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찬근의 역사책 달리기
폭력 없는 보편은 가능할까
마이클 레이섬의 <근대화라는 이데올로기>가 던지는 ‘보편의 아이러니’
제1400호
등록 : 2022-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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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레이섬 지음, 그린비 펴냄
미국이 휘청댄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경에 대규모 병력을 집결하며 긴장감을 고조시켜도 엄포만 놓을 뿐 별다른 조처를 못하고 있다. 2021년 아무런 준비 없이 갑작스레 이뤄진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철군은 미국의 리더십에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많은 사람이 카불공항의 아비규환을 보며 46년 전 사이공(베트남 호찌민의 옛 이름) 함락을 떠올렸다.
뒤숭숭한 시절에, 마이클 레이섬의 <근대화라는 이데올로기>를 펼쳤다. 이 책은 미국의 영향력과 자신감이 절정에 달했던 20세기 중반, 제3세계를 향해 야심차게 착수한 근대화 프로젝트에 대한 실패담이다. 지은이는 근대화론이 단순한 프로파간다(선전)나 허울에 그치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신생 독립국들이 소련에 기울고 급기야 앞마당인 쿠바까지 넘어간 상황에서, 미국은 이들 나라에 진보와 발전을 약속하는 매력적인 청사진(로드맵)을 제시함으로써 냉전에서 승리하려 했다. 라이벌인 공산주의가 그러했듯 근대화론은 하나의 세계관이었고, 그 입안자들은 세계를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키려는 신념에 가득 차 있었다.
근대화론을 탄생시킨 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에서 본격화한 사회학의 과학화, 이론화 흐름이었다. 대니얼 러너와 루시안 파이, 월트 로스토 등 근대화론의 이론가들은 근대로 향하는 단선적인 발전 과정이 존재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자신들이 제시한 청사진을 충실히 따르기만 한다면 비서구의 수많은 ‘전통사회’ 역시 자유와 번영을 누릴 터였다.
근대화론이라는 ‘객관적 과학법칙’을 실험해볼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미국 대외정책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끼던 젊은 대통령 존 F. 케네디가 백악관에 입성한 것이다.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대규모 원조와 자문 프로젝트인 ‘진보를 위한 동맹’이 실시됐고, 수많은 대학생이 평화봉사단으로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향해 떠났다. 안타깝게도 결과는 그리 좋지 않았다. 비서구의 구조적 문제를 외면했기 때문이지만, 누구보다 과학을 강조하던 근대화론자들은 이를 비서구인의 의지 부족과 나약함 탓으로 돌렸다.
근대화론의 이데올로그들이 전통과 근대, 서구와 비서구에 대한 납작한 이해를 갖고 있었다고 비판하는 건 이 책에 대한 지나치게 납작한 독해일 것이다. <근대화라는 이데올로기>는 보편을 지향하는 모든 기획이 부딪힐 수밖에 없는 곤경을 드러낸다. 지은이에 따르면, 근대화론은 ‘명백한 운명’과 ‘뉴프런티어’라는 미국의 역사적 배경에 뿌리를 두고 있다. 아무리 보편을 자임할지언정 그 기원은 어디까지나 특수할 수밖에 없다.
그런 만큼 다른 사회에 보편을 이식하려는 시도는 언제나 강압적이며 때로는 폭력적이기까지 하다. 미국이 남베트남에서 공산 게릴라에 맞서기 위해 건설한 전략촌은 이를 잘 보여준다. 자유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설파하는 전진기지여야 했을 전략촌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폐쇄적이고 억압적인 곳이었다. 전략촌 주민들은 베트콩의 기습에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강제노역에 시달렸고, 감시탑 아래서 삶의 사소한 부분까지 통제받았다.
일부에서 미국이 예전처럼 보편의 수호자가 돼주기를 바라는 지금, 보편의 아이러니를 드러내는 이런 작업은 불편할 수 있다. 하지만 불편하다 해서 외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군이 철수하자마자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린 카불의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가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특수로부터 출발하지 않은 보편, 폭력을 수반하지 않는 보편이란 과연 가능한 것일까? 2022년의 인류가 어려운 질문을 떠안았다.
유찬근 대학생
*유찬근의 역사책 달리기: 달리기가 취미인 대학생의 역사책 리뷰.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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