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23

이광수 그의 자서전 6 대학생활


6] 대학생활

나는 마아가릿과 엘렌의 눈물로 보내는 전송을 정양문 정 거장에서 받았다. 나와 한방에 있던,C, F, K,기타 동창 중에 몇 사람도 모두 신귤을 사가지고 역두까지 작별해 주었고, 학교 선생들 중에도 내가 연경 대학을 떠나는 것을 아껴 주 는 이가 있었다.

『남궁군, 우리도 학교 마치고는 동경에 갈는지 몰라. 편지 주게.

이 모양으로 동창들은 이별을 아껴 주었다. 그중에도 C군 은 집이 천진이만큼 나를 따라서 천진까지 왔다. C군은 참 나를 사랑해 주었다. 나는 그후에 C군을 만날 기회가 없었 으나 지금까지도 나는 그를 잊을 수가 없다.

천진에서는 C군에게 끌려서 그의 집에 들어 가 이틀이나 묵으면서 관대를 받았다. 그의 집은 순중국식 저택인데, 참 말 굉장하였다. 대문뿐 아니라 기둥이란 기둥에는 모두 번 들번들하게 옷칠을 하였고 문고리는 번쩍번쩍 하는 주석이 요, 방도 수십이나 되는 것 같고, 하인은 얼만지 알 수가 없 었다.

대문을 들어 시도 안채까지는 중문이 셋이나 있고, 그리고 좌우 줄로도 딴 채에 들어 가는 중문들이 있었고, 화분과 조롱이 수없이 달려 있었다. 큰 부자인 것이 분명하였다. 도 저히 조선에는 그러한 집을 상상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의 어머니와 누이들에게까지 소개를 받았고, 끼니 때에는 십여 명 가족과 한상에서 먹었다. 여자들도 모두 쾌 활하면서도 예절다왔다. 마침 그 아버지는 상해에 갔다고 하여 못 만났지마는 C군의 집에서 지난 일들은 참으로 잊을 수가 없었다.

『남궁군이 북경에 오래 있으면 내 누이를 하나 주려고 했 는데.

C군은 이런 소리를 하였다. 내가 천진을 떠나는 날 C군은 그 누이 하나를 데리고 정거장까지 나와 주었다. C군은 그 누이를 시켜서 차장으로 내게 서양 수선화 한 다발을 주게 하였다. 이것은 내가 수선화를 사랑한다는 것을 C군이 알기 때문이었다.

나는 C군을 가진 중국 사람에게 무한한 호감을 가지면서 천진을 떠났다. 나는 C군 남매가 우두커니 서서 멀어 가는 나를 바라보아 주던 것을 지금도 기억한다. 내 눈에서는 눈 물이 흘렀다.

나는 K학교에 잠깐 들렀으나 이태 동안에 벌써 반은 졸업 하고 반은 몰라 보게 변하고, 그리고 새로 들어 온, 절반은 생소한 학생들을 만났다. 직원 중에도 C라는, 이는 죽고 Y K는 만주로 가고 P는 군서기로 가고, 이 모양으로 변동 이 있었고, N교주는 아직 감옥에서 돌아오지 아니하였다.

동회와 야학도 시시한 모양이었다. 인사의 변천이 덧 없음 을 느꼈다. 그렇게도 오랫 동안 그리워하던 K학교는 벌써 나와는 인연이 끊어진 듯하였다. 그것이 섭섭도 하였다. 나 는 이번에는 애끓는 생각없이 K를 떠날 수가 있었다.

서울에 오니 친구들이 나를 반갑게 맞아 주고 그동안에 내 가 M신문에 쓴 글이 상당히 큰 반향을 일으켰음을 발견하 였다. 그때에는 그러한 글을 쓰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게 학비를 주는 K씨도 나를 반가와하고 무척 관대하였으 며, 내게 촉망을 크게 하는 뜻을 표하였다. 그는 나이는 나 보다 한두 살 위 밖에 아니 되나 벌써 동경서 대학을 마치 고 돌아 와서 학교를 세우려고 계획하는 중이었다. 그는 재 산가의 아들로서 교육과 산업을 일으키는 일을 위하여 전재 산과 일생을 바치겠노라고 말하였다.

신문사에 들러서 놀란 것은, 중추원 참의들과 경학원 직원 들이 연명하여 내 글을 신문에 싣지 말라는 진정서를 총독 부 당국과 신문사 당국에 제출하고, 또 경학원에서 남궁 석 을 반박하고 성토하는 연설회를 열었다는 것이었다.

『어느 사랑에서나 모두 남궁 석이 문제로 논난이오.

하고 M신문 편집국장은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내가 이역 에서 죽음을 머리맡에 놓고 쓴 글들이 이만큼 이만한 영향 을 준 것을 보고 일변 어깨가 으쓱하는 동시에 일변 붓대로 일생을 바치리라 하고 결심을 굳게 하였다.

나의 둘째번 동경 생활은 일언이폐지하면 사상적 고민 생 활이요, 방황 생활이었다. 나는 중학교 시대에서부터 지켜 오던 예수의 가르침에 대한 신앙을 잃어 버렸다. 그것이 싫 어서 내버린 것이 아니라, 아니 버리리라, 아니 떠나리라 하 고 애를 쓰면서도 점점 멀어 간 것이다.

나는 일요일에 교회에를 갔고 청년회의 직원도 되었으나, 내 정신 생활에는 벌써 예수를 믿는 생각은 없어지고 말았 다. 나는 아침 저녁 올리던 기도도 언제 그만 두는지 모르 게 그만 두었다.

내가 택한 학과는 철학이었다. 나는 K라는 젊은 교수에게 예루살렘의 철학 개론을 배우고, 칸트파의 권위라는 또한 K 교수에게 서양 철학사의 강의를 들었고, 또 칸트의 순수 이 성 비판이니 실천 이성 비판이니 하는 것을 배우고, 그 밖 에 선생이 좋다는 책이면 스피노자니 빈델반트니 파울센이 니 포체니, 힘 닿는 대로 읽어 보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철 학에서 나는 아무 광명도 얻지 못하였다.

우주는 물로 되었느니 불로 되었느니, 하나이니 여럿이니, 다 한가한 재담만 같았다. 오직 하나 귀에박히는 것이 칸트 의 인식론이다. , 우리가 보는 세계는 오직 우리가 보는 세계일 따름이지 그 본체는 알 수 없다는 말이다. 나는 Dig an sich라는 말을 무척 인상 깊게 생각하였다.

우리는 우리의 이성으로 이 우주의 본체를 알아 내일 수는 없다. 오직 과학을 통해서 우리 오관에 들어 오는 현상 세 계를 알아 볼 수가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허하여 진 것은 오직 자연계의 과학적 탐구뿐이다. 이렇게 생각하 게 되었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는 다만 종교를 비웃을 뿐 아니라 철학 까지도 비웃었다. 그래서 나는 생물학 강의를 듣고 천문학 강의를 듣고 실험 심리학을 열심히 공부하고, 그리고는 사 회학과 정치, 경제에 도리어 흥미를 느꼈다. 나는 다아윈의 진화론이 마땅히 성경을 대신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헤에겔 의 <알 수 없는 우주>라는 책을 읽을 때에는 비로소 진리에 접한 것처럼 기뻐하였다.

"Struggle for life. (살려는 싸움)"

"Survival of the best(잘난 자는 산다)"

이러한 진화론의 문귀를 염불 모야으로 외우고 술이나 취 하면 목청껏 외쳤다.

이렇게 되매 내 도덕 관념은 근거로부터 흔들렸다. 착하신 하나님이 계셔서 세계를 다스리신다는 믿음 위에 섰던 도덕 은 여지 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선이 어디 있느냐, 악은 어 디 있느냐.

"Might is Right!(힘이 옳음이다)"

마키아벨리, 트라추케의 정치론이 마음에 푹푹 들어 갔다.

『 힘이 옳음이다. 힘 센 자만 살 권리가 있다. 힘 센 자의 하는 일은 다 옳다!

이러한 도덕관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이러한 의미로 글을 썼다. 또 말을 할 기회가 있으면 이러한 의미로 말을 하였다. 그리고 나는 조선의 역사가 이 진리를 몰랐음에서 빛을 잃었으니라고 주장하였다. 무론 이 것은 나 혼자의 사상이 아니라, 당시 세계를 , 특히 일본 하 계를 풍미하던 독일 사상의 영향을 받은 것일 것이다.

『바이블은 약한 자의 소리다.

이런 뜻의 니이체의 생각이 더할 수 없이 좋았다. 어렸을 때에 읽은 바이런의 「카인」이라는 시극의 아름다움이 머 리 속에 다시 살아 났다. 아담의 맏아들 카인이 그 동생 아 벨을 때려 죽이고 하나님께 대들던 그 반항적 정신이 기뻤 다.

『하나님아 덤벼라, 나하고 함께 겨누어 볼까.

나는 이렇게 뽐내었다.

