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석
Favourites · 20 Jcagnpuf4a7nry 1at g05s91i37o6:red271 ·
김연철 전 장관의 여러 발언들을 보면 알 수 있지만 문재인 정부의 외교정책의 핵심에는 한반도 문제와 미중대립을 분리시키는 것이었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미중대립의 심화는 시간문제였다. 그 시간이 도래하기 전에 남북미를 연결하는 새로운 삼각관계를 만들어내어 북조선을 중국으로부터 어느정도 떼어내야 비로소 한반도 문제와 미중대립이 연결되는 사태를 막을 수 있다는 게 김연철과 이 정부의 판단이었다.
하지만 트럼프, 바이든 행정부의 안일함, 한국 정부 내의 근거없는 낙관, 일본의 반발과 한국과의 대립 등이 얽히며 실패했다. 개인적으로는 국내에서도 외교 전문가들의 광범위한 동의와 합의를 만들어내지 못한 상황도 주요한 패착 중 하나라 본다. 이 틈을 중국이 파고 들었다. 미중대립이 강화될수록 북중 간의 이해관계는 일체화되어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에 맞춰 한미일 삼각공조 또한 다시금 가동되고 있다.
아직까지는 한국의 문재인 정부의 반일(反日) 지향과 한반도 문제 중시 및 미국의 사실상의 방기로 한국이 적극적으로 삼각공조 속으로 뛰어들고 있지 않지만 시간문제이다.
일본은 이미 인도, 호주 등을 끌어들여 독자적인 외교적 플레이어로 활동하고 있고 그 규모 또한 인구로만 14억이 넘는 거대한 규모이다. 이에 맞서 한반도 문제를 중립화시키려는 한국은 고작 인구 5천만에 조금 강화된 군사적 능력밖에 없다. 결국 이 강화된 군사능력은 미중대립 구도 속에서 북조선을 향하게 될 것이다.
"시간과의 경쟁" 속에서 어떻게든 한반도 문제를 미중대립 속에서 분리시켜 적어도 한반도 문제만큼은 남북미중이라는 4국 주도의 대화체제의 원만한 협력창구로 만들려던 김연철의 시도는 남북관계 악화로 김연철이 사임하면서 파탄났다고 본다. 운명은 이미 정해졌다. 문재인 정부 임기도 얼마 안 남았다. 정권교체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안타깝지만 일본에게 징용공, 위안부라는 희생물을 바치고 한미일 삼각공조에 참여하는 수밖에 없다. 분리를 시도하는 정책보다는 차라리 반대로 일본과의 긴밀한 협력 속에서 미일 전략 내부에 한국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방향으로 갔더라면 더 효과적이지 않았을까 싶다. 여러모로 참 아쉬운 학자 김연철의 여정이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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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석
Favourites · 20i tJanuparym amo0tn1s 16ou9:108 ·
민주당 측이 생각하는 남북관계의 진전 코스는 경제협력 - 비핵화 - 평화체제로 구성돼 있다. 남북한의 통일을 가능케 하는 물적 기반으로서의 경제공동체의 건설은 경제협력을 통해서 이뤄지는데, 경제협력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제재의 완화가 필수적이다.
북조선의 핵문제는 단순히 남북만의 문제가 아니라 유엔을 통해 공인된 국제사회의 합의에 기초해 이뤄지는 제재 속에 놓여 있다. 엄연한 문명국가이자 국제사회의 일원인 한국으로서는 그 합의를 준수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서 국제제재가 풀리기 위해서는 비핵화가 진전되어야 한다. 경제협력 - 제재완화 - 비핵화 - 평화체제의 건설이라는 과정이 하나의 연속적이면서도 순환적인 고리를 형성한다. 그를 통해 평화체제와 남북한 경제공동체의 건설이라는 최종적인 경로로 향하게 된다. 즉 민주당적 세계관 속에서는 한국이 추구하는 비핵화 코스와 북조선의 핵능력 고도화가 길항적 관계를 이루고 있다.
