑이라고 심플하게 말한 건 이 글 테마가 작품분석자체는 아니었기 때문이고요.
    • 오정환
      이용했다는 말은(정확는 매개로 동원했다는 말은) 부정적으로 쓴 것이 아닙니다. 남은 건 아버지의 유언일 테죠. 그러나 유언 하나로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는 서사가 될 수는 없잖아요. 이를 비로서 적극적으로 전유하고자 하는 딸의 의지와 그 주체의 과정에 방점이 찍혀야 하지 않는가. 뭐 그런 얘기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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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ark Yuha
      결론을 다시 말하자면 "주인공의 자기극복"도 충분히 가능한 해석일 수 있지요
    • 오정환
      아아. 묘사하신 학생들의 반응에서 뭔가 아쉬움을 느껴 쓴 것이었어요. '아버지의 사랑'이 먼저 거론되었다는 게 뭔가 한국과 일본의 공통된 무엇 처럼도 보이고. 독해에도 어떤 틀이 있는 것 아닌가 생각도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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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정환
      물론 박유하님께서 포스팅에서 말씀하시고 한 바와는 다른 곁다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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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ark Yuha
      "유언하나"가 아니라 위에 예를 든 것 같은 여러 말들은 표면적으로는 분명 아버지의 말이고, 있을 수 있었던 아버지의 말이죠. 그게 설사 환상이라 하더라도 그런 환상을 가능케 하는 실제 아버지 유언은 존재했으니. 그렇다 하더라도 그걸 불러낸 건 딸의 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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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ark Yuha
      학부 3학년생들이니까요. 이정도 해석으로 충분 하다고 생각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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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현일
    올해 초에 이 작품을 모티브로 한 영화 "어머니와 살았더니(母と暮らせば)"가 개봉되었어요. 감독은 "남자는 괴로워요"로 유명한 야마다 요지. 주연은 일본의 국민적 여배우라 불리는 요시나가 사유리로, 신문 등에서는 그럭저럭 호평을 얻은 것 같았습니다. 영화는 나가사키 원폭으로 아들을 잃은 어머니 곁에 죽은 그 아들이 나타난다는 이야기였는데, 어머니는 아들의 약혼자에게는 새로운 남자를 찾아 결혼해라고 하면서 자신은 아들을 잊지 못해 사는 의욕을 잃어가며 결국 죽고 맙니다. 남자인 저는 그것을 보면서 어머니는 역시 그런 존재인가?하는 생각과 세상이 어머니에게 기대하는 모습은 역시 그런 것인가?하는 생각이 동시에 들어서 대단히 복잡한 기분을 느꼈습니다.야마다감독도 요시나가 사유리도 평소의 언행을 볼때 살아남은 자가 정쟁 때 기억을 계승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작품을 만든 것은 분명한데 말이지요... 그것 역시 같은 작품을 봐서도 그런 결과를 맺을 경우도 있구나 하는 예로 생각이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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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태용
    선생님은 세상을 참 따뜻하게 보는 분이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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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k Yuha repli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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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oeun Lim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선생님이나 여기 댓글다신 분들에 비하면 한참 모자라서 쓸까말까 많이 망설였는데요, 잘 모르는 학생이 쓴 글이라고 생각해주세요...
    ...고추장은 매우라고 만드는건데 맵게 만들고선 단맛을 못느낀다고 뭐라 그럴수 없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떢볶이는 무척 맛있지만 매워서 못먹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감정적으로 풀리지 않는 응어리가 있는 상태에서 그 감정을 억누르고 이성적으로 포용성을 갖는다는게 쉬운일은 아닌것 같아요. 뉴로사이언스에 social decision making이라는 분야가 있는데 감정과 이성이 대립할때 사람들이 어떠한 결정을 내리는지에 대한 연구들이 꽤 많아요. 사람이 학습을 할때 감정이나 감각도 같이 섞기 때문에 나중에 그 내용을 recall할때 섞인 감정도 같이 느낀다고 합니다. 따라서 관련 결정을 내릴때 감정을 배재하고 완전히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기가 힘들다고 해요.
