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26
[김종현] 나경원은 토착 왜구인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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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칼럼
[김종현] 나경원은 토착 왜구인가?
지식펜 ・ 2019. 8. 8. 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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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김종현 칼럼니스트가 2019년 08월 08일 SNS에 올린 글입니다. 1문단에 1주제를 두괄식으로 제시하는 등 체계적 한글 사용의 모범을 보여준 글입니다. 내용적인 평가는 독자들이 하시기 바랍니다.
김종현 칼럼니스트
1.
나는 '토착 왜구'라는 낱말을 싫어한다. 어찌 보면 극도로 싫어하는 쪽에 가깝다. 토착 왜구에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가 이미지화돼 있어서다. "일본인들은 왜구의 후예라서 우리를 공격해. 너는 그런 일본 놈들하고 똑같이 나쁜 놈이야." 이는 부당하다.
2.
첫째, 현대 일본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역사 중 지금의 정치체와는 직접 관련이 없는 아주 오래된 시기의 특정한 장면을 오늘날 양국 갈등의 생래적 원인으로 설명하는 일에 이 낱말이 쓰이기 때문이다. 이의 당위라곤 과거 왜구가 점유하던 지리적 공간과 그들의 유전자가 현대 일본인과 맺는 관련성 밖엔 없다. 그럼에도 '토착 왜구'라는 낱말은 과거와 현재 일본인들의 동일성을 상상하게 만든다. 이 상상력을 지렛대 삼으면 현재의 일본 구성원들은 본디부터 불의한 집단으로 규정된다. 그 결과 아무런 근거 없이 그들을 모조리 악한으로 몰며 우리가 도덕적으로 더 우월하다는 촌스러운 부당함을 저지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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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둘째, 공동체 내에서 반목하는 상대 집단을 가상의 불의한 집단과 등치 시켜 도덕적 하위에 놓은 뒤, 그들의 주장 대신 그들 자체를 공격하는데 쓰이기 때문이다. 이는 보다 도덕적인 자신이 도덕적으로 저열한 저들과 완전히 분리돼 있다고 여기기에 가능하다. 한국을 공격하는 일본인들은 저열한 왜구와 속성이 같고, 토착 왜구는 왜구의 후손인 일본인과 같으므로, '나'는 반드시 저들과 분리된 존재이길 희망한다. 특히 생물학적 후손으로서 성정을 빼닮았을 것이라는 게 왜구와 일본인의 동일성에 대한 상상의 근거인 가운데, 한국인과 일본인의 서로 다른 거주 지역과 상이한 언어는 양국민이 생물학적으로 상당히 분리돼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을 하게 만든다. 그러나 현대 국가들과 같은 모양새와 경계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던 시대에, 지금의 발달한 인권의식이 깃든 법/제도가 있지 않았던 당시 약탈 상황을 생각해 본다면, 예상 보다 꽤 많은 한국인들에게 왜구라 불렸던 세력의 유전자가 전달됐을 수 있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4.
오늘날 토착 왜구라는 낱말과 그 쓰임새의 당위는 허구나 다름없다. 날선 정치 영역과 저잣거리에선 이러한 낱말이 등장하는 걸 한두 사람의 힘으로 막을 수는 없다. 누군가는 사용하고야 만다. 하지만 역사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사람이나 지적 탐구를 업으로 삼는 이들이 이 낱말을 쓴다면 그것은 자기 분야에 대한 배신이라고 생각한다.
5.
