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석
이게 내가 예전부터 지적해온 문제인데 진보좌파들이 맥을 못 출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 관료제는 생각보다 진보좌파의 비판에 부정적인 입장도 아니거니와 되려 적극적으로 잘 반응한다. 이게 사실 진짜 문제인건데.. 정치적 차원에서도 보수정당이나 민주당 등이 좌파 담론들 쉽게 쉽게 가져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기본적으로 내가 보기에 한국의 거버넌스 자체가 좀 특이하다.
1) 관료제 -
2) 학계 및 전문직능단체 -
3) 정당 -
4) 대중여론이라는 구도가 있다고 할 때
앞의 1), 2)가 생각보다 잘 협업하면서 굴러간다.
4)에서 3)으로 가기는 쉬운데 그렇다고 해서
3)이 또 1), 2)를 막 무시하고 그럴 수가 없는 구조랄까?
보면서 많이 느끼는건데 양면적인 지점이다. 관료주의적이면서도 동시에 전문가주의에 입각해 잘 운영되는 특이한.
복지국가건설 등의 여러 좌파적 담론이나 기획들이 별다른 사회적 합의나 시민사회 내부의 조직화에 기초한 정치적 담론화 과정, 주체형성의 과정 등을 겪지 않고 관료제에 곧바로 관련 단체들과 연결돼서 기능한다.
그렇게 관료제가 학계 등의 전문가들의 의견을 잘 수렴해서 정책 만들어서 실행하고 대충 수혜자들로부터 피드백 받고 뭐하고 하면서 100% 완벽하게 굴러가는 건 아니지만 수치상으로 봤을 때 어? 그래도 하기는 하네? 이런 가시적인 걸 보여주는 경향이 있다.
역시 '아시아적 생산양식'이라 그런가? 아무튼 하부구조의 변화 속에서 국가 관료제 같은 상부구조가 따라가는 방향이 아니라 가끔 보면 반대로 시민사회 등의 하부구조는 뒤쳐져 있는데 상부구조가 그냥 대충 앞서서 가는 그런 모양새를 보이는 이상한 선진국 한국..
복지국가 어쩌고 하는 좌파정당 혹은 단체들의 비판도 아마 10~20년 뒤면 없어질 것이다. 현행 복지제도나 도입예정인 복지제도들만 잘 유지하고 운영해도 한국은 20~30년 안에 고복지 사회가 될 예정이기 때문.. 그때 가면 좌파는 또 뭘 팔아먹을까? 내가 이게 문제라고 여러 번이나 말했는데! 내 말 들어라. 한국 관료제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다. 사실 이것 때문에 신남성연대니 뭐니 하는 저 2030 철부지들이 할 수 있는 게 별 게 없을 거라는 낙관을 하고 있기는 하다.. 아무튼 남의 중요한 주장에 얹혀서 내 썰 풀기!
정승국
m10S0p Fenbru7ar376s0y lat re098:4l8 ·
한국 고용체제의 발전과정을 신자유주의적 성격이 확대 강화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고용체제의 일부인 직업교육훈련제도의 발전과정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우리나라 직업교육훈련제도의 발전과정에서 의미 있는 사건들을 열거해 보면,
1. 1997년(김영삼) 고용보험제도의 수립 과정에서, 고용주가 부담하는 능력개발 사업의 제도화: 경영자단체의 반발을 무릅쓰고 고용보험제도의 일부가 된 이 사업은 이전의 직업훈련분담금(training levy) 제도를 계승한 것으로서 독일, 덴마크 등 유럽의 사민당 내 좌파그룹에서 줄곧 주장해왔던 진보적 의제임.
