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k Yu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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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한감정?
나의 윤석열 지지가
“원한감정에 사무쳐 오직 그 대상이 망하는 걸 보기 위해”서라고 말한 정의당 지지자 페친이 있다.
하긴 오래된 페친이니 나의 스탠스를 잘 알고 있을 것이고, 그의 말대로 “ 불편함을 넘어 황당”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의 이재명 반대를 그저 “원한 감정”으로 본다는 건 몇 년씩 글을 써 왔어도 결국은 내 글을 제대로 읽지 않았다는 얘기 밖에 되지 않는다.
잘 아시는 분들도 많으리라 믿지만, 민주당에 대한 나의 회의는 이재명 사태때 시작된 게 아니다.
일본에서든 한국에서든 내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은 전부 진보계층이었고 당연한 듯 나도 그 안에 있었다.
그러다가 처음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한 게 무려 20년 전 일이다.
- 처음엔 페미니즘과 민족주의의 대립으로 나타났고,
- 서경식 /김부자등과 작은 균열이 생기기 시작 했고
- 몇 년 후엔 <화해를 위해서>를 둘러싸고 함께 모이던 연구 모임이 분열했다.
그로부터 15년 지난 지금은, 그건 “정치에 오염”(학문보다 국가를 앞세운) 되었는지 여부가 만든 분열이었다고 생각한다.
자세히는 언젠가 다시.
아무튼 그렇게 경험한 분열이
한국에서는 <제국의 위안부> 가 고발당하면서 다시 일어났다.
그리고 몇년 후 조국 사태. 조국사태란 나에게 2000년대 초반에 경험한, 동일한 집단의 분열이 한국 사회로 건너와 시민 레벨로 확산된 사태다.
나에 대한 고소장에는 서경식이 내 책에 대해 했던 말이 그대로 쓰여 있다.
그러니 결국 나를 고발한 건 그저 지원단체가 아니라 그들의 욕망을 뒷받침해 준 일부 지식인들의 “사고”다.
<제국의 위안부>를 둘러싸고 나에게 쏟아진 온갖 비난들은 그 변형일 뿐이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공유하는 거대한 집단이 민주당이었다. 그러니 내가 민주당을 지지할 수 없는 근원은 이미 10년 전 전에 만들어진 셈이다.
그런 일을 겪으면서 나는 그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왔고 이제는 그 배경을 냉전 마인드에서 본다.
냉전 마인드란 멸공을 외치는 사람들 한테만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냉전체제 붕괴이후 정치 이데올로기에 강력히 사로잡혔던 건 진보좌파 쪽이다.
아무런 정치적 의도를 담고 있지 않았던 내 책을 두고 한미 동맹에 도움이 되는 책이라고 비난한 것도 그런 냉전 마인드가 시킨 일이다. 
그러니 내가 윤석열을 지지하는 건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비난할 사람들을 신나게 만드는 일이긴 하다.
하지만 그거야말로 다시 한번 냉전 마인드적인 생각이고
나는 그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더 이상 상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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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몇 년 동안은 그들이 바뀔거라고 기대 했지만 바뀌지 않았고 바뀌지 않는 이유를 알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들은 나를 법정에 보냈고 여전히 그 상태를 유지시키고 있는 주체들이다. 우파도 문제가 많지만 작금의 폭력주체는 우파가 아니라 좌파다.
식민지 문제가 제대로 해결이 되지 않고 있는 것도
이런 냉전 마인드 탓이다. 시간이 갈수록 그 사실이 더 명료하게 보인다. 
제국뿐 아니라 냉전도 넘어서야 한다고 오래 전부터 말해 온 이유이기도 하다.
윤석열후보를 지지하기로 한 건
일차적으로는 그런 민주당에 저항해 온 사람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가 ‘통합’을 말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진영을 넘고 지역을 넘자고 말하기 시작한 그가
얼마만큼 그 이상을 이룰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가 냉전마인드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라는 것 만으로
나에겐 충분한 지지 이유가 된다. 
냉전붕괴 이후로도 냉전 마인드가 남북 관계 뿐 아니라 한일관계까지 움직여 왔다.
누구나 자신에게 절실한 문제가 있겠지만 나의 가장 큰 관심사는 동아시아평화다. 평화를 깨는 지배와 차별과 폭력이다.
민주당이며 정의당을 지지하지 않는 이유는 평화를 외쳐온 그들에게 그들의 의지와 달리 평화를 만들 힘이 없다는 게
명료해졌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오히려 평화의 이름으로 불화를 만들었다. 다른 한편으로 폭력을.
