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리에 관한 글을 써놓고, 과거에 언급한 적이 있었나 싶어 검색해 보다 발견한 2015년 글. 잘 아는 페친인데도 무수한 비난에 시달리던 때라 미처 못 봤던 것 같다.
여전히 나에 대한 편견을 갖고 계신 분들 보십사고 옮겨둔다. 폭력을 만드는 건 바로 편견이기도 하므로.
(친공으로 해 두신 글이어서 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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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의 이런저런 방황의 종착지는 결국 취직이었다. 늦깎이 취업인데도 불구하고 IMF직전이라 취업원서만 들이밀면 대충 받아주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입사 첫해, 바쁜 직장생활임에도 어떤 계기로 일본의 국민작가 '나쓰메 소세키'의 '문門'이라는 작품을 읽게 되었고, 그뒤로 소세키의 작품은 닥치는대로 읽으며, 근 1년정도를 '소세키'라는 마력에 이끌리는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이후 틈틈히 소세키에 관한 비평서를 읽으며 일본작가인 소세키에게 끌리는 정체를 규명해 나가기 시작했고, 소세키라는 작가의 매력과 내가 서 있어야 할 곳은 서로 전혀 달라야 한다는 사실(당위)과 소세키에게서 빠져 나와야 한다는 사실을 서서히 깨달았다. 그리고 어느 책에서인가 작가 故박경리 선생님과 도올 김용옥 선생님의 대화에 소세키가 등장을 했고, 박경리 선생은 소세키는 표절작가에 불과하다며 단칼에 베어버리셨고, 도올 선생님 조차도 박경리 선생님의 그런 말씀에 놀라워 하는 듯 했다.
난 지난달 말에 박유하 교수의 「내셔널 아이덴티티와 젠더」를 완독했다. 2011년에 초판이 나왔고, 내가 주문해 받은 것도 초판이니까, 아마 해당 전공자 정도나 읽었지 않았나 싶다.
이 책에 대한 가라타니 고진의 반응을 짧게 소개하면,
"나 자신의 소세키론을 비롯한 수많은 소세키론 속에서, 이 책은 획기적이다. 소세키론에 존재해온, 즉 근대일본의 담론에 존재해온 모든 암묵적인 전제를 깨버렸다. 박유하 교수는 여성이자 한국인이라는 이중의 타자성을 살려, 이를 해냈다"
한 마디로 일본국민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국민작가 소세키를 '까는' 책이다. 일본의 근대는 모국어의 신화에 의존해 폐쇄와 배제를 가장 많이 반영한 '문학'에서 내셔널 아이덴티티를 형성해 가는 것이었고, 일본의 근대적 자아란, 개인의 내면이면서도 민족적 자아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치밀하게 분석해 간다. 일본의 근대적 자아라는게 결국 남성적, 강한 자의 자아이며, 근대 일본의 '제국'적 자아로 나아갔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런 일본의 전체주의 국민적 자아가 조선의 작가/지식인들에게 어떻게 스며들어서 이광수, 서정주와 같은 친일 문학이 나오게 되었는지도 서술되어 있다.
박유하 교수의 책을 읽으며, 브라이언 다이젠 빅토리아의 「불교 파시즘」이 연상되었다. 군국주의 시대에 불교라는 평화의 종교가 어떻게 일본 파시즘과 관계를 맺으며 대량의 학살과 집단 자살 특공대의 정신적 역할을 했는지를 상세하게 보여준 책이다. 두 책 모두 일본의 근대와 그들의 민족적, 종교적 자아가 무엇인지 밝혀주는 역저이다.
박유하 교수를 비판하는 무수한 사람들의 글에는 오해가 대부분이라 판단되어 사실 별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정조와 불량 선비 강이천'이라는 책을 쓰신 어느 역사학자의 비판은 무척 가슴이 아팠다. 역사학을 전공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박유하 교수가 더 이상 위안부 문제에 관여하지 말라는 것과 본인이 가장 잘하는 것을 하라는 충고엔 '깊은 슬픔'마저 느꼈다. 오늘날과 같이 학문간의 교류가 없이는 자신의 전공마저도 위태로운 지경에, 일본의 근대를 말하는데 문학을 제외한 역사만을 말하는게 가능한지, 그리고 한국의 역사학자들은 그 시기를 서술하는데 얼마나 많은 연구서를 내놓았는지 묻고 싶다. 내가 아무리 한국학자들의 연구서를 찾아봐도 이렇다 할 시원하게 접할 수 있는 책은 거의 한정되어 있다. 우리는 일본의 근대를 알아야 하고, 그래야 그들의 논리를 넘어설 수 있다는 건 극히 당연한데, 그마저도 일본의 역사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의존해야 한다는게 우리 처지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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