밀턴은 그와 반대의 뜻으로 썼겠지마는, 하나님의 자리를 둘러 엎으려고 반란을 일으켰다가 패하여 지옥에 떨어져서 껴지지 않는 유황불 속에 팔짱을 끼고 서서도 반하의 뜻을 버리지 아니하는 사탄이 영웅스러웠다. 나 자신 사탄의 제 자가 되어서 그를 따르고 싶었다.

칸트가 실천 이성 비판에서 이른바 무상 명령이란 무엇이 냐. 그는 하나미의 명령이 아니요, 곧 나 자신의 명령이다.

내 마음의 명령을 뉘라서 막으랴, 어기라? 최고 최상인 내 가 누구의 명령을 받으랴. 오직 나만이 나보다 못난 약자들 을 명령할 뿐이다--이렇게 생각하였다.

나는 차라리 철학과를 버리고 법과로 옮을까 하는 생각을 하였으나 여러 친구의 만류로 그것을 단념하고 그냥 철학을 배우고 있었다. 학교에서 「니이체」를 강의하지 않는 것이 나쁘다고 불평하였다. 우리는 그때에 립스의 윤리학을 읽었 는데, 그는 감정이 입이라는 설로 사람과 사람이 서로 사랑 할 것을 말하였다. 나는 교실에서 동창들을 보고,

『자네들은 누구를 사랑하는가. 우리가 사랑할 것은 저와 및 제 애인뿐이요, 그 남저지는 다 우리의 적이 아니가. 제 군, 강자는 강자이매 우리가 겨루고 싸울 적이요, 약자는 약 자이매 우리가 부려 먹을 노예가 아니가. 옛ㄴ날ㄹ 일본에 서 무사가 새 칼날을 시험하려고 약자를 버인 「다메시기 리」란 실로 장쾌하고도 당연한 일일세. 약자는 강자의 노 예가 됨이 당연한 일이 아닌가.

이런 소리를 하고 뽐내었다.

인도인, 애란인, 파란인, 나는 모든 약소 민족을 비웃고 저 주하였다. 그 비웃음과 저주 속에는 무론 나 자신도 들어 있었다. 약자가 강자에게 지배를 받는 것은 코가 눈 밑에 붙는 것과 같이 당연한 일이라고 믿은 까닭이다.

인도 시인 타고르가 그때에 일본을 방문하여서 동경은 마 치 타고르의 천지인 것같이 되었던 때가 있거니와, 나는 한 번도 그의 강연을 들으려 가지 아니하였다.

『약자-노예』

하고 나는 타고르를 멸시하였다.

나도 그의 시집 <기탄잘리> <초생달>과 또 그의 대 논 문이요 노벨상 작품인<생의 실현>을 보았거니와, 이 시절의 내 생각에는 그것은 다 침 뱉아 버릴 만한 약자의 잠꼬대였 다. 불경과 성경을 약한 자의 더러운 책으로 쇠사슬로 묶어 다가 무저항에 집어 넣을 때에 톨스토이, 타고르의 것도 함 께 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자유, 그것은 오직 강자만이 가지는 것이다. 자유는 강자 의 특권이다. 약자에게는 오직 복종과 능욕이 있을 뿐이니 약자가 자유를 운운하는 것은 실로 건방진 소리다.

나는 이런 소리를 하였다.

이러한 사상은 겸손, 자비, 청정 등 얌전하다는 미덕을 다 부인하였기 때문에 내 속에 오랫 동안 눌려 있던 열등 정욕 들이 모두 반기를 휘두르며 일어났다. 그중에도 가장 큰 것 은 청춘의 정욕이었다.

나는 개나 원숭이보다 훨씬 높은 상태에 있다. 나는 생물 학적 존재가 아니요, 도덕적 존재라는 신념이 깨어지매 정 욕을 억제할 아무 이유도 발전할 수가 없었다. 있다고 하면 그것은 위생상의 이유와 법률상의 이유가 있을 뿐인 것 같 았다.

건강을 상치 아니하는 한, 경찰에 붙들려 가지 아니하는 한 아무리 정욕을 만족하더라도 거리낄 것이 없는 것 같았 고, 실상 세상 사람들을 돌아 보면 그러한 자유로운 생활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전에도 말하였거니와, 나는 성 관계에 대하여서는 순결을 지키기를 힘써 왔다. 가다가 유혹이 없음도 아나었으나, 나 는 적어도 몸만으로는 그것을 이기어 왔다. 다른 여러 가지 점은 몰라도, 남을 속이지 않는 것과 성도덕에 대하여 충실 하는 것만은 어지간히 지켜 왔다.

실상 젊은 사람이 성에 순결하기는 수원치 아니한 일이다.

게다가 나와 같이 천생 여성에 흥미를 많이 가지렬한 욕망 의 불을 속에 품은 채로 이것을 싸고싸고, 누르고 눌러 왔 다. 나는 내 생명의 끝날 하나님 앞에 가서,

『하나님, 당신은 나를 시험하시고 시련하시기 위해서 내 게 음욕을 많이 주신 줄을 나는 잘 압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는 마침내 이겼습니다.

하고 자랑하고 싶었다.

그러나 인제는 벌써 하나님이 죽지 아니하였느냐. 내 순결 은 대체 무엇을 위한 순결이냐. 나는 왜 내게 당한 애욕의 기회를 다 놓쳐 버렸는고? 어리석은 자! 속은 자! 나는 이렇 게 자책하였다. 나는 깨끗하지 못한 마음으로 마아가릿을 생각하고 또 옛날의 S를 생각하였다.

<사랑은 신성하니라, .>

나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그리고 굶은 개가 꼬리를 늘이고 먹을 것을 찾는 모양으로 나는 이성을 찾았다. 어떻게나 추 악한 모양인고!

나는S에 사는 친구 S를 방문하였다. 이름은 방문이나 내 속마음은 그를 따라서 유곽에를 가 보고 싶은 것이었다. 그 는 시를 쓰고 소설을 쓰는 사람으로서, 방 하나를 빌어 가 지고 혼자 있었다.

어떤 추운 겨울날 오후였다. S는 이불을 두르고 앉아서 화 롯불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나는 화로의 숯불을 들여다 보고 앉았는 것이 낙일세.

그것이 발갛게 타면서 차차 차차 스러져서 마침내 식은 재 가 되고 마는 것이 내 생명과 같다는 말일세.

S는 「아르치바세프」를 즐겨서 읽었다. 그는 학비가 없어 서 학교에도 못가고 집에서 소설과 시만 읽고 있는 명상적 인 침울한 사람이었다.

『빨갛게 타다가나 스러지면 한이나 없지. 한번도 타보지 도 못하고 스러지는 혼은 어찌하나?

나는 이런 소리를 하였다. 이것은 내 진정이었다.

『자네도 그런 소리를 하나?

하고 S는 놀랐다.

『왜? 나는 사람 아닌가? 청춘 아닌가? 청춘에도 못 타 본 청춘.

이렇게 말하고 나는 픽 웃었다.

『자네는 교육가요 종교가요-나는 자네는 그런 생각을 아 니하는 줄 알았네.

그는 엄숙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 근육은 아편 중독한 사람 모양으로 씰룩거렸다.

<부활>첫 하루에 있지 아니한가? 시멘트 덮은 도시의 길 가에도 흙만 나온 데면 봄이 오느니라고. 그 실만한 틈에서 도 풀이 나느니라고. 종교가의 마음은 흙으로 안 된 줄 아 나? 나는 종교가도 못되네마는.

나는 이렇게 말하고 한숨을 지었다.

『아 그래?

하고 S는 이상한 것으로 보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끄덕하 였다.

『한잔 먹으랴?

S는 이렇게 제의하였다.

『그러세. 어디 나가세.

나는 오늘 신문사에서 온 돈 이십원이 지갑에 있는 것을 믿었다. 오늘 한벌 진탕 치듯 청춘의 행락을 하자는 것이다.

S는 날더러 잠깐 기다리라 하고 나가더니 한되들이 술 한 병하고 오징어 두 마리를 사들고 들어 왔다. 그는 주전자에 있던 물을 따라 버리고 거기다가 술을 펑펑 부어서 화로에 올려 놓고 일변 오징어를 구웠다. 찻종으로 술잔을 삼았다.

『술 밖에 더 좋은 게 어디 있나? 떡 취해 놓으면 천하가 다 내 것이란 말일세.』하고 그는 맛나게 술을 마셨다. 나도 원체 취할 작정이기 때문에 부어 주는 대로 마셨다.

『나 자네 이런 줄 몰랐어. 자네는 꼬장꼬장한 샌님으로만 알었네그려. 자네 같은 도학자 선생이 어떻게 소설을 쓰나 그랬단 말야. 호호』

S는 유쾌한 듯이 내손을 잡아 흔들었다. 실상 나는 주색을 마음대로 하는 친구들 축에게는 경이 원지를 받는 편이었 다. 기독 청년회 이사장인 나를 자기네 술동무로는 생가지 아니했던 것이다. S도 나와 사귀인지는 오래지마는, 역시 나 를 경이 원지하는 사람이없다.

