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후기를 어떻게 적을까 하다가 나중에 천천히 정리해서 올리기로 하고 대강의 내 느낌만 간략하게 올리는 걸로 일단은 갈음하고자 한다. 기본적으로 주관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실증적인 근거 또한 당연히 배제되어 있다. 일주일동안 중국과 일본을 오가며 내 나름대로 이해하고 있는 한국사회와의 비교를 통해 내 나름대로 특이하다고 생각했던 점들을 곱씹으며 정리한 것이기 때문에 주관적이고 나의 한국 사회와 그 역사에 대한 이해나 중국 및 일본에 대한 편견이 배제될 수 없다는 점 또한 강조해두는 건 불필요한 오해를 막기 위함이다. 기본적으로 이 글에서 나타난 내 생각들은 중국의 상하이와 일본의 홋카이도를 자유여행하는 방식으로 돌아다니면서 느낀 것들이기 때문에 어떤 관광지라는 상례화된 코스에서 느낄 수 있는 것과는 조금 다른 부분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우선 중국의 상하이에 관해서 먼저 말해보자. 나는 부끄럽게도 견문이 넓지 못해 중국을 제대로 방문해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전반적으로 이번 여행을 통해 내가 느낀 바는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충격” 그 자체였다. 각종 책이나 논문, 통계 등으로 중국의 경제개발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인간으로서 한편으로는 그래봐야 아직 수억에 달하는 농민공이 있으며 한국의 경제개발에 비하면 그래도 아직은 수준이 낮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을 품고 있었는데 이번 상하이 여행은 그런 편견을 의문의 여지 없이 완전히 논파해버리는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기본적으로는 자유여행이지만, 내 목적 자체는 이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 그 편린이라도 엿보고 싶다는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었기에 시장이나 사람이 많고 한국인이나 관광객들이 많이 없는 곳을 일부러 돌아다녔는데 사회 곳곳이 활기차고 활력이 넘쳐 주체할 수 없을 정도였다. 솔직한 심정을 말하자면 사람들의 무례함과 규칙과 질서를 무시하는 모습들에 불쾌함을 느끼기도 하였으나 그것을 상회할 정도의 활력에 압도당하고 말았다.
내가 정말 충격을 받은 부분은 사실 비행기가 상하이 푸동 공항에 도착하면서부터였는데, 착륙하기 전부터 보이는 상하이의 모습은 나로서는 꽤나 충격적인 모습이었다. 꽤나 큰 강이 여러 개나 흐르는데 마을 곳곳에 구석구석까지 그 강물을 끌어들일 수 있는 관개수로를 아주 잘 정비하였고, 그 잘 정비된 관개수로에 따라 농지와 산야의 정리 또한 매우 훌륭하게 이뤄지고 있어 하늘에서 보니 마치 잘 만들어진 바둑판을 보는 듯하였다. 이건 일본 홋카이도의 신치토세 공항에 착륙할 때도, 또한 인천공항과 김포공항을 들어설 때도 비교하면서 다시 확인해보았음에도 분명 대단히 잘 정비되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었다. 중국에 두 번이나 갔기 때문에 일본을 두루 구경한 뒤에 보았음에도 생각이 변하지 않고 여전히 잔잔한 충격을 줄 정도였다. 잠깐 언급하자면 일본의 홋카이도 또한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넓게 펼쳐진 농지가 잘 개간되어 있었으며 한치의 오차도 없을 정도로 철저하게 산림과 농지가 정리되어 있어서 중국과 일본 모두 사회가 매우 효율적으로 토지를 경영한다는 인상을 주었다. 이에 반해 인천공항과 김포공항에 들어오는 길에서 본 한국의 산림과 농지는 잘 경영되고 있다는 인상보다는 조잡하다는 인상을 주는 것이었으며 경지의 구획 정리나 삼림의 분포 등에 있어서 앞의 두 국가에 비할 바가 아니라는 인상을 주고 있었다. 현지인들에게 물어보니 일본이나 중국 모두 산림과 농지를 국가가 강하게 규제하며 그 이용에 있어 사회가 깊이 경영에 개입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한국은 가장 중요한 요소인 토지조차도 제대로 경영하고 있지 못하지 않나 하는 생각에 착잡한 기분이 들었다.
