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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소영 (195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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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소영
출생
대한민국
성별 여성
국적 대한민국
직업 대학 교수
윤소영(1954년 ~ )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관련 저술가이며 연구자이다. 1984년부터 한신대학교 국제경제학과 교수로 있다.
생애[편집]
1954년 서울에서 출생했으며 1973년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하였다. 1986년 서울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1984년부터 한신대학교 국제경제학과에 재직중이다.
1980년대 운동권 민중 민주계열의 이론적 기초가 된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론(독점강화 종속심화 테제)을 정초했다. 1990년대에는 알튀세르와 발리바르의 마르크스주의 재구성 작업을 소개하는 데 주력했고, 2000년대에는 자신의 작업을 `마르크스주의의 일반화'라는 개념으로 정의하고 있다.
1994년 6월 10일부터 과천연구실이라는 연구소를 이끌고 있다.
저서 및 역서[편집]
《루이 알튀세르》, 1991
《맑스주의의 역사》, 1992
《알튀세르와 마르크스주의의 전화》, 1993
《마르크스주의의 전화와 `인권의 정치':알튀세르를 위하여》, 1995
《마르크스의 철학, 마르크스의 정치》, 1995
《알튀세르를 위한 강의:`마르크스주의의 일반화'를 위하여》, 1996
《알튀세르와 라캉》, 1996
《알튀세르의 현재성:마르크스, 프로이트, 스피노자》, 1996
《베토벤: 윤리적 미 또는 승화된 에로스》, 1997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와 역사적 자본주의 분석》, 1998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와 워싱턴 콘센서스》, 1999
《이윤율의 경제학과 신자유주의 비판》, 2001
《마르크스의 `경제학 비판'》, 2001
《마르크스의 `경제학 비판'과 소련 사회주의》, 2002
《마르크스의 `경제학 비판'과 평의회 마르크스주의》, 2003
《마르크스의 `경제학 비판'과 대안세계화 운동》, 2003
《`인권의 정치'와 성적 차이》, 2003
《역사적 마르크스주의:이념과 운동》, 2004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 개론》, 2006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의 쟁점들》, 2007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 경계들》, 2007
《헤겔과 성적 차이의 페미니즘》, 2007
《헤겔과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 2007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와 대안좌파》, 2008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와 대안노조》, 2008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 개론(개정판)》, 2008
《금융위기와 사회운동노조》, 2008
《마르크스의 '자본'》, 2009
《2007-09년 금융위기》, 2009
《2007-09년 금융위기 논쟁》, 2010
《현대경제학 비판》, 2011
《사회과학 비판》, 2011
《역사학 비판》, 2012
《문학 비판》, 2012
《2010-2012년 정세분석》, 2013
《봉건제론: 역사학 비판》, 2013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 세미나》, 2014
《한국자본주의의 역사: 한국사회성격 논쟁 30주년》, 2015
《'한국의 불행': 한국현대지식인의 역사》, 2016
《위기와 비판》, 2017
《재론 위기와 비판》,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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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에서 마르크스주의는 노동자주의 때문에 타락했다”
[중앙일보] 입력 2018.05.
기자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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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대표적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윤소영 한신대 교수
윤소영 한신대 교수가 9일 서울 사당동 개인연구실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남한에서 마르크스주의는 노동자주의 때문에 타락했다”
[중앙일보] 입력 2018.05.
기자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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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대표적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윤소영 한신대 교수
윤소영 한신대 교수가 9일 서울 사당동 개인연구실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경제학자 고(故) 정운영은 생전에 윤 교수에 대해 ’민중민주주의 논쟁을 주도했으며 아마도 우리 사회과학계 최초로 알튀세르의 이론을 본격 소개한 ‘벤처 학문의 첨단주자라고 평가한 바 있다. 윤 교수는 현재 대학과 연구실을 오갈 뿐, 다른 사회활동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명함도 파지 않고, 휴대폰도 쓰지 않고 있었다. [최정동 기자]
지난 5월 5일은 카를 마르크스(1818-1883)의 생일이다.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을 맞아 세계 이곳저곳에서 기념행사가 열렸다. 마르크스가 태어난 독일 트리어시는 0유로짜리 마르크스 탄생 기념지폐를 3유로에 파는 상술을 발휘하기도 했다. 마르크스는 ‘지금, 여기’에서 어떤 의미로 남아있을까. 한국의 대표적인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인 윤소영(64) 한신대 국제경제학과 교수를 9일 서울 사당동 과천연구실에서 만났다. 1994년 과천에서 문을 연 연구실은 이듬해 사당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이름은 여전히 ‘과천연구실’이다. 과천은 ‘과학과 실천’에서 따온 말이기도 했다. 한때 20~30명에 달했던 연구실 멤버는 지금 7~8명으로 줄었지만 ‘공감개론신서’라는 이름으로 꾸준히 책을 내고 있었다.
자본주의 있는 한 마르크스는 타당
우리의 80년대는 ‘마지막 잔치’였다
중국 시진핑사상, 북한 3대 세습이
마르크스주의라는 건 처참한 농담
노동자주의는 집단이기주의일뿐
이문열 작품 다시 읽으며 재평가중
역사는 비극, 소극, 사기극으로 반복
노무현식 인민주의 부활 우려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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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있는 한 마르크스는 타당
우리의 80년대는 ‘마지막 잔치’였다
중국 시진핑사상, 북한 3대 세습이
마르크스주의라는 건 처참한 농담
노동자주의는 집단이기주의일뿐
이문열 작품 다시 읽으며 재평가중
역사는 비극, 소극, 사기극으로 반복
노무현식 인민주의 부활 우려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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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가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이다. 관련 기사도 쏟아졌는데 대체로 마르크스주의가 자본주의 비판으로는 어느 정도 의미가 있다는 평가가 많았다.