『난 오늘 새 친구 하나를 얻었네, 남궁 석이 속에 인간적 인 다른 남궁 석이 하나를 찾았단 말일세.

하고 S는 중흥이 도도해서 내 목을 끌어 안고 뺨을 비비 고, 나중에는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는 연해,

『참 유쾌해, 참 좋은데!

하고 흥분하였다.

나도 술이 취해 갈수록 내 몸을 결박하였던 도덕적 줄을 다 끌려 버리고 S와 같은 자유로운 심경을 가진 사람이 되 려고 애를 썼다.

『자네도 연애해 본 일 있나?

S는 이렇게 물었다. 술병에는 술이 좀 남았으나, 인제는 더 먹을 욕심도 없었다.

『없어. 한번도 없어.

하고 나는 고래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자네는?

하고 이번에는 내가 물었다.

『나? 글쎄, 있다면 여러 번 있었고 없다면 한번도 없었 지.

S는 추연히 고개를 숙인다.

『실언을 했나?

나는 이렇게 물었다. 왜 그런고 하면, 나도 S의 자포자기식 인 생활과 침울한 성격이 실연에서 온 것이라고 추측하였기 때문이다.

『응, 저편에 실연을 준 일도 있고 이편에서 실연을 받은 일도 있고 그래. 그래 연애란 훗맛이 쓴 음식일세. 단 키스 뒤에 쓴 눈물이 온다--자네 소설에 이런 말이 있던 것을 기 억하는데, 용한 말야. 단 키스 뒤에 쓴 눈물! 그러면서도 사 람이란 연애를 아니하고는 못 배긴단 말일세. 연애는 병이 라구 하지. 그렇지만 이 쓰라린 인생에 그래도 술과 연애 밖에 있느냐 말일세.

이러한 S의 말을 듣고 보니 그것이 깨달은 말인 것 같기도 하였다.

전기등이 들어 왔다.

『우리 무엇 좀 먹으러 가세』

하는 내 말에 그는,

『자네 돈 있나?

하고 적막한 빛을 보였다.

『있어. , 나가세.

우리는 거리에 나섰다. S는 유명한 유곽에서 가까운 곳이 다.

우리는 「뎀뿌라집」에 들어 가서 「뎀뿌라」와 술과 밥을 시키고 서로 지나 온 신세 타령과 조선 인물평을 하고, 또 동경에 있는 남녀 학생평을 하였다. 나는 아직 동경에 와 있는 여학생 중에 아는 사람이 없었으나 S는 거의 다 아는 모양이었다. K, M, N등 여러 여학생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 다.

그중에서 그가 가장 칭찬하는 것은 C였다. C ○○여학숙 이라는 전문 정도 여학교에서 영문학을 배우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그 말하는 태도로 보건덴, S C를 대단히 흠모하 는 모양이었다.

나는 S라는 여자를 아느냐고 물었다.

S란 내가 M중학교에 다닐 때에 사모하던 그 여자다

S? S?

하고 S는 한참이나 생각하더니,

『아, 옳지. S 말일세그려. 응 그래, 자네가 한참반했었 지』

할 때에 그 반했단 말이 나와 S를 다 모욕하는 것만 같아 서 불쾌하였다. 내 마음에는 아직도 S는 거룩한 천사의 모 양으로 남아 있었다.

S의 말에 의하건댄, S양은 M이라는 남자와 사랑을 하 다가 그 남자가 폐병으로 죽어서 지금은 일생을 교회 일이 나 하다가 죽는다고 성경 공부를 하고 있다고 하였다.

『동경 있나?

『응, 횡빈 있다네. 왜 다시 한번 걸어 보랴나?

실상 술이 취한 내 마음은 곧 횡빈으로 달려 가고 싶었다.

횡빈만 가면 당장 그 여자를 내 것을 만들 것만 같았다.

나는 당장 횡빈으로 간다고 일어났다.

『이사람 미쳤나? 횡빈은 차차 가고 우선 가까운 데로나 가세.

하고 S는 음충맞게 웃었다. 이것은 실상 내가 아까 S군을 찾을 때부터 바라던 일이다.

나는 S를 따라서 나섰다. 우리는 어떤 창루 문을 들어 섰 다. 비록 취했건만도 길로 지나는 사람들이 모두 나를 쳐다 보는 것 같아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일종의 쾌락의 예감이 있었다. 실상 길 가는 사람들은 이러한 일을 다 심상하게 알는지 모른다.

우리는 더욱 취한 체하였다. 문밖에는 소금을 한줌씩 놓고 시멘트 바닥에는 물을 뿌려서 젖었다. 사진집 쇼우 윈도우 모양으로 된 속에 커다란 사진들이 걸렸다. 「기모노」를 입은「반또오」하나가 싱글싱글하면서 우리 뒤를 따라 선 다.

우리는 조선 학생인 것을 감추노라고 「오이, 기부오」

「오이, 다나까」하고 되는 대로 지은 별명을 서로 부르면 서 십여 장이나 되는 사진을 보고 고르기를 시작하였다.

『그거 어디서 모두 무쪽 같은 것들만 모아 놓았네.

우리는 이런 소리를 혀 꼬부라진 발음으로 지껄이면서 그 러면서도 그중에 마음 드는 것을 골라서,

『이거로 하지. 아무렴 어떤가?

이 모양으로 하나가 하나씩 골랐다.

그중에는,

『오아이니꾸사마, 벌써 다른 손님이.

이 모양으로 「반또오」가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렇게 하나씩 고르기가 끝난 뒤에 우리는 이층으로 안내 를 받았다. 자리 병풍을 두른 어떤 방 길다란 화로에 철주 전자에서 뽀얀 김이 오르는 것을 보고 앉았노라니 중늙은이 큰머리 한 여편네가 와서 차를 권하고 음탕한 웃음과 말을 하고, 그러는 동안에 얼굴에는 횟됫박을 쓰고 길다란 옷자 락을 질질 끄는 귀신 같은 여자들이 들어 왔다.

나는 담박에 흥이 깨어졌다. 도무지 사진에서 보던 맛은 없었다. 낮바닥은 하얗고 입술은 빨갛고 눈은 커다랗고, 아 무리 보아도 산 사람 같지는 아니하였다.

그래도 S는 아마 여러 번째 만나는 양하여서 제가 고른 여 자의 손을 잡아 앉히고 익숙하게 말을 붙이고 그 여자도 바 로 절친한 사람이나 대하는 듯이 아양을 떨었다. 내게 불러 온 여자는 내 곁에 와 앉으면서,

『내가 마음에 안들어요?

하고 제깐에는 아양부리는 웃음을 웃으면서 담뱃대에 담배 를 붙여서 내 입에 물렸다.

『다나까군은 품행 방정한 사람이 되어서 이런 데는 처음 이 되어서 그러는 게야. 잘 얼르란 말야. 이런 얌전한 친구 가 반하게 되면 죽을지 살지 모르는 것이란 말이다.

하고 S는 내 어깨를 툭 치며,

『오이, 왜 그렇게 무서운 얼굴이야, 좀 귀애해 주란 말야.

하룻밤 한자리 잠을 자도 모두 연분이어든. 자 그렇게 용렬 한 꼴 보이지 말고 어서 침실로 가오.

하고는 값투정을 해서 정한 뒤에 제 여자를 끌고 먼저 나 가 버린다.

『자, 어서 가요. 우습게는 구네.

하고 내 여자는 성난 듯이, 귀찮은 듯이 나를 잡아 끈다.

내 마음 어느 구석에서는,

『이놈아, 네가 어디를 왔니, 무엇하러 왔니, 어서 뛰어 나 가거라.

하는 소리가 들린다. 또 한편 구석에서는,

『이놈아, 이와 왔거든 사내다워라. 부어 놓은 잔이어든 마 셔라.

하는 소리도 들렸다. 나는 못나게끔 이 귀신 같은 여자에 게 끌려서 한방으로 갔다. 그것은 큰 방인데,새새에 병풍을 치고는 한 병풍마다 한 패씩이 끼고 드러누운 모양이었다.

내 병풍 다음 병풍 속에서 S의 혀꼬부라진 농담이 들렸다.

나는 이 이상 더 그릴 수는 없다. 나는 인류 사회에 이러 한 광경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하였다. 나는 연해 양심 의 손에 머리끄덩이를 끌리면서도 역시 다른 사람이 걷는 길을 다 걸었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냐. 깨끗한 것은 무엇이요 놓은 것은 무엇이냐. 그 즘생스러운 꼬락서니!

S를 작별하고 내 하숙으로 돌아 오는 길에 나는 이렇게 자 책하고 치를 떨었다.

<이게 무에야? 이게 무에야?>

하고 나는 발버둥을 치고 울고 싶었다.

이튿날 아침에 술이 깬 때에 지난밤 일을 생각하니 나는 내 몸이 보이는 것도 부끄러워서 눈을 꽉 감고 떨었다.

