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05

[박태균 칼럼] ‘주한미군 감축’ 호들갑 떨 일인가 : 칼럼 : 사설.칼럼 : 뉴스 : 한겨레

[박태균 칼럼] ‘주한미군 감축’ 호들갑 떨 일인가 : 칼럼 : 사설.칼럼 : 뉴스 : 한겨레

[박태균 칼럼] ‘주한미군 감축’ 호들갑 떨 일인가
등록 :2020-08-11 17:14수정 :2020-08-12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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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거나 교훈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또 다른 논란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또한 주한미군 감축 및 철수를 둘러싼 논란이 이렇게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해 제대로 준비를 하지 않고 있었다면, 이는 과거 한국 정부가 근무 태만 했다고 봐야 하는 것은 아닐까?

박태균 ㅣ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2019년 시작된 주한미군의 주둔비용 분담 문제가 급기야 주한미군 감축 문제로 초점이 옮겨졌다. 독일과의 협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주독미군의 감축 문제가 구체적으로 언급되기 시작한 것이다. 언론의 보도가 아니더라도 이 문제가 독일뿐만 아니라 한국과 일본에도 적용될 것이라는 점은 누구나 예측할 수 있다.

 주한미군은 한국의 국방 정책에 있어 중추적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국제법으로서의 정전협정 위반자가 범법자가 아닌 영웅으로 대접받는 불안정한 정전체제에서 주한미군의 존재는 한반도에서 전쟁억지력을 위한 수단으로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주한미군 감축론이 나오고 있으니 국내외에 큰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좀 더 냉정하게 지난 역사를 되돌아보면 주한미군 감축을 둘러싼 논란은 그다지 크게 새로운 이슈가 아니다.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직후 38선 이남에 주한미군이 처음 주둔했을 때부터 주한미군 철수론이 제기되었다. 1947년 미국의 합동참모본부는 당시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16개 지역 중 한국의 중요성을 13번째로 평가하였다. 그 결과 4·3사건과 여순사건, 그리고 38선 분쟁으로 인해 무초 주한미국 대사가 반대했음에도 주한미군은 1949년 6월30일 철수하였다.
정전협정을 맺기 직전인 1953년 백악관에서 열린 국가안보회의에서는 한반도에서 무력행위가 종식된 직후 주한미군이 철수해야 할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한국을 스위스나 스웨덴처럼 중립국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가운데, 군 관계자들은 필요 없는 지역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의 대표적인 사례로 한국을 지목하였다.
1960년대 말의 안보위기가 계속되는 가운데, 닉슨 행정부는 주한미군 감축을 추진하였다. 한국군이 베트남에 주둔하고 있는데도, 한국 정부와 사전 논의 없이 1개 사단을 철수하였고, 1975년까지 주한 미 지상군의 철수 계획을 수립하였다. 워터게이트와 남베트남 정부의 패망이 없었다면, 1975년 주한 미 지상군의 완전한 철수가 이루어졌을 수도 있다. 이는 1970년대 말 카터 행정부의 철군론으로 이어졌다.
탈냉전 이후 부시 행정부는 해외주둔미군 재배치 계획(GPR)을 통해 주한미군 감축을 추진하였다. 그리고 군사정전위원회 유엔군 대표를 한국군 장성으로 교체하였고, 한국군의 평시 작전권을 한국 정부에 이관하였다. 2000년대 들어서는 주한미군의 규모 감축과 신속기동권으로의 전환, 그리고 한국군에 대한 전시작전통제권을 한국 정부에 이양하는 계획이 추진되었다.
이렇게 지난 70여년간 주한미군 감축 또는 철수를 둘러싼 논란이 다양하게 진행되었음을 고려한다면, 지금 주한미군 감축 논의가 나온다는 점이 그다지 호들갑을 떨 일은 아니다. 오히려 과거의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거나 교훈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또 다른 논란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또한 주한미군 감축 및 철수를 둘러싼 논란이 이렇게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해 제대로 준비를 하지 않고 있었다면, 이는 과거 한국 정부가 근무 태만 했다고 봐야 하는 것은 아닐까?
두 가지 점을 명확히 하고자 한다. 첫째로 언론의 태도다. 1969년 닉슨 독트린이 발표된 직후 한·미 정상은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났다. 한국의 언론들은 닉슨 독트린은 한국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나 정확히 1년 뒤 미국은 주한미군 감축을 한국 정부에 통보했다. 정확히 확인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희망적 관측(wishful thinking)만 하고 있다가 뒤통수를 맞았다.
둘째로 주한미군에 대한 정책은 미국 정부의 필요성에 의해 나온다는 점이다. 럼스펠드 전 국방부 장관은 한국의 반미시위가 계속되면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적이 있다. 당시 미국 정부의 전반적인 대외정책과 재정 상황에 고려하여 주한미군 감축과 한국군의 작전통제권 이양을 고민하였음에도 말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주한미군에 관한 논란 역시 한국이 아닌 미국 정부의 필요에 의해 시작된 문제이다.
문제의 기원과 흐름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결국 국내적으로 정치적 논란이 될 수 있으며, 이는 궁극적으로 국력을 소모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실현될 주한미군 감축 또는 철수의 문제로 그 자체에 대한 논란을 벌일 시간에 그 후에 필요한 전쟁억지력을 위해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야 하는 것이 순리가 아닐까?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957387.html#csidx1dbe0475b3b4dc88f2ac7d7d41f0d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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