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jin P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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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인물][책] <강원용 인간화의 길 평화의 길> 박명림, 장훈각 지음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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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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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용 인간화의 길 평화의 길』은 강원용 목사가 주창한 사상적 개념인 ‘인간화’ ‘사이 너머’ ‘대화운동’ 등을 분석하며 그가 평생 펼친 평화와 상생 운동의 뿌리를 따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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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용은 평생 한 번도 급진주의적 운동에 참여하거나 보수주의로 회귀하지 않았다. 그가 이 두 극단으로부터 수없이 비난을 받으면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생각을 실천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예수가 이 땅에서 이루고자 하는 인간의 해방이 어떤 것이었는지에 대한 그의 믿음에 기인한다. 예수는 율법으로부터의 해방, 악의 영으로부터의 해방, 모든 고난으로부터의 해방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부터의 해방을 선언했다. 여기에는 가난하고, 짓눌리고, 좌절하고, 죄책과 불안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정치적.경제적 해방도 물론 포함된다. 그리고 해방될 대상은 핍박받는 억울한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이었다.
햇빛이 모든 인간에게 비추듯이 하나님의 사랑 역시 특정한 일부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미치는 그런 사랑이었다. 강원용은 기독교인이라면 인간들의 해방을 위해 정치.경제.사회.종교적 모든 행동에 참여해야 한다고 믿었다. 실천은 신앙의 연장선에 있었다. 복수(復讐)로는 예수의 해방선언을 이룰 수 없었다.
강원용은 핍박받는 사람들이 다시 빼앗는 자의 지위에 오르는 세상은 바라지 않았다. 그는 그조차 넘어서서 화해와 재결합, 상생의 길을 열어 성서에서 말하는 근본악을 극복하는 세상을 꿈꿨다. 이는 강원용 신학과 철학의 요체였다. 그는 예수가 땅에서 이루고자 했던 해방에 대해 간결하고도 명확하게 밝힘으로써 길을 제시하고 있다.
- 제1장「신앙, 신학, 사회참여」, 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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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용이 사회참여활동을 하면서도 놓지 않으려 했던 기본적인 원칙들이 있다. Between and Beyond(중간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 제3지대, 근사적 접근(approximately approach) 등이다. 이 바탕에는 강원용의 화해의 신학이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Between and Beyond’는 니버의 저작에서 얻은 통찰을 이론화하는데 기준이 되었던 원칙이다. 폴 틸리히(Paul Tillich)가 스스로 ‘경계선상’의 신학이라고 했던 것과도 닮아 있다. 박종화가 명쾌하게 언명하고 있듯이 강원용의 삶의 지평은 항상 양면성을 지니고 있었다. 강원용은 현실 속에서 양극단을 화해시키려 부단히 노력했으며 이 둘을 뛰어넘는 가치관을 제시하는 일에 전력을 다했다. 강원용에게 전자는 ‘Between’이었으며, 후자는 ‘Beyond’였다. 강원용은 이것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나는 평생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균형과 조화를 이루려고 시도하며 살아왔다. 나는 이상주의자도 될 수 없었고 낭만주의자로 살 수도 없었다. 또 허무주의자로도 살지 않으려고 노력해왔다. 모든 것이 대립과 양극화된 상황 속에서 정치적으로나 종교적, 사회적으로 일관되게 내가 지켜온 자리는 양극의 어느 쪽도 아니고 그렇다고 중간도 아닌, 대립된 양쪽을 넘어선 제3지대였다.”
제3지대는 현실정치에서는 균형의 길로 나타났다. 자신만이 옳다는 믿음 위에 서 있는 사람은 이 길에 설 수 없었다. 강원용은 인간의 모든 결정, 전제, 행동은 항상 잘못이 있으며 제한적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강원용은 스스로 절대적인 선(善)이라고 생각하는 보수파와 급진파의 길에 몸을 두지 않으려 했다. 오히려 보수와 혁신을 화해시키면서도, 제3의 길 또는 제3지대에서 양심과 타협하지 않고 싸워나가는 길을 선택했다. ‘보수적 사고의 굳어버린 비생명(非生命)을 타개하면서, 또한 개혁 속에 숨겨져 있는 개악의 요소를 지적’함으로써 새로운 사회발전의 길을 찾는 것이 곧 강원용의 제3의 길이었다.
때문에 강원용은 항상 고뇌했다. 박정희정권이 유신체제를 선포하여 저항운동이 한국사회를 휩쓸고 지나갈 때에도 그는 저항의 방법에 대해 고민했다. 체제에 순응할 수도 없었고 산속으로 피해 달아날 수도 없었으며, 체제를 전복하고 신체제를 구축하려는 급진적 저항세력에 동조할 수도 없었다. 강원용은 중간집단을 육성함으로써 장기적으로 체제변화와 개혁의 원동력이 민중 속에서, 민중에 의해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을 택했다. 근사적 접근이었다.
- 제1장「신앙, 신학, 사회참여」, 43~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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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용 목사는 어느 하나의 준거로 문제를 이해하고 접근하려 하지 않았다. 그는 항상 양극을 넘어 새 지평에서 길을 찾고자 했다. 그가 항상 대화를 존중한 이유였다.
강원용에게 화해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로부터 비롯한 개념이었다. 궁극적으로는 십자가의 구원과 해방을 통해 사랑에 기반한 인간관계를 의미했다. 미움을 미움으로, 악을 악으로, 복수를 복수로 갚지 않는 것, 그리하여 서로 이해하며 사랑함으로써 공존하는 것이 화해였다. 화해는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강원용의 이상이 응축된 개념이었다. 중간집단에게 부여된 가장 중요한 의무도 대화를 통해 사회 내에서 화해를 실현해내는 일이었다.
- 제9장「인간화, 중간집단, 아카데미사건」, 2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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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박정미
이름만 들어왔을뿐 잘 모르는 분인데, 오늘 그 사상의 핵심을 한몫에 알게 된 것 같습니다.
공감합니다.보수의 비생명적요소와 개혁의 개악적요소. between and beyond.
Reply2 yEdited
Sejin Pak
제 3의 화해의 길을 찾는 인물들을 발굴하는 중이랍니다. 정자인 박명림이 그 작업을 해 왔기 때문에 박명림의 책들을 읽으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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