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onSeok H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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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보수의 재건은 가능할까 - 일본의 ‘자유민주당(自由民主党)’ 과의 비교와 함의점 >
1.
여전히 서울-부산 재보선 결과를 앞두고 진보진영 내에서는 후폭풍이 만만찮다. 전임시장이 성추행 등의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공석이 된 자리에 민주당은 당헌을 개정하면서까지 후보를 공천했다. 하지만 불과 1년 사이 시민들의 선택은 ‘앙시앵 레짐(Ancien régime)’ 으로 평가받았던 제 1 보수야당인 ‘국민의 힘’ 으로 돌아섰다. 이 짧은 기간에 보수와 진보 간에 여론의 극적인 변화를 보여주었던 모습을 일본 정치사적인 맥락에서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가히 ‘다이내믹(Dynamic)' 코리아다.
2.
나는 이미 이전 글에 일본의 오구라 기조교수가 한국사회를 분석하며 제시했던 ‘성리학적’ 개념을 차용한 적이 있었는데, 이번 선거 역시 마찬가지로 이를 이용해 네거티브 선거를 주도하고자 했던 세력은 진보세력이었다. 이미 수많은 언론과 지식인으로부터 ‘내로남불’ 이라는 비판을 들어도 그들이 보였던 행태는 한마디로 정리해 “그래도 나보다는 재들(보수)이 더 더럽다”, “우리가 정책에 실패했다고, 부패했다고 원조 투기-부패 세력에게 표를 줄 것이냐” 식의 선민의식과 오만방자함이었다. 이 같은 태도는 팬덤정치와 적대정치에 중독되어 이미 뇌가 지배당한 특정 ‘빠’ 세력을 제외하면, 일반적 유권자들은 동조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것은 저들만 모른다.
진보세력은 비판과 견제에는 능숙할지는 몰라도 아직은 경영자적 측면에서 거시적인 경제-사회-외교 정책을 조정하며 상호적으로 보완시켜 나가는 정치-행정의 역할에 대한 이해와 공부가 부족하다. 역설적으로 도덕정치에 기반을 둔 문재인 정권의 실정이 오히려 ‘실력과 안목이 없으면 국가 지도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공론을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는 느낌이다. 한 때 궤멸 직전까지 간 한국의 보수 세력에게는 재건의 기회이다.
물론 민주국가 내에서는 잘못을 저지르거나 실패한 권력에 대한 비토(Veto)와 응징의 행위로서의 정권교체는 자연스러운 행위이지만, 안정적 정국운영과 현실적 조건을 감안한 개혁을 위해서라도 보수 정당이 진보 정당이 보여주지 못한 정신적 자유와 다원주의, 사회 각 계층 간의 조화와 연대적 가치를 표방한 정치를 선도해야 한다. 그러한 관점에서 나는 일본의 보수정당인 ‘자유민주당(自由民主黨)’ 의 정치적 노선을 반추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3.
한국 보수의 사회적 뿌리는 1945년 해방 이후 형성된 남북 분단구조를 매개로 한, <냉전-반공주의>를 중심으로 그 헤게모니 속에 안주해왔다면, 일본의 보수 세력은 전후(前後) 미(米)군정이라는 외부에서 이식된 <비군사화-평화주의, 사회/공산계열을 포괄하는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한 사회적 환경 속에서 정치적 경쟁을 펼쳐야 했다. 물론 1940년대 후반이 되면 ‘역코스’(逆コース)라는 반공주의적 노선이 강해지면서 전전(戰前) 구체제에서 활동하는 공직인사들의 복귀가 이루어지고 다시금 사회-공산 계열 정당 내지 인사들이 추방, 배제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본의 진보적 야당과 시민단체, 노동조합 등이 결성한 다수의 시민연대는 보수 세력들이 구체제로의 회귀하려는 정치적 움직임(안보조약 개정)등에 반발하며 투쟁을 전개하였다. 이는 사회 전반적으로 개인을 집단보다 우위를 둔, 다원주의적이고 자유주의적인 민주적 질서와 규범이 일본정치의 조류가 되도록 하는데 일조하였다는 분석이다.
이는 자민당이 헌법문제, 안보문제 등의 지나치게 이념적이고 가치투쟁적인 이슈가 아닌, 모두가 수용할 수 있는 민주적 질서, 평화헌법 내에 안정적인 경제발전과 복지정책 설계 등 사회경제적 이슈에서도 진보적 가치를 내세움으로서 <캐치 올 파티>(catch-all party: 모든 국민을 대표하는 포괄정당)로의 노선을 확대하는데 영향을 끼쳤다.
오늘날의 일본 민주주의 체제를 ‘자민당 1당 체제’ 라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있는 반면, 역설적으로 일본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한 모델이라는 평가 역시 존재한다. 일본 자민당 내부에 공존하는 복수의 파벌들이 중시하는 정책들은 각각 다르며 각 파벌별로 대기업, 중소기업, 노동자, 농민, 자영업자 등 주요 사회경제적 집단들의 이익이 한 정당 내에 빠짐없이 조직-대표되어 있다. 이 같은 사회적 다원주의의 기반이 되어있는 정당구조는 ‘당사자 부재’ 적인 측면이 존재하는 한국의 정당구조와 다른 결이 있다. 즉, 보수적 가치와 진보적 가치 모두 한 정당 내에서 경쟁과 수용을 거쳐 정책으로 구현되는 정당 시스템이 일본의 보수정당 체제이다.
4.
물론 이 같은 일본 정당기제는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 경로의존성을 고려해볼 때, 어느 것이 더 우월하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예컨대 일본 정부가 다른 무역 분야에서 손실을 감수하고도 농업개방을 하지 않거나 최근까지 자영업자, 소상공인, 골목상권의 보호를 위해 이들의 이익을 반영한 대형 마트 영업규제 등 이러한 낡은 행정적 규제들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다수 존재한다. 앞서 기술한 일본의 정치시스템이 사회의 빠른 변화와 혁신을 추동하는데 오히려 제약으로 작용되기도 한다는 점은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 사회가 하나의 가치 내지 정책을 추진하면서 여기에 반대되는 모든 것을 배제해버리는 것은 민주적이지 않다는 점을 일본의 보수 세력들은 이해하고 있다는 점을 눈여겨 보고 싶다. 이 같은 정당기제와 가치는 한국의 보수정당에도 또 하나의 참고사항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진보를 표방하는 유권자와 노동하는 시민, 영세 자영업자 등의 이익 역시 보수가 끌어안을 수 있어야 한다. 사회적 안정과 조화를 전제로, 시민적 활력과 개인적 자유가 보장된 사회를 목표로 노선을 전개하는 것이 보수 세력이 장기적 수권정당으로 나아가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보수세력 스스로 진보파가 보여준 폐쇄적인 세계관을 넘어 개방과 관용을 골자로 한, 작으면서도 더 강한 민주주의를 상상하고 구현해내는 실력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과거에 얽매이며 갈등을 부추기보다 담대한 미래와 희망을 불어넣을 수 있는 정치 세력만이 살아남는 시대가 왔다.
3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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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Jaewoo
한동안 자민당만 집어서 한국 민주주의의 우월성만 강조하던 사람은 중국, 소련과의 우호도 주장한 이시바시 단잔이나, 김일성의 친구이자 한국 민주화 운동을 지지했던 우쓰노미야 도쿠마 같은 사람은 안 보려고 하더군요(몰라서 그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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