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계발서들이 만드는 세계]
제 세부적 전공은 한국 근현대 사상사입니다. 그걸 공부하면서 느낀 한 가지 재미있는 부분은, 개개인 사상의 놀라운 가변성 같은 것입니다. 한국적 근대의 시간이 압축적이고 너무나 빨랐던 만큼, 한 개인도 비교적 짧은 시간 내에 서로 상당히 다른 여러 사상을 순차적으로 표방할 수 있었습니다. 예컨대 월북해서 북조선에서의 다산 연구의 기반을 다진 최익한 (1897-?)이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그는 청소년, 청년기에는 남인계 (퇴계학맥) 성리학자이었다가 3.1 운동을 계기로 민족주의자가 됐다가 몇년 뒤에 다시 공산주의로 입문한 사람이었습니다. 월북해서 만약 1960년대까지 살아 계셨다면 또 맑스-레닌주의에서 다시 주체 사상으로 나아가셨겠죠? 하기사, 주체 사상이라면 바로 떠오르는 게 김일성 주석이었지만, 그 역시 어린 시절의 기독교 민족주의에서 맑스주의로, 그리고 결국에는 주체 사상으로 나아간 셈입니다. 좌익 계열의 "사상적 발전"의 속도만이 눈부실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성리학자이었다가 천주교의 독실한 신자이자 민족주의자가 된 안중근 의사가 상징하는 한국 (초기) 민족주의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뭐, 민족주의 우파를 이야기하자면 사상적으로는 성리학에서 민족주의로, 종교적으로는 동학, 불교를 거쳐서 기독교로 도달한 백범 김구라면 가장 화려한 쪽에 속할 것입니다.
한 인간이 도대체 퇴계학에서 맑스주의로 어떻게 이렇게도 쉽고 빠르게 옮겨 탈 수 있을까요? 한 가지 이유라면, 비교적 쉽게 옮겨 타도 되는 베경에는 이 모든 종교와 사상들의 개인 심성론, 도덕론 등의 "가까움"이 있었습니다. 퇴계는 인욕을 막아 천도를 따르자 했다면 기독교 역시 원죄를 깨달아 원죄로 인한 욕망을 막아 하나님이 내리신 계명을 따르라 했고, 불교는 자리이타, 상구보리하화중생이라면 맑스주의도 자신을 포함한 모든 피억압자들의 공통적 계급 공익을 위해 헌신하고, 본인이 깨달은 사회의 유물론적 발전의 이치를 노농 계급 사이에 유포시켜 계몽하자는 주의이었습니다. 그러니 탁사 최병헌 (1858-1927) 같은 철저한 한학자가 기독교인이 되고, 성암 김성숙 (1898-1969)이 불교 스님 노릇을 하다가 공산당원이 되고 그러셨죠. 주의/주장, 우주/세계관, 사회론 등이야 당연 각각 달랐지만, 공익 지향적이며 자기 희생적인 인간상을 내세우는 데에 있어서는 큰 차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유림 출신으로서는 기독교인이 되든 맑스주의자가 되든 혹은 아나키스트가 되든 개인적 차원에서는 별다른 위화감을 느낄 이유도 없었죠. 물론 공익 본위의 "이상" 뒤에는 얼마든지 온갖 개인적 사리사욕, 권력욕 등등이 다 도사릴 수도 있었지만, 적어도 "표방"하는 부분, 당위론들이 그랬다는 것이죠.
그런데 1978년부터 가장 철저하게 동아시아화된 사회주의 사상의 버즌이라고 할 수 있는 모택동주의가 중국에서 사실상 용도폐기되고, 1991년에 1920년대초반부터 한국 좌파에게 영감을 주어왔던 쏘련과 동구권이 최종적으로 멸망하고,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에 북조선에서 대대적 기근 사태 ("고난의 행군")가 벌어지고 1997-8년에 급기야 한국의 발전 국가가 신자유주의 국가로 변신되고...이 와중에서는 발전 국가의 (어용적인) "공동체" 논리와 함께 운동권의 민중 본위적 '공'의 논리도 다 그 의미를 잃고 말았습니다. 그나마 김문수/이재오/이영훈처럼 극우가 되지 않은 '민중' 진영의 생존자들의 상당수는, 사민주의자로 요구 하향 조절하거나 각종 '포스트' 담론 속에서 표류하고 있었고 그 수도 계속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대중"에 대한 그들의 영향력이 거의 빠지는 대신에, 신자유주의로의 전환과 함께 대중적 지식 시장에 또 한 가지의 엄청난 '힘'이 그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바로 대중적 "심리학" 서적 내지 각종의 자기 계발서죠.
