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은 자주 갈아줘야 하는 기저귀인가?
기자명 강준만
입력 2022.02.22
"정치인과 기저귀는 둘 다 자주 갈아줘야 하는데, 그래야 하는 이유는 똑같다."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의 말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한 국회의원의 ‘동일 지역구 3선 연임 초과 금지안’을 보면서 떠오른 명언이다.
이는 사실상 3선까지만 하라는 이야기다. 지역구를 옮겨 계속 하면 될 거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극소수 대선 주자급 정치인에게나 가능한 일이 아닌가.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윤석열 후보와 이준석 대표는 이에 대해 찬반 여부를 분명히 밝혀달라"고 압박하기도 했지만, 이 문제에 대해 여야간 큰 차이가 있는 건 아니다.
‘다선 제한’은 20여년 전인 1990년대 말 15대 국회 때부터 꾸준히 제기된 주장이며,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은 2020년 8월에 발표한 정강·정책 ‘초안’에 국회의원 4선 연임 금지를 적시하기도 했다. 근본적인 갈등은 여야를 막론한 정당 내부에 있다. 세대교체 갈등이다. 중진 의원들은 반대하지만, 초선 의원들과 의원이 되려는 보좌관·당직자들은 찬성하는 경향이 강하다.
민주당이 대선 국면에서 이걸 들고나온 이유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정권교체’를 맞받아치려는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의 ‘정치교체’를 지원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은 "국민의 삶을 책임져야 할 유능한 정치는 대결과 분열, 혐오와 차별을 동원해서라도 상대를 굴복하게 만드는 자신들만의 ‘여의도 정치’에 갇혀버렸다"며 "이제는 정치교체를 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정치교체’는 이재명이 처음 쓴 구호는 아니다. 가장 최근의 기억을 떠올리자면, 전 유엔 사무총장 반기문이 2017년 정치에 뛰어들면서 외쳤던 구호이기도 하다. 그는 정치교체를 부르짖으면서 "이제 우리 정치 지도자들도 우리 사회의 분열을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에 대해 해법을 같이 찾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정권을 누가 잡느냐가 그게 뭐가 그리 중요하냐"며 정권교체의 한계를 이렇게 지적했다. "여러 차례 정권교체가 있었다. 그러나 민주주의 원칙에 합당한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하지 않으면 같은 과오를 범할 수밖에 없다. 헌법, 선거제도, 정책 결정 방식, 정치인들의 행태, 사고방식 등 전반적으로 손봐야 한다."
이재명의 정치교체론과 별로 다르지 않은 문제의식인 것 같다. 원론적으론 누구나 다 동의할 수 있는 말이지만, 정치교체론을 ‘반정치주의’로 비판하는 시각도 있다. 예컨대, 성한용 한겨레 정치팀 선임기자는 "정치교체-반정치주의 뭐가 다른가"(2017년 1월 17일)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반기문은) 정치에 대한 기본 인식이 결여되어 있는 것 같다"며 세계의 석학들을 인터뷰한 [EBS 다큐 프라임: 민주주의]라는 책에 나와 있는, 갈등의 가치를 중시하는 견해를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사회는 항상 분열되어 있고 갈등은 상존한다. 민주주의는 갈등을 사회화·제도화하는 과정이다....민주주의는 전문가들이 알아서 갈등을 해결해 주는 정치체제가 아니다. 시민들 스스로 갈등 해결의 주체가 되어 이익 결사체를 만들고, 서로 갈등하면서 균형점을 찾아가는 것, 이것이 민주주의 본연의 모습이다. 그래서 갈등은 민주주의를 움직이는 엔진인 것이다."
옳은 말씀이다. 갈등, 그리고 갈등을 먹고 사는 정치를 너무 부정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성한용은 그런 관점에서 "(반기문이) 말하는 정치교체는 반정치주의와 다르지 않다"며 "반정치주의는 민주주의를 무력화하기 위한 반정치 기득권 세력의 이데올로기다"고 주장했다. 무슨 말인지 취지는 잘 알겠지만, 너무 멀리 나간 게 아닌가 싶다. 이재명의 ‘정치교체’와 ‘3선 연임 초과 금지’도 전형적인 반정치주의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혹 반정치주의는 무조건 비난하기보다는 그게 나올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하면서 일종의 ‘딜레마’로 다뤄야 하는 게 아닐까? 반정치주의의 토양이라 할 유권자의 정치불신과 혐오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며, 이에 대한 해결책도 사실상 없는 상태가 아닌가. 지난 수십년간의 경험이 말해주듯이 말이다. 변화의 가능성마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반정치주의를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것이야말로 그 선의와 무관하게 기존 정치 기득권 세력을 돕는 일일 수도 있다.
