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7-26

고토쿠 ‘아시아 계급연대’ 100년을 건너 한국 오다 : 책과 생각 : 문화 : 뉴스 : 한겨레



고토쿠 ‘아시아 계급연대’ 100년을 건너 한국 오다 : 책과 생각 : 문화 : 뉴스 : 한겨레




고토쿠 ‘아시아 계급연대’ 100년을 건너 한국 오다

등록 :2011-08-30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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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사상가 고토쿠 슈스이(1871~1911)
‘조선 독립’ 주창 일본 사상가
‘사회주의 신수’ ‘장광설’ 등
서거 100돌 맞아 첫 번역출간
동양적 맥락의 사회주의 눈길
“생을 버리고 의를 취하고/ 몸을 죽이고 인을 이루었네. 안중근이여, 그대의 일거에/ 천지가 모두 전율했소.”

1909년 10월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뒤 일본의 사상가 고토쿠 슈스이(사진·1871~1911)는 안중근의 의거를 기리기 위해 그의 초상을 담은 그림엽서를 만들고 그 위에 직접 지은 한시를 적어넣었다. 1910년 고토쿠가 일왕 암살을 모의했다는 죄목으로 체포됐을 때, 그는 이 엽서를 품에 간직하고 있었다. 이런 일화 때문에 고토쿠는 조선 독립을 주창했던 일본 지식인 정도로 국내에 알려지게 됐다.

그러나 고토쿠의 위상은 단지 조선 독립에 공명했던 반제국주의 지식인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일본을 넘어 중국, 조선 등 아시아 전역에 사회주의를 전파하고 민족을 뛰어넘는 계급적 연대를 추구했던 혁명가였다. 아시아에서 처음 <공산당 선언>을 번역출간했고, ‘파업’, ‘자산계급’ ‘무산계급’ 등 서구 용어를 번역해 소개한 것도 업적으로 꼽힌다.

고토쿠가 죽은 뒤 100년째인 올해에서야 그의 저작들이 처음 국내에서 출간됐다. 임경화 인하대 한국학연구소 인문한국(HK) 연구교수가 최근 <20세기의 괴물 제국주의>, <장광설>, <사회주의 신수> 등 고토쿠의 대표 저작들을 모아 우리말로 옮긴 <나는 사회주의자다>(교양인 펴냄)를 펴낸 것이다.

4년 동안 번역에 매달렸다는 임 교수는 “천황에 반대한 인물로 일본에선 적극적인 조명을 받지 못했던 탓에, 국내에서도 크게 주목하지 않았던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어판 해제를 쓴 박노자 오슬로대 교수는 “고토쿠는 근대 동아시아의 진보적 담론을 만드는 데 선구적 기여를 했다”며 뒤늦은 국내 출간을 환영했다.

고토쿠가 살았던 시대는 일본이 밖으로는 제국주의 침략을 확대하고, 안으로는 후발 자본주의 국가로서 심화된 각종 사회모순에 시달리던 때였다. 이런 배경 속에서 그의 사상은 크게 자유민권운동에서 의회 중심 사회주의로, 또 급진적 무정부주의로 옮겨가는 궤적을 그렸다고 할 수 있다.



1904년 8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제2인터내셔널 대회에 참석한 국제 사회주의자들. 당시 일본 대표로 출석한 가타야마 센(15번)은 당시 러일전쟁으로 교전 중이던 러시아의 대표 게오르기 플레하노프(13번)와 반전에 동의하는 악수를 나눴다. 앞서 고토쿠 슈스이는 <러시아사회당에 보내는 글>에서 러시아 사회주의자들에게 전쟁 반대를 호소했다. 교양인 제공어릴 때부터 자유민권운동의 영향을 받았던 그는 신문기자로 일하면서 사회주의에 눈떴고, 러시아 혁명의 영향을 받은 뒤론 총파업 등 직접행동과 전세계적 계급 연대를 내세운 급진적 무정부주의를 주장했다.

시종일관 현실 속에서 어떻게 혁명을 이룰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서구의 사회주의·무정부주의를 받아들인 고토쿠의 사상적 궤적은 동아시아 전역에 큰 영향을 줬다. 1904년 쓴 <20세기의 괴물 제국주의>는 제국주의를 애국주의와 군국주의의 결합으로 파악하고, 소수 지배계급을 위한 허구임을 낱낱이 파헤쳤다. 이 책은 바로 다음해 중국어로 번역돼 중국 신해혁명의 주역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 등 동아시아 반제국주의 운동에 이론적인 틀을 제공했다.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쉽게 풀어서 설명한 <사회주의 신수>는 중국에서 세차례나 번역됐고, 마오쩌둥 역시 탐독했다고 알려져 있다. 역사학자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신채호는 1928년 일제에 체포됐을 때 고토쿠의 <장광설>을 읽고 무정부주의에 공명하게 됐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고토쿠의 사상은 무엇보다도 ‘국경을 초월한 계급적 연대’를 추구했다는 점에서 오늘날 더욱 울림이 크다. 애국주의가 팽배했던 러일전쟁 당시 고토쿠는 러시아 사회주의자들과 함께 계급적 연대를 기반으로 ‘반전’을 외쳤다.

박노자 교수는 “남한 노동계급의 계급의식은 여전히 지배자들이 강요해 온 애국주의, 군사주의 담론에 눌려 있다”며 “국가·군대·애국에 대한 환상을 깨뜨리려 한 고토쿠의 가르침은 현재도 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또 서구의 사회주의를 동양적 맥락에 맞게 받아들였다는 점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 임 교수는 고토쿠의 사상 속에 담긴 ‘유교를 바탕으로 한 한학적 기반’에 주목했다. 고토쿠는 유교적 희생 정신을 계승한 지사들이 혁명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등 소수 지식인들의 계몽적 구실을 역설했다. 이는 노동계급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결점으로 지적될 수도 있지만, 노동계급이 취약했던 아시아의 현실적 맥락에 충실했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다.

임 교수는 “고토쿠의 사상적 궤적은 현실에 따라 끊임없이 자신의 사상을 발전시켜나갔던 흔적”이라고 평가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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