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pyo Kang 3. <<반일, 종족주의>> 서평자 이철우, 박찬운 두 분께,
Shin-pyo Kang
3. <<반일, 종족주의>> 서평자 이철우, 박찬운 두 분께,
이철우: “저는 글을 내린 적이 없습니다. 담벼락에 쓴 글하나, 그리고 한국일보 인터뷰가 있습니다. 한국일보 인터뷰는 다른 분들이 링크를 올려놓아 저는 올려놓지 않았습니다.” (2019. 9. 7.)
강신표: “이철우, 그대가 8월 20일 전후 약속대로 메일을 보내주었더라면 나는 그대를 오해하는 착오는 피할 수 있었을 것이오. 내리지 않았다니 천만다행입니다. 감사합니다. (2019. 9. 7.)
이철우: “강신표 선생님, 저는 보내드렸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들어가 찾아보니 보내드리지 않았음이 분명합니다. 대단히 죄송합니다. 저의 주의력과 기억력이 80대 중반의 선생님의 10분지 1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2019. 9.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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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강신표 글이 올라간 다음 이철우와 주고 받은 댓글 내용이다. 내 기억으로 다루고저 했던 내용은
첫째, 종족 내지 종족주의 개념의 문제,
둘째, 학계원로 신용하 교수 문제,
셋째, 거짓말하는 한국,
넷째, 독도 문제.
마지막으로 위안부 문제 등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서평 원본을 편지로 받아 논의할 수 있게 된 것이 천만다행이다. 그러면 이제 서평의 내용을 여기에 옮겨놓고 하나씩 차례로 검토해 나가겠다.
이철우 서평 (1): “종족,” “종족주의” 라는 개념에 대하여 국내외의 통용되는 담론이 없고, 이에 대한 초보적인 이해도 의심스럽다. 이영훈의 종족은 ethnic group 이 아니고 종족주의는 tribalism 으로 한국인의 정체성을 저급한 것으로 치부하기 위한 용어선택이며, 구호적 차원에서 사용하는 말에 불고하다.
강신표 검토: 이철우의 서평의 핵심은 여기에서 파생한다. 종족이라는 개념을 둘러싼 문제의식이다. 나는 문화인류학자로서 종족 및 종족주의는 ethnic group 및 ethno-centrism (자민족중심주의) 으로 읽었다. 이철우는 tribalism 으로 읽었다. 한국 학계의 가장 큰 문제점의 하나는 “개념상의 혼란” 이라고 나는 언제나 주장해왔다. 서양학문을 동아시아 한문자 용어로 번역하면서부터 이러한 문제가 개입되고 있다. 19말부터 20세기 초에 이르는 동안 일본인 학자들의 서양 학술 개념들을 한문자로 번역하는 작업은 거대한 국가적 대사업이었다. 그래서 근현대 이전에는 한문자를 중국이 일본에 수출했지만, 근현대 이후에는 일본에서 중국으로 수출했다고 한다. 그 좋은 실예가 모택동의 <모순론> 책이다. 그 책에 나오는 마르크스 이론의 주요 개념들은 일본인들이 번역해 놓은 한문자를 3분의 2를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청말 민국 초기 중국 지식인들은 대부분 일본으로 유학했다. 한국의 지식인들도 일제강점기 동안 일본으로 유학하여 서양문물을 접하고 수용하여 한국으로 도입하였다.
종족 개념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를 검토해 보자. 이화여대 사회학과 박사 1호 박은경은 한국의 중국 화교의 정체성 연구였다. ethnicity 개념을 우리말로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 종족성으로 낙찰했다. 민족성으로 번역했을 때 national character 와 결부된다. 이어서 ethnomusicology 개념을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 현제 두 가지 번역 개념이 공존하고 있다. 민족음악학 과 종족음악학. 민족음악 이라고 할 때 민족 고유의 음악이라는 함의가 크다. 따라서 여러 민족 음악문화를 비교하는 학문이라는 측면에서는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그런 점에서 종족음악학이 보다 적절한 개념 같다. 이철우가 ethnic group을 종족으로 번역 이해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영훈 이 이점을 책에서 밝혀두어야 사항일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의 발상이다. 서평자는 tribe 및 tribalism 으로 역으로 번역하여 “한국인의 정체성을 저급한 것으로 치부하기 위한 용어 선택이 뿐”이라고 했다. 이러한 평가는 서평자 내면에 존재하는 왜곡된 자기 비하 정체성의 발로 같다. 일제 식민지하에서 일본 제국주의들의 음밀한 음모로 한국인의 자기 비하 정체성으로 왜곡시켜 놓은 것이 이철우 서평자의 무의식적 선입견을 낳은 것이 아닐까?