반정치주의를 보는 시각에 있어서 중앙과 지역의 공기는 좀 다르다. 정치권 물갈이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한 지역에서의 정치불신과 혐오가 더 강하다는 뜻이다. ‘3선 연임 초과 금지’에 대해 "정치 신인 발굴과 지방정치 활성화를 위해 논의해 볼만 하다"(전북도민일보)거나, "민주당은 제언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옮겨야만 유권자의 신뢰를 얻게 될 것이다"(기호일보)는 지지가 나오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일 게다.
반면 ‘3선 연임 초과 금지’에 대한 반론은 크게 보아 세 가지다. 첫째, 위헌성이다. 지방자치단체장에 대해 3연임으로 제한하고 있지만 시행 초기 설계 단계에서 합의된 사항으로, 의원 연임 제한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둘째, 당파적 대립의 격화다. 초선의원이 108명에 달해 ‘108번뇌당’이라 불린 열린우리당의 경험이 그 증거라는 것이다. 셋째, 행정부 견제의 무력화다.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의 다음 증언을 참고할 필요가 있겠다.
"노무현 정부 때 과거사위원회에 들어가서 국회 출석을 해보면, 초선 의원과 다선 의원이 애와 어른 수준이었어요. 3선 의원 정도만 되면 그냥 예산 흐름을 훤히 봐요. 관료들이 와서 한마디만 해도 금방 지적을 하죠. 그래서 다선 의원이 필요한 겁니다. 개혁 공천이라고 초선 의원들로 갈아치우는 게 마냥 좋은 게 아니죠… 3선, 4선 정도 되는 관록 있는 의원이 있으면 관료들이 장난을 못 쳐요."
자, 어쩔 것인가? ‘3선 연임 초과 금지’의 명암(明暗)이 이렇듯 대비되는 바, 이게 딜레마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정치인은 제 역할을 못하면 자주 갈아줘야 하는 기저귀와 같은 존재임이 분명하지만, ‘3선 연임 초과 금지’가 제 역할을 할 수 있게끔 하는 방안인지는 의문이다. ‘금배지 분배의 정의’는 실현할 수 있겠지만, 우리가 원하는 건 그 이상의 것이 아닌가. 이걸 계기로 전반적인 정치개혁에 관한 열띤 토론이 꽃을 피울 수 있다면, ‘3선 연임 초과 금지’에 대한 논의를 부정적으로 볼 이유는 없으리라.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윤석열 후보와 이준석 대표는 이에 대해 찬반 여부를 분명히 밝혀달라"고 압박하기도 했지만, 이 문제에 대해 여야간 큰 차이가 있는 건 아니다.
‘다선 제한’은 20여년 전인 1990년대 말 15대 국회 때부터 꾸준히 제기된 주장이며,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은 2020년 8월에 발표한 정강·정책 ‘초안’에 국회의원 4선 연임 금지를 적시하기도 했다. 근본적인 갈등은 여야를 막론한 정당 내부에 있다. 세대교체 갈등이다. 중진 의원들은 반대하지만, 초선 의원들과 의원이 되려는 보좌관·당직자들은 찬성하는 경향이 강하다.
민주당이 대선 국면에서 이걸 들고나온 이유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정권교체’를 맞받아치려는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의 ‘정치교체’를 지원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은 "국민의 삶을 책임져야 할 유능한 정치는 대결과 분열, 혐오와 차별을 동원해서라도 상대를 굴복하게 만드는 자신들만의 ‘여의도 정치’에 갇혀버렸다"며 "이제는 정치교체를 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정치교체’는 이재명이 처음 쓴 구호는 아니다. 가장 최근의 기억을 떠올리자면, 전 유엔 사무총장 반기문이 2017년 정치에 뛰어들면서 외쳤던 구호이기도 하다. 그는 정치교체를 부르짖으면서 "이제 우리 정치 지도자들도 우리 사회의 분열을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에 대해 해법을 같이 찾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정권을 누가 잡느냐가 그게 뭐가 그리 중요하냐"며 정권교체의 한계를 이렇게 지적했다. "여러 차례 정권교체가 있었다. 그러나 민주주의 원칙에 합당한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하지 않으면 같은 과오를 범할 수밖에 없다. 헌법, 선거제도, 정책 결정 방식, 정치인들의 행태, 사고방식 등 전반적으로 손봐야 한다."