“나도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한 마르크스 이론은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마르크스를 계승할 수 있는 인적자원이 있느냐다.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마찬가지다. 외국의 마르크스 관련 학술대회 참석자는 60대, 70대 노인이 대부분이다. 청년들이 없다. 마르크스주의가 옳다고 해도 실천도, 전수도 못하는 위기 상황이다. 마르크스주의의 현실 타당성을 강조하는 게 청년 세대의 감수성과 맞지 않아서다. 사회운동을 하거나 사회 비판적인 젊은이들도 마르크스가 아닌 다른 데서 근거를 찾으려 한다. 30여 년 전인 1983년은 마르크스 사망 100주년이었다. 그때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당시는 전 세계적으로 어마어마한 학술대회가 많이 열렸고 관심도 뜨거웠다.”
마르크스주의의 퇴조는 마르크스라는 상품에 대한 현실적 평가가 아닐지.
“90년대 초반 마르크스주의의 위기를 타개하자는 취지에서 경제학자 정운영 선생 등과 계간지 『이론』을 냈는데 판매부수가 1만 부를 넘을 정도로 인기였다. 이런 사실을 교류하던 외국 마르크스주의자에게 전했더니 "별나라 얘기”라고 놀라워했다. 서구에선 80년대 중후반부터 마르크스주의가 퇴조하고 있었다. 우리와 10년 정도 시차가 있었던 거다. 80년대는 20여년 간 축적된 운동과 연구의 성과가 총정리되는 ‘마지막 잔치’였는데 우리는 그게 출발점이라고 오해를 한 거다. 돌이켜보면 근거 없는 낙관주의 같은 게 있었다.”
중국이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마르크스가 태어난 독일 트리어시에 동상을 세웠다. ‘시진핑 사상’이 마르크스주의의 적통을 잇고 있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시진핑 사상이 21세기판 마르크스주의라는 건 처참한 농담이다. 중국도 러시아도 영구집권을 획책하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판·소련판 10월 유신’이다. 김정은의 3대 세습으로 백두혈통이 마르크스주의를 계승한다는 것도 처참한 얘기다. 군주정이 부활한 것이다. 문제는 시진핑·푸틴·김정은이 사회주의를 대표하는 현실이다. 일반 대중이 보기엔 그게 사회주의인 거다. 이런 상황에서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이 어떻게 축제가 될 수 있겠나.”
1980년대 사회구성체 논쟁에서 한국사회를 독점 강화-종속 심화의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신식국독자)론으로 분석했다. 지금도 유효한가.
“80년대 이론 작업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신식국독자론을 제기할 당시는 한국 경제가 86~88년 3저 호황을 누리면서 학계·운동권에서 자립화·개량화론이 나올 때였다. 한국 경제가 종속에서 벗어나 드디어 자립 경제로 가고 근본적인 변혁이 아니라 개량으로 사회를 바꿔나갈 수 있다는 주장을 비판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그 쟁점은 이미 끝났다. 종속 심화와 독점 강화의 결과가 97년 외환위기였다는 점에서 당시 주장이 틀리지 않았다고 본다. 자립화·개량화론이 맞았다면 97~98년의 엄청난 위기는 올 수 없었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엔 상황이 다르다. 신식국독자나 독점 강화-종속 심화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
윤 교수가 신식국독자론을 폐기했다는 비판도 있던데.
“폐기했다기보다 ‘독점’이니 ‘신식민지’라는 말이 아닌 자본주의에 대한 일반론으로도 충분히 현실을 설명할 수 있어서다. 예를 들어 삼성바이오로직스 같은 이슈나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이 삼성과 현대차 지배구조를 흔드는 현실을 신식국독자론으로 어떻게 분석하겠나.”
지난해 출간한 『위기와 비판』에서 “남한에서 마르크스주의가 노동자주의 때문에 타락했다”고 썼다. 대기업과 공공부문 중심의 양대 노총에 대한 비판으로 들린다.
“노동자주의는 노동자가 자기 이익만 추구하는 것이다. 여성주의가 여성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페미니즘은 여성주의가 아닌 것처럼 마르크스주의는 노동자주의가 아니다. 노동자주의나 여성주의는 지대추구적 집단 이기주의일 따름이다. 얼마 전까지는 한국노총이든 민주노총이든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 노조의 바람직한 방향에 대해 책도 쓰고 공적 발언도 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노동자들도 자기 행복이나 안위가 1차적인 관심이지 사회변화나 미래세대의 복지에는 관심 없다.”
윤 교수는 이날 “처참하다”라는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그는 “현재는 마르크스주의를 실천할 수 있는 가능성이 거의 없다”며 “노동자나 청년들에게 마르크스가 옳다고 아무리 얘기해 봐야 지금은 꼰대 취급밖에 못 받는다”고 했다. 윤 교수는 행도(行道)에서 전도(傳道)로 방향을 전환한 말년의 공자 얘기를 꺼냈다. 그는 “도(道)를 행할 수 없지만 도를 포기할 수는 없다. 사라지지 않도록 도를 지키고 전해야 한다”고 했다. 그동안의 마르크스 연구를 정리하고 후세에게 전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요즘 유학·역사·문학을 중심으로 공부를 새로 하고 있다고 했다. 특히 문학의 경우 소설가 이문열의 작품을 다시 읽고 있다.
의외다. 과거 운동권에선 이문열 작가의 소설을 반공 보수주의로 평가했는데.
“이문열의 『영웅시대』를 반공소설로 보지 않는다. 작가의 부친이 모델인 소설 속 주인공은 끝까지 공산주의에서 전향하지 않는다. 해방 정국에서 마르크스주의를 수박 겉핥기식 얼치기로 받아들인 지식인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해 경고한 것이다. 소설이 나온 게 1984년이다. 예술가의 본능적 감수성으로 80년대를 미리 걱정한 게 아닌가 싶다. 소설에 나온 지식인의 고뇌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박완서 선생의 소설도 읽고 있다.”
