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학, 미국 유학파 지배로 다양·주체성 상실”
입력 2010.08.20비판사회학회·서강대 연구소 학술대회
미국은 한국 대학 교수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국가다. 미국은 ‘한국 지식인 생산 공장’으로도 불린다. 한국 대학 교수 중 미국에서 학위를 받은 사람은 절반이 넘는다. 사회·정치외교·경제학 등 사회과학 분야나 서울 시내 대학의 미국 학위 비율은 높아진다. 학문의 대미 종속과 대학 체제의 미국화는 기정사실이 됐고, 우려와 비판도 계속 나온다.
비판사회학회와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가 지난 16일 개최한 ‘한국사회학의 사회학’ 학술대회에서도 미국사회학의 지배와 유학 현상이 한국사회학의 위기 요인으로 주요하게 논의됐다.

서구, 특히 미국 유학은 한국에서의 ‘학문 자본’ 획득과 사회적 지위 상승의 수단이다. 학벌차별, 성차별 같은 한국 지식사회의 모순도 유학을 부추긴다. 미국 학문의 한국 지배는 학문 다양성 상실과 한국 사회 이해 및 비판에 걸림돌이 된다는 지적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사진은 유학 엑스포 영국·미국 부스에서 설명을 듣는 유학 준비생들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김종영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사회의 학력과 사회지위 구조, 학벌·성차별 체제 등 권력 구조와 개인의 심리 등 여러 차원에서 지식과 지식인 생산 문제를 설명한다. 한국 학계에서 주류 담론인 ‘제국-식민지’(또는 ‘중심-주변’)의 ‘지적 식민주의’ 설명 틀을 뛰어넘으려는 시도다. 김 교수는 (유학) 수요자 입장에서 ‘미국대학의 글로벌 헤게모니’를 분석한다. 그는 “글로벌 대학 순위에서 미국 연구중심대학은 최상위인데 한국 대학은 중하위”라며 “불균등 구조는 또 다른 글로벌 기회 구조를 만들어낸다”고 했다. 미국 연구중심대학으로의 유학은 자신의 상징적 자본을 고양해주는 수단으로 작동한다. 김 교수는 “대학·연구소 등 연구집단에 종사하지 않더라도 미국 학위가 직업 영역에서 자신의 위상을 올려주는 것은 자명하다”고 했다. 미국 석·박사 학위는 한국에서 엘리트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고, 교수 임용 등 학문 영역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위한 ‘학문 자본’을 전수받을 수 있는 최적의 장소가 미국이라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사회적 지위 상승 수단 △학문의 중심에서 배움 추구 △코스모폴리탄 엘리트가 되고 싶은 욕망과 함께 학벌차별, 성차별, 한국 대학문화 비민주성 같은 한국사회·대학의 모순을 유학 동기로 분석한다. 김 교수가 보기에, 한국 학생들은 ‘미국 대학/한국 대학’의 헤게모니 관계에다 학벌·젠더·계층의 권력 관계를 동시에 경험한다. 그는 “학벌이 낮은 학생이나 여학생들에게 한국 대학은 고도로 억압적인 장소이며 자신의 꿈과 이상을 실현시키기에 불가능한 장소”라며 “미국 대학은 이들에게 하나의 ‘해방의 수단’이 된다”고 말했다. 또 “한국 대학은 학문과 배움 영역에서 ‘문화적, 도덕적 리더십’ 즉 헤게모니를 상실하고 있다”며 “이런 모순은 미국 대학의 글로벌 헤게모니를 더욱 공고하게 만들고 한국 대학과 연구자 집단은 경멸의 대상이 된다”고 말했다. 한국 학벌체제와 성차별체제와 미국 유학 현상의 인과관계를 설명한 김 교수는 “학벌과 남성 중심의 학문 지배는 구조적·문화적으로 학문활동을 왜곡시키고 전문가 계층의 불평등을 생산하기 때문에 시급하게 해결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학과 교수 임용 간의 연관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선내규씨(서강대 사회학과 박사과정수료)는 2009년 12월 사회학자 36명(최종 학위 취득 국가 미국 19명, 국내 13명 등)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80.6%(29명)가 “후배에게 유학을 권하겠다”고 밝혔다. 이유는 “교수임용에서 외국박사가 갖는 이점”(62.1%, 19명) 때문이다.
선씨는 “한국사회학의 대외 종속성은 한국사회학 장의 낮은 자율성과 한국사회학자들의 역할 정체성의 혼란에서 기인한다”며 “이 혼란은 사회학 장의 공정한 게임 규칙에 따른 치열한 경쟁과 엄격한 평가, 정당한 보상체계를 교란시킨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신분적 동료의식으로 충전된 증여의 연결망과 유학을 매개로 한 종속적 재생산구조” 문제도 함께 지적했다.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는 미국 중심 주류 사회학이 한국사회학을 지배하면서 학문 다양성과 사회 인식의 총체성이 상실되는 문제를 짚었다. 윤 교수는 “미국 중심의 주류 사회학은 기본적으로 미국사회를 이해하기 위한 학문으로서 한국사회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저해한다”고 말했다. 미국사회학의 지적 헤게모니와 유학, 한국 내 인적지배 문제도 분석했다. “미국사회학의 지배는 미국 유학 박사들에 의해 관철된다는 점”이라며 “미국사회학의 지배를 벗어나 학문적 다양성과 주체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지배적인 재생산 기제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미국 유학은) 한국사회의 전형적인 집단주의, 분파주의 등이 맞물려 인적지배의 메커니즘으로 작동하며, 인적지배는 학자들의 재생산 양식을 결정한다”고 말했다. 그는 “외국 유학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강력한 감성적 유대의 고리가 된다는 사실을 일상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고 전했다.
윤 교수는 비판사회학의 쇠퇴 문제와 유학 문제 간 상관 문제도 지적하고 있다. 그는 “미국이나 미국사회학과의 연관성이 높을수록, 미국 비판이나 한·미관계, 한국사회 현실에 대한 객관적 인식이 어렵고, 미국에서 교육받고 미국을 수시로 드나들면서 그러한 사실을 자기 정체성으로 구성하는 연구자가 미국, 미국사회학과 거리를 두기란 쉽지 않다”면서 “(미국과 거리를 두고 있는) 강정구 교수나 최장집 교수 등은 오히려 희한한 사례”라고 말했다.
김종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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