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통령과 한동비대위원장의 갈등이 봉합되었다니
다행이다.
나는 처음부터 ’한동훈은 윤석열의 아바타‘라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다.
떠나오기 전에 <1973년생 한동훈>도 읽어 봤는데, 한동훈을 ‘보수의 아이콘’으로만 보는 시각이어서 위화감이 있었다.
윤석열이 다른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에 국힘당을 선택한 것처럼, 국힘당 정권이 한동훈을 법무장관으로 발탁했기 때문에 한동훈은 국힘당을, 나아가 윤석열을 구하러 나선 것으로 나는 이해한다.
전에도 여러번 한동훈의 특별함에 대해 쓴 적이 있지만, 왜 한동훈을 지지하느냐고 어떤 분이 물어보시기에 써 본다.
윤대통령에 대해선 실망도 크지만(그래도 외교면에서 활약했고, 국제사회에서 문재인보다 훨씬 존재감이 커진 건 비판자라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물론 북한과의 관계를 좀 더 유연하게 만들지 못하고 있는 것엔 나도 비판적이다. ), 대통령 탄핵이라는 국가적 불행한 사태가 또다시 일어나서는 안되고, 그러려면 민주당의 독재를 막아야 하는 것엔 의문의 여지가 없다.
한동훈이 리더인 국힘당은 이하의 장점을 가질 수 있다.
*노인정당 이미지 쇄신.
*진보적/혁신적 이미지(실제로 진보적 정책 수행).
*한국이 키운 최상급 인재로서 세계 속에서의 활약과 존재감을 미리 예견시켜 국민들의 자존심 만족. (한동훈에 대한 열광은 임윤찬에 대한 열광과 다르지 않다. )
*뭇 시선을 사로잡는 능력. 한동훈에게 쏟아지는 시선은 (국힘당을 구하러 나온) 메시아로서의 정치가 이전에, 아들처럼, 조카처럼, 젊은동생처럼 옆에 두고 싶은 욕망의 시선이다.
연예인처럼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직업이 정치인인 이상, 그런 시선은 국힘당으로선 최고의 복이다.
솔직히 한동훈이 비대위원장을 수락했을 땐 나도 놀랐다. 하지만 이후의 행보를 보면서 한동훈의 선택이 ’개혁이 아니라 접수’ 였음을 알게 되었고, 비로소 그의 수락의 의미를 이해했다.
국힘당과 윤석열을 지키는 건 국힘당을 ‘접수’해야 가능한 일이었는데, 그걸 할 수 있는 건 자신 밖에 없다는 걸 한동훈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전에도 썼지만 한동훈의 최대 장점은 언어구사력이다.
그저 검사출신이라는 이유로 ’칼(武)’의 이미지를 부여하려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는 기본적으로 ‘문(文)’의 사람이다. 가끔 소개되는 그의 ‘문화장착력‘ 이 거기에 꽃을 달아주고 있기도 하다.
하여 한동훈은 더이상 30년전 과거의 차갑고 냉혹한 검사가 아니다. 정치적 필요에 의해 30년전 체험에 의식적으로 매달리거나 무의식적으로 사로잡혀 있는 이들이 아니라면 그 사실은 누구라도 인정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의 태도와 말은 2020년대의 한국이기에 가능한 어떤 것이고, 그러니 한동훈은 ‘한국의 변화’ ‘시대의 변화’ ‘검찰의 변화’를 상징하는 인물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내가 한동훈에게 기대가 큰 가장 큰 이유는 심각한 좌우분열로 소모가 큰 한국을 어쩌면 바꿀 수도 있을 인물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민주당보다 더 진보적이고 국힘당보다 더 생각이 자유로운 이들을 내세워 당선시키는 일로.
정치적 소신과 상관없이 합리적이고 윤리적인 이들이 더 많은 힘을 갖도록 하는 일로.
멀리 떨어져 있는지라 발언할 생각이 없었지만, 한동훈에 대한 열광을 못마땅해 하거나 한동훈 자신을 폄훼하는 이들이 눈에 띄어서도 써 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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