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 한국 정치사 어떻게 볼 것인가?
Michael 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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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4.10.09
[미주 뉴스앤조이=마이클 오 기자] 신앙은 정치와 무관한가? 많은 이들은 신앙을 정치와 섞지 말라고 경고한다. 하지만 세계와 인간을 창조하고, 역사 가운데 뜻을 펼치시는 하나님을 믿는 종교인 기독교를 두고 이런 말을 하기는 쉽지 않다.
신간 "뜻으로 본 한국 정치"
그리스도인으로 비교 정치를 전공하고 평생에 걸쳐 다양한 정치사적 주제를 연구해 온 재미 정치학자 박문규 박사는 정치와 역사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근 출판한 책 “뜻으로 본 한국 정치”(민들레 피는 날)는 이런 고민에 대한 응답이다. 사회과학자로서 한국 정치사를 바라보면서 신앙의 의미를 적용해 보려는 노력의 결실이다.
이런 노력은 결국 기독교 신앙이 절대로 세계와 무관하지 않으며, 기독교인의 삶 역시 당면한 시대적 상황에 대한 신앙적 응답이 될 수 있도록 길을 열 수 있다.
무엇보다도 한 사람의 신앙인으로 이 책을 썼다는 박문규 박사를 만났다. 정치학자로서 바라보는 한국 정치사와 그 가운데 신앙인으로서 그의 시선을 따라가 보자.
간단한 책 소개 부탁한다.
책 서문에서도 밝혔지만, 함석헌 선생의 책 “뜻으로 본 한국 역사”을 눈물로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 책을 읽으면서 가슴 깊이 박힌 질문 ‘나에게 기독교는 무엇인가, 나에게 한국은 무엇인가, 그리고 나에게 역사는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으로 책을 썼다.
50여 년 사회과학을 공부하면서 쌓인 한국 정치에 대한 시각을 신앙적인 관점으로 풀었다. 1945년 해방 후 정국부터 2017년 박근혜 정부까지 다양하고도 중요한 정치사를 따라간다.
한가지 미리 밝히고 싶은 점이 있다. 이 책은 객관적인 역사 기술이나 하나의 정립된 이론이나 방법론을 적용한 책이 아니다. 비록 그 대상이 한국 근현대사, 특히 정치사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뜻을 역사에서 발견하고자 하는’ 한 신앙인의 분투로 읽어주었으면 한다.
사회과학과 신앙의 콜라보다. 여러모로 쉽지 않은 선택인데, 특별한 의미가 있는가?
근래 사회과학계가 부딪친 문제 중에 하나는 심각한 방법론상의 혼동이다. 인문과학, 특히 사회과학적 방법론으로 세계를 설명하던 시대는 저물고 있다. 특별히 근현대 기술문명의 발전과 더불어 경험한 처절한 실패를 보면서 이성 문명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생각이 든다.
한편, 신앙도 비슷한 난관에 봉착해 있다. 신앙적인 시각으로 교회를 넘어 세계가 처한 문제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교회와 신앙은 갈수록 이데올로기의 수단으로 사용될 뿐 인류 역사와 문명에 어떠한 대안도 제시하기 어려운 실정인 것 같다. 이러한 양쪽의 한계 가운데 평생을 이어온 고민이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이런 한계는 새로운 가능성이 될 수도 있다. 상이한 두 영역이 신중하고 겸손한 자세로 서로에게 문을 열고 대화하려 한다면 말이다. 사회 역사적인 현상을 신화적으로 해석하거나, 성경이나 신앙의 내러티브를 사회 과학적으로 환원하려는 것이 아니다.
한편으로는 기존 사회 과학적 해석의 한계를 외부의 시선을 통해 새롭게 접근해 보려는 시도다. 하지만 더 중요하고 직접적인 집필 동기는 신앙인이 어떻게 세계와 역사 문제에 있어 피상적이거나 신화적이지 않고, 오히려 적실하고도 실질적인 해석과 방향의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을 나누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평생을 바쳐온 사회 과학 공부를 신앙의 영역에 접목하려는 것이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교회에 특별히 영향을 미친 중요한 사건을 꼽자면?
이 책에서는 다룰 수 없었지만, 한국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건은 3.1운동과 신사참배라고 생각한다. 3.1 운동은 단순히 일제에 저항하는 운동이 아니다. 3.1 운동 선언문을 보면 제국주의의 폭압을 넘어서 진정한 인류 평화와 번영을 외치고 있다. 여기에 담긴 정신은 당시 기독교가 한민족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알 수 있다. 권력과 폭력에 굴하지 않고 진정한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이루려는 정신이 잘 드러나 있다.
이에 반해 신사참배는 3.1 운동에서 드러난 기독교 정신이 제국주의에 굴복하고 권력에 기생하는 종교로 전락한 시점으로 볼 수 있다. 이런 권력에 굴복한 종교로서 한국 기독교는 이후 독재 정권을 거쳐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한국 기독교는 불의한 권력에 저항하고 핍박받고 헐벗은 백성 편에 서서 하나님 나라 실현을 외치는 이들과 그 반대편에서 권력에 기대어 고통받는 자와 불의한 역사를 외면하고 자신의 안위와 이리만을 쫓는 이들이 만들어낸 두 줄기 흐름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두 줄기의 흐름이 한국 근현대사에 있어 한국 교회가 어떻게 정치와 연관을 맺고 영향을 주고받았는지 밝힐 수 있는 중요한 관점을 제공한다고 본다.
박문규 박사
한국 정치는 계속 혼란스러운 시기를 겪고 있는 것 같다. 교회에 당부할 이야기가 있다면?
함석헌 선생의 침묵과 용기를 기억하라고 권하고 싶다. 1960년 4·19 혁명 당시 모두가 독재를 비판하며 목소리를 높일 때 선생은 오히려 조용히 목소리를 낮추었다. 하지만 이듬해 박정희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자, 대부분의 교회는 몸을 낮추고 침묵을 지켰다. 서슬 퍼런 권력 앞에 목숨을 걸고 이야기할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때 선생은 사상계에 ‘5.16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글을 발표했다. 권력 앞에서 정면으로 5.16은 혁명이 아닌 쿠데타이며 불의한 정권이라고 당당히 고발했다.
누구나 정치와 시대를 논할 수 있을 때 교회는 오히려 침묵하고 더욱 낮은 곳에서 묵묵히 신앙을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말로 떠드는 신앙은 소모적일 수 있다. 전광훈과 같은 가짜 기독교인이 신앙의 탈을 쓰고 외치는 소음에 뒤섞여 올바른 목소리가 오해되기 쉽다.
하지만 누구도 목소리를 높일 수 없을 때가 찾아올 수 있다. 그때 교회는 진정으로 목소리를 높일 수 있도록 용기를 키워야 한다. 나치 정권하에 대부분 독일 교회가 정권에 부역할 때 고백교회들이 분연히 일어섰던 것처럼, 함석헌 선생이 독재정권 앞에 외쳤던 것처럼, 교회도 진정 선지자로서 사명을 감당해야 할 때 목소리를 내야 한다. 지금은 너무나도 많은 말들이 나돈다. 교회도 그저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에 한목소리를 보태려고 한다. 이럴 때는 목소리보다는 행동과 실천으로 침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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