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20

손민석 대한제국 논쟁


손민석
6 hrs ·



트위터에서 대한제국을 갖고 논쟁이 벌어지길래 간략하게 대한제국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이태진과 논쟁한 김재호의 고종 비판의 핵심은 근대국가의 핵심에는 정부 재정과 왕실 재정의 분리를 지표로 하는데 고종의 대한제국은 오히려 정부 재정을 왕실 재정에 종속시켜버렸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왕실 재정이 근대화 산업에 투자되기보다는 대부분 의례 등의 낭비에 사용되거나 고종 개인과 왕실을 호위할 군사 분야에만 집중적으로 투입되며 전체적으로 근대화를 추동할 성과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점을 핵심으로 한다. 게다가 이념적으로도 대한제국은 전제군주정을 추구하고 있었으며 근대 사회 창출의 기반인 "근대적 개인의 창출"에 상응하는 사적 소유권제의 도입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이러한 김재호의 주장은 이영훈의 2011년 논문 "대한제국기 황실재정의 기초와 성격"에서 확증된 뒤에 그 뒤를 이은 조영준의 연구서 <조선후기 왕실재정과 서울상업>으로 종합된다. 이영훈은 왕실의 주방에 식재료를 공급하는 명례궁의 수입부와 지출부를 분석하여 18세기 말 이래 왕실 재정이 점진적 팽창을 거쳐 19세기를 거치며 항시적인 적자상태에 빠졌고 그런 적자 상태에서도 화폐팽창으로 인해 재정 규모가 3~4배나 증가했음을 지적한다. 특히 황실이 중심이 되어 통화발행을 장악함으로써 이 막대한 재정을 뒷받침했다는 점을 밝혀낸다. 황실이 조폐국을 장악해 조성한 막대한 재정의 대부분은 왕실, 황실 의례와 소비를 위해 사용되었다. 이영훈은 연구를 총괄하면서 조선왕조의 국가재정은 대한제국기에 이르러 왕실의 가산家産으로 퇴락하게 되었다고 지적한다. 18세기까지만 해도 이학理學 군주들이 극히 조심히 다루며 '자연의 질서'인 시장질서에 맞춰 행하던 화폐의 발행이 19세기 대한제국에 이르러 어떻게 황실의 사치와 가신들을 먹여살릴 수단으로 전락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연구가 부족하다.

조영준의 연구는 하나의 덩어리로 파악되던 왕실 재정을 내수사와 각 궁, 즉 1사4궁을 중심으로 분석하면서 왕실 재정은 이미 18세기 말부터 구조적으로 적자 상태에 놓일 수밖에 없었음을 증명한다. 그에 따르면 왕실 재정은 대원군기의 개혁에 의해 급격하게 악화되기 시작한다. 안병태가 지적했듯이 조선왕실은 이미 숙종 때부터 궁방전이 문제가 되고 있었다. 그 지난한 투쟁의 귀결로 대원군은 궁방의 면세결을 없애는데 성공했지만 영구존속궁에 대해서는 개혁을 하지 못했다. 왕실재정의 수입은 급감했는데 의례 등은 비용지출은 여전해서 1880년대 이후로 왕실재정의 적자는 거의 항시화된다.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왕실재정의 지출규모 자체를 줄여야 하는데, 그것은 곧 왕권의 제약과 연결되는 일이었다. 이것을 행할 사회적 집단이 없는 상황에서 왕실 재정의 적자는 계속 이어졌고 그 비용은 서울 상인 등에게 전가되었다.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개혁이 바로 갑오개혁이었다. 갑오개혁은 왕권의 제한 및 왕실재정의 감축 등을 그 내용으로 하여 한국형 근대국가를 건설하려는 움직임이었다. 갑오개혁에 의해 면세가 폐지되면서 모든 무토가 정부에 환원되어 궁방전의 규모는 극도로 감소하게 된다. 이렇듯 갑오개혁을 계기로 왕권이 제한되고 왕권에 기생하여 재생산되던 궁방전 등의 왕실재정 또한 정부재정으로부터 분리되고 축소되면서 한국형 근대국가가 세워지고 있었으나 갑오개혁은 결국 고종을 중심으로 한 왕실 세력의 반격으로 파탄나고, 대한제국이 세워지면서 정부 재정은 산산조각 나서 황실재정에 종속된다. 그 사이에 궁방재정은 앞서 지적했듯이 궁방전의 면세결 감소가 주된 원인이 되어 적자가 누적되어 궁속과 상인에게 부담을 전가하면서 버티다가 대한제국이 건설되고 앞서 지적했듯이 황실이 화폐 주조권을 장악함으로써 급속도로 팽창하게 된다. 대한제국은 근대화 성과를 낸 체제가 아니라 황실이 화폐주조권을 장악하고 국가 재정 중 정부 재정을 황실 재정에 종속시키며 황제 중심의 국가를 세우려는 움직임이었다. 갑오개혁 등의 근대국가 건설 움직임은 친일파 등과 연결되어 있기는 했지만 어찌됐든 한국을 근대사회로 이끄는 방향이었다. 대한제국 하에서 팽창한 황실재정은 결국 식민화 이후 정리되면서 대한제국 황실이 왕공족으로 재편되어 재생산된다. 이씨왕족은 천황가와 연결되어 왕공족으로서 부귀영화를 누리지만 동시에 재산 경영에 실패해 총독부의 골칫거리로 전락하게 된다.

요약하자면 대한제국과 황실은 정부 재정과 왕실 재정을 분리하며 한국형 근대국가를 건설하려는 근대화 방향에 역행해 황제권 - 황실 재정이 중심이 되어 그들의 사치와 낭비를 뒷받침하기 위해 18세기부터 이어져온 조선왕조의 이학 군주적 전통에도 반해 화폐 주조권을 남행하던 반反성리학적, 반反인민적, 반反근대화적 황제독재 체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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