『위기와 비판』과 2016년 출간한 『한국의 불행: 한국 현대지식인의 역사』에서도 지식인 실명 비판을 했다.
“마르크스 이론은 문제없다. 이걸 계승 발전시키겠다는 지식인이나 현실에 적용하겠다는 활동가들의 문제다. 마르크스를 같이 공부했는데 세월이 지나 달라진 사람을 보면서 ‘왜 저렇게 살까’ 의아했다. 태극기 집회에 참석한 김문수 선배가 좋은 예다. 혈연(血緣)과 지연(地緣), 즉 지식인의 집안과 고향을 넣으면 해석되는 게 많다. 김문수 선배는 경북 영천이 고향이다. 보수적인 지역 분위기가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우습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이문열을 이해하기 위해 올 여름 그의 고향 경북 영양에 내려가 볼 생각이다.”
고(故) 리영희 교수, 백낙청 교수, 김상곤 교육부총리 등 진보 출신 인사들에 대한 실명 비판이 많던데. 강준만 교수가 과거 『인물과 사상』에서 표방했던 실명 비판 못지 않다.
“특정인을 비판하려는 게 아니고 우리 세대의 자기비판이라고 이해해달라. 우리는 이런 걸 놓쳤으니 다음 세대는 그러지 말라는 뜻이다. 할 말은 해야겠다.”
마르크스는 ‘역사는 반복된다’는 헤겔의 경구를 인용하면서 첫 번째는 비극이고 두 번째는 소극(笑劇)이라고 했다. 윤 교수는 『위기와 비판』에서 역사는 세 번째로 반복될 수 있는데 그건 바로 ‘사기극’이라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과 문재인 정부의 지난 1년이 왜 사기극인가.
“노무현식 인민주의가 부활하고 있다. 그런 인민주의를 ‘정치가적 포퓰리즘’이라고 부른다. 정치를 피아(彼我)로 나눠 적대시하고 의회정치를 무시하고 대중의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다. ‘쇼통’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소득주도 성장론은 경제학적 사기다. 기존의 성장론과 대비되는 반(反)경제학이다. 『시장과 전장』에서 박경리 선생이 갈파했듯이, 얼치기 지식인들이 살아남는 방법은 두 가지다. 바보가 되든지 사기꾼이 되든지. 지식인은 바보 노릇 할 수는 없으니 사기꾼이 되는 거다.”
윤 교수의 과천연구실에서 펴낸 수십 권의 책 앞표지에는 알튀세가 직접 그린 유명한 오리 그림이 실려 있다. 알튀세의 자서전 제목인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라는 글씨와 함께. 윤 교수는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는 알튀세의 말을 “역사는 끝나지 않는다, 미래는 온다, 앞으로 올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새무얼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에서처럼 끝내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윤 교수는 “내 생전에 좋은 날이 올 것 같지는 않다”고 담담하게 답했다.
윤소영 교수는 …
1954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복중·고교를 거쳐 73년 서울대 상대(경제학과)에 수석 입학, 수석 졸업을 했다. 주류 경제학을 공부하다 현대경제학의 이론적 결함을 마르크스주의로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마르크스주의자가 됐다. 서울대 경제학과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에티엔 발리바르의 정치경제(학) 비판’으로 박사 논문을 썼다. 한국에서 본격적인 마르크스주의 이론으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건 그가 처음이었다. 80년대 후반 한국 사회의 성격을 진단하는 사회구성체 논쟁에서 민중민주(PD) 진영의 핵심 논객이었다. 무크지 『현실과 과학』을 발행하며 독점 강화 종속 심화를 내용으로 하는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론을 펼쳤다. 84년부터 한신대 국제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내년 정년 퇴임을 앞두고 있다. 94년 과천연구실을 설립해 마르크스주의 일반화를 위한 중장기적 이론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서경호 논설위원
[출처: 중앙일보] [서경호의 직격 인터뷰] “남한에서 마르크스주의는 노동자주의 때문에 타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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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대 윤소영 교수 “위안부 문제 잘못 제기됐다는 게 평소 생각”
김진영 기자 jykim@chtoday.co.kr | 입력 : 2018.03.29 09:43
총학생회 “사실 관계 확인 못했다… 윤 교수에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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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대 ⓒ한신대
최근 소위 '위안부 비하' 발언을 했다고 알려지며 논란이 된 한신대학교 윤소영 교수(국제경제학)가 이에 대한 입장을 28일 밝혔다.
윤 교수는 "학생들 사이에서 제가 '3월 9일 경제학개론 수업 때 위안부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날조한 것이기 때문에 국내에서만 수용되고 외국에서는 무시된다고 말했다'는 취지의 소문이 떠돈다는 사실을 어제(3월 15일) 조교를 통해 알게 됐다"며 "경제학개론 수업에서 이런 취지의 말을 하게 된 맥락은 사실 나도 잘 기억나지 않고, 게다가 '날조'라는 말을 했을리도 없다"고 했다.
윤 교수는 "그러나 위안부 문제가 잘못 제기되었다는 것이 평소 저의 생각이고 몇몇 전공강의에서는 이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면서 "내 강의를 듣지 않은 학생들은 크게 오해할 수도 있는 대목이라 간단히 설명해 보겠다"고 했다.
그는 "먼저 1995년에 한일국교정상화가 이루어진 역사적 맥락을 알아야 한다. 당시 국교정상화의 조건으로 우리나라는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을 요구한 반면, 일본은 미군이 우리에게 양도한 '적산'(미군의 적국의 재산, 즉 우리나라에 있던 일본인 정부와 기업, 나아가 일반 시민의 재산)의 반환을 요구했다. 이 두 요구가 평행선을 달리면서 협상의 타결이 불투명해지자 미국이 중재해 일본이 우리나라에게 '독립축하금'이자 '경제협력자금'으로 5억 달러를 제공하는 것으로 합의하게 됐다. 그리고 이것이 1960~70년대 박정희 정부로 하여금 경제기적을 실현할 수 있게 했던 종자돈이 되었다"고 했다.