<술이 취하지 아니하고는 못할 일!>

하고 나는 술먹은 것을 후회 하였다. 그렇지만 취한 후에 올 것을 예기하고 술을 먹은 것이 아니다.

나는 학교에를 갔으나 동창들 보기도 부끄럽고 이야기를 하기도 싫었다.

<이게 무엇이야? 이게 무엇이야?>

나는 강의를 듣다가도 그 생각을 하고는 죽어 버리고 싶은 일종의 암흑과 절망을 느꼈다. 나는 하학 후에 하숙에 돌아 와서 칼로 손가락을 베어 피를 내어 가지고 다시는 술을 안 먹을 것과 다시는 부정한 성적 관계를 맺지 아니할 것을 맹 세하였다.

나는 유곽의 한 시간의 그림자가 지금도 마음속에 꼭 들어 박혀서 떨어지지를 아니한다. 나는 유곽이란 것은 인류의 더할 수 없는 치욕임을 느꼈다. 어떠한 국가적 이유가 있다 고 하더라도 그것은 용서할 수 없는 죄악이요 인류의 자기 모욕이라고 느꼈다. 유곽에 딸자식을 팔아 먹는 어미 애비 가 짐승 이하의 천한 존재인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유 곽을 경영하는 사람--거기서 이익을 얻어서 의식을 하는 사 람은 어서 죽어서 없어지는 것이 옳다고 믿는다.

그리고 유곽에 다니는 남자도 벌써 사람이라는 계선 이하 에 있는 존재라고 믿었다. 사람이 다른 동물보다 못한 점은 거짓말 외에는 차기 제도라고 나는 믿었다.

나는 얼마 동안은 화류병이 전염하지나 아니하였나 해서 도무지 마음이 놓이지 아니하였다. 나는 六六호 주사를 생각하였으나, 첫째로 병원에 가기가 부끄럽고 둘째로는 주 사 한 대에 십 오원이란 말에 겁이 났다.

나는 화류병에 관한 서적을 보았다. 만신창, 관절염, 사십 이 넘으면 뼈와 내장과 뇌수에까지 들어 가서 마침내 미치 기까지 하고 도 그것이 자손에게까지 유전이 된다는 말--어 떻게 무시무시한 말인가. 이런한 구절을 보면 내 혈관 속에 벌써 매독과 임질균이 우굴우굴하는 것만 같았다.

그 괴로움, 그 불쾌함, 날같이 결핵을 가진 병신이 게다가 화류병까지 겸한다면 그 얼마나 큰 벌일까. 만일 내가 화류 병이 전염이 되었다고만 하면 나는 자살해 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이 부끄러운 사건은 지나간 이랫 동안에 헤이 하였 던 내 도덕 관념을 긴장케 하는 효과를 주었다. 나두 인이 되어서, 즉 씩 되어서 조만간에 반드시 그 결과를 거두고야 만다는 천지의 이치를 느낀 것이었다.

나는 지금까지에 운명이란 것과 요행이란 것을 믿었닥가.

운명이란 내 힘으로는 어찌할 숭 벗는 것, 다시 말하면, 내 가 아무리 잘하여도 좋지 못한 결과를 거둘 수도 있고 내가 잘못하여도 좋은 결과를 거둘 수도 있다는 것을 믿었다. 그 러므로 세상에서 잘되고 못되는 것은 다 운수라고 생각하고 제 책임이라고 생각하지는 아니하였다. 이것은 내가 근대 우리 조선 민족의 잘못된 인생관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한 다. 이렇게 깨닫고 나는 「운명론」이라는 글 한 편을 써서 내가 편집하던 잡지에 내었다.

그 요령은 「내 운명은 내가 만드는 것이라」하는 것이었 다. 나 개인의 생활뿐이 아니라, 내가 가장 관심을 가진 조 선 민족의 현재와 장래도 천운이니 대세니 하는 것으로 좌 우되는 것이 아닐, 결국 조선인 자신의 총명한 판단과 정성 있는 노력 여하로 좌하게도 되고 우하게도 되는 것이라고 역설하였다.

내게 이 생각이 일어나게 된 간접의 동기는 T교수에게서 들은 불교 강의인가 한다. 나는 예수교인이어니와, 웬일인지 인도 철학이라는 것과 불교에 관한 강의를 듣고 싶어서 T교 수의 강의를 택하였던 것이다.

T교수은 얼마나 불교를 이해하고 또 그대로 믿고 행하는 인지 지금도 모르거니와, 불교를 사랑하는 것만은 사실이었 다. 그러길래 T교수가 교수 된 지 십오 주년인가 이십 주년 되는 축하식에 그는 가사 장삼을 입고 식에 출석한 것일 것 이다.

T교수는 「 」이란 말을 가장 사랑하는 모양이어서, 그는 한 시간에도 여러 번씩 이 문자를 쓰고 또 언제나 이 문제 를 아니 꺼내는 때가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이 T교수는

「반야경」을 애독하였던 모양이다.

사실상 T교수는 인과론 같은 것은 별로 말하지 아니하였 다. 다만 불교의 내용을 말할 때에 지나가는 말같이 불교에 서 인과 업보라는 것을 믿어서 제가 받는 것을 다제가 전에 한 업의 갚음이라고 생각하느니라라고 말하였을 뿐인데, 이 말이 내 머리에 깊이깊이 박힌 것이다.

하나님이라는 이적적 신의 존재에 의심을 품게 된 나는 인 과 윤이라는 이성적 법칙을 더 족하게 생각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는 내가 중학 이래로 배운 과학에서 이 우주가 한 법칙 적 체계를 가춘 것이요 결코 혼돈 무질서한 변화가 아닌 것 을 알았거니와, 철학을 배우는 데는 이 우주를 목적론적으 로 보아서 어떠한 목적을 향하고는 진화해 가는 것이라는 해석이 있음을 볼 때에 나는 그것이 옳은 소견 같다고 생각 하였다.

그러나 이 전 우주를 통한 법칙은 대체 어디서 왔는가. 이 를테면, 이 합리적 우주의 첫 고동을 튼 자는 누구인가. 다 시 말하면, 모든 원인의 원인이 된 것은 무엇인가. 철학에서 이르는바, Causa sui란 무엇인가. 플라톤도 이 근본적이요 최초인 이데아를 신인 것같아 말하였다.

근대 철학의 시조라는 데카르트도 하나님이 모든 원인의 원인인 것을 말하였다. 칸트는 우주의 본체, Dingan sich는 우리로서는 영원히 알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하였으나, 이것은 무론 하나님의 존재를 긍정한 것도 아닌 동시에 부 정한 것도 아니다. 도리어 그는 Kategorische Imperative 라는 것으로 이 우주에는 지배자적인 가장 높은 마음이 있 는 것을 ㅡ 적어도 그런 것이 있다고 믿지 아니치 못할 것 을 암시 하였다.

그 밖에 여러 철학자들이 비록 하나님이라는 예수교적 관 념인 인격적 존재를 슴인하기를 원치 아니하여서 das Absolute니 심지어 the unknowable 이니 하는 것으로 부 른다 하더라도, Causa sui인 최초적이요 최고인 존재를 부 정 할 수는 없었다.

이에 나는 두 가지를 아니 믿을 수 없었다. 그것은 이 우 주는 인과를 기초로 하는 법칙적존재라는 것과 이 법칙을 준자, 또는 이 법칙의 첫 원인이 되는 자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원인의 원인이라는 것과 성경에서 말 하는 하나님이라는 것과를 동일한 것으로 볼 수는 없었다.

더구나 구약 성경에 나오는 여호와 하나님이란 유대 민족의 터주 대감에 불과하는 것 같아서 가장 호의적으로 해석하더 라도 그것은 옛날 유대 민족의 마음에 비치인 하나님의 한 그림자에 불과하였다.

신약 전서에 나오는 하나님, 즉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하나 님은 구약의 하나님보다 훨씬 보편성을 가졌다고 보았다.

그는 벌써 유대족의 터주 대감은 아니요 전 인류의 터주 대 감이었으며, 비위에 틀리면 심술을 부리는 그러한 열등한 인격이 아니요 전 인류를 적자로 보는 자비의 존재였다. 예 수께서는 그만큼 하나님의 본질을 밝히 보시고 널리 보신 것이다.

그러나 내가 I교수에게 배운 천문학 지식으로 보건댄, 지구 는 결코 우주의 중심이 아닐 뿐더러 태양계의 한 티끌에 지 나지 못하고, 태양계 그 물건도 은하계의 한 티끌에 지나지 못하고, 은하계 그것도 또 그보다 더 큰 어떤가족의 일원에 불과하고, 이 모양으로 이 우주는 우리 상상력으로는 도저 히 상상도 하라 수 없는 것이다.

이른바 the infinite. 끝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 지구의, 또는 사람과 같은, 또는 사람과 다른, 또는 사람이상의, 또 는 사람과 이하의 이 모양으로 끝없는 종류와 끝없는 계단 의 생물이 살수 있는 것이다.