토지를 계획적으로 경영하고 있다는 것이 무엇이 그리 대수냐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이러한 경영능력은 하루아침에 나오는 것이 아니다. 중국 국가기구의 사회경영 능력은 상당히 대단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런 경영능력이라는 게 반드시 긍정적인 의미만을 포함하고 있지는 않다. 앞서 말했던 중국 인민들이 보여주는 엄청난 활력과 대비되는 국가 공권력의 사회통제 능력 또한 상당히 강력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상하이 시내 곳곳에 공안들이 깔려 있었으며 도처에서 공안들이 인민들을 감시하며 위압감을 조성하고 있었다. 내가 상당히 불편하게 생각하고 또 놀랐던 점은 중국은 지하철과 같은 교통수단을 이용하려면 반드시 짐 검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냥 검사하는 것도 아니고 공항에서나 볼 수 있는 X레이 검사기를 매번 개찰구를 통과할 때마다, 다시 말해서 지하철을 이용하려고 할 때마다 모든 짐을 다 검사에 맡겨야 한다. 나로서는 상당히 불쾌한 부분이었으며 소심하게나마 짐의 일부를 내지 않으려는 시도를 했으나 부질없는 것이었다. 모든 인민들이 국가권력의 상시적인 인권침해를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이고 있어서 놀랐다. 한국사 교과서에서나 보던 유신시대를 방불케하는 불심검문을 21세기에 볼 수 있다는 건 내게는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언제까지 국가기구가 사회를 가시적인 폭력으로 장악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그러한 장악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이 중국 사회의 하나의 특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이런 불쾌함에도 불구하고 중국 인민들이 보여주는 놀라운 활동력은 내게 많은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특히 내가 재밌다고 생각했던 지점은 중국 인민들의 소비 행태랄까? 어떤 드러나는 모습들이었는데 중국 현지에서 한국인과 일본인, 그리고 중국인을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은 누가 명품을 입었는지 찾는 것이었다. 샤넬, 구찌 등의 서구의 널리 알려진 명품들을 하나라도 차고 다니고 있으면 중국인이었고 중국인과 외양적으로 비슷한데 명품이 없으면 한국인이다. 일본인 남성은 머리 스타일이 중국인 및 한국인과 매우 다르기 때문에 비교적 구별하기가 쉽다. 물론 이런 구별은 남성에게만 해당하는 것으로 여성의 경우에는 한중일 모두 비슷비슷하게 잘 꾸미고 다녀서 외형만으로 구별하기는 어려웠다. 아무튼 이렇듯 중국인들은 명품을 매우 사랑하는 것처럼 보인다. 여행을 다니면서 본 중국인들 대부분이 명품 하나씩은 차고 다니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 보였는데 어째서 그러한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소비 형태를 언급하는 이유는 중국의 자영업이 지니는 특질이 바로 이런 곳에서 드러나지 않나 싶어서 그런 것인데, 한국이나 일본의 자영업과 비교하면 이 특질이 보다 잘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내 나름대로의 생각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다음으로 일본을 보자면 최근에 다녀온 일본의 후쿠오카와 홋카이도는 중국의 상하이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시골에 가깝다는 느낌을 주었다. 중국의 경우에는 상하이 시내에서 홍차오 공항까지 가는 고속도로 내내 바깥에 보이는 모든 건물이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하는 것들이었으며 그 거대한 규모의 건물들이 20분 넘게 계속 이어졌을 정도로 압도적인 도시규모를 자랑하고 있었던데 반해, 일본의 홋카이도나 후쿠오카는 확실히 시골이라는 느낌이 매우 강하게 들었다. 그러나 홋카이도는 후쿠오카나 상하이 등과 비교하자면 상당히 재밌는 부분이 많은 곳이었는데 앞서 지적했듯이 매우 잘 정비된 농지와 산림은 그 자체만으로도 사람을 압도하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규모가 얼마나 크던지 옥수수 밭만 하더라도 끝도없이 이어지는 것이 가히 장관이었다. 현지에서 일하는 농부들을 구경하고 애기를 들어보고 하니 보다 확실해졌지만 홋카이도는 비록 농촌적 성격이 강하지만 ‘상업농업’이 매우 발달해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농촌 특유의 어떤 후진성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고 대부분 관광객이나 특정 기업 등을 상대로 하는 상품판매 목적을 갖고 일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어 기계의 사용이나 외국어 습득 등에 있어 굉장히 뛰어난 점을 많이 보여주고 있었다. 한국인 관광객이 거의 없는 곳에서도 일본인의 입에서 한국어를 듣기 쉬웠으며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알자 어떻게든 한국어로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 많이 놀랐다. 한국의 명동거리와 같이 외국어를 전문적으로 하는 직원을 고용하는 수준은 아닐지라도 대부분의 주인들이 한국어를 어느정도는 했으며 물건을 고르고 사는 데 있어서 아무런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외국인에게 친절하게 설명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매우 능숙해 많이 놀랐다.