윤 교수는 "박정희 정부는 군사독재였으므로 위안부를 비롯해서 징용자, 징병자 등 민간인의 피해 문제를 무시했다고 판단할지도 모르겠다"며 "그러나 북한도 남한과 동일한 입장인 것을 보면 너무 성급한 판단이다. 2000년대 초에 김정일 위원장과 고이즈미 총리 사이에 북일국교정상화협상이 타결 직전까지 진행된 적이 있는데, 당시 김 위원장은 고이즈미 총리가 제시한 조건인 100억 달러(1965년의 5억 달러를 환산한 가치)를 이의 없이 수락했다. 또 현재 김정은 위원장도 거의 동일한 조건이면 만족한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달리 말해서 북한도 민간인 피해 문제를 별도로 제기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그렇다고 해서 제가 민간인 피해 문제를 무시하자는 입장은 아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5억 달러로 그 동안 이만큼 경제성장을 이룩했으니 정부, 나아가 가장 큰 혜택을 입은 기업이 그 문제를 주동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한일국교정상화를 가능케 한 양국간 조약을 훼손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외교란 상대방이 있는 것이고, 특히 이해관계가 충돌할 수 있는 국가간 관계를 규제하는 조약이 바로 국제법이라는 것"이라며 "우리가 일방적으로 국제법을 위반한다면, 최악의 경우에는 국교가 단절될 수도 있다. 그러나 민간인 피해 문제 때문에 그런 극단적 결과가 초래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윤 교수는 또 "우리 한신은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 아래에서 사회문주화운동의 선봉에 섰다"며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학문의 자유'에 대한 옹호가 우리 한신의 전통이었기 때문이다. 학문의 자유란 교수가 자신의 생각을 책이나 논문으로 자유롭게 발표할 수 있는 '연구의 자유', 또 자신이 연구한 내용을 자유롭게 강의할 수 있는 '교육의 자유'로 구성되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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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윤소영 교수의 경제학개론 수업을 수강한 또 다른 학생에 따르면 윤소영 교수의 강의 중 일부 내용이 오해의 여지를 줄 수는 있었지만 일부 언론에서 자극적으로 기사화 된 내용은 사실이 아니라고 증언했다고 한신대 측은 밝혔다.
또 한신대 총학생회는 사실 관계를 확인하지 않은 채 문제제기를 받아들인 실수를 인정하고, 혼란을 느꼈을 모든 사람들과 윤소영 교수에게 사과한다고 밝혔다.
이에 윤소영 교수는 "학자이자 교수로서 강의 중 내용에 대해서는 학생들에게 사과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그러나 말의 진위 여부를 떠나 학생들이 오해하고 혼란받은 부분에 대해서는 미안하고 유감스럽다. 또한 위안부 할머니 및 이를 바로잡기 위해 애쓰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부분에 대해 사과한다"고 말했다.
한신대에 따르면 윤소영 교수의 소위 '위안부 비하' 발언은 '한신대학교 대신 전해드립니다'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제보된 것으로, 명확한 사실 관계가 파악되지 않은 채 아시아경제가 처음으로 보도했다.
현재 한신대 총학생회는 아시아경제에 기사 정정을 요청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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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소영 교수 오보 사태가 남긴 것
‘팩트’ 드러나면서 소동 진정...수면 아랜 ‘학문의 자유’ 쟁점
( 문수현 기자 2018년 04월 10일 23시50분 )
한신대 국제경제학과 윤소영 교수의 ‘위안부’ 발언 관련 오보 사태가 일단락돼가는 모양새다. 하지만 이 사태가 학문과 양심의 자유에 남긴 생채기에 대해서는 진지한 성찰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23일 인터넷 경제신문 아시아경제는 “국내 마르크스주의 경제학파의 주요 학자인 윤소영 교수가 강의 시간에 일본군 위안부 폄훼 발언을 해 논란”이라고 했다.
신문은 “윤 교수가 지난 9일 국제경제학과 1학년 전공 필수 과목인 경제학개론1 수업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자발적인 매매춘이었으며 강제 연행 주장은 날조된 역사로 근거가 없다’며 ‘위안부들은 일본군들에게 자발적으로 성을 제공했고, 이것이 국제 사회에서 통용되는 상식’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사진=한신대 캠퍼스. 한신대 인터넷 사이트
이 기사는 수많은 베껴 쓴 기사를 낳았고 사태는 일파만파로 번졌다. 윤 교수는 뭇매를 맞았다.
하지만 27일 인터넷매체 레디앙이 공개한 해당 강의 녹음파일을 보면 “자발적 성 제공” “자발적 매매춘” 등의 표현은 강의 내용 어디에도 없었다.
하루 뒤인 28일 총학생회는 “(총학생회가 작성해 발표한) 성명문 내용 중 일부가 자극적으로 기사화되는 과정에서 상처받고 혼란을 느꼈을 모든 분들에게 사과드리며, 특히 윤소영 교수님께도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윤 교수에게 사과하는 동시에, 총학 성명서가 아시아경제 오보의 빌미를 제공했음을 인정한 것이다.
한신대도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최근 논란이 되었던 윤소영 교수의 ‘위안부 비하’ 발언과 관련해 반대 내용의 한신대 수강생 증언과 한신대 총학생회의 사과문 발표가 이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대학 측은 “윤소영 교수의 ‘위안부 비하’ 발언은 ‘한신대학교 대신 전해드립니다’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제보된 것으로, 명확한 사실 관계가 파악되지 않은 채 아시아경제에 첫 보도가 되었다”고 해명하면서 “현재 한신대 총학생회는 성명서를 통해 아시아경제에 기사 정정 요청을 한 상태다”라고 덧붙였다.
대학 측은 윤소영 교수의 입장도 전했다.