그때만 해도 화성에는 운하인 듯한 것이 있다고 해서 필시 사람과 가장 가까운, 그러나 사람보다 가장 지력이 빼어난 생물이 사는가 보다고 해서 미국 윌슨 천문대에서 무선전을 방송해 본다는둥, 알프스 꼭대기에 큰 화롯불을 놓는다는둥 해서 화성에 대하여 통신을 한다고 떠들던 때다.

근년에는 우주의 어느 쪽에서 정체모를 전파가 온다고 하 여 떠들거니와, 아무려나 오늘날 우리의 지식으로도 이 우 주안에는 inhabitable(생물이 살 수 있는)한 세계가 지구 외 에도 있을 수 있는 것을 부인 할 수는 없다. 도리어 지구와 다름 광선과 온도와 습도를 가진 별이나 허공(허공이라는 것도 우리 몸의 비중과 오관으로 판단해서 허공이지 우리 감각 기관과 다른 비중과 감각 기관을 가진자에게는 그 허 공이란 것이 우리가 사는 지구 껍데기와 같이 단단해서 넉 넉히 발붙이고 살 곳일 수 도 있을 것이다.)에도 가가 그 광 선 그 온도 그 습도에 맛는 생물이 살고 있을는지도 모르는 것이다.

태양에서 가장 먼 해왕 성이나 플루토가 우리 지구상에 사 는 생물이 살기에는 너무도 어둡고 너무도 춥겠지마는, 또 한 그러한 자연적 조건에 맞는 생물이 살 수 없으리라고 누 가 간언 하겠는가. 그와 반대로, 불길 그 물건이라ㅏ 하는 태양 속에도 우리 지구는 송두리채 녹아 타서 가스가 되어 버리겠지마는, 거기는 또 그 조건에 맞는 생물, 즉 마음을 가진자가 살지 못하리라고 누가 단언하겠는가. 또 다른 편 으로 보아서 오늘날의 현미경으로도 한 방울 물이나 한 티 끌에서 수만의 미생물이 산다고 하니, 허공 중의 누이 눈에 는 보이지도 아니하는 잔 티끌도 수 없는 생물이 붙어 사는 세계가 아닌가. 참새는 작고 코끼리는 크지마는 그 마음의 작용에 있어서는 꼭 같지 아니한가. 기뻐하고 슬퍼하고 성 나고 나고 자라고 새끼치고 늙고 죽고 하는 것은 사람이나 버러지나 현미경 하의 미생물이나 다 일반이 아닌가. 만일 지구의 생물만을 표준으로 다른 별 또는 허공에는 생물이 살지 못하리라 함은 마치 유대인이 하나님을 지구만의 하나 님으로 아는 것과 다름이 없을 것이 아닌가.

이러한 우주관은 신구약의 우주관을 용납할 수는 없었다.

이러하기 때문에 나는 예수의 가르침에서는 오직 그 도덕적 가치만을 취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이러한 내 우주관이 곧 불교적 우주관이었음을 훨씬 나중에야 알았고, 내가 이러한 우주관을 가지게 된 것은 천 문학 시간에서 새 상상력이 지어 내인 것이었다.

나는 이에 일시 사상적 혼란에 빠졌다. 그것은 새로 도달 한 인과론적, 목적론적 도덕관과 내가 대학에 온 후에 일시 빠졌던 본능 해방주의적인 생활 방식과의 충돌이었다.

내가 창기 집에를 다녀 온 뒤로 마음속에 일어나기 시작한 양심의 가책은 나를 타락의 길에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어서 내 마음에는 깨끗한 생활을 동경하는 정이 다시 일어나기 시작하였으나, 그래도 이태나 너무 방종한 마음을 가졌던 습관이 일조 일석에 깨어 지지를 아니하여서 여전히 술도 취하고 방탕한 마음도 가졌다.

이러한 때에 한 가지 사건이 생겼으니, 이 사건은 내 도덕 적 생활에 중대한 힘을 준 사건이었다. 그 사건이란 이러하 다ㅡ 어느 겨울 방학 나는 방학 기회를 이용하여서 신문사에 보 낼 원고를 쓰고 있었다. 한집에 있는 여러 동무들은 혹은 놀러 나가고 대개 나 혼자 있었다. 오후라 기억하는 때에 웬 사람이 나를 찾아 왔다. 그는 K대학의 학생이었다.

『형님은 나를 모르시리다. 그러나 나는 형님을 잘 알지 요.

하는 것이 그의 첫 인사였다.

그는 분명 나보다도 나이가 위인 모양인데 날더러 형님이 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아마 예수교인인가 하였다. 또 그의 겸손하고 진실한 모양이라든지 거의 수줍은 듯한 말씨라든 지, 다 그가 예수교인인 것을 표시하는 듯 하였다.

그는 내가 쓴 글을 자 보았노라 하였고, 특히 북경에서 병 중에 쓴 글을 많이 탄복하여 그가 아직 고등학교에 자닌 때 에 그 글 중에 일부분을 번역하여 작문 시간에 그렸더니 구 십 점을 받았노라는 말을 하였다.

그는 동경에 V하는 애인을 두고 그 자신은 멀리 북해도 에 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런 인연으로 그는 니조베 박사를 숭배하노라고 하였다.

그의 이름은 Y였다. Y의 말에 의하면, 그의 애인 C에게는 많은 유혹자가 있었다. 자기는 학교를 버리고 동경에 올 수 는 없고 또 애인 C도 학교를 버리고 북해도로 오라고 할 수 도 없었다. 일 년에 세번 방학 때에 밖에 만날 수 없는 애 인을 유혹 많은 동경에 혼자 두고 이천리나 밖에 있는 것이 그의 고민이었다.

『형님, C를 맡아 주셔요. 나는 형님의 순결한 인격을 믿 기 때문에 형님이 맡아만 주신다면 마음을 턱 놓겠어요.

이렇게 그는 마침내 명언하였다.

나는 마아가릿과 엘렌을 맡아 가지고 지나던 쓰라린 경험 을 생각 하였다.

『맡긴 내가 어떻데 맡아요?남의 처녀을 어떻게 맡습니 까?

나는 어이 없어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내가 근년에 어떻 게 타락한 것도 모르고 이 친구다 초면에 내게 젊은 애인을 맡기려는 것을 생각할 때에 얼굴에 쥐가 이는 것 같았다.

창기의 집에 까디 자녀 온 나를 순결한 인격자라고 믿어 주 는 것이 미안하였다. 나 같은 사람을 믿는 Y야 말로 순결한 사람이었다.

Y의 결심은 굳었다. 그는 두 시간이나 나를 졸라서 나는 마침내 그에게 끌려서 전차를 타고 O라는 C의 하숙을 찾았 다. 그 집은 어느 신사 수풀 옆 외따름한 이층집으로서 심 히 한적한 곳이었다. 과연 시를 좋아하는 문학소녀가 있기 를 즐겨할 만한 곳이었다. 땅이 얼었다 녹느라 질어서 우리 구두에는 코승이까지 흙이 묻었다. 시골 풍경이었ㄷ.

이빨에 꺼멍 칠한 주인마나님이 「다스끼」응 걸고 빨래를 하다가 말고 우리를 맞아서,

C, 오갸꾸사마.

하고 이층을 향하여서 소리를 질렀다.

남의 여자의 혼자 있는 집이라고는 일생에 처음 가는 나는 가슴이 두근거리고 마음이 편않지 아니하였다.

Y는 제 방에 들어 가듯 망토도 입은 채로 문을 열고 쑥 들 어가 버려서는 한참이나 소식이 없다. 아마 이러이러한 사 람을 데리고 왔다는 말과 나라는 사람을 어떤 모양으로 접 대할 것을 의논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무척 싱거움을 느끼면서 조그마한 창으로 종용한 신 사 경애를 바라보고 있었다. 늙은 젖나무들이 쑥쑥올려 솟 고 침침한 그늘에 촉촉히 젖어 있는 거무스름하게 썩은 신 사집이 퍽 운치 있게 보였다.

『형님, 이리 들어 오시오.

하는 Y의 말에 나는 방에 들어 갔다.

머리를 척척 땋아 느리고 연분홍 치마에 자주 저고리를 아 무렇게나 입은 여자 하나가 ,

『이리 앉으시지.

하고 내게 방석을 권하고는 내가 앉기를 기다려서 조선 절 도 아니요, 일본 절도 아닌 얼치기 절을 하였다. 그가 C였 다.

C는 미인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나, 살이 희고 믐도 실하고 눈에 정기가 있었다. 그에게는 벌써 조선식 처녀의 수줍음 은 없었다.

『선생님 말씀은 많이 들었어요. 신문에 나는 글도 늘보고 요.

C는 초면의 어색함도 없이 극히 자연스럽게 이런 인사말을 하였다. Y C를 대하여 앉은 기쁨으로 늘 싱글벙글 하고있 었다. 그가 어떻게 C를 사랑하는지는 그의 말없는 태도에서 충분히 볼수가 있었다.