이어서 언급되고 있는 샤머님즘과 한국인의 집단심성과 연결은 보편적으로 받아드려지고 있는 내용인데 이를 잘못된 것으로 지적하고 있다. 한국 기독교인의 심층에는 샤머니즘, 불교, 유교가 공존하고 있다고 한다. 새벽기도는 할머니의 새벽 정화수 떠놓고 빌손과 다름없다. 불교의 새벽 예불에 비교되기도 한다. 하느님 아버지는 유교의 효 정신에 연결되고있기에 번영할 수 있었다.
이철우 서평 (1): “종족,” “종족주의” 라는 개념에 대하여 국내외의 통용되는 담론이 없고, 이에 대한 초보적인 이해도 의심스럽다. 이영훈의 종족은 ethnic group 이 아니고 종족주의는 tribalism 으로 한국인의 정체성을 저급한 것으로 치부하기 위한 용어선택이며, 구호적 차원에서 사용하는 말에 불고하다.
강신표 검토: 이철우의 서평의 핵심은 여기에서 파생한다. 종족이라는 개념을 둘러싼 문제의식이다. 나는 문화인류학자로서 종족 및 종족주의는 ethnic group 및 ethno-centrism (자민족중심주의) 으로 읽었다. 이철우는 tribalism 으로 읽었다. 한국 학계의 가장 큰 문제점의 하나는 “개념상의 혼란” 이라고 나는 언제나 주장해왔다. 서양학문을 동아시아 한문자 용어로 번역하면서부터 이러한 문제가 개입되고 있다. 19말부터 20세기 초에 이르는 동안 일본인 학자들의 서양 학술 개념들을 한문자로 번역하는 작업은 거대한 국가적 대사업이었다. 그래서 근현대 이전에는 한문자를 중국이 일본에 수출했지만, 근현대 이후에는 일본에서 중국으로 수출했다고 한다. 그 좋은 실예가 모택동의 <모순론> 책이다. 그 책에 나오는 마르크스 이론의 주요 개념들은 일본인들이 번역해 놓은 한문자를 3분의 2를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청말 민국 초기 중국 지식인들은 대부분 일본으로 유학했다. 한국의 지식인들도 일제강점기 동안 일본으로 유학하여 서양문물을 접하고 수용하여 한국으로 도입하였다.
종족 개념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를 검토해 보자. 이화여대 사회학과 박사 1호 박은경은 한국의 중국 화교의 정체성 연구였다. ethnicity 개념을 우리말로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 종족성으로 낙찰했다. 민족성으로 번역했을 때 national character 와 결부된다. 이어서 ethnomusicology 개념을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 현제 두 가지 번역 개념이 공존하고 있다. 민족음악학 과 종족음악학. 민족음악 이라고 할 때 민족 고유의 음악이라는 함의가 크다. 따라서 여러 민족 음악문화를 비교하는 학문이라는 측면에서는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그런 점에서 종족음악학이 보다 적절한 개념 같다. 이철우가 ethnic group을 종족으로 번역 이해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영훈 이 이점을 책에서 밝혀두어야 사항일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의 발상이다. 서평자는 tribe 및 tribalism 으로 역으로 번역하여 “한국인의 정체성을 저급한 것으로 치부하기 위한 용어 선택이 뿐”이라고 했다. 이러한 평가는 서평자 내면에 존재하는 왜곡된 자기 비하 정체성의 발로 같다. 일제 식민지하에서 일본 제국주의들의 음밀한 음모로 한국인의 자기 비하 정체성으로 왜곡시켜 놓은 것이 이철우 서평자의 무의식적 선입견을 낳은 것이 아닐까?
