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석
20 April at 00:10 ·
최근에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삼아 자꾸 서방 패권의 종언 운운하는 분들이 많이 보인다. 그 근거가 대체 뭔지 아무리 글을 읽어보아도 잘 모르겠다.
'근대성'이라는 추상으로 퉁치고 넘어가며 한국과 같은 후발주자가 근대성을 더 잘 받아들였다는 식으로 논지를 펼치는 글들이 대부분이다.
한화가 앞으로 달러를 대신해 기축통화가 되는 건가?
기축마스크제, 아니 기축진단키트제로 이행하는 건가?
무슨 소리들을 하는지는 알고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서유럽 - 북미 지역은 일본조차도 경제적으로 그 패권을 넘지 못했다. 유럽정도는 따라잡았다고 생각되지만 미국을 뛰어넘지는 못했다. 중국 또한 아직 한참 남았다. 사실 일본 - 중국 등의 동아시아가 산업지대로 탈바꿈할 수 있었던 것도 서방세력의 끝없는 자본수출 덕이었다.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 또한 마찬가지이다. 세계 질서는 미국의 봉쇄 전략 속에서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미국의 항공모함이 지금도 전세계 바다를 지역별로 나눠서 순찰하며 세계무역질서를 지키고 있다.
국내적으로도 미국이 문제가 많은 건 사실이지만 관료제가 보여주는 역량 자체는 아직도 수준이 높다. 유럽의 경우에는 이미 예전부터 유럽연합이 미국식 연방제와 같은 형태로 재조직되지 않으면 반드시 문제가 터질 것이라고 많은 논자들이 지적했다.
게다가 독일이 유럽연합 내의 패권을 장악한 뒤로 각국에 긴축을 강요하고 산업을 독일 중심으로 재편해왔다. 결과적으로 같은 규모라 해도 중앙집권화된 연방정부가 이끄는 미국과 분권화되어 조직되지 못한 유럽연합 간에 차이가 크다. 유럽연합의 틈을 코로나가 파고 들면서 각개격파 당하고 있다.
이것을 근대성의 문제로 환원하는 건 지나친 단순화가 아닐까. 무엇보다도 코로나 사태는 중국의 정치적 억압, 정보의 부정확성과 정치에 의한 왜곡 등의 문제, 다시 말해서 "근대성의 부족" 때문에 일어났다. 그걸 잊은 이들이 너무 많다. 아시아가 서방의 패권을 대체하고 근대성을 보다 잘 실천하기에는 아직 거쳐야 할 장애물이 너무 많다. 마지막으로 절판된 옛날 책들을 많이 읽는 사람으로서 느끼는 바가 있는데, 우리는 198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거의 쉬지 않고 계속해서 미국 패권의 종언을 주장했다. 그 담론조차도 서방의 진보성향 학자들의 지적 자장권 하에서 제기됐다. 몇 년 뒤에 지금의 서방 패권 종말론이 기억이나 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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