정의당의 가치관을 공유 하면서도 지지하지 않는 이유는, 민족주의와 페미니즘의 대립국면에서는 민족주의의 편에 설 것이 뻔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그 자체도 문제지만, 더 나쁜 건 잘못된 인식을 고수하는 고루함이 보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고의 결함’에 있다.
나의 반대는 그런 이유가 만든 것이다.
“원한 감정”이 아니라.
내가 보고자 하는 건 늘 “지금 여기 “다.
그리고 그 공간에서 누가 더 윤리적인지 합리적인지로
많은 것을 판단 한다. 진영이나 지역이 아니라.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필요하면 언제든 이동한다.
이름에 연연하지 않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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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의 끝은 대개는 타자에 대한 폭력이나 자폭으로 나타난다. 서경식교수가 9/11조차 "저항"이라는 이름으로 옹호했던 건 우연이 아니다.
"젠더 문제보다 민족문제가 먼저"라던 그의 생각이 은폐하는 건 가부장제를 지탱해 온 "남성"의 권력(무력)과 책임이다. 제국을 비판하는 그의 민족담론이, 숙청(배제)과 폭력을 허용하는 제국의 욕망과 닮은 꼴일 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
(2016/3/23, 페이스북)
19 comments
Park Yuha
인용페북 전문.
https://www.facebook.com/100000507702504/posts/1311093872250857/?d=n
Reply59 m
이충원
"정의당의 가치관을 공유 하면서도 지지하지 않는 이유는, 민족주의와 페미니즘의 대립국면에서는 민족주의의 편에 설 것이 뻔하기 때문" 아주 공감합니다.
Reply48 m
Park Yuha
이충원 반가워요.😊
Reply47 m
이충원
정의당을 보면 일본 사회당의 몰락이 생각납니다. 도이 다카코 위원장 시절에 노동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젠더, 생태 등으로 지평을 넓힐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자신들의 고루한 사고 탓에 스스로 그 기회를 걷어차버린...
Reply45 mEdited
Park Yuha
이충원 맞아요. 도이 의원 저도 좋아했는데. ㅠ
Reply43 m
이재국
심상정 지역구 고양갑입니다.
적폐들 득실 거리는 곳에서 정의당 지지하면서 이권 챙겨 먹는 최선의 방법을 알고 있는 곳입니다
물론 심상정의원도 그 부름에 충실히 임해 일산 황폐화에 일조 했었구요… See more
Reply45 m
Park Yuha
이재국 그렇군요. 전혀 몰랐네요. 물론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논의가 되어야 할 얘기네요.
Reply42 m
허리미
박유하 민주 2중대 착실하게 하셔서 아들도
로스쿨 집은 최신 뜨는동네삼송지구로 가고
이곳에서 3선을 해쳐드시면서도 못사는동네… See more
Reply30 m
방병국
이땅에 몇 안되는 진정한 진보시네요.
Reply40 m
Park Yuha
방병국 아뇨..그렇게 말할 생각은 없어요. 그래도 마음 감사합니다.
Reply39 m
방병국
박유하 저는 보수지만, 보수가 거듭나야 진정한 진보도 다시 설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갈길이 멀어요.
Reply36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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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유하
- 승인 2011.04.18 13:33
- 댓글 0
서경식 교수의 비판에 대답하기 전에 먼저 문제의 배경에 대해 정리해 두기로 한다.
1990년대 초반에 이른바 ‘위안부문제’가 불거지면서 사죄와 보상을 둘러싼 논란이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 문제가 20년이 다 돼가도록 해결되지 않는 이유를 한국인의 대부분은 ‘일본이 사죄도 보상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이 1993년에 공식 사죄를 하고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는 말과 함께 ‘아시아여성 국민기금’이라는 것을 만들어 1997년부터 보상을 시작했고 2003년의 기금해산시점에서 위안부피해자의 ‘반 가까이’가 보상금을 받았다는 사실은 한국에는 별로 알려진 바가 없다. 물론 위안부 문제에 관여해 온 단체나 학자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일본이 ‘보상’하려 했다는 사실을 한국사회에 알리려 한 흔적은 없다.