이재명의 정치교체론과 별로 다르지 않은 문제의식인 것 같다. 원론적으론 누구나 다 동의할 수 있는 말이지만, 정치교체론을 ‘반정치주의’로 비판하는 시각도 있다. 예컨대, 성한용 한겨레 정치팀 선임기자는 "정치교체-반정치주의 뭐가 다른가"(2017년 1월 17일)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반기문은) 정치에 대한 기본 인식이 결여되어 있는 것 같다"며 세계의 석학들을 인터뷰한 [EBS 다큐 프라임: 민주주의]라는 책에 나와 있는, 갈등의 가치를 중시하는 견해를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사회는 항상 분열되어 있고 갈등은 상존한다. 민주주의는 갈등을 사회화·제도화하는 과정이다....민주주의는 전문가들이 알아서 갈등을 해결해 주는 정치체제가 아니다. 시민들 스스로 갈등 해결의 주체가 되어 이익 결사체를 만들고, 서로 갈등하면서 균형점을 찾아가는 것, 이것이 민주주의 본연의 모습이다. 그래서 갈등은 민주주의를 움직이는 엔진인 것이다."
옳은 말씀이다. 갈등, 그리고 갈등을 먹고 사는 정치를 너무 부정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성한용은 그런 관점에서 "(반기문이) 말하는 정치교체는 반정치주의와 다르지 않다"며 "반정치주의는 민주주의를 무력화하기 위한 반정치 기득권 세력의 이데올로기다"고 주장했다. 무슨 말인지 취지는 잘 알겠지만, 너무 멀리 나간 게 아닌가 싶다. 이재명의 ‘정치교체’와 ‘3선 연임 초과 금지’도 전형적인 반정치주의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혹 반정치주의는 무조건 비난하기보다는 그게 나올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하면서 일종의 ‘딜레마’로 다뤄야 하는 게 아닐까? 반정치주의의 토양이라 할 유권자의 정치불신과 혐오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며, 이에 대한 해결책도 사실상 없는 상태가 아닌가. 지난 수십년간의 경험이 말해주듯이 말이다. 변화의 가능성마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반정치주의를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것이야말로 그 선의와 무관하게 기존 정치 기득권 세력을 돕는 일일 수도 있다.
반정치주의를 보는 시각에 있어서 중앙과 지역의 공기는 좀 다르다. 정치권 물갈이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한 지역에서의 정치불신과 혐오가 더 강하다는 뜻이다. ‘3선 연임 초과 금지’에 대해 "정치 신인 발굴과 지방정치 활성화를 위해 논의해 볼만 하다"(전북도민일보)거나, "민주당은 제언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옮겨야만 유권자의 신뢰를 얻게 될 것이다"(기호일보)는 지지가 나오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일 게다.
반면 ‘3선 연임 초과 금지’에 대한 반론은 크게 보아 세 가지다. 첫째, 위헌성이다. 지방자치단체장에 대해 3연임으로 제한하고 있지만 시행 초기 설계 단계에서 합의된 사항으로, 의원 연임 제한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둘째, 당파적 대립의 격화다. 초선의원이 108명에 달해 ‘108번뇌당’이라 불린 열린우리당의 경험이 그 증거라는 것이다. 셋째, 행정부 견제의 무력화다.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의 다음 증언을 참고할 필요가 있겠다.
"노무현 정부 때 과거사위원회에 들어가서 국회 출석을 해보면, 초선 의원과 다선 의원이 애와 어른 수준이었어요. 3선 의원 정도만 되면 그냥 예산 흐름을 훤히 봐요. 관료들이 와서 한마디만 해도 금방 지적을 하죠. 그래서 다선 의원이 필요한 겁니다. 개혁 공천이라고 초선 의원들로 갈아치우는 게 마냥 좋은 게 아니죠… 3선, 4선 정도 되는 관록 있는 의원이 있으면 관료들이 장난을 못 쳐요."
자, 어쩔 것인가? ‘3선 연임 초과 금지’의 명암(明暗)이 이렇듯 대비되는 바, 이게 딜레마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정치인은 제 역할을 못하면 자주 갈아줘야 하는 기저귀와 같은 존재임이 분명하지만, ‘3선 연임 초과 금지’가 제 역할을 할 수 있게끔 하는 방안인지는 의문이다. ‘금배지 분배의 정의’는 실현할 수 있겠지만, 우리가 원하는 건 그 이상의 것이 아닌가. 이걸 계기로 전반적인 정치개혁에 관한 열띤 토론이 꽃을 피울 수 있다면, ‘3선 연임 초과 금지’에 대한 논의를 부정적으로 볼 이유는 없으리라.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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