한편 친일파라는 낱말은 조금 다르다. 물론 한반도에서 장기 집권하던 기존 세력의 정치력에 불만을 갖고 외세의 힘을 빌려오는 게 전략적으로 옳다고 판단한 이들도 있었다. 혹은 일단 선진문물을 받아들여 스스로 발전해야 한다고 여긴 이들도 있었다. 당시를 살았다면 각자 어떤 선택을 할는지 장담하기란 누구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역사의 대가는 가혹하다. 각기 저간의 사상과 주장이 있었다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공동체의 이익에 심각하게 반하는 행위에 단순 가담 이상 참여했던 인물들을 역사에 새겨 놓는 걸 거부할 방도는 없지 싶다. 일제 강점기를 전후하여 당시의 정치 지형 속에 자신들이 가진 정치/권력의 이익을 위해서 기존 공동체의 이익을 등한시한 이들이 실제로 존재 한 이상, 그들의 행위에 결과적으로 근거와 동력을 제공하며 동조한 것에 대한 평가는 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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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우리 역사에서 '친일파'란 한반도를 오랫동안 점유해 오던 이들의 체제 이익을 방해하고 그 반대급부의 이익을 얻은 인물들 모두에 대한 명명이다. 그들과는 정반대의 길을 걸은 이들에 의해 재건된 국가가 대한민국이다. 따라서 친일파는 대한 제국과 임시정부 그리고 대한민국이라는 정치공동체에 대한 연관성과 연속성에 있어 한발 물러나 스스로를 타자화 시킨 이들이다. 즉 정치적 운명 공동체의 존속이라는 관점에서 친일파는 임정을 이어받은 지금의 대한민국에서도 여전히 반 공동체의 이름임을 유지한다. 나라의 지속에 기여하지 않는 걸 넘어 부정적 영향력을 끼치려 하고, 한국의 지속에 부정적인 행위를 하는 외국의 행위에 동조하는데 그게 하필 일본이라면, 그들은 여전히 친일파라는 적대 세력으로 이름 지어지는 것이다. 토착 왜구와 달리 친일파는 오늘날에도 가능한 정의다.
7.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우리 일본'이라고 발언했다가 비난받고 있다. 기본적으로 한일 갈등 국면에서 부적절한 발언이었고, 일본에 전면전을 선포한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느라 비판받던 자유한국당의 이미지가 겹친 것도 악재가 됐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친일파라느니 토착 왜구라느니 속내가 드러났다면서 말이 많다. 개인적으론 이런 주장들에 동의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 원내대표 측의 반론대로 평소 그가 자주 보이던 말투 혹은 습관인 걸 기억하고 있어서다. 그의 평소 발성과 톤이 꽤 특이해서 기억에 잘 남는다. 정확히는 말보단 태도인데, 자신이 상대하는 이들을 지칭할 때 친밀감을 보이려 몸에 밴 듯 영혼 없이 ‘우리 00’하는 정치인 특유의 태도다. 그래서 이번 발언은 원래 그렇게 말해 오던 사람의 실수라고 생각한다.
8.
하지만 대한제국 말엽에 각자 나름의 생각과 의지가 있었던 이들 중 오늘날 친일파로 분류된 사람들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친일파들은 당시 대한 제국이라는 정치공동체와의 연관성과 연속성으로부터 한발 물러나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대한 제국과 그 구성원들로부터 타자화 시켜 스스로를 제3자의 자리에 위치시켰다. 그렇게 남이 됐기에 일제의 강제 점거를 용인할 수 있었다. 그들은 한일 양국 간의 이해당사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나 의원 측이 습관이라고 밝힌 그 ‘우리’라는 발언은 정치인들이 사람들과 친밀감을 일으키기 위해 종종 사용한다. 또는 이해당사자 사이를 조정하려 할 때 각 당사자들에게 조정자로서의 호의를 보이기 위해 사용한다. 즉 상대를 자신의 정치적 행위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담겨 있으며, 상대와 자신의 관계에서 자신은 이해당사자가 아닌 게 된다. 누군가가 가진 정치적 당사자성으로부터 한발 물러나 스스로를 타자화 시킨 채 친밀감을 주려 할 때 상대에게 호의적으로 ‘우리’라는 말이 가능해진다. 실제 나의원 측 반론으로 제시된 자료의 용례들이 대부분 그러하다.
9.
나는 이게 지금의 한일 갈등을 바라보는 한국 정치인으로서 꽤 위험한 태도라고 본다. 나 의원이 이해 당사국 중 하나인 한국의 정치인으로서 당사자성이 사라진 발언을 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는 혹시 한국과 일본 양측 모두를 정치적 타자로서 바라보고 있는가. 의도하지 않은 습관이란 점에서, 이 엄중한 시기에도 나 원내대표의 무의식에 한국 정치인으로서의 당사자성이 희박한 게 아닌가 염려된다.
10.
근래 일부 야당 정치인들이나 언론사가 토착 왜구로 불리는 데에는 전적으로 반대한다. 그리고 친일파로 부르는 것에도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역사가 누군가를 운명공동체의 일원인지 아닌지 가늠할 때엔 사소한 한 끗 차이로 판가름 난다. 당사자성이 있느냐 없느냐다.
*출처: https://www.facebook.com/zodiakus.kim/posts/1015710543913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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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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