나는 이만한 애인을 가졌다 하는 덕으로 더할 수 없는 기 쁨과 만족을 삼는 양이 역력히 보여서 가여울 지경이었다.

그와 반대로, C는 도무지 Y에게는 눈도 보내디 아니하고 Y 가 무슨 말을 해도 대답도 잘 아니하였다.

남의 앞에서 여자로는 그럴 법도 한 일이라고 나는 새생각 하였다.

나는 C가 묻는 말에 대답하는 태도를 가졌다. 그러나 그가 그처럼 자연스럽게, 그처럼 정답게 구는 것은 내게 호감을 주었다. 나는 C와 마아가릿과를 비교하였다. 그는 마아가릿 과 같이 열정가인 것 같았다. 그렇다 하면 그를 가까이하는 것은 남자에게 위험일 것 같았다.

「뎀뿌라 소바」가 왔다. 과자도 왔다. 우리는 일변 먹고 일변 이야기 하였다.

『저는 소설을 좀 써보고 싶어요.

C는 이런 말도 하였다. 그리고 자기 일기책에 적은 시들도 읽어 주었다.

아직 글은 유치하지마는 착상은 독특한 것이 있었다. 대단 히 감각적이요 탐미적인 그의 성격의 편린이 보이는듯 하였 다. 나는 예술이랑 일종의 설교, 설교아닌 설교라는 말을 한 법하다. 아름답다든가 쾌감을 준다는 것만으로 예술이 되는 것이 아니요, 사람의 혼에 깊이 울리는 무엇이 있고야 비로 소 좋은 예술이라는 말을 한 법하다.

이 의견은 기실은 내 근래의 생각과는 모순되는 생각이요, 종교적인 지나간 생황, 북경에 있을 때까지 옛 생활이 가지 던 의견이었다. 그러나 조선의 한 처녀를 대할 때에 나는 이 의견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었고, 이 의견을 말하고 나 서는 다는 스스로 내 의견에 놀래었다.

<옳다, 참 옳아, 내 말이 옳다 나는 내 말에 돌아 가지 아 니하면 아니 된다.>

이렇게 생각하고 심히 엄숙한 기분을 얻어서 나는 도도히 현대의 햘락주의, 탐미주의 사조를 배격하고 톨스토이식 예 술관을 역설하면서 C의 작품 몇개의 모랄이 좋지 못함을 사 정없이 비판 하였다.

『옳아, 옳아, 형님 말씀이 옳아.

하고 Y는 연해 감격하는 찬성의 뜻을 표현 하였다.

『형님의 속에는 성도의 불길이 있어요. 형님이 옳음을 역 설 하실 때에는 형님의 눈에서 불길이 나요.

나중에 Y는 나를 보고 이런말을 하였다. 나는 이말을 들을 때에 내 속의 더러움을 돌아 보고 등골에 찬 땀이 흘렀거니 와, 그 대신 나는 내 마음속의 부정을 다 살라버리고 성도 의 마음이 되리라, 내 가슴에는 언제나 성도의 거룩한 불길 이 피어 오르고 내 몸과 말에서는 우뢰와 번개를 발하리라 ㅡ 이러한 욕심을 가졌다.

나도 C의 눈에서라도 일종의 감격의 및을 볼 수 가 있었 다. 나는 마치 무당이 일시 신이 접해서 제 능력 이상의 말 과 행동을 하듯이 이날 이자리에서는 필경 나 이상의 언행 을 한 모양이었다.

『폐일언하고 C는 유원 형님을 절대로 믿고 의지하고 복종 하고 배우시오.

Y는 이러한 감격한 말로 C에게 명령하였다.

『그럴테야요. 선생님, 그럴 테야요. 저는 이로부터 선생님 지도하시는 데로 갈테야요. 저를 오늘부터 제자를 삼으시고 해라 해주셔요 네, ?

하는 C는 상기로 두 뱜이 붉고 그 정기 있는 눈은 더 욱 빛났다.

『아니 형님, 제자가 아니라 C를 누이 동생을 삼아주시오.

C! C는 유원 형님을 오라버니로 뫼시고.

Y C의 제안을 이렇게 수정 하였다.

이러한 말에 나는 또 내 버릇인 참회가 동하였다.

<아아, 내가 무엇이길레.>

하고 스스로 부끄러워 하는 마음이 났다.

그러나 나는 Y C의 제안을 거절할 용기가 없었다. 감당 치 못한다는 참회의 정의 한 편 구석에는 거절하기 싫다 하 는 사욕도 끼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어름어름해 두었다.

이튿날 Y C를 데리고 내 집을 찾아 왔다. Y는 기어이 내가 C더러 해라 하는것을 보고 싶어하였다.

그후 한 일주일 지나서 Y는 만족한 듯이 북해도로 가버렸 다. 나는 무론 C와 함께 정거장에를 나가서 전송하였다. C 가 내 곁에 바싹 다가 서서 자기를 보내는 것을 보고 Y의 심정이 어떨까 하고 나는 그것이 퍽 미안하여서 C에게 두어 걸음 무러섰다.

그후부터 C도 나를 찾고 나도 C를 찾았다. 또 편지 왕복도 있었다. 나는 Y의 부탁대로 한 주일에 한번씩 Y에게 C에 관한 보고 편지를 하였다.

그러나 나는 내 마음속에 위험이 일어남을 느꼈다. 그것은 C가 보고싶어지고 그 편지가 기다려지는 것이었다. 나는 이 래서는 아니 될 것을 알기 때문에 애써서 이 감정을 누르려 고 하였다. 그렇지만 누르면 누를수록 그리운 생각이 더욱 간절해지는 것 같았다.

C의 편지도 처음에는 다만 무슨 일을 위해서 하던 것이 조 금씩 조금씩 열정의 도를 가하여서 어떤 때에는 우표를 두 장씩이나 붙인 편지를 하고, 그것도 새벽 두 시라든지 세 시 라든지 하는 그것을 쓴 시간을 끈에 적은 것이었다.

지금 나는 그 편지에 있던 문귀를 기억하는 것이 없지마 는, 그것을 읽을 때에 내가 가슴에 타오르던 불길은 아직도 역력히 기억할 수가 있다. 그 편지에는 무론 나를 사랑한다 는 말은 한 마디도 없었다. C도 그가 나를 사랑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을 깊이 의식하는 모양이어서 대단히 말을 삼가는 빛이 보였다.

그러나 그의 인생에 대한 고민을 쓰는 것으로 넉넉히 그의 진정을 표시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나는 그러한 편지를 받을 때에 항용 한 줄이나, 두줄, 그것 도 심히 냉담한 속에도 또 한번 내 열정이 나타남을 금할 수는 없었다.

그가 나를 찾아 오거나 내가 그를 찾아 가더라도 불과 이 삼십 분간, 아무 열정적인 말도 없었따. 나는 애써 냉정한 모양을 보이고 교훈하는 태도를 취하였다.

C도 누이가 오라비에게 대한 태도를 잃지 아니하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그가 간뒤에 나는 내 가슴에 풍랑이 일어남을 금할 수가 없었다. 사랑해서 안될 사람을 향하여 일어나는 애정은 실로 고통이었다. 나는 마아가릿에 대해서도 이와 방불한 감정을 경험하지 아님이 아니었지마는, 마아가릿에 대해서는 이러한 끌리는 힘은 느끼지 아니하였던 것이다.

<안돼, 안돼!>

하고 C가 사다가 화병에 꽂아 주고 간 꽃을 비벼 버렸다.

어느 추운 날 밤에 나는 늦게 하숙으로 돌아 왔다. 그 때 에는 나는 학교에 가까운 하숙에 와 있을 때요, C와 서로 안 지 일 년이 넘어서였다.

방에 와보니 C가 내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어째서 아직도 안 갔니? 전차가 끊어졌나?

하고 나는 지어서 냉혹한 말을 하였다. 이것은 C응 대해서 내가 위험을 느낄때에 하는 버릇이었다. 자정이 넘은 밤, 하 숙한방, 자리를 깔아 놓은 데 ㅡ 그것은 젊은 남녀에게 큰 위험이 아닌 수 없었다.

『나 오빠헌테 할 말씀이 있어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이렇 게 늦게 있어서 안될 줄 알면서도 내가 왜 오빠의 친동생이 안되었을까, 사촌이라도 육촌이라도 못되었을까?

『아무러기로 이게 웬일이냐?

『용서하세요 오빠.

나는 말없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C의 말이 내 골수에 까 지 사모치게 정답고 고마왔다. 그러면서도 나는 무서운 얼 굴로 그를 대하지 아니하면 아니 된다.

『오빠, 앉으세요. 잠깐 한 말씀만 하고는 갈테야요.

나는 앉았다. 앉아서 내 책상 위에 펴놓은 책을 뒤적거렸 다. 그것은 쇼오펨하우에르의 <네가지 뿌리>였다. 이 우주 는 마음의 꿈틀거림이라는 그의 철학설을 말한 것이었다.

