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29

"4.15총선, 누구를 어떻게 심판할까"Paik Nakch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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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ik Nakchung
13 hrs ·



4.15총선을 앞두고 <창비주간논평>은 두개의 칼럼을 잇달아 내보냈습니다. 먼저 나간 것이 "4.15총선, 누구를 어떻게 심판할까"라는 제 글이었고(2020.4.1.), 이어서 강경석 평론가의 "총선 승리 이상의 것"(4.8)이 나갔습니다.

둘다 제가 이 공간에 링크하기도 했습니다. 두 글이 모두 양대 정당에 의한 위성정당 창당으로 선거판이 혼탁해진 점을 비판하면서도 최종 결과에 대해서는 희망적인 관측을 했지요.
지난주에 총선결과를 보고 나서 쓴 세번째 논평이 이남주 교수의 "21대총선과 촛불혁명의 새로운 국면"입니다. 앞의 두편과 마찬가지로 '촛불혁명'이라는 화두를 붙들고 있습니다. 지난 연말의 신년칼럼("촛불혁명이라는 화두"(magazine.changbi.com/191230/?cat=2466)에서 제가 촉구했던 바이기도 하지요.

이남주 교수는 "이번 선거도 촛불혁명이 우리 사회를 얼마나 많이 변화시키고 있는지를 확인시켜주었다. 우선, 재난긴급생활비나 기본소득 논의가 주요 의제로 등장하는 등 사회경제적 의제가 뚜렷하게 확장되었다. 이는 코로나19에 의해 촉발된 의제이기는 하지만 촛불혁명 시기 우리 사회의 대전환을 지향하는 여러 논의가 축적된 결과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이들 의제의 논의는 재난에 대한 수습을 넘어 새로운 사회경제적 제도의 구축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또한 총선을 평가할 때 거의 언급되지 않고 있지만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수구적 보수의 영향력을 결정적으로 약화시킨 면도 주목해야 한다. 이번 선거에서 레드콤플렉스는 그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고 지적합니다.
이어서, "이번 선거를 계기로 촛불혁명의 새로운 국면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현재 진행되는 변화를 아직 이론적으로 잘 포착하지는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현실을 자신이 알고 있는 기존 프레임에 끼워 맞추는 식의 사고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언어를 초과하는 현실에 더 겸허해지고 거기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해가는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이러한 노력에 따라 어떤 위치에 있든지 그에 걸맞은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아니면 역사 흐름에서 도태될지가 결정될 것이다"라고 결론짓고 있지요.
여러분께 일독을 권하면서 두어 가지 제 생각을 덧붙입니다.
첫머리에 이교수는 "지난주 21대 총선결과에 대한 호불호는 정치적 위치에 따라 분명하게 나뉘었지만 내용적으로 모두를 당혹스럽게 했다"고 말하는데, 약간은 시민운동의 관점에 너무 치중된 발언 같습니다. 민주당과 민주당의 대다수 열성지지자들은 '당혹'은커녕 '환호작약'했고, 일반 국민들도 미통당의 참패를 보면서 일단은 후련하고 통쾌한 감정이 앞섰을 거예요. (저부터 그랬으니까요.^^)
물론 '민주당 국회'가 아닌 '촛불국회'가 목표인 사람들에게는--저도 그 중 하나입니다만--당혹감도 없지 않습니다. 촛불국회를 위해서는 일단 반촛불세력의 위세를 꺾는 일이 선결조건이지만 입법부의 발본적인 쇄신이라는 조건마저 채워야 합니다. 그런데 이번 총선에서는 그동안 우리 국회와 선거제도의 가장 심각한 문제점으로 지적되어온 양대 정당 과잉대표성이 더 굳어졌으며, 그것도 민주당과 미통당의 실질적인 짬짜미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결과적으로 입법부 개혁에 필요한 범개혁세력 연대의 폭이 오히려 좁아졌습니다.
민주당에도 이런 결과에 당혹해하는 이들이 없지야 않겠지요. 그러나 '열린우리당의 아픔'을 기억하며 신중과 겸손을 다짐하는 것만으로는 촛불국회 형성의 남은 과제를 감다할 수 없을 겁니다. 먼저 필요한 것이 '겸손'보다 '참회'이고 지금이라도 기득권을 내려놓을 구체적인 정책들입니다. (정책과 의지만 있으면 입법화할 의석수는 확보돼 있지요.)
180석의 거대야당이 과연 그걸 해낼까요? 저는 의원들에게만 맡겨놔서는 절대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당내에서 국민의 다음 심판대상이 누굴지를 아는 강력한 리더십이 나타나고 촛불시민들의 다각적인 압박이 가세해야 겨우 될 일입니다.
그러니 환호할 만큼만 환호하고, 당혹해할 만큼은 당혹해하면서, "우리의 언어를 초과하는 현실에 더 겸허해지고 거기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해가는 노력"을 각자가 지성스럽게 계속해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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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총선과 촛불혁명의 새로운 국면 | 창비