윤 교수는 “학자이자 교수로서 강의 중 내용에 대해서는 학생들에게 사과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소신을 밝히면서 “그러나 말의 진위 여부를 떠나 학생들이 오해하고 혼란받은 부분에 대해서는 미안하고 유감스럽다. 또한 위안부 할머니 및 이를 바로잡기 위해 애쓰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부분에 대해 사과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총학생회 등의 해명과 정정보도 요청, 해당 강의 녹음파일 공개, 대학 측의 공식입장 발표 등으로 윤 교수 발언의 진위 논란이 ‘언론보도 내용의 허위’로 정리되면서 오보 소동은 진화되는 양상이다.
하지만 윤 교수 발언은 여전히 잘못 인용되고 있다.
윤 교수의 ‘위안부’ 관련 발언의 내용은 “역사는 자기 마음대로 날조하기 시작하잖아? 그럼 그 사회는 망한다.” “근데 요즘 우리나라만 보면 위안부 할머니들 전혀 근거가 없어, 아무런 근거가 없어. 그거 어떻게 보면 우리는 끊임없이 역사를 날조하고 있는 거야. 우리 사회 분위기가 이래.”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름난 시민단체의 공식 성명에선 이 중 일부를 “요즘 우리나라를 보면 위안부 할머니들이 아무런 근거도 없으면서 끊임없이 역사를 날조하고 있다”로 인용하며 비판했다. 윤 교수 발언에선 ‘역사 날조’의 주체로 ‘우리(나라)’가 지목되거나 모호하지만, 단체 성명은 해당 발언을 ‘위안부 할머니들이 역사를 날조’라고 단정한 것이다.
이 같은 사실관계를 떠나 또 다른 쟁점도 잠복돼 있다. 교수가 강의실에서 수업한 내용이 여론재판의 도마 위에 올랐다는 점이 그 중 하나다.
총학생회의 경우 윤 교수에게 사과하면서도 “윤소영 교수의 위안부 관련 발언이 문제적이라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며 “수업 중 문제발언으로 상처 받으셨을 위안부 피해자, 불편함을 느꼈을 학우들에게 사과하십시오”라고 요구했다.
대표적인 ‘위안부’ 지원단체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도 “윤 교수가 제대로 된 역사의식을 가지고 강단에 서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한 윤 교수의 생각은 어떨까.
한신학보(3월 26일자)에 따르면, 윤 교수는 21일 학생들과 가진 면담에서 “난 자네들이 속고 있다고 생각해. 그래서 나는 그 역사 날조 이야기를 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라는 의미에서 한 거야. 이야기가 너무 길어지긴 했는데 위안부 할머니 문제를 그렇게 생각하고 (말)한 거야.”라고 말했다. 학문적 양심에 거스를 것이 없다는 얘기다.
학보에는 실리지 않았지만 윤 교수는 그 자리에서 “날조했다는 표현은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적용하려고 쓴 표현이 아니야.”라고도 해명했다. 위안부 문제를 제기하는 운동방식의 문제점을 지적했다는 취지다.
한편 사회운동단체로서는 사회진보연대가 지난 4일 성명을 내고 “윤소영 교수는 마르크스주의의 쇄신이라는 문제의식 하에 사회운동의 이념과 이론에 기여한 연구자”라며 “‘국내 마르크스주의 경제학파의 주요 학자가 위안부 관련 망언을 했다’는 아시아경제의 왜곡된 프레임은 단순한 오보로 그치는 문제가 아니라, 마르크스주의 운동에 대한 왜곡과 오해로 이어질 수 있어 깊은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또한 “(아시아경제의 오보는) ‘위안부’ 관련 망언이라는 낙인을 찍어 합리적인 논의를 봉쇄하는 효과를 낳았다”고 지적하면서 “그 발언은 ‘위안부’ 피해자들을 비하하려는 것이 아니었고, 당사자도 그와 같이 해명했다. 우리는 피해자의 아픔에 공감하는 가운데 그 책임을 일본과 한국의 지배계급에게 물어야 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윤 소영 교수 자신도 공식입장을 밝혔다. 다음은 윤 교수가 총학생회의 성명서나 아시아경제의 기사가 나오기 전인 3월 16일에, 자신의 강의에 대한 소문이 돈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페이스북 페이지 ‘한대전’에 학생들이 보도록 올리기 위해 작성해둔 글로, 28일 한신대 보도자료에 첨부됐다.
윤 교수는 이 글에서 “위안부 문제가 잘못 제기됐다는 것이 평소 나의 생각”이라며 그런 생각을 뒷받침하는 논지를 밝히고 있다. 아울러 이번 사태에 대해 ‘학문의 자유’와 연관지어 유감의 뜻을 표하고 있다. 아래에 그 내용을 소개한다.
위안부 문제가 잘못 제기되었다는 것이 평소 나의 생각이고 몇몇 전공강의에서는 이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내 강의를 듣지 않은 학생들은 크게 오해할 수도 있는 대목이라 간단히 설명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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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1965년에 한일국교정상화가 이루어진 역사적 맥락을 알아야 합니다. 당시 국교정상화의 조건으로 우리나라는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을 요구한 반면 일본은 미군이 우리에게 양도한 ‘적산’(미군의 적국의 재산, 즉 우리나라에 있던 일본인 정부와 기업, 나아가 일반 시민의 재산)의 반환을 요구했습니다. 이 두 요구가 평행선을 달리면서 협상의 타결이 불투명해지자 미국이 중재하여 일본이 우리나라에게 ‘독립축하금’이자 ‘경제협력자금’으로 5억달러를 제공하는 것으로 합의하게 되었지요. 그리고 이것이 1960-70년대 박정희 정부로 하여금 ‘경제기적’을 실현할 수 있게 했던 종자돈이 되었습니다.