일본은 왜 ‘국가적 책임’을 표명할 ‘국회’의 의결을 끌어내지 못하고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면서 국민기금을 조성했을까. 그것은 1965년의 한일조약이 한일 간의 과거에 대해 서로 간에 과거에 관한 요청을 ‘영구히' 하지 않겠다고 돼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식민지배 책임을 느끼지 않거나 1965년의 ‘조약’을 들어 반대하는 이들이 많은 가운데 그 시점에서 가능한 ‘보상’을 하고자 일본 정부는‘국민기금’을 조성했던 것이다.
문제는 이 때 일본의 진보가 양분됐다는 점이다. 국민기금을 ‘책임회피’의 ‘술책’으로 간주한 이들은 ‘국가보상’을 주장하며 기금을 격렬히 반대했고 이후 일본의 진보는 오늘까지 이 문제를 놓고 대립상태다. 서경식 교수의 비판은 기금을 반대했던 이들의 생각을 대표하는 것이기도 하다.
일본의 사죄도 보상도 없었다는 인식이 일반화 돼 가는 속에서 나는 한국에 좀 더 충분한 정보제공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정보의 양과 질에 따라 논의의 기반은 달라지기 때문이다. ‘화해를 위해서’라는 말에 담은 것은 그런 생각이었다. 말하자면 제대로 된 논의가 가능한 기반을 만들고 싶었을 뿐, ‘무조건 화해’가 필요하다고 말한 적은 없다. 그리고 내 책(『화해를 위해서』의 일역판『和解のために』, 平凡社, 2007)의 반은 일본 우파 비판이었다.
그런 내 책을 일본의 진보는 대부분 높이 평가해주었지만 예상대로 국민기금반대운동을 했던 이들은 격하게 비난했다. 그리고 비판들은 대부분 ‘기금’에 대한 비판에서처럼 어떤 정치적 ‘의도’를 찾으려 했다. 그러나 이들은 ‘화해를 위해서’가 한국을 향해 먼저 집필된 책이라는 점을 간과하거나 무시하고 있다. 한국에, 일본의 ‘사죄와 보상’의 현황에 대해 알리고 그 배경을 이해할 수 있도록 현대일본과 전후일본에 관한 기본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책이라는 점을. 나는 다만 ‘전후일본’이 ‘자민당’ 일당체제이긴 했어도 평화헌법과 민주주의체제를 도입하고 ‘새로운 일본’을 만들려 했다는 점을 말했고 위안부 문제에 관해 좀 더 진전된 논의의 장을 마련하고자 했을 뿐이다. 그래야만 제대로 된 비판-일본의 우파가 받아들일 수 있는 비판-도 나올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서 교수는 최근 출간한『언어의 감옥에서』(돌베개)에서, 일본의 리버럴이 ‘국민주의’의 틀에 안주하고 있고 실은 식민지 책임을 질 생각이 없으며 ‘도의적 책임’이라는 말로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일본의 우파와는 구별되고 싶어하고 그러던 터에 나의 책이 그들이 말하고 싶었던 ‘화해 ’(그냥 흘려보내기 정도로이해한다)를 말했기 때문에 환영했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은 피해자에 대한‘폭력’이고 식민지배 책임을 묻는 세계적 조류에 저항하는‘위험한’움직임이라는 것이 책에 수록된「화해라는 이름의 폭력」이라는 글의 요지다.
그러나 ‘화해를 위해서’는 서 교수가 말하는 ‘식민지배 책임을 묻는 세계적 조류’와 무관한 책이 아니다. 그것은 국민기금 역시 마찬가지다. 위안부 문제란, 서 교수가 말하는 것처럼 설사 ‘강제로’ 끌려가지 않았다 해도 위안부 문제는 식민지배 구조 속의 일이다. 그런데 그런 지적은 이미 6년 전에 ‘화해를 위해서’에서 내가 한 말이기도 하다. ‘법적으로’ 1965년에 식민지배에 대한 보상이 끝났다 하더라도, 1990년대에 정부가 예산의 반을 출자하며 다시 보상을 한 것이었으니 ‘국가보상’의 형태를 취했으면 좋았을 거라고도 나는 분명히 썼다, 그러나 서 교수는 나의 책에 그런 지적이 있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는다. 문제는 그런 글쓰기가 내 책이나‘일본 리버럴‘에 식민지배 책임의식이 없는 것으로 독자들이 생각하도록 만든다는 점이다. 내 책의 내용 절반이 일본 우파 비판이라는 것을 고작 한줄로 처리하는 것도 그런 글쓰기의 결과다.