한국적 자기 계발서의 원조는 아마도 명치 시대 일본, 그리고 개화기/일제 강점기의 한국에 히트를 쳤던 스마일즈의 <자조론>일 겁니다.
그렇다면 중흥조 (?)는 데일 카네기 (1888-1955)의 <인간관계론>, <성공대화론>, <자기관리론> 등등일 것입니다. 시중에 팔리는 자기 계발서의 종류는 아마도 수천 개일지도 모르지만 그 핵심 주장들은 크게 봐서는 카네기의 논리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너의 성공을 위해 남을 이용하라, 남을 제대로 이용하려면 늘 친절하고 배려하는 척해라, 되도록이면 둥글게 둥글게, 원만한 관계를 잘 관리해서 적절히 이용해라, 남의 환심을 칭찬 등으로 잘 사서 나중에 이용해라, 이 정도입니다.
사실 어떻게 보면 IMF 이후의 "성공학" 자기 계발서 시대의 대한민국의 공식 담론이 좀 솔직 (?)해졌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우파 민족주의와 일제 말기 총동원 시대의 '공동체' 논리를 계승한 박정희 국가 '도덕' 교과서들의 "공익/공동체" 이야기는, 파쇼적 냄새도 다분히 났지만, 사실 발전 국가의 현실과는 그다지 관계가 없었습니다. 말 그대로 "허위 의식 유포"에 가까웠던 것이죠. 군부 지배자든 그 밑에서 경제를 장악한 재벌이든, 부동산 투기로 재미나 보고 있었던 중산층이든 1960-80년대 군부 독재 하의 유산 계층들의 행동의 실질적 논리는 "공동체 봉사/멸사봉공" 이야기하고는 전혀 무관했습니다. 자본주의 초기 축적 시대다운 야수적, 포식자적 타도야말로 훨씬 더 전형적이었죠. 신자유주의 시대의 카네기주의적 자기 계발서들은 이 야수성을 그저 공식화시켰을 뿐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공식화시키고 체계화시키고 심리화시킨 것이죠. 자기 계발서의 세계에서는 만인이 만인의 경쟁자이며, 경쟁 구도에서의 최고의 무기는 속생각 은폐와 위선, "관계 관리"와 타자의 도구화이며, 최종의 목표는 바로 "부자 되세요"입니다.
한국 사상사는 고조선 시대의 유교나 민간 도교 유입 이후 약 2100-2200년간의 경력을 지니고 있지만, 사리사욕이 개개인 삶의 유일무의한 목표가 되고 교언영색이 성공을 향한 경쟁에서 당연하고 합법적인 무기가 된 것은 신자유주의 시대 때 처음 생긴 일입니다. 2천 년 넘는 역사에서 최초의 일이죠.
한국 사상사는 고조선 시대의 유교나 민간 도교 유입 이후 약 2100-2200년간의 경력을 지니고 있지만, 사리사욕이 개개인 삶의 유일무의한 목표가 되고 교언영색이 성공을 향한 경쟁에서 당연하고 합법적인 무기가 된 것은 신자유주의 시대 때 처음 생긴 일입니다. 2천 년 넘는 역사에서 최초의 일이죠.
허울 좋고 신빙성도 없는 개발 독재 도덕 교과서의 각종 "공동체" 이야기보다는,
무자비하게 솔직한 (?) 자기 계발서들의 "성공" 담론은 보급 효과가 훨씬 훨씬 좋습니다.
이 냉소주의의 사막을 빠져나가고 좌파/진보적 입장에서 '공익'의 논리를 다시 재건하자면 정말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인간적 타자뿐만 아니라 동물, 식물, 지구 환경 등꺼지도 배려와 동감, 연대의 대상으로 삼을 줄 알아야 할 것이고, 과거 '공익' 이데올로기들의 인권 침해적, 권력 남용을 허용했던 요소들도 철저하게 반성, 성찰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쉽지 않은 길이지만, 그 길로는 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출세 (캐리어)와 소비 욕망을 유일한 가치로 설정한 가치관이 결국 개인과 이미 지구를 거의 망가뜨린 인류 전체를 파멸의 문으로 지금 끌고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