박정희 정부는 군사독재였으므로 위안부를 비롯해서 징용자, 징병자 등 민간인의 피해 문제를 무시했다고 판단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북한도 남한과 동일한 입장인 것을 보면 너무 성급한 판단입니다. 2000년대 초에 김정일 위원장과 고이즈미 총리 사이에 북일국교정상화협상이 타결 직전까지 진행된 적이 있는데, 당시 김 위원장은 고이즈미 총리가 제시한 조건인 100억 달러(1965년의 5억달러를 환산한 가치)를 이의 없이 수락했습니다. 또 현재 김정은 위원장도 거의 동일한 조건이면 만족한다는 입장이라고 합니다. 달리 말해서 북한도 민간인 피해 문제를 별도로 제기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민간인 피해 문제를 무시하자는 입장은 아닙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5억달러로 그동안 이만큼 경제성장을 이룩했으니 정부, 나아가 가장 큰 혜택을 입은 기업이 그 문제를 주동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일국교정상화를 가능케 한 양국간 조약을 훼손해서는 안되기 때문이지요. 외교란 상대방이 있는 것이고, 특히 이해관계가 충돌할 수 있는 국가간 관계를 규제하는 조약이 바로 국제법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방적으로 국제법을 위반한다면, 최악의 경우에는 국교가 단절될 수도 있지요. 그러나 민간인 피해 문제 때문에 그런 극단적 결과가 초래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겠지요.
마지막으로 사족을 하나 붙이겠습니다. 내가 한신대에 온 지도 벌써 35년이나 되어 내년이면 정년퇴직을 하게 되었군요.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우리 한신은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 아래에서 사회민주화운동의 선봉에 섰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학문의 자유’에 대한 옹호가 우리 한신의 전통이었기 때문입니다. 학문의 자유란 교수가 자신의 생각을 책이나 논문으로 자유롭게 발표할 수 있는 ‘연구의 자유’, 또 자신이 연구한 내용을 자유롭게 강의할 수 있는 ‘교육의 자유’로 구성되는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지난 35년 동안 적어도 우리 한신 안에서 내 강의가 문제가 된 적은 없습니다. 물론 경제학개론 수업에서 이런 발언을 한 나의 불찰도 있겠는데, 그래도 문제를 제기한 학생에게 섭섭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군요. 오늘(3월 16일) 오전 경제학개론 수업에서도 역시 아무런 문제제기가 없었고요. 그 학생을 포함하여 지금 내 설명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학생은 이메일로 질문해주면, 성의껏 답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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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견해에 대한 반론은 정대협의 3월 30일자 논평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1965년 한일협정으로 이미 끝난 것이 아니라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를 참조할 수 있다.
참고로, 윤 교수의 발언과 직접 관련은 없지만, '위안부' 문제에 대한 문제제기, 나아가 민족주의 비판이 논리적 비판과 학술적 토론으로 발전하는 대신 감정적 대립과 왜곡으로 비화한 사례들이 있다. 세종대 박유하 교수 관련 쟁송, 그리고 그와 닮은꼴인 이영훈 교수 사태가 그렇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기사 : 한신대 총학 “윤소영 교수 관련보도는 오보”
“정정보도 요청했다”...복제기사 쏟아내던 언론은 잠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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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사기극, 연출자는 문재인 정부?
윤소영, 《위기와 비판》 《재론 위기와 비판》 서평 ① 문재인정부 정책 비판
김태훈
올해 10월, 윤소영 교수는 《재론 위기와 비판》을 출간했다. 《위기와 비판》(2017, 윤소영)의 주장을 다시 거론하겠다는 의미다. 윤소영 교수는 80년대 한국사회성격논쟁에서 PD(민중민주) 이론을 정초한 바 있다. 이후 과천연구실에서 마르크스주의의 일반화를 위한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두 권의 책에서 위기란 1987년 대통령직선제 개헌 30주년, 1997~1998년 경제위기 20주년, 2007~2009년 금융위기 10주년을 지나 문재인 정부의 집권이라는 현상을 말한다. 비판이란 문재인 정부가 ‘역사의 사기극’을 만들고 있는 ‘사기꾼’이라는 것이고, 386세대로 대표되는 한국 현대 지식인의 결함이 위기를 초래했다는 의미다. 왜 역사의 사기극인가? 청와대와 행정부, 국회의 주류가 되고 있는 386세대를 포함해 한국 지식인의 결함은 무엇인가?
역사의 사기극
“헤겔은 어느 부분에선가 세계사에서 막대한 중요성을 지닌 모든 사건과 인물은, 말하자면 두 번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그는 한 번은 비극으로, 다음번은 희극으로 나타난다고 덧붙이는 것을 잊었다.” - 마르크스,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
마크르스는 ‘역사는 반복된다’는 헤겔의 경구에 대해 첫 번째는 영웅이 주인공인 비극(tragedy)이고 두 번째는 광대가 주인공인 소극(farce)이라고 강조했다. 현재는 사기꾼이 주인공인 ‘사기극’으로 역사가 반복되고 있다. 역사에 대한 학식이 없는 자가 역사의 주체를 자임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과거를 서술하여 그 뜻을 밝히면서 미래를 기대한다’는 태도가 사라진 것이다. 역사에 대한 판단(사론)이 역사에 대한 지식(사학)을 대체하면서 근거 없는 판단(격단)이 된다. 중국 문화 혁명기의 영사사학(현재의 정치에 대해 과거의 역사를 빗대어 말한다는 의미)이 결국 현재의 정치에 복무하기 위해 과거의 역사를 날조하는 사이비 과학으로 타락했던 것과 마찬가지다. 《위기와 비판》, 《재론 위기와 비판》은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외교·안보정책, 개헌시도를 분석하면서 사기꾼 행태를 비판한다.