2. 2008년(이명박) 마이스터고: 원칙적으로 모든 마이스터고 학생들은 입학금과 수업료, 기숙사비와 학교운영지원비 면제, 이명박 정부의 ‘취업 걱정 없는 고등학교’ 정책의 결과물. 이명박 정부 시절 마이스터고 예산은 한 해 300억원 규모. 초기직업교육훈련을 어떻게 제도화할 것인가는 50~60년대 유럽 노조 및 사민당의 핵심적 관심사였음. 사회보장제도의 발전과정에서 이른바 ‘권력자원론’(노조 및 사민당이 강할수록 노동자의 이해를 잘 반영하는 제도가 수립)이 가장 잘 들어맞는 제도 중의 하나가 직업교육훈련제도라고 보통 설명함(Busemeyer).
3. 2008년(이명박) 내일배움카드제: 국비 지원을 통해 구직자 개개인이 자신이 원하는 직업훈련을 받을 수 있게 도와주는 ‘개인별 계좌제훈련’(individual learning accounts: ILA). 고용보험제도의 수급자가 아닌 비정규직들과 같은 취약계층도 정부의 일반예산에 따라 지원받을 수 있게 됨으로써 이른바 시민권적인 직업훈련의 도입. 이 제도의 전형인 프랑스의 개인훈련계좌제(CPF: Compte Personnel de Formation)는 중도좌파정권인 올랑드 사회당 정부에서 2014년 도입.
4. 2013년(박근혜) 직업적 능력을 이론적인 학습을 통해서 뿐 아니라 현장에서 배울 수 있게 된 ‘일학습병행제’의 실시. 한국판 듀얼 시스템의 시작, 그 비용을 국가에서 부담.
5. 2002(김대중) 국가직무능력표준(NCS, National Competency Standards)에서 2019년(문재인) SQF(Sector Qualification Framework)에 이르는 발전과정. 산업분야별로 채용·승진·보상 등이 학력이 아니라 교육ㆍ훈련ㆍ자격 등을 통해 학습하고 취득한 능력에 따라 이루어질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되게 되었음. 일부만 혜택을 받는 내부노동시장에서 배제된 외부노동시장의 비정규직, 중소영세기업의 노동자들도 능력개발에 따라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기반 조성.
이러한 제도들이 구축된 결과 2019년도 기준으로 직업훈련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영국과 일본의 6배, 스웨덴의 60% 수준에 이른다(OECD). 이러한 제도들을 구축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한 사람들은 특정 정당이 아니라 국가의 관료들임.
이론이나 해외의 사례에 따르면, 노동조합과 진보 정당들이 주요한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데, 실제로는 거의 역할을 하지 않음. 소속 기업에서의 1차적 분배에 대해서만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재분배 및 사회투자국가적 이슈에 대해서는 관심이 별로 없는 우리나라 노조(기업내 숙련형성에 대해서도 대체로 소극적이거나 부정적이다) 및 진보 정당들(재분배에 대해 약간 관심이 있다)의 ‘비생산적’(unproductive) 성격을 보여주는 것임.
진보적인 '선출 권력'이 '임명권력'인 보수적 관료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진보적 의제들을 관철한다는 생각은 어떤 정책에 대해서는 우리나라 상황에 잘 안맞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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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
Sung Won Kim
진보정당이나 노동조합들이 대안적인 의제와 정책을 마련하고 관철시키는데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것에 대해서는 공감합니다. 그렇지만 같은 정책이라도 나라와 환경에 따라 다르게 이해되고 전유될 수 있다는 점은 인식해야 합니다. 유럽에서 진보정당이 그 나라의 환경 속에서 제시한 진보적 정책도 한국에서는 진보-보수의 스펙트럼으로 인식되고 활용되지 않고 다르게 전유될 수 있습니다. 예시로 제시된 이명박 때의 마이스터 고등학교 사례는 '고교다양화300' 프로젝트 하에서 특목고-일반고-전문계고의 고교서열화 강화와 중등교육에서 분리교육을 강화시키는 기제로도 활용되었습니다. 박근혜 때 도입된 일-학습 병행제나 선취업 후진학 제도도 계급에 따른 분리된 중등교육 트랙의 운용이 고등교육, 직업교육과 고용트랙에서의 운용까지 연장되는 기제로도 쓰일 수 있는 것이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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