이 상품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농업이라는 특질은 단순히 원료를 제공한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또한 놀라운 것이었다. 일본의 전체적인 특질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적어도 내가 경험하고 느낀 홋카이도에 한정지어 말하자면, 이 일본 농업의 놀라운 점은 단순히 우유라든지 옥수수 등과 같은 농업생산물이나 원료를 생산하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홋카이도 지역 내에서 그것을 가공해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해내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에서 찾아져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품질 좋은 우유를 생산해 판매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어떻게든 그것을 가공해 예컨대 아이스크림이라든지 커피 산업이라든지, 제빵 산업이라든지 아무튼 관련된 여러 산업들을 굉장히 잘 만들어내었으며 그것을 통해 보다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것을 목적으로 국가기구와 인민 모두가 합심하고 있다는 점, 그것이 내게는 상당히 충격적인 일이었다. 단순히 외국을 상대로 판로를 넓히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자신들의 상품을 통해 새로운 관광상품을 만들어내고 외국 손님들을 어떻게든 홋카이도로 불러들이려고 노력하는 모습들이 내게는 꽤나 신선한 충격이었다. 우유라는 한 가지 상품만 갖고 연쇄적인 상품생산과 그것에 기반한 관광상품의 창출이라는 일련의 잘 기획된 흐름들의 유기적인 연결과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국가의 사회경영 능력이 돋보였다.
이런 농업의 특질은 일본의 자영업의 특질로 이어진다. 이 부분은 앞의 중국의 자영업이나 한국의 자영업과 비교하면 특히 더 흥미로워 보인다. 본디 나는 한국의 자영업자는, 프랜차이즈 산업에 한정지어 말하자면 식민지기에 자주 볼 수 있는 지주경영제에 가깝다고 생각해왔다. 이에 반해 일본의 자영업은, 마찬가지로 프랜차이즈 산업에 한정지어 말하자면 분익농제에 가깝다고 생각해왔다. 무슨 말인가 하면 예컨대 이런 것이다. 한국의 경우에는 프랜차이즈 업체와 가맹점 간에 로열티 제도가 정착된 비율이 선진국의 그것에 비해 월등히 낮다. 국내의 프랜차이즈 업체 중 로열티 제도를 도입한 곳은 전체의 약 36%정도로 미국의 70~80%에 비하면 절반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로열티란 가맹 본사가 사업 노하우를 전수하고 브랜드 상표와 이름 등의 인지도를 사용하도록 허가하는 대신 지불하는 일종의 수수료로 가맹점의 매출의 일정 비율을 본사에 납부하도록 하기 때문에 본사의 수익이 명확하게 보일 뿐만 아니라 가맹점의 매출이 높아지는 것이 본사의 이익과 직결되기 때문에 본사 입장에서도 가맹점의 경영이 잘되는 걸 지원할 유인이 높은 제도이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에는 앞서 보았듯이 이런 로열티 제도가 정착된 비중이 낮고 대부분의 프랜차이즈 업체는 납품 단계에서의 유통마진을 주요한 수입원으로 삼는다. 그렇기 때문에 로열티 제도는 가맹점 입장에서 되려 유통마진과 로열티라는 이중의 부담을 지우는 것으로 받아들여져 상대적으로 메리트를 얻기 어려운 것이다. 여기에는 한국 특유의 저신뢰가 강하게 작동하여 본사는 가맹점이 현금결재나 카드 단말기 꼼수 등의 방법으로 매출액을 축소하여 신고할 것이라 도입에 반대하고 가맹점은 본사가 유통마진을 없애지 않는 이상, 또한 로열티 기준을 마련하지 않는 이상 본사의 자의성을 배제할 수 없어 부담이 될 것이라 생각해 또 거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한국 프랜차이즈 업계는 서로간의 불신으로 인해 본사는 유통마진의 폭리, 강매 등으로 가맹점을 최대한 벗어나지 못하게 하면서 최대한의 이윤을 뽑아먹으려 하고 반대로 가맹점은 그 속에서도 어떻게든 본사를 속여 자신의 이윤을 확보하고자 하는 상황으로 사실상 식민지기에 나타나는 지주와 소작농의 관계와 겹치는 지점이 많다.
