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09

Park Yuha - 박경리에 관한 글을 써놓고, 과거에 언급한 적이 있었나 싶어 검색해 보다 발견한 2015년 글.... | Facebook

Park Yuha - 박경리에 관한 글을 써놓고, 과거에 언급한 적이 있었나 싶어 검색해 보다 발견한 2015년 글.... | Facebook

박경리에 관한 글을 써놓고, 과거에 언급한 적이 있었나 싶어 검색해 보다 발견한 2015년 글. 잘 아는 페친인데도 무수한 비난에 시달리던 때라 미처 못 봤던 것 같다.
여전히 나에 대한 편견을 갖고 계신 분들 보십사고 옮겨둔다. 폭력을 만드는 건 바로 편견이기도 하므로.
(친공으로 해 두신 글이어서 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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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의 이런저런 방황의 종착지는 결국 취직이었다. 늦깎이 취업인데도 불구하고 IMF직전이라 취업원서만 들이밀면 대충 받아주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입사 첫해, 바쁜 직장생활임에도 어떤 계기로 일본의 국민작가 '나쓰메 소세키'의 '문門'이라는 작품을 읽게 되었고, 그뒤로 소세키의 작품은 닥치는대로 읽으며, 근 1년정도를 '소세키'라는 마력에 이끌리는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이후 틈틈히 소세키에 관한 비평서를 읽으며 일본작가인 소세키에게 끌리는 정체를 규명해 나가기 시작했고, 소세키라는 작가의 매력과 내가 서 있어야 할 곳은 서로 전혀 달라야 한다는 사실(당위)과 소세키에게서 빠져 나와야 한다는 사실을 서서히 깨달았다. 그리고 어느 책에서인가 작가 故박경리 선생님과 도올 김용옥 선생님의 대화에 소세키가 등장을 했고, 박경리 선생은 소세키는 표절작가에 불과하다며 단칼에 베어버리셨고, 도올 선생님 조차도 박경리 선생님의 그런 말씀에 놀라워 하는 듯 했다.
난 지난달 말에 박유하 교수의 「내셔널 아이덴티티와 젠더」를 완독했다. 2011년에 초판이 나왔고, 내가 주문해 받은 것도 초판이니까, 아마 해당 전공자 정도나 읽었지 않았나 싶다.
이 책에 대한 가라타니 고진의 반응을 짧게 소개하면,
"나 자신의 소세키론을 비롯한 수많은 소세키론 속에서, 이 책은 획기적이다. 소세키론에 존재해온, 즉 근대일본의 담론에 존재해온 모든 암묵적인 전제를 깨버렸다. 박유하 교수는 여성이자 한국인이라는 이중의 타자성을 살려, 이를 해냈다"
한 마디로 일본국민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국민작가 소세키를 '까는' 책이다. 일본의 근대는 모국어의 신화에 의존해 폐쇄와 배제를 가장 많이 반영한 '문학'에서 내셔널 아이덴티티를 형성해 가는 것이었고, 일본의 근대적 자아란, 개인의 내면이면서도 민족적 자아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치밀하게 분석해 간다. 일본의 근대적 자아라는게 결국 남성적, 강한 자의 자아이며, 근대 일본의 '제국'적 자아로 나아갔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런 일본의 전체주의 국민적 자아가 조선의 작가/지식인들에게 어떻게 스며들어서 이광수, 서정주와 같은 친일 문학이 나오게 되었는지도 서술되어 있다.
박유하 교수의 책을 읽으며, 브라이언 다이젠 빅토리아의 「불교 파시즘」이 연상되었다. 군국주의 시대에 불교라는 평화의 종교가 어떻게 일본 파시즘과 관계를 맺으며 대량의 학살과 집단 자살 특공대의 정신적 역할을 했는지를 상세하게 보여준 책이다. 두 책 모두 일본의 근대와 그들의 민족적, 종교적 자아가 무엇인지 밝혀주는 역저이다.
박유하 교수를 비판하는 무수한 사람들의 글에는 오해가 대부분이라 판단되어 사실 별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정조와 불량 선비 강이천'이라는 책을 쓰신 어느 역사학자의 비판은 무척 가슴이 아팠다. 역사학을 전공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박유하 교수가 더 이상 위안부 문제에 관여하지 말라는 것과 본인이 가장 잘하는 것을 하라는 충고엔 '깊은 슬픔'마저 느꼈다. 오늘날과 같이 학문간의 교류가 없이는 자신의 전공마저도 위태로운 지경에, 일본의 근대를 말하는데 문학을 제외한 역사만을 말하는게 가능한지, 그리고 한국의 역사학자들은 그 시기를 서술하는데 얼마나 많은 연구서를 내놓았는지 묻고 싶다. 내가 아무리 한국학자들의 연구서를 찾아봐도 이렇다 할 시원하게 접할 수 있는 책은 거의 한정되어 있다. 우리는 일본의 근대를 알아야 하고, 그래야 그들의 논리를 넘어설 수 있다는 건 극히 당연한데, 그마저도 일본의 역사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의존해야 한다는게 우리 처지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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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 Ma, 이충원 and 254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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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Yuha