한국 경제의 침몰과 소득주도성장
한국 경제는 1979~1980년과 1997~1998년의 구조적 위기를 두 번 겪으면서도 개혁에 실패했고, 결국 침몰했다. 김대중 정부의 신자유주의 개혁을 계승한 노무현 정부의 한미FTA 타결은 한국 경제를 노동자민족으로 변모시켰다. 한국 경제의 침몰이란 한국 경제가 중진국 함정에 빠졌다는 것, 즉 자본주의의 표준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 경제를 추격하는 데 실패했다는 의미다. 이는 수익성과 생산성을 무시하는 한국 자본주의에 고유한 제도인 재벌의 결함에서 비롯된다. 삼성전자의 메모리 반도체에 의존하는 반도체 호황은 매출액은 인텔을 추월했으나 수익성은 그렇지 않다. 스마트폰 호황은 더욱 심각한데, 삼성전자는 원천기술이 없다.
현대 경제학의 경제 성장론은 금융이 세계화된 결과로 발생하는 금리생활자민족과 노동자민족의 차이를 분석했고, 노동자민족의 성장궤도는 국가 부도를 동반한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의 외국인 지분율은 절반에 가깝다. 또 올해 국감 자료에 의하면 시중 6대 은행의 외국인 지분율은 평균 73.3퍼센트고 그 중 SC제일은행과 씨티은행은 100퍼센트 외국인 소유다. (《한국 자본주의의 역사》(윤소영, 2014); 《현대경제학 비판》(윤소영, 2011))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론은 경제학적 사기를 상징한다. 즉 경제학과 경제정책의 역사에 대한 학식이 없는 것이다. 우선 소득주도성장론이 경제학적으로 케인스주의에 근거하는지, 포스트케인스주의의 임금주도성장론에 근거하는지 모호하다. 리카도-마르크스-솔로우의 성장론은 자본축적이 경제성장의 원천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임금주도성장론은 노동자 임금의 소비가 경제성장의 원천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자본축적과 기술진보를 중요시하지 않는 일종의 ‘반(反)경제학’이다. 홍장표 전 경제수석은 ‘임금’주도성장론이라는 말 대신 ‘소득’주도성장론이라는 말을 쓴다. 한국은 자영업자의 비율이 인구 대비 8퍼센트 수준으로 OECD 국가 중 압도적으로 높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장하성 전 정책실장,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재벌개혁론도 재벌로부터 외국인 투자자를 지키려는 소액주주운동이 아니라 대기업으로부터 국내 자영업자를 보호하려는 공정거래정책에 무게를 두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이나 파견 노동 규제·감독이 자영업자 보호와 갈등을 초래한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재론 위기와 비판》에서 소득주도성장론은 이제 공개적 논란의 대상이 됐고, 삼성에 대한 ‘투자 구걸’은 정부 스스로 그 실패를 자인했다고 평가한다. 7월 문재인 대통령을 인도에서 만나고 8월엔 김동연 경제부총리를 만난 이재용 부회장은 3년간 180조 원의 투자를 약속했다. 김상조가 이재용을 두둔한 것처럼, 《재론 위기와 비판》은 친노·친문이 박근혜의 세습은 악마화하고 적폐로 규정하면서도 유독 김정은과 이재용의 3대 세습에는 관대하다고 꼬집는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론은 일본 민주당 실패의 전철을 밟는 것이기도 하다. 일본 민주당은 집권 이후 ‘증세 없는 복지’로 임금분배율을 높였으나, 장기불황에서 벗어나는 데 실패했다.
한반도 정세와 대북정책 비판
문재인 정부는 경제정책보다도 외교·안보 정책에 훨씬 집중했다. 그 핵심은 북한 비핵화인데, 국가안보실장·국가정보원장을 중심으로 북미협상의 중재에 진력해왔다. 2018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신년사에서 핵 무력을 완성했고, 병진 노선에 따라 경제를 완성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북한은 문재인 정부와 적극적으로 교류한다. 이러한 태도 급변의 배경에는 경제위기가 있다. 한국은행의 통계에 따르면 북한의 2017년 국내총생산은 3.5퍼센트 감소했고, 올해는 5.0퍼센트 하락하리라 예상된다.
문제는 비핵화의 개념이 다르다는 것이다. 미국이 주장하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복구 불가능한 핵 폐기(CVID)’에 북한은 동의하지 않는다. 북한의 비핵화는 핵무장을 전제한 핵 동결, 기껏해야 핵 군축을 의미한다. CVID에 미달한다는 근거로 이란과의 핵협정을 폐기한 트럼프가 존 볼턴이 주장하는 리비아식 해법을 기각하고 북미정상회담을 추진했다. 트럼프가 김정은 위원장의 입장을 수용한 것인데, 이런 변덕은 올해 치러진 중간선거, 차기 대선에 활용하기 위함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 운전자’를 자임하지만, 사실상 대리운전에 불과하다. 최근 문재인 정부가 경제 제제 완화를 위한 행보를 취하는 과정에서 미국은 자산총액 286조엔 수준의 세계 6위, 일본 최대의 미쓰비시 은행에 대해 세컨더리 보이콧을 검토하면서 경고를 보내고 있다. 트럼프나 김정은이 문재인에게 운전을 양보할 리가 없다. 게다가 미국 의회가 트럼프를 견제하고 있다. 공화·민주 양당이 ‘대북정책감독법’을 공동으로 발의한 상태인데, 비핵화 협상을 매월 의회에 보고할 것을 의무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윤소영 교수는 《역사학 비판》에서 수령론을 핵심으로 하는 김일성주의는 극단화된 스탈린주의, ‘신화화된’ 개인숭배라고 비판한 바 있다. 여기에 국민대 란코프 교수의 분석을 보충한다. 북한 인구 2500만 명 중 4~8퍼센트 정도인 100~200만 명을 북한의 지배층이라 볼 수 있는데, 이들의 세계관은 ‘극단적 현실주의’다. 체제경쟁은 포기하고 체제생존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경제성장과 정치이념의 우위를 다퉜던 냉전기의 체제경쟁에서 패배했음을 자인하고 탈냉전의 상황에서 체제생존, 나아가 자신의 생존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북한이 리비아식 해법을 극단적으로 거부하는 것은 단지 비핵화 시간표의 문제가 아니다. 2011년 리비아 내전 중에 카다피와 그 가족이 살해된 것은 결국 핵무기가 없기 때문이었다. 미국과 유럽은 핵 보복을 걱정하지 않고 반체제운동을 지원할 수 있었다. 따라서 김정은의 입장에서는 체제보장을 위해 평화협정으로 충분치 않고 핵무기라는 군사적 수단이 필요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을 대변하는 문정인 교수처럼 핵무장이 평화협정 체결을 통해 안전을 보장받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은 부당전제일 따름이다.