"Blind will ! blind will"

하고 나는 속으로 중얼 거렸다.

『무슨 말이야?

하고 나는 책망하는 태도로 물었다. 그래도 C는 농워 하지 조 아니 하였다.

『나 Y헌테 편지했어요.

『무에라구?

『인제부터는 혼인 문제를 떠나서 순전히 친구로 지내자구 요.

『그건 무슨 소리야?

『사랑이 안 가는 걸 어떻해요?

『사랑이 안가?일년 이상 이나 서로 사랑하다가 약혼까지 했다면서 그건 무슨 소리야?

『그래두 난 사랑할 수 없어요.

C는 한숨을 쉬고 고개를 살새살새 흔들며 회 젓가락으로 숯불을 만진다.

나도 잠시 말이 없었다.

『원체 제가 Y를 사랑한 것은 아니거든요. Y가 하도 그러 니깐 끌려 간 것이죠. Y가 사람은 좋은 사람이니깐 혼인해 서 살면 못 살랴, 이렇게 생각했었지요. 그렇지만 두고두고 생각해 보니깐 그것이 옳지 않단 말씀야요. 첫째 제가 저를 속이고, 그리고는 Y를 속이는 것이란 말씀야요. 그래서 생각 다 생각다 끝에 나 자신에게 충실하리라, 하고 결심을 했어 요. 오빠에게 먼저 어쭈어 보려고도 했지마는 가만 생각해 보니 오빠께서는 무엇이라고 말씀하시기가 어려울 것 같거 든요 그래서 내 마음대로 Y에 게 허구 집에 오빠께 어구 편 지을 써부치고 오빠 뵈오러 온것이야요. 오바께서 걱정하실 줄도 알았지만.

『그리군 어떡헐래?

『그리군 무어 어떻게요?혼자 살지요. 전 시집 안가요. 인 생 혼자 살아요.

하고 한참이나 먼히 벽을 바라 보다가,

『전 오빠 동생으로 오빠만 생각하고 혼자 살 테야요.

하고 두 손으로 낮을 가리운다.

나는 고개를 수없이 흔들고 나서,

C!

하고 불렀다.

『네?

『그게 안될 말야. 네가 Y허구 끊는다면 나허구도 절교해 야 한다. 너를 내게 소개한 것이 Y이거든. 그리고 Y가 너를 내게 맡겼거든. 그렇지 않아도 세상에서는 내가 너를 사랑 하느니 말이 많은데 이게 만일 Y허구 파혼을 했다면 세상이 어떻게 생각할 것이냐. 또 세상이야 무에라든지 친구의 의 리에 어그러진단 말이다. 안 그러냐? 그러니까 인제부터 너 는 내게 오지 말아.

C는 훌적훌적 우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나는 단연히 그와 절교할 수 밖에는 없었다.

『저 가요.

하고 C는 일어났다. 나는 못 들은 체하고 책을 들여다 보 고 있었다.

『오빠, 안녕히 주무셔요.

하고 C는 짜작짜작 슬리퍼 소리를 내면서 나가 버렸다.

C가 간 뒤에 나는 마음이 무척 괴로쳐졌다. C에게 대하여 너무 냉혹하게 한 것이 뉘우쳤다. 그러나 친구 Y에게 대한 의리로는 나는 이렇게 하지 아니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일 종의 승리의 기쁨을 느낄 수가 있었다.

며칠 후 K가 찾아 왔다. K C의 친한 동무로서 C와 함께 K를 몇 번 찾기도 하고, C K와 함께 몇 번 놀러도 다 닌 여학생이었다. 그는 음악 학교에 다녔다.

K가 찾아 와서 매우 황황헤,

C일간 다녀 갔습니까?

하고 물었다.

『네, 이삼 일 전에 다녀 갔습니다.

『못 만났어요.

K는 잠깐 주저하더니,

C가 어디로 갔습니다.

하고 편지 하나를 내게 준다.

그것은 나에게 한 것이었다. 뒷 옆에는 「○○역에서」

라고 썼고 연필로 쓴 것이다.

『읽어 보셔요.

하고 K는 재촉하였다.

나는 무슨 불길한 예감을 가지면서 편지를 꺼내었다.

그 편지는 이러하였다 ㅡ

『사랑 하는 동생, 나는 ○○로 가오, 세상에 살아 있을 마음이 조금도 없소.

나는 Y에게 파혼한다는 선언을 하였고 N오빠에게서는 절교 한다, 다시는 내게 오지 말아라, 하는 선고를 받았소. N오빠 에게 대한 감정이 형제의 사랑 이상인 것을 발견하였소. 나 는 사랑해야 할 사람에게 대한 사랑을 잃고 사랑해서 안될 이를 사랑하는 것이오. 그러나 나는 이 사랑을 죽이기로 결 심하였소. 만일 이 사랑을 죽이기가 심히어려우면 나는 이 사랑을 품은 채로 이 몸을 태워 버리려오.

여기까지를 두고는 그 남저지는 찢어 버렸다. 그것은 C가 찢었을 리는 만무하고 아마 K가 찢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찢은 대목이 무엇이냐고 물을 용기도 흥미도 없었 다. 다만 C가 죽는 것만 같아서 가슴이 두근 거렸다.

『그러니 지금 곧 따라 가 보셔요.

나는 이렇게 말하였다.

『아니오. 갈 수 없지오. Y헌테 전보다 하렵니다.

하고 나는 하녀를 불러서 곧 전보를 부탁하였다. 「곧 오 라」는 것이었다.

C를 사랑해주셔요.

K는 이런 말을 하였다.

C를 사랑합니다. 누이 동생으로요.

나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것으로 C는 만족하지 못합니다.

『그래도 할 수 없지요.

『왜 그세요? C가 여간 선생님을 사모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전에도 저헌테서 저녁을 먹었어요. 아마 선생님 찾아 오 기 전날인가 봐요. 암만 해도 Y를 사랑할 수가 없노라고요.

그렇지만 ㅡ 그렇지만 오빠를 어떻게 사랑 하느냐고요. 여 간 괴로와하는 것이 아니야요. C가 저러다가는 죽을는지 모 릅니다. C를 사랑하지 못하십니까?

『안될 말이야요. 또 나는 사랑을 원치도 아니해요. 또 내 가 남을 사랑하거나 남의 사랑을 받을 처지도 아니 되고요.

전보를 쳤으니까 Y가 올라 오겠지요. 그러면 다 해결이 되 겠지요.

Y는 올라 왔다. 나를 찾아 온 Y는 입술이 마르고 눈이 움 쑥 들어 가고 손가락이 떨리도록 흥분되어 있었다.

나는 손을 내믿어 그에게 악수를 청하였으나, 그는 못 본 체하고 원망하는 눈치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위선자!

이것이 Y가 내게 던진 첫 말이었다.

이 말은 칼로 내 가슴을 어이는 듯하였다. 대개 이 말은 내 성격의 정통을 찌른 까닭이었다. 속에는 갖은 물욕과 명 예욕과 애욕을 품으면서 겉으로 그것이 없는 척 하는 나 ㅡ 이것이 위선자가 아니고 무엇이냐.

나는 다만 고개를 끄덕끄덕하였다. 하나님이 Y를 보내어 Y 의 입을 통하여서 내 죄를 논하시고 내게 경고를 주시는 것 같았다.

『할 말이 없소? 할 말이 없어? 왜 아니라고 좀 못하오?

Y는 더욱 손을 떨면서 부르짖었다.

『할 말 없지요, Y. 내가 분명 위선자거든요.

나는 이렇게 기운 없이 대답하였다.

C는 내약혼한 아내인 줄 아시오?

『알지요.

Y의 어성은 거의 알아 들을 수 없을이만큼 떨렸다.

『내가 C에게 대해서 마음속으로는 사랑을 느낀 것을 부인 할 수 없으나 내가 C를 유혹한 일은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나는 형의 부탁대로 애써 지켜 왔노라고 믿는데요.

『에익, 금방 한 말을 또 뒤집어!

하고 Y는 이를 뿌드득 갈았다. 그는 분명 나를 때리고 차 고 싶은 것을 참는 모양이었다.

그의 얼굴에는 피가 한 방울도 없는 것같이 창백하였다.

『무슨 오해 아니시오?

하고 나는 내 변명을 하려는 것보다는 Y으 흥분된 마음을 눅히려고, 그의 터지려는 심장으 아픔을 덜려고 이렇게 말 하였다.

Y는 아마 내 태연한 태도에 기가 질림인지 잠깐 말이 없이 낮 근육을 씰룩거리더니, 아까보다는 감정을 억제하는 음성 으로,

『나는 애인에게 배반을 당하고 또 친구인 형에게 배반을 당하여소. 그중에 하나만도 분통이 터질 일이어든, 두 가지 를 한꺼번에 당하는 심사가 어떠하겠소? 내가 믿고 맡겼던 친구에게 ㅡ 다른 사람도 아니요 내가 맡긴 사람에게 약혼 한 안해를 빼앗긴 심사가 아떠하겠느냐 말이ㅗ.