안타깝게도 시간은 전자보다는 후자의 편이다. 반대의 상황은 민주당이 제시하는 비핵화 코스의 역순으로 간다. 평화체제 건설의 실패=남북 및 북미 간의 대립 심화 - 핵무장능력의 고도화 - 제재의 강화 및 지속 - 재래식 군비경쟁 심화라는 역코스로 빠질 위험이 상존하고 실제로 그러한 방향으로 지금 나아가고 있다.
북조선은 미중대립구도 속에서 중국측을 택했고 역코스가 강화되어 가고 있다. 정치외교학 전공도 아닌데 내가 왜 이런 고민을 하고 공부를 하고 있는지 한편으로 의심스럽지만 어쨌거나 고민할 지점이 참 많다. 좌파의 입장에서 내세울 수 있는 게 뭐가 있을지 고민이 정말 많다. 민주당의 입장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비판도 가능해진다. 사실 보수측의 외교전략은 뭔지 잘 모르겠다. 찾아보아도 근본없다는 생각만 든다. 미국이라는 주술만 외우는 모지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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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석
Favourites · 2t5 Jan4suarty at1 a01g:l6r07a1ed6 ·
어떤분께 답변하다가 갑자기 생각나서 적는 글. '비핵화'라는 개념을 놓고 벌어지는 한국, 북조선, 그리고 미국 간의 대립만 봐도 이게 될 일이 아니라는 건 쉽게 알 수 있다. 한국은 "북한의 비핵화"라는 의미로 비핵화를 사용하고 있는데 반해 북조선은 "조선반도"의 비핵화라는 의미에서 비핵화를 사용하고 있다. 그 의미는 상당히 자의적이고 범위가 넓은데 단순히 한국에 제공되는 미국의 핵우산 제거뿐만이 아니라 북조선이 명확하게 말하듯이 "남조선 주변의 비핵화"까지 주장하고 있다.
그에 따라 북의 기본적인 요구는 1. 미국의 핵무장 공개, 2. 남한의 모든 핵무기, 기지 철폐 및 세계 앞에서의 명명백백한 검증, 3. 미국이 한반도와 그 주변에 어떠한 핵 타격 수단도 배치하지 않겠다는 담보, 4. 핵위협이나 북에 반대하는 어떠한 형태의 핵 사용 불가 확약, 5. 핵무기 사용권을 보유 중인 주한미군의 완전한 철수이다. 현실적으로 한국의 전술핵이 철수한 상황에서 사실상 한미동맹의 성격 변화와 미국의 한국에 대한 방위 약속을 포기하라는 의미가 된다.
반대로 미국의 비핵화에는 "앞으로도", "영원히" 핵무기를 개발할 수 없게 한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미래 핵개발 동기까지 완전히 없애겠다는 것으로 상당히 급진적이고 강경한 입장이다. 2019년 하노이 회담 때 미국은 현존하는 핵과 ICBM 이외에 생화학무기를 포함한 대량살상무기 전체, 그리고 영변핵시설 외에 북한 내의 모든 핵시설 폐기와 추가적인 검증을 통한 관련 인력들의 제거까지 요구했다. 기술진을 비롯해 전체를 옮겨버릴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고 한다. 체제보장 없이 사실상 비대칭무기 전체를 포기하라는 말이기 때문에 북으로서는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더 나아가 미국은 이미 2차 북핵위기와 6자회담 중에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 2조에 명시된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을 허용하는 것조차 사실상 그 권리를 인정하지 않게 됐다. 북조선은 평화적 핵이용 권리를 인정받아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미국은 '적절한 시기(appropriate time)'에 논의하자면서도 그 적절한 시기를 "모든 핵무기와 핵프로그램을 폐기하고 참여국 모두가 만족할 정도로 검증된 이후"에 "NPT 및 IAEA 안전조치의 완전한 이행과 투명학 협력 약속 그리고 핵기술 확산을 중단"할 때라고 규정했다. 더 나아가 인권문제, 생화학무기, 탄도미사일 프로그램, 테러리즘 및 불법행위에 대한 미국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북조선은 미국의 어떠한 형태의, 심지어 주일미군까지 포함한 조금의 안보상의 위협조차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하고 있는데 반해 미국은 반대로 미국이 만족할 때까지의 북한의 "완전한", "불가역적인" 정보공개와 무장해제를 요구하고 있다. 