이어서 언급되고 있는 샤머님즘과 한국인의 집단심성과 연결은 보편적으로 받아드려지고 있는 내용인데 이를 잘못된 것으로 지적하고 있다. 한국 기독교인의 심층에는 샤머니즘, 불교, 유교가 공존하고 있다고 한다. 새벽기도는 할머니의 새벽 정화수 떠놓고 빌손과 다름없다. 불교의 새벽 예불에 비교되기도 한다. 하느님 아버지는 유교의 효 정신에 연결되고있기에 번영할 수 있었다.
다음으로 “객관적 논변”이 허락되지 않는다는 점은 매우 중요한 주제이다. 여기에 나는 한국사회의 문화문법이 작용하고 있다고 본다. 이점은 다음에 자세히 논의하도록 하겠다. 한국 역사에서 조선조 성리학은 학문적 권력이었다. 중국은 성리학의 폐단을 지적하고 양명학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어갔지만 조선조 학문/관료 권력은 양명학을 언급하는 것조차 사문난적으로 취급하였다.
전교조가 한국 역사 교과서를 자기들의 주장에 어긋나는 내용은 절대로 허용할 수 없다는 태도와 같다. 마치 조국 교수가 <반일.종족주의> 책에 대하여 그가 밝힌 내용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 사회의 “쏠림 현상”은 그 틀을 벗어나면 “배신”으로 여기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자유롭고 독립적인 개인의 범주”가 존재하지 않다. 우리 일상 언어가 “우리”를 강조하는데서 비롯한다. 다음으로 지적한 civitas, natio, polis, ethnos 등의 개념에 왜 언급이 없냐는 것은 이철우의 문제이지 이영훈이 답해야 할 개념들은 아니다. 한스 콘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주: 이 글은 컴퓨터를 잘못 조작하면서 며칠 걸린 작업을 모두 날려 버렸다. 새로 작성하면서 어려움이 많았다. 진작 올려야 하는데 늦어진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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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hyun Kim 박사형님~
좋은 것...감사합니다.
머리가 시원하네요....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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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hyun Kim replied · 1 reply
윤정구 가치중립적 논쟁을 위한 개념정의가 모호하게 설정된 영역에서의 동어반복의 문제가 정치적 편견을 부축인다는 생각입니다. 필지가 자신의 의도를 관철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정의를 피하는 현상도 논쟁가들이 피해야 할 점이란 생각입니다. 이런 것들의 토대가 무너졌을 때 생기는 우리사회의 논쟁에서의 쏠림과 배신 현상 공감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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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soo Lee 동의합니다..
개념에 대한 정의(conceptual definition)가 제대로 이루어 지지 못한 상태에서 각자의 개념용어들이 가져오는 혼란이 많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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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봉 존경하는 교수님♡
건강하소서♡
감사합니다♡
(주: 이 글은 컴퓨터를 잘못 조작하면서 며칠 걸린 작업을 모두 날려 버렸다. 새로 작성하면서 어려움이 많았다. 진작 올려야 하는데 늦어진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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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것...감사합니다.
머리가 시원하네요....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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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구 가치중립적 논쟁을 위한 개념정의가 모호하게 설정된 영역에서의 동어반복의 문제가 정치적 편견을 부축인다는 생각입니다. 필지가 자신의 의도를 관철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정의를 피하는 현상도 논쟁가들이 피해야 할 점이란 생각입니다. 이런 것들의 토대가 무너졌을 때 생기는 우리사회의 논쟁에서의 쏠림과 배신 현상 공감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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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soo Lee 동의합니다..
개념에 대한 정의(conceptual definition)가 제대로 이루어 지지 못한 상태에서 각자의 개념용어들이 가져오는 혼란이 많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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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봉 존경하는 교수님♡
건강하소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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