일본의 자영업의 경우에는 이번에 직접 가서 보니 더 확실해졌지만 지주와 소농이 서로 경영에 필요한 자본을 대고 거기서 나오는 수익을 나눠갖는 구조로 보인다. 내가 홋카이도에서 놀랐던 점은 가게의 경영자들이 손님을 유치하는 데 있어서 매우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반해 정작 그네들이 내미는 상품은 자신들이 만들어내거나 자신의 프랜차이즈로부터 독점적으로 공급받는 것들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예를 들어 로이스 초콜릿이라 하면 로이스 본사가 따로 있음에도 불구하고 본사 매점에서 파는 거의 모든 상품들을 홋카이도 전 지역 어디서든지 ‘동일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 생각해보건대 아마도 동일한 회사에서 모두 소매로 구입하여 판매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로이스 본사 매장이 지니는 의미는 무엇인가? 기껏해야 그것은 우리 기업체가 파는 물품에 대한 어떤 전시장의 성격을 지니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리라 생각된다. 내게는 이것이 상당히 놀라운 것이었는데 자영업자가 개별 기업체들로부터 완성된 물품을 소매로 구입해 자신의 상업 능력에 따라 판매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경영에 있어서의 자율성이 한국의 프랜차이즈나 자영업에 비해 압도적인 수준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기업체들이 유통을 장악하고 유통에 대한 독점적 지위로부터 이윤을 뽑아내려 시도하는 한국의 상황과 달리 일본의 기업체들은 완성된 상품의 판매를 주목적에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떠한 요인이 이러한 차이를 낳게 되었는지까지는 알 수 없으나 이러한 일본 식의 자영업 경영은 내게 지주와 소농이 합작해 경영하고 그 이익을 나누어 갖는 분익농제와 비슷한 것으로 보여 흥미로웠다. 기업체들이 가맹점주들의 경영능력을 침해하고 강매를 통해 낮은 이윤을 강제하는 한국과 같은 곳에서는 자영업이 잘될 수가 없고 가맹점주들의 경영능력이 극도로 제한되어 사실상 기업체의 판매원이나 다름 없는 임노동자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일본의 자영업자의 특질은 중국의 그것과 비교해보아도 특이한 것이었는데 앞서 지적했듯이 중국 인민들은 굉장히 고가의 명품을 주로 소비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무슨 말이냐면 거리에서도 느낄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중국의 자영업자들은, 적어도 상하이에서 내가 보았던 이들은 한국의 자영업자들과 같이 내국인을 상대로 자잘하게 생활 욕구의 충족을 위해, 다시 말해서 마르크스적으로 말하자면 사용가치의 획득을 위해서 장사를 하지 않는다. 내국인들의 소비로부터 자신의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얻기 위해 장사를 하지 않는다면, 일본과 같이 외국에의 판매를 목적으로 상품판매를 한다는 것일까. 중국 자영업의 특이점은 그것도 아니라는 데 있지 않나 싶다. 중국인들은 분업의 특화에 자영업의 목적을 두는 것 같다. 어차피 외국으로부터 수많은 브랜드와 물품들이 쏟아져들어오고 또 내국인들의 소비도 그것들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딱히 이런 것에 대응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새로운 창업에 특화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내가 보기에 중국 정부의 정책 또한 창업을 독려하며 중국만의 새로운 브랜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중국 문화에 적합한 상품을 개발하는 것에 맞춰져 있는 것으로 보여 흥미로웠다. 상하이 골목길을 다니면서 많이 느낀 점이 뭐냐면 내 예상과 달리 길거리 음식점이 별로 없었다는 것이다. 오기 전에 상하이의 길거리 음식들에 관한 정보들을 검색해보았기에 상당한 기대를 갖고 왔는데 아무리 찾아보아도 길거리 음식점을 찾기가 어려웠으며 기껏해야 한두 개의 것만 겨우 찾을 수 있었다. 그에 반해 중국의 밀크티를 특화한 프랜차이즈라든지 대만으로부터 넘어온 훠궈 프랜차이즈라든지 하는 것들이 매우 적극적으로 장사를 하고 있었으며, 세계 각국의 프랜차이즈 또한 굉장히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단순상품생산자로서의 어떤 특질이 강하게 상존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 꽤나 흥미로운 모습이라 생각했다.