이걸 중재하겠다는 게 될 리가 없다. 아무리 봐도.. 차라리 백낙청의 주장처럼 남북이 연합관계를 형성해서 체제보장 다 한 상황을 만드는 게 더 현실적이다. 북조선이 거의 체제붕괴에 직면해서 사실상 항복하지 않는 한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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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석
Favourites · 1Y1egster4day uatoa r023:50dl ·
전에도 말한 적이 있지만 한국의 보수우파들은 체임벌린을 문재인에 빗대고, 김정은을 히틀러로 보며 한국의 대북유화정책(?)이 대단히 큰 실수라고 말한다. 그들은 체임벌린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당대의 트로츠키가 스탈린의 소련을 바라본 관점만 봐도 이 문제는 단순히 체임벌린 개인의 독단적인 선택이 아니라 대단히 복잡다단한 1930년대 국제정치상황이 개입한 것이라는 걸 알 수 있다.
홍성곤에 따르면 체임벌린과 처칠의 대립은 영국, 프랑스와 독일 간의 대립이라는 유럽 안보의 상황에서 영프가 소련과 동맹을 맺을 것인가, 아니면 독일과 관계를 개선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한 과정에서 나온 노선대립이었다. 처칠은 대독유화책이 소련을 배제, 고립시키는 전략이라는 판단 하에 소련과의 연대를 추구했던 것이고 체임벌린은 당대 영국의 지배계층들이 공유하던 반공주의적 세계관에 충실하여 소련을 배제, 고립시키려 했던 것이다. 즉 대영제국을 위협하는 세력이 나치 독일인가, 소련공산주의인가를 놓고 영국 내부에 의견 차이가 존재했던 것이다.
스탈린은 영프가 독일의 위협을 해소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크게 실망해 반대로 독일에게 접근하는 묘수를 두었다. 스탈린이 이런 판단을 내리는 시금석 역할을 했던 게 바로 스페인 내전이었다. 나치즘을 비롯한 파시즘 세력이 스페인 내전 당시 프랑코를 적극 후원한데 반해 스탈린의 소련은 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는데, 여기에는 영프가 스페인 내전을 사회주의 혁명의 확산이라는 관점에서 보았기 때문이었다. 사회주의 혁명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라도 스페인 내전이 진압되는 게 유리하다는 판단 하에서 스탈린에게 압력을 가했고 스탈린은 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트로츠키는 스탈린이 소련의 안보보장이라는 일국적 관점에서 그런 선택을 내리고 있다며 세계혁명의 배신자라 비난했다. 소련이 그렇게 미지근하게 반응했음에도 뮌헨 회담에서 배제되는 등 영프가 소련의 안보 보장에 적극적이지 않자 스탈린은 독일에 접근하게 되었다.
그런데 히틀러는 2차세계대전 와중에 영국이 항복하지 않는 게 소련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하게 되어 소련을 치는 악수를 두게 되었다. 그러한 선택이 소련으로 하여금 영프쪽에 가담하게 만들었고 그뒤는 알다시피 나치독일의 패망과 독일의 분단, 그리고 미소 냉전이었다. 대영제국의 세력권을 유지하기 위해 나치 독일에게 중동유럽에 대한 어느정도의 재량권을 허용하려 했던 체임벌린의 시도와 나치 독일을 분쇄하여 대영제국의 지위를 유지하려던 처칠 간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지 않다. 이걸 현실에 무분별하게 대입하며 소망적 사고를 해대는 보수우파들을 보면 좀 안쓰럽다. 현실은 영화가 아니다. 영화 좀 그만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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