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onSeok Heo 공군 20비 출신 여군 자살 사건을 두고 쓴 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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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Seok H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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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군 20비 출신 여군 자살 사건을 두고 쓴 잡상 >

 이번에 적잖이 논란이 되고 있는 공군출신 성추행 피해자의 자살사건의 배경이 내가 군복무 시절에 근무했었던 20전투비행단이라서 착잡하다. 언론을 통해 사건의 전모를 보면서 가해자로부터 피해를 당한 이 모 중사 입장에서 홀로 감내했을 심적 고통이나 사회적 소외감을 생각하면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단순히 공군 내 특정부대의 조직적 일탈로 치부하거나 국군 내 여군을 대하는 조직차원의 차별적 시선과 대우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나의 군생활의 경험에 의거해 살펴보았다. 이번 피해자의 자살이전, 성추행 피해사실 발생 이후 조치한 일련의 과정을 언론을 통해 비교적 상세히 알게 되었다. 타국 군대는 어떠한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이번 성추행 피해사건의 처리과정만 보더라도 국군 조직에 내재하고 있는 속성이 나에게 느껴졌다. 

 그냥 단적으로 말해서 간부든 병사든 자기가 저지른 잘못에 대해 책임지기는 싫고, 일은 남한테 떠넘기기 바쁘고, 문제가 터지더라도 크게 문제 만들지 않은 선에서 쉬쉬하며 자기 최면 처럼 쳇바퀴가 돌아가는 와중에 터질게 터진 것이다.

 피해자가 스스로 보고한 피해사실이 대대장으로 올라가기 이전, 부사관 지위 중에 가장 짬밥 높은 것으로 간주되는 ‘준위’ 가 피해자한테 보고를 하게 되면 당시 방역수칙을 어기면서까지 회식을 가졌던 다른 간부들에게도 불똥이 튀니 너의 군 생활이 더 힘들어질 수 있다. 가해자 인생도 생각하면 한 번 정도는 퉁치고 넘어갈 수 있지 않겠냐는 거란다. 나름 베테랑으로 대우받는 간부님의 의식에 과연 군의 명예의식, 목적의식, 책임의식의 한 끗이라도 있었는지 궁금하다.

 물론 내 스스로 자기가 맡은 바 충실히 임하는 상사 이상의 간부님의 모습도 봐왔기에 조심스럽지만 이미 성실하고 일 잘하다는 품평을 받아온 사람들은 되레 조직 내에서 꼰대이자 바보로 취급받는 분위기가 지배해있다. 개인적으로 내가 정말 군 생활에서 가장 회의감을 느꼈던 부분은 이 부분이고.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함께 협동과 조련을 거듭하는 군인의 본분이 느슨해지면 느슨해질수록 나보다 만만한 사람들을 하대하는 인간의 추악한 본성이 서서히 조직 내 물들여가는 느낌이다.

 기본적으로 개인중심적인 현대적 규범과 문화에 맞게 군의 전반적인 조직운영 상의 인식 개선 및 조정, 어쩌면 더 나아가 쇄신과 변화가 불가피하지만 근본적으로 이 같은 담론이 무슨 의미를 갖는지 회의적이다. 일단 한국의 군대는 완전한 평등주의를 전제로 오직 계급과 규율에 따른 간부-병사 간 상명하복의 문화가 전제되어 있는데,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는 어떠한 공통의 목적이나 외부적 위협이 존재하지 않은 이상, 자기희생과 절제 및 단결을 위한 아래로부터의 자발적 동기와 규율을 끌어낸다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이런 조직 내에서 홀로 열심히 하더라도 무슨 변화의 바람이 부는 것도 아니고 모두가 피로해하는 와중에 남과 다른 내가 병신 되는 거다. 조직의 최상위층에 위치하는 상급자를 제외하더라도 군의 자부심이란 개나 줘버리는 이러한 분위기 속에 하위조직 내 책임을 담당하고 권위를 위임받아 한사람, 한사람의 권익까지 세심하게 배려하려는 규범과 문화가 정착되는 것이 가능할까. 그렇다고 조직의 이익보다 개인의 권리가 침해받는 것에 대한 강한 도덕률이나 양심을 개인들에게 아직 기대하기는 이르고.

 이런 사건이 한두 번 일어난 것도 아니고. 냄비같이 비판적인 여론이 들끓다가다 보나마나 몇몇 책임자들이 처벌받는 선에서 사건 정리되고. 관심사는 또 다른 소재로 옮겨 가겠지 싶다. 결국 실질적으로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을 테다. 힘센 자가 지배하는 시스템의 구속 아래, 홀로 뒷감당을 해야 하는 것은 중심부로부터 배제되어온 약자였다. 그리고 겉으로는 약자를 위한 척하지만 실은 자신의 도덕성과 정의로움을 포장해서 개인의 죽음마저도 철저히 개별적이고 차별적 시선을 보내는 것이 실은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평범한 시민들이다. 

 특히 요새는 여성을 포함한 하위계층의 사람들에 대한 상층부의 오만과 차별은 이제 정치적으로도 공공연연하게 자행되고 있는 듯하다. 점점 길 잃은 사람들을 포용할만한 공동체적 유대와 관용적 정신 및 제도는 고사하고 불신과 의심으로 점철된 각자도생 식 마인드와 제도는 진보세력이 집권해도 견고하다. 아니 더 강화되었다. 

 이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묻는다면 내 대답은 부정적이다. 일련의 흐름을 보면 직감이지만 박정권 시절보다도 아이러니하게 문정권이 들어선 이후, 시민적 덕성과 윤리의식은 점점 나락으로 추락하고 있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