그러나 소세키를
“표절작가에 불과”하다는 박경리의 평가는, 자신도 제어하지 못한 듯한 듯한 증오가 만든 또하나의 독단이자 편견일 뿐이다.
13
Park Yuha
서정주의 경우, 이 글에서 요약된 것과 반대로, 친일소설로 간주됐던 단편을 분석, 실은 내밀한 저항이 담긴 소설이었다고 썼다.
김태문
일본의 근대화는 그저 얻어진 것이 아닌
수많은 살상자를 내고 스스로의 자각을
통한 치열함이었더군요.
2
Deokin Lee
뼈를 때리는 이야기입니다. 저도 부끄러운 마음을 이제야 느낍니다.
2
Park Yuha
Deokin Lee 마음 남겨 주셔서 고맙습니다.
2
David Yoo
요 얼마전에는 교수님을 부역자라고 표현한 사람의 글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스스로 지식있다 생각하는 사람들 같습니다. 창피한 일이죠….
2
Nakyung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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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라 불리는 사람들 중에는 교만하기 그지 없는 부류들이 있지요. 전문가의 정의가 그 사람이 완벽한 신이라는 의미도 아닌데...그간 너무 고생 많으셨어요. ㅠㅠ
3
Park Yuha
이나경 고맙습니다
진민
아무리 생각해도 단순히 상식부족이라고 하기엔...
무지라고 보기에도...
너무 상처 깊은 못난 부류가 많은 듯요 ㅜ ㅜ
모쪼록 이제 좋은 말씀만 좋은 인식만 더 많은 에너지로 바뀌길 바랍니다!~^^
May be an image of Lewisia and buttercup
Park Yuha
진민 또다른 진영이 만들어졌으니 다른 얘길 못하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진민
박유하 조용한 고집이 늘 이기는 걸 많이 본 사람이라서...^^
품격있는 논리와 조용한 고집에 늘 응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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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onggun Choi
유하선생님에 대한 비난은 약자일 것으로 만만하게 보고 일벌백계 시범쪼로 달려 들은 몇몇 인간들의 오만함에 의해 비롯되었지만 그에 부응하는 족속들은 비겁하기 짝이 없어요. 하하 그런데 이렇게 끈덕지게 끝까지 차분하게 대응하는 목계(木雞)일 줄 몰랐던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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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Yuha
Hyonggun Choi 제가 들러붙은 기억은 없는데요..
Hyonggun Choi
Park Yuha 아 또 … 하하 그럼 고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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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bong Kim
고맙습니다 그간 애쓰셨습니다
Sanghoon Lee
박경리의 반일성향에 대해 알게된건 도올세설 중인터뷰로 인해서입니다.
당시엔 거침없는 언변에 그런가? 하고 경도된 바 있지만, 지금보면 그 내용을 읽고 인정하는 도쿄대 중국철학과 교수의 역량이 훨씬 크다고 생각합니다.
저 알던 분 사모님이 박경리씨와 교유하던 친구라 나온 박경리 씨에 대한 인상은 썩 좋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몹쓸 사람이라고 밥 시간에 손님을 제 집에 불러놓고 세시간여를 자기 얘기만 해댄다 하더군요.
박경리씨는 일본인으로 성장기를 보내고 성년 즈음 해방을 맞아 대학교육을 받은 세대더군요. 세계관이 전복되는 특이한 경험을 한 세대. 이 세대가 반일성향이 특히 강하다고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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