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벽학당 새별왈왈] 개벽하는 청년들과의 만남 - 새별(조성환) : 네이버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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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벽학당 새별왈왈] 개벽하는 청년들과의 만남 - 새별(조성환)
개벽학당
2019.07.01. 23:29142 읽음
개벽학당 모시는 선생님 새별 ©고유경
개벽하는 청년들과의 만남
새별 조성환
역사적인 개벽학당의 첫 학기가 끝났다. 삼일독립운동 100주년이 되는 3월에 시작했다가 <개벽> 창간 99주년이 되는 6월에 막을 내렸다. 이런 역사적인 현장에 동참하게 되다니 나로서는 영광스러울 따름이다.
개벽하는 청년들(이하 ‘벽청’)을 처음 만난 것은 작년 가을 무렵의 일이었다. 이병한 선생님의 소개로 알게 된 하자센터에서였다. 당시에는 개벽학당이 출범하기 전이라서 ‘벽청’이라는 이름은 없었고 대신 ‘공공하는 청년들’(이하 ‘공청’)로 불리었다. 나는 개벽사상 특강을 하러 갔는데, 강의가 시작되기 전에 공청들은 자신들이 여행을 하면서 공부하는 모습들을 동영상으로 보여 주었다. 공주 우금티의 동학혁명기념탑 앞에서 “시천주 조화정”에 곡을 붙여 노래를 부르는 모습과 베를린 장벽 앞에서 레츠피스 공연을 하는 장면으로 기억한다.
줄곧 제도권 학교에만 몸담고 있었던 나로서는 대단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마치 신라시대 화랑의 부활을 보는듯한 느낌이었다. 무엇보다도 동학의 주문에 대한 편견을 찾을 수 없는 점이 신기했고, “평화하자!”는 말을 만들어서 직접 평화하는 순례를 떠난 대담성이 놀라웠다. “도대체 이런 발랄하고 건강한 학생들을 길러낸 선생님은 누구일까?” 당장 궁금해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분의 이름은 ‘어딘’이었다. 선생 한 명의 영향력이 이렇게 클 줄이야! 교육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해준 사건이었다.
그리고 몇 달 뒤, 이들과의 인연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개벽학당에서 선생과 학생의 관계로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나에게 주어진 강의는 ‘한국사상사’. 대학에서 여러 번 강의한 주제이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좀 달랐다. 벽청들은 한자와 담을 쌓고 있었고 철학을 처음 접하기 때문이다. 어디서부터 얘기를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이것이 기우에 불과함을 깨달았다. 벽청들의 진지함은 한자와 철학이라는 장벽을 뛰어 넘기에 충분하였다. 시간이 갈수록 집중력이 높아졌고, 눈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졸음이 오면 서서 강의를 드는 벽청도 있었고(자리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강의후기를 써 오는 벽청도 있었다(조개). 무엇보다도 제일 걱정했던 하야티가 한 학기 동안 세 번 밖에 졸지 않았다고 자랑스럽게 말했을 때에는 스스로 “대성공이다!”고 자부했다.
마지막 날 세미나 수업에서는 <개벽파 선언>을 읽고 와서 한 한기를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벽청들의 소감을 들으면서 공통된 특징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이 친구들이 ‘한다’는 말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개벽한다’를 비롯해서 ‘평화한다’, ‘자유한다’, ‘하늘한다’와 같이 뭔가를 한다는 표현이 벽청들의 글과 말 속에서 자주 등장하였다. 특히 자리타의 <개벽하러 가는 길>이 감동적이었다. “100년 전에 눈을 질끈 감아버린 척사파도 답답하고 깜빡 눈이 멀어버린 개화파도 밉살스럽습니다. 그 길이 가시밭길이라도 눈을 부릅뜨고 직시하는 개벽파가 될 수 밖예요.”
순간 개벽은 “눈을 뜨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안(開眼)이 개벽의 출발인 것이다. 생각해보면 나 역시 지난 25년 동안 대학에서 눈을 감거나 먼 채로 살아온 것에 다름 아니었다. 나이 오십이 다 되어서야 개벽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사실 이번 학기 한국사상사 강의는 지난 세월 동안 개벽과 만나기 위해 겪었던 수많은 시행착오들을 벽청들과 공유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그 기나긴 터널이 있었기에 오늘날 벽청들과의 해후도 가능했던 것이다. 자리타의 말을 빌리면 이제 벽청들은 회통을 위한 달통의 터널을 통과할 것이다. 나의 역할은 그 달통의 터널이 어둡거나 고독하지 않도록 안내하고 공공하는 것이리라.
조성환
『한국 근대의 탄생』을 썼고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를 번역하였다. 지금은 원광대 원불교사상연구원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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