물론 ‘국민기금’에 숨어 있을지 모르는 의식적/무의식적 ‘식민지주의적 의도’를 묻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 작업은 기금에 참여한 이들의 순수한 의도를 보는 일과 병행돼야만 공평하다. ‘일본의 리버럴’과 ‘국민 대다수’가 국민기금에 참여한 것을 두고 그저 식민주의 책임을 질 생각이 없어서 한 행위로 간주하려면 먼저 그들이 그런 형태로나마‘책임을 지려 했'다는 사실도 말하는 것이 공정하다.
서 교수와 나의 근본적 차이는 ‘전후일본’과 ‘현대일본’에 대한 인식 차이뿐 아니라 주장의 ‘방식’과 ‘순서’에도 있다. 서 교수는 전후일본이 ‘양심적 지식인’을 낳은 일도 없었고 일본국민의 ‘대다수’가 식민지배에 대한 반성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인가. 물론 나 역시 ‘전후 일본’의 모순과 한계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일본의 제국주의와 민족주의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작업을 나 역시 20여 년 전부터 해왔다(곧 발간될『내셔널 아이덴티티와 젠더』는 그 작업의 일환이다). 그러나 그런 모순과 식민지주의에 대한 비판을 ‘전후일본의 가능성’조차도 일반인식이 되고 있지 않은 장-한국을 향해 말하는 일은 한국을 기만하는 일일 뿐이다.
내가 ‘전후일본’에 관해 긍정적으로 말한 이유는 단 한 가지, 앞서도 말한 것처럼 ‘기본정보’의 공유를 위해서다. ‘전후일본’의 모순과 한계를 말한다 해도 그 이전에 ‘전후일본’이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어느 정도의 성과를 이뤘는지는 알고 비판하는 것이 논의의 수준을 심화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서 교수의 ‘전후일본’ 비판은 후쿠자와 유키치와 마루야마 마사오를 같은 도마 위에 올려놓고 비판하는 것처럼 모순된다. ‘진보의 한계’를 말하는 일은 중요하고 필요하지만 ‘진보’와 ‘보수’에 대한 비판이 같은 문맥에서 다루어지는 것은 과연 옳은가. 서 교수가 ‘일본진보’와 나에 대한 비판 속에서 일본 우파에 대한 이야기를 간간이 섞어 독자를 혼란시키는 일에 대해서도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나 역시 식민주의 비판이 필요하다는 서 교수의 주장에는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러나 세계가 변하지 않는 이유를 오로지 세상의 ‘레토릭’과 ‘책략’으로 간주하는 서 교수의 비판 ‘방식’은 옳은가. 서 교수의 말처럼 서 교수의 책이‘인기가 없’다면 그것은 ‘일본국민의 대다수’가 ‘국민주의’나 식민주의에 젖어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주장 속에 선입견에 근거한 곡해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예컨대 서 교수는 천황제유지가 곧 식민지배 긍정인 것으로 간주하지만 전후일본이 천황제 유지를 조건으로 헌법 9조를 선택했다는 사실은 모르는 듯하다. 1910년의 조약이나 1965년의 조약에 관한 현재 진행 중인 구체적인 논의에 대해서도 서 교수는 무관심한 것으로 보인다.
‘在日’에 대한 차별이나 그 밖의 일본사회의 모순을전부 일본 리버럴까지 ‘식민지배에 대한 책임의식’이 없기 때문으로 단정하는 일은 그래서 ‘폭력’적이고 ‘위험’하기까지 하다. 자신과 조금 다른 생각에 대해 쉽게‘반동’의 딱지를 붙이는 ‘폭력’은 그가 말하는‘세계평화’에 기반이 돼야 할 ‘신뢰’ 아닌 ‘불신’을 조장할 뿐이기 때문이다. ‘일본 리버럴’의 ‘우경화’를 비판하려면 무엇이 그들을 ‘우경화’로 몰고 가는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분명한 것은 ‘일본 리버럴’을 적으로 돌리는 일은 보상을 점점 더 어렵게 할 뿐이라는 점이다.
나는 2010년 일본의 신문에 쓴 칼럼에 위안부문제의 보상이 필요하다고 썼다. 또 보상을 거부하는 우파의 사고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책을 준비 중이다. 다만 서 교수와는 다른 방식의 말걸기가 될 것이다. 딱지붙이기와 선입견으로는 그들을 변화시킬 수 없을 것이기에.
박유하 세종대·일어일문학과박유하 세종대·일어일문학과
필자는 일본 와세다대에서 일본근대문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는『반일민족주의를 넘어서』,『 화해를 위해서-교과서·위안부·야스쿠니·독도』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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