21대 총선과 촛불혁명의 새로운 국면 이남주 이남주 지난주 21대 총선결과에 대한 호불호는 정치적 위치에 따라 분명하게 나뉘었지만 내용적으로 모두를 당혹스럽게 했다. 정부여당은 이번 결과로 가중된 책임을 어느 때보다 심...





21대 총선과 촛불혁명의 새로운 국면

이남주



이남주

지난주 21대 총선결과에 대한 호불호는 정치적 위치에 따라 분명하게 나뉘었지만 내용적으로 모두를 당혹스럽게 했다. 정부여당은 이번 결과로 가중된 책임을 어느 때보다 심각하게 느낄 수밖에 없고, 미래통합당 등 보수세력은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앞날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 진보정치세력 그리고 시민사회는 적폐청산의 진전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거대 양당 혹은 ‘1.5 정당’ 체제의 출현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아가기가 쉽지 않으리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모두 나름의 일리가 있는 반응이지만, 이번 총선의 획기적 결과에 대한 온전한 해석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특히 왜 당혹감을 느끼게 되는지를 진지하게 성찰하지 않고 협소한 자기 이해관계로 총선의 의미를 해석하다보면 자신이 인지한 문제를 해결하기 더 어려워진다.



이번 총선에 대해 가장 의아하고 문제적인 반응은 ‘변화’보다 ‘안정’을 택했다는 평가다. 여당에 대한 지지는 안정을 선택하는 것이고 야당에 대한 지지는 변화를 원하는 것이었다는 식의 프레임은 촛불혁명에 의한 변화를 전혀 염두에 두지 않은 사고방식이다. 이러한 관성적 사고방식이 총선결과에 대해 당혹감을 갖게 하는 중요한 원인이다. 이번 총선의 정치적 의미를 희석하려는 사람들이 여기에 지역주의의 부활이나 깃발효과 등과 같은 해석을 보태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그런데 개혁적 성향의 언론조차 이러한 평가에 특별한 토를 달지 않거나 편승한 경우가 적지 않다. 총선결과의 원인도 단기적 요인, 미래통합당의 설화나 세대론 등에서 찾으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치적 성향을 막론하고 정치 평론가나 분석가들이 대체로 촛불혁명이라는 성격 규정에 부정적이었던 경향을 고려하면 이러한 평가가 우연만은 아니다.



촛불혁명이라는 규정에 부정적인 이들은 촛불항쟁에서 탄핵까지의 변화를 혁명적 변화가 아니라 헌법정신의 실현을 요구하는 ‘보수적’ 요구에 기초한 것으로 해석한다. 그리고 촛불항쟁 이후 ‘일상’의 회복 속에서 이러한 해석은 더 쉽게 받아들여졌다. 여기에 촛불항쟁 이후에도 바뀐 것이 없다는 냉소적 반응이 보태어지면서 현재의 상황을 촛불혁명과의 연관성 속에서 보려는 시도는 더 뒷전으로 밀렸다. 백낙청은 2020년 ‘신년칼럼’(「촛불혁명이라는 화두」)에서 이러한 흐름의 문제를 지적하고 촛불혁명이라는 화두를 계속 연마할 것을 요청한 바 있다. 이 관점 아래서는 이번 총선 결과가 안정을 선택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올 수 없고 또 다소 갑작스러운 결과에 대해 선거공학적 해석에만 몰두하지도 않을 것이다.