하는 그의 말은 실로 비창하였다. 이말을 들을 때에 나는 C를 보고 싶어한 것이라든지 그와 마주 앉거나 같이 결을 때에 일종의 기쁨을 느낀 것이라든지, 이런 것이 다 미안하 고, 무릇 그와 가까이 함으로 내가 기쁨을 얻은 것이 모두 Y으 소유인 보물을 훔친 것만 같아서 낯이 후끈거렸다. 그 래서 나는 다만 고개를 푹 수그리고 Y의 입에서 흘러 나오 는 말을 들을 뿐이었다.

『벌써부너 동경으로부터 내게 형과 C와의 관계에 대해서 투서가 여러 번 왔으나 나는 형을 믿기 때믄에 다 찢어버리 고 말았지요 내가 어떻게 형을 믿었는지, 나는 못 믿어도 당신만은 믿을 수 있는 삶으로 알었구료. 그랬더니...........

하고 Y는 또 부르르 떤다.

『그랬더니 어떻단 말씀이오?

나는 Y으 내게 대한 인식이 암만 해도 잘못된 것 같아서 이렇게 물었다.

Y는 매우 괘씸한 듯이 나를 이윽히 눈흘겨 보더니,

『그래도 뚝 잡아 떼어 그래 사내답게 자백하고 내게 사죄 할 만한 양심까지도 없이? 증거를 보여?

하고 양복 저고리 속주머니에 철필 공책 한 권을 꺼내어 내 면상을 향하고 던진다. 그 책은 내 안경을 쳐서 떨어 뜨 렸다.

『그걸 점 보아!

하고 Y가 소리를 질렀다. 나는 성이 나려고 하였으나 참았 다. 그리고 안경을 다시 집어 쓰고 공책을 들어서 퍼보았다.

그것은 C의 일기였다. 일기에는 대부분이 내게 관한 것이었 다. 나는 그 일기에 문귀들을 지금 기억 할 수는 없으나,내 게 대한 퍽 열렬한 애저의 토로였고, 동시에 Y에게 대한 불 안을 말한 것이었다.

자기는 암만 해도 Y를 버리고 내게로 돌아 올 수 바께 없 다는 말을 중언 부언하였고, 내가 자기의 생명이란 말도 하 고, 더 심한 것은 나와 둘이 사랑하는 여러 장면을 상상하 여서 여러 편의 시를 지은 것이었다. C는 상상과 현실과를 혼동하여서 마치 남이 보면 자기와 나와 현실에서 그러한 장면들을 연출한 것처럼 생각하게 하였다.

그 시의 문귀를 이제 기억할 수는 없으나, 「그이」의 품 에 밤이 맞도록 안겨 있었노라는둥, 「그의」의 불 같은 입 술의 흔적이 자기의 온몸에 덮였노라는둥, 저는 벌써 마음 만 아니라 몸까지도 「그이」에게 바쳤노라는둥, 차라리 병 적이라 할 만하게 상상한 현실을 혼동한 열정적 문귀들을 늘어 놓았다. 얼른 보기에는 마치 사랑의 담대한 자백인 것 과 같았다.

나는 이 일기를 읽으며 아니 놀랄 수가 없었다. 만일 C가 진정으로 그처럼 뜨겁게 나를 사랑하는 줄을 알았던들 나는 정말 C의 몸과 마음을 다 가져 버렸을는지 모른다. 우정이 나 세상의 명예나 다 집어 덪지고 C와 함께 지옥의 유황을 속으로 춤을 추며 들어 갔을지도 모른다 ㅡ 나는 이렇게 생 각하였다. 사실상 C가 나에게 이처럼 열정을 퍼붓는 줄은 몰랐다.

또 돌이켜 생각하면 이 일기나 그 속에 있는 시들은 모두 C으 관념 유희인지도 모른다. 혹은 나를 오빠라고 칭찬하 고, 혹은 「그이」라고, 혹은 「나를 맡으신 이」라고 하여 그 삼인칭들이 다 나를 가리킨 것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지 마는, 글의 전체로 보건댄 그 삼인칭 대명사들이다 나를두 고 이른 것이라고 할 수 밖에 없을 것이었다.

『이게 시지, 어디 사실 기록이오.

나는 일기책을 접어서 Y를 주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두고 지내 보면 다 아실 날도 있을 것이오. 나는 지금 구구한 변명을 하기를 원치 아니하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오. 내가 지금 형께 원한 것은 어서○○으로 가서 C를 만나시는 것이오.

나는 이렇게 말하고 한숨을 쉬었다.

『내가 이렇게 칼까지 품고 왔지마는 오늘은 그냥 가오.

그러나 우정과 신의를 배반한 남궁 석을 고이 세상에 있게 할 수는 없소. 조선을 위해서라도 웅징할 필요가 있는 줄 아오.

하고 인사도 없이 가버렸다.

Y가 간 뒤에 나는 C가 무척 그리움을 느꼈다. 그렇게도 나 를 생각하던 C던가 하고 일전 밤에 다시는 이곳에 오지 말 라고 야멸차게 쫒아 버린 것이 뉘우쳤다.

〈그러기로, 못된 계집애. 무슨 글을 그따위로 써?〉 이렇게도 생각하였다.

Y는 동경에 머물러서 나를 성토하기로 일삼았다. 내가 관 계 있는 모든 단체의 가부들을 찾아 다니면서 내 죄상을 호 소하였다. 교회에서는 목사가 나를 찾아 와서 진상 조사를 하고, 청년회와 학생회에서도 그러하였다.

이러한 조사에 대하여 나는 한 마디도 변명치 아니하였다.

나는 이러한 일이 도저히 별명이 되지 아니함을 알뿐더러, 또 변명을 하고 싶지도 아니하였다. 내가 이 일을 변명하자 면 C를 미친년을 만들지 아니하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차마 못할 일이었다. 나는 사모하고 사랑하는 사람 을 희생해서까지 내 명예를 보호하려고는 아니하였다. 나는 이 쓴잔을 잠자코 받기도 결심하였다. 그리고 나는 이 액에 걸린 원인이 내 마음의 부정이라고 믿고, 또 창기 집에 갔 던 죄의 벌이라고 믿었다. 그러하기 때문에 나는 이만한 벌 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믿으려 했다. 나는 교회며 청년회 며 학생회며 잡지에 관한 모든 직분을 내어 놓았다.

그리고 내게 학비를 주던 K씨에 대하여서는 학비를 사퇴하 였다. 이러한 누명을 쓴 나로는 도저히 학교에서 선생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Y는 청년 회관에 남궁 석 성토 매장 연설회를 개최하는 일 까지 다하고는 의기 양양하게 북해도로 가버렸다.

그로부터 십여 년을 지나서 Y는 나를 서울에서 찾은 일이 있었다. 그때에 그는 내지 대하여 전연 오해이던 것을 사죄 하고, 이 일을 아는 친구를 모조리 찾아 다니면서 자기의 잘못 알았던 것을 다 말하였노라는 말을 하였다.

Y는 동경 사건이 있는 지 약 삼 년 후에 마침내 C와 혼인 한 뒤에도 C와 나와의 관계를 좋지 못한 것으로 믿고 있었 다고 한다. 다만 지나간 일이니 용서하고 혼인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고 C Y의 의심이 풀리도록 분명한 변명을 아니 하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C가 임종에 ( C는 사 남매의 어머니가 되고는 죽었다) Y를 보고 그 일기는 전연 자기의 상상으로 쓴 것이 라고, 남궁 석은 끝까지 제 손가락 하나 건드린 일이 없었 느니라고, 도리어 Y를 위하여 자기에게 절교를 선언하였느 니라고, 그러나 자기는 생전에 남궁 석이가 자기를 사랑하 였다는 그 상상적 조작을 뒤집기가 싫었노라고, 그러나 인 재 세상을 떠난 때에 바른 말을 하노라고, 유원 오빠에게 대해서는 그렇게 큰 명예에 손실을 드려서 미안하고 죄송하 지마는, 그래도 그것이 한 기쁨이었노라고, 후회는 아니하노 라고, 이렇게 C가 말하더라고 Y가 말하였다.

Y의 말을 듣고 나는 빙그레 웃었고 내 곁에 앉았던 내 아 내 K도 빙그레 웃었다. K도 나와 C와의 관계에 대하여서는 약간 불쾌한 의심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는 그러하거니와, 나는 Y사건으로 해서 학교도 동경도 다 버리고 다시 방랑의 길을 나서게 되었다.

그러나 그후에 생긴 일들은 지금까지와 같은 청년 시대의 이야깃 거리가 아니라, 기미년 사건이라든지, 내 정치적, 사 회적,사상적 여러 가지 사건과 고민이라든지, 모두 심상치 아니한 문제들이어서 이 자서전의 붓을 여기서 잠깐 중지하 련다.

一九三六年 十二月 二二日~三七年五月一日
《朝鮮日報》所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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