물론 이러한 내 생각은 모두 주관적이고 단편적인 경험에 기초한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실증적인 부분에서 틀린 지점도 상당히 많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래도 나름대로 현지에서 물어보기도 하고 듣기도 하고 해서 얻은 정보들도 있으니 큰 틀에서 보아 아주 잘못된 것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어본다. 아무튼 총괄해 말하자면 전반적으로 일본과 중국은 사회가 지향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해보인다. 홋카이도의 경우에는 상품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산업을 통해 관광산업까지 육성하려 하는 의도가 명확하며 그것을 뒷받침하는 국가기구의 후원 또한 매우 확고해보인다. 놀랍게도 관민이 모두 일치단결하여 동일한 목적을 영유하기 위해 합작하는 모습이 내게는 상당히 충격적이었고 감탄을 자아내었다. 어디를 가든 모든 인민들이 관광 산업을 위해, 상품판매를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는 느낌을 주었으며 일본 홋카이도의 모든 자영업 및 산업 자체가 하나의 유기적인 거대한 산업 아래 조직된 서비스 노동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에 반해 중국 인민들은 대단히 활기차기는 했으나 그만큼 무질서했고 관광객을 상대하는 데 있어서도 서비스의 품질이나 언어 능력 등에 있어 매우 뒤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중국 인민이 일본 인민에 비해 뒤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중국이 지향하는 사회가 일본이 지향하는 사회와 방향에 있어 완전히 다르다는 걸 보여주는 증거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중국 인민들은 다른 사람이 무엇을 하든 개의치 않으며 자신의 일을 처리하는 것에만 몰두하는 것처럼 보였다. 자신에게 천착하여 자신들만의 어떤 특질을 드러내어 그것을 상품화하고 그것에 브랜드 가치를 부여해 산업을 발전시키는 데 주 관심사가 주어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부분에 있어서도 국가는 비록 사회를 폭력적으로 대우하는 모습을 보이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도와주려고 하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이러한 두 사회의 목적 지향적인 모습이 이 글의 서두에서 언급한 국토國土의 경영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상업적 판매와 관광산업을 위해 임야와 농지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일본 당국과, 관개치수 공사를 확실하게 해놔 인민들 모두가 효율적으로 수자원을 이용할 수 있게 관리하는 중국 당국의 토지경영은 그네들 나름대로의 사회경영이 지향하는 바가 녹아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주관적이지만 많이 들었다. 반면에 김포공항과 인천공항 들어오고 나가는 길에 보았던 인천, 김포 등지의 황량하고 난잡한 토지구획의 모습은 방향을 잃어버린 한국 사회의 모습과 같아 보여 서글픈 감정이 드는 마음을 달랠 길이 없게 만들었다. 사회 곳곳에서도 보다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사회가 지향하는 목표에 따라 관민이 갈등을 하든 협력을 하든 어찌됐든 나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이는 게 아니라 생산자로부터 창출된 잉여를 어떻게든 서로 속고 속여가며 빼앗아 그 속에서 자기몫만이라도 챙겨 보다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는 아비규환의 한국 사회의 모습이 그 삐뚤빼뚤한 토지구획에 반영되어 있다고 한다면 내가 너무 과한 것일까. 아무튼 이것이 내가 중국과 일본을 구경하며 느낀 점들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위의 글은 내 주관적이고 편향된 경험에 기반한 것으로 과하게 신뢰할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여행 후기가 어느정도 정리된 뒤에 각국의 산업구조와 경제구조 및 문화적 특질 등을 공부하며 내가 주관적으로 느낀 점들이 실재와 얼마나 다른지 찾아보며 관점을 수정하고자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이 어떤 이들에게는 새로운 탐구로 나아가는 데 있어 한 계기가 될 수 있으면, 그리고 그로 인해 나와 더 많은 부분을 대화를 통해 나눌 수 있게 된다면 그걸로 족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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