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g Deuk Oak
14 September at 11:46 ·
[일제시대 민간인 학살은 없었다?]
제암리사건 외에는 별다른 학살이 없었다고 말하는 학자들이 있다. 그렇지 않다. 1919년 3월 3일 맹산 헌병지소 마당에서 주민 53명을 가두고 전원 총살하는 대학살이 자행되었다.
"1919년 3월 3일 [평안북도] 맹산 마을에서 몇 명의 일본인 군인들이 마을 시위 지도자를 체포한 후 그곳에서 멀리 떨어진 헌병 지소로 연행해 갔다. 마을 사람들은 혹시 함께 가면 지도자를 석방해 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고 군인들을 따라 헌병지소까지 갔다. 군인들은 마을 사람들을 헌병지소 마당 안으로 들어오게 허락한 후, 문을 걸어 잠갔고, 이어서 총을 난사하여 모든 주민을 잔인하게 죽였다. 56명이 총질을 당했으나, 3명이 구사일생으로 도망쳐 나왔다. 사망한 53명 중 15명은 여성이었다."
살해된 주민 53명 모두 천도교인이었다. 수원 제암리사건 한 달 전이었다.
나는 이 사건을 2월에 공개했다. 삼일절 대통령 연설에서 언급되었다.
자료가 빈약하여 당시 일본 선교사들도 의심했으나, 마페트는 현장을 본 별도의 증언 5개를 수집하여 12월에 보고했다. 마페트 자료를 추가 보완하여 다시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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