인민주의의 부활
문재인 정부의 경제학적 사기인 소득주도성장론과 북한의 3대 세습과 핵무장을 용인하는 친북 노선에 대한 비판은 제왕적 대통령과 인민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진보적 요구를 인기영합적 인민주의(populism, 포퓰리즘)와 동일시하는 보수언론의 통속적 비난과 달리, 과천연구실은 현대 정치 이념인 보수주의·자유주의·사회주의와 구분되는 역사적인 현상으로서 인민주의에 대해 분석하고 비판해왔다. 《인민주의 비판》(정인경·박정미 외, 2005, 《한국의 불행: 한국현대지식인의 역사》(윤소영, 2015)
이번 저작들에서는 전 세계적 인민주의의 부활이라는 정세를 분석한다. 가장 대표적이고 충격적인 사례가 신자유주의 근거지인 미국에서 나타난 트럼프 당선과 영국에서 나타난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이다. 신자유주의자 오바마가 <만델라 탄생 100주년 기념강연> 연설에서 인민주의를 비판한 것을 참고할 수 있다. 오바마는 전후 세계질서의 형성에서 미국이 제시한 세계표준의 역할에 주목한다. 그러나 탈냉전 이후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결함과 모순’, 특히 ‘경제적 불평등의 폭발’ 때문에 중국 시진핑과 러시아 푸틴의 권위주의와 같은 ‘반동’이 출현했다. 미국과 유럽의 경우 처음에는 왼쪽에서 제기되었던 세계화에 대한 도전이, 그 뒤에는 오른쪽에서 인민주의 운동으로 더 강력하게 나타났다. 오바마는 ‘스트롱맨의 정치(Strongman politics)’라는 표현을 통해 프로토파시즘(파시즘 형성의 기반이 되거나 영향을 주는 문화 운동이나 이념)으로서 인민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타협과 협상으로써 자유주의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이야기를 지어내는(날조하는)’ 풍조임을 지적한다.
오바마는 현 정세를 ‘인류의 미래에 대한 두 개의 아주 다른 전망이 세계시민의 감정과 이성을 두고 경쟁하는 순간’으로 분석한다. 즉 신자유주의의 결함과 모순을 해결해 자유주의를 재건함으로써 인민주의 내지 권위주의가 파시즘 내지 군국주의로 악화하는 것을 예방하자는 것이다. 오바마의 ‘포용적 자본주의(inclusive capitalism)’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과 유사해 보이지만, 경제학을 근거로 한다는 점에서 문재인 정부의 정책과는 다르다.
제왕적 대통령과 인민주의
비록 국민투표를 하겠다는 구상은 국회의 반대로 실패했으나, 문재인 정부의 4년 중임제 개헌 추진은 제왕적 대통령제를 개악하려는 구상이었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상징하는 게 바로 대통령 인사권이다. 대통령은 3천 명의 장·차관, 기관장을 직접 임명하고, 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직책은 3만 개에 이른다.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이 직책의 수가 1만 개에서 3만 개로 증가했다.
의원내각제와 대통령제를 비교하며 한국의 제왕적 대통령제를 분석할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와 선거 정치는 양립할 수 없음을 전제로 하자) 군주권이 취약한 서양에서 군주의 선거가 선거제도의 기원이다. 반면 아테네 민주정에서는 시민의 동질성을 전제로 추첨제도를 통해 관리를 선발했다. 선거제도는 인민주의의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인민주의의 ‘인민’은 엘리트와 대립하는 대중이라는 의미다. 민주주의가 타락한 형태가 바로 인민주의다. 타락하는 원인은 바로 대중선동가의 대중선동이다. 그래서 인민주의를 ‘대중선동가의 지배’라고 부르기도 한다. 19세기 영국에서 현대적 선거제도가 출현했고, 영국의 선거정치가 채택한 의원내각제가 부르주아 민주주의 표본이다. 미국의 경우 연방제라는 배경이 대통령제를 채택하게 했으나, 몽테스키외의 권력분립론에 따라 ‘견제와 균형’의 장치들이 도입된다.
세계적으로 대통령제를 채택한 국가들이 많은데 그것은 아시아·아프리카·라틴 아메리카의 권위주의 국가에서 대통령제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이승만이 의원내각제를 선호한 김성수의 한국민주당과 대립했던 사실을 떠올릴 수 있다. ‘식물국회’, ‘기생정당’이라는 표현처럼 대통령제에서는 유능한 정치인이 성장할 수 없다. 제왕적 대통령을 용인하는 한국의 정치제도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미달하고, 권위주의적 인민주의에 취약하다. 그리고 그 귀결이 현재의 문재인 정부다. 노무현 정부 이래 386 세대는 ‘주류교체론’을 주장해왔다. 그러나 그것은 군사독재의 보수주의를 재야의 인민주의로 대체하겠다는 의미이고, 이것은 문민화의 실패를 상징한다. 정치이념을 좌·우파로 구분하는 것은 자유주의가 취약한 유럽의 관행인데, 한국에서는 자유주의에 미달하는 보수주의와 인민주의가 우파와 좌파를 대변하는 실정이다.
다음 글에서는 남한에서 자유주의와 마르크스주의가 왜 취약한 지를 한국 지식인의 역사를 통해 살펴보겠다. 그리고 《위기와 비판》, 《재론 위기와 비판》이 사회운동에 주는 함의를 정리해보려 한다. (다음 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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