    특정 학생들이 이 책에서 피해의식을 먼저 본건 그 학생들의 가슴이 차가워서 그런게 아니라 일본이라는 개념에 섞인 감정이 긍정적이지 않아서 그런거라고 생각해요 (이건 일본정부가 풀어야할 숙제라고 봐요). 내가 상대방에게 가진 부정적 감정을 넘어서서 포용할수 있는 사람이 되려면 오랜 세월의 수련이 필요한데... 학부생이면 아직 애기들인데 그걸 기대하기엔 조금... 어쨋든 지금부터 배워야 하는건 맞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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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oeun Lim repli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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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un Sun Jang
    오래간만에 소설 읽어보고 싶어졌습니다. 이제는 문고본이 보기 버거우니 양장본으로 사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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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un Sun Jang repli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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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eongbo Clement Shim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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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이영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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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ul Jang
    정치인의 행위는 정치적으로도 봐야지요. 그렇다고 해서 행위의 의미가 퇴색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한국인 원폭피해자 위령비 포함해서 방문하고 매세지는 원폭으로 고통 받은 사람들 전체에 대한 것이었으면 좋겠네요. 일본인 조선인 외에도 소수 외국인들도 있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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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k Yuha repli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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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oon Ae Choi
    저의 학생시절 일본 글을 읽을때 마다 식민지 피해의식이 전두엽을 가로막았던적인 있던 저의 모습을 보는듯 하네요. 소설을 읽을 때는 인간의 오묘하고 알 수 없는 내면을 살펴봐야 하는데 국가관과 역사로 덤벼더는 얄궂은 읽기가 아직 만연한 탓이죠.
    지금 다양한 독서를 즐기고 있는 저로서는 안타깝네요.
    박교수님의 탁월한 일본 문학읽기(본업) 자주 볼 수있는 날이 속히 오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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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ark Yuha
      고맙습니다. 내셔널아이덴티티중심사고로 길들여져 온 세월이 그렇게 만드는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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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iYoung Park
    나의세상에대한태도는 어떤가..생각해보게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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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번창
    원폭이 불행이면서 말이 좀 이상하긴하지만 다행이기도했죠...
    아실지 모르시겠지만... 일본본토상륙에 대비해서 미국이 입안한 몰락작전은 말그대로 일본인을 절멸시키는 계획이었던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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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ark Yuha
      실행되지 않은 계획을 근거로 원폭투하가 긍정 되는 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바로 미국의 변명이구요
    • 서번창
      아 투하 자체를 긍정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원폭이 (일본민중들에게) 불행이면서 (또다른 일본민중들에게) 다행이기도 했죠... 라는 의도로 적었습니다 .. 원폭투하계획이나 원폭투하계획이후의 일본을 절멸시키려는 작전을 입안한 미국이나..... 비참하게 죽어나가던 말던 천황의 옥체보전이니 어쩌니 헛소리 해대던 대본영놈들이나... 하여간 어떤 영화제목 빗대어 얘기하자면 미친x들 전성시대 였던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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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eney Lee
    환상적인 이야기네요. 한국어판은 없는것 같은데 영화를 찾아내서 보려구요!! 아름다운 이야기와 수업풍경 소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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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ark Yuha
      아 너무기대하시면 실망하실지도.^^
      1
  • [Daum tv팟]아버지와 산다면
    TVPOT.DAUM.NET
    [Daum tv팟]아버지와 산다면
    [Daum tv팟]아버지와 산다면
    3
    Park Yuha repli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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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oshio Haraguchi
    戯曲だったんですね。楽しみ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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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 y
  • Park Yuha
    早いですね^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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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 y
  • Yoshio Haraguchi
    アマゾン様々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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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 y
  • 박경태
    오늘 매우 고추장맛 새우깡을 먺고
    이 글을 보니 꽤 감칠맛나는 표현이다라고 느껴집니다.
    느낌의 선호를 만드는 기억에 대한 반추,
    세상에 대한 깊이있는 사유는
    태도와 인간됨됨이를 결정하는 요소겠죠?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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