필자도 바디우(A. Badiou)의 논의를 빌려와 촛불혁명을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촛불항쟁이라는 사건에 대한 충실성을 실현시켜가는 시퀀스로 규정한 바 있다(「3.1운동, 촛불혁명 그리고 진리사건」, 『창작과비평』 2019년 봄호). 혁명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가 아닌가 하는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촛불항쟁이 우리에게 새로운 사유와 실천적 자세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이를 궁구하려는 태도다. 이번 총선결과도 이러한 태도의 필요성을 자각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결과에 대해 각자 위치에서 득실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촛불혁명기의 유권자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변화가 무엇인가를 알아내고 그 요구를 어떻게 실현해가야 하는가를 논의해야 한다. 이 일을 얼마나 잘해나가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정치적 성패가 좌우될 것이다.



이번 선거도 촛불혁명이 우리 사회를 얼마나 많이 변화시키고 있는지를 확인시켜주었다. 우선, 재난긴급생활비나 기본소득 논의가 주요 의제로 등장하는 등 사회경제적 의제가 뚜렷하게 확장되었다. 이는 코로나19에 의해 촉발된 의제이기는 하지만 촛불혁명 시기 우리 사회의 대전환을 지향하는 여러 논의가 축적된 결과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이들 의제의 논의는 재난에 대한 수습을 넘어 새로운 사회경제적 제도의 구축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또한 총선을 평가할 때 거의 언급되지 않고 있지만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수구적 보수의 영향력을 결정적으로 약화시킨 면도 주목해야 한다. 이번 선거에서 레드콤플렉스는 그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코로나19 국면에서 중국을 겨냥한 제노포비아를 활용해 그 공백을 메우려고 했지만 이는 도리어 보수세력이 신뢰를 상실하게 된 주요 원인 중 하나였다. 코로나19가 촉발한 위기를 더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한 제도개혁으로 이어가는 것과 한반도평화프로세스를 지속하는 것이 향후 촛불혁명의 성공적 추진에 무엇보다 중요하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고 경제에 매우 큰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되는 시점에서 정부여당이 자만심을 경계하고 겸손함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은 타당하다. 그러나 이것이 값싼 처세술로 전락해서는 안 되며 촛불혁명에 대한 충실성의 표현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대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하게 밝히는 일도 같이 진행되어야 한다. 당장 현안을 잘 다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니 현안을 잘 다루기 위해서도, 무엇보다 촛불혁명을 진전시키기 위한 연합정치에 진지한 태도를 보여주어야 한다. 이는 도덕적 요구만은 아니다. 이번 선거에서도 비례투표 결과를 보면 여당 관련 정당의 지지율은 40% 정도다. 180석이 넘는 의석은 개헌을 제외한 대부분의 결정을 단독으로 할 수 있다는 의미이지만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의제에 대해 유권자 다수의 지지를 확보하는 것은 여전히 지난한 과제이다. 70% 이상의 유권자들이 촛불혁명의 대의에 동의한 경험을 고려하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나 문제는 여당의 태도에 있다. 이번 총선에서 비례위성정당 논란이 여당의 태도에 대한 의구심을 증가시킨 것은 이후 국정운영에 부담을 줄 가능성이 높다. 선거법, 국회법, 정당법 등에서 연합정치가 원활하게 작동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현재의 우월한 지위와 힘을 대의 실현을 위해 사용하는 것만큼 진정성을 인정받는 데 빠른 길은 없다.



이번 선거를 계기로 촛불혁명의 새로운 국면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현재 진행되는 변화를 아직 이론적으로 잘 포착하지는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현실을 자신이 알고 있는 기존 프레임에 끼워 맞추는 식의 사고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언어를 초과하는 현실에 더 겸허해지고 거기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해가는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이러한 노력에 따라 어떤 위치에 있든지 그에 걸맞은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아니면 역사 흐름에서 도태될지가 결정될 것이다. 촛불혁명이라는 역사 흐름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이남주 / 성공회대 교수, 정치학

2020.4.22. ⓒ창비주간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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