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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Seok Heo
27 FtfsSlponenbrgsorurSuarlSreldry ·
<더 좋은 삶을 위한 법과 양심의 역할>
1.
최근에 김우창 선생의 수많은 저작들 중 주로 법조인을 대상으로 강연을 진행했던 내용을 묶어 편찬한 <법과 양심> 이란 책을 읽었다. 한 차원 더 나은 삶, 더 좋은 사회의 조건을 위한 ‘법’ 과 ‘양심’ 의 역할을 구조화하여서 선생 특유의 인문적 감성과 이성을 조화롭게 녹여낸 책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김우창 선생의 글은 예로부터 특유의 난해함과 현학적인 문체로 쉬운 독해나 속독을 허용하지 않지만, 시대구분과 관계없이 인간으로서의 그 심성과 근원, 주변의 환경을 단순한 사회과학적 이론이 아닌 문학작품으로 접근하여 그 철학과 예술, 법과 정치를 한 번에 통섭하려는 그의 시도는 특히 인문학 연구가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한 통찰을 던져준다.
최근 LH사건 등의 부패와 관련된 고위 공직자들의 도덕 내지 윤리의 부재, 극심한 정치적 갈등의 부각, 축소는커녕 점점 확대되기만 하는 경제적 빈부격차 등을 보면 과연 우리 인류가 이를 개선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의 사회를 움직이는 것이 가능한지에 대한 회의가 들 수밖에 없다. 나는 그간 글을 쓰면서 주로 이와 관련한 정치경제적 제도나 환경,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작동원리 등에 주목하였다. 인간을 둘러싼 ‘구조의 문제’ 에 치중하여 거시적 관점에서 사회를 분석하려 하였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사회운영에 필요한 법과 기구, 제도 등도 결국 인간이 바탕이 되어 이를 이끌어간다는 측면에서 그에 관련한 ‘인간성’에 대해서도 연구와 공부가 필요하다는 지극히 자명한 사실을 김우창 선생의 책으로 다시금 느낀다.
2.
법은 일생동안 우리가 범법을 저지르지 않은 이상 우리와 상관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데 있어 우리 일상생활에 가까이 접맥되어 있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발전을 뒷받침하는 물질주의와 세속적 가치가 종교 등의 전통적 가치를 대체함에 따라 사람들은 과거 관습이라 여겨지는 윤리로부터의 해방을 지향하며 그러한 욕구가 사회적 움직임으로 발산되기에 이르렀다. 과거 공동체를 유지하는데 필요했던 자연스러운 윤리와 규범이 희석됨에 따라 법은 사회문화의 일부로서 인간의 삶에서 가지지 않을 수 없는 규범성을 가장 분명히 대표하는 영역이 된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알다시피 법은 분명하게 인지 될 수 있는 윤곽을 지닌 상태로 시민권을 옹호하며 범죄를 징벌하여 사회의 기본적 질서를 유지하고 국가기구의 주권범위와 한계를 정의하는 민주사회의 기본적 기구로서의 역할을 한다.
따라서 법치국가의 확립과 법 집행에 있어서의 공평함, 엄정함 등은 현대 민주사회의 평화와 유지를 위한 기본전제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더 나은 인격적 완성을 위한 사회조건을 달성했다고는 보기 힘들다. 동아시아의 유교적 전통에서 말하는 ‘덕(德)의 정치’ 는 사람의 내면을 자발적으로 움직여 자신의 행동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고 반성을 유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 더 자연스러운 질서를 만들어낸다. 법은 중요하지만 “덕의 배경 없이는, 법은 폭력에 직결되며 내면적 설득을 통해 얻는 권위도 없게 되는” 것이다.
예로부터 덕을 이루고 있는 전통적 윤리와 도덕에 관한 사고는 이것이 현대 사회에서 어떠한 틀로 잠재화-내재화되어있는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현대적 관점에서 이러한 구시대적 사고가 전부 부정될 수 없다면 전통과 고전이 인간의 더 나은 삶에 있어서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밝혀야 한다. 우리는 근대화와 민주화를 거쳐 경제성장을 이루었고 인간의 행복을 위한 자유로운 선택권을 보장받았지만 여러 사람이 함께하는 삶 안에서는 자유의 무한한 확대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이러한 자유의 자기팽창을 제어하고 자제하도록 작용을 하는 것이 윤리와 도덕이라 할 수 있겠다.
헤겔에 따르면, 윤리는 관습에서 나오고 도덕은 윤리가 부재한 곳에서 개인적 결단에 의해 선택되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 개인적 결단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선생은 이에 대해 ‘양심’에 기초할 수밖에 없음을 역설한다. 양심은 순수한 인간의 심성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양심은 인간 근본에 대한 물음으로써 외부의 그 어느 간섭으로부터 관여할 수 없는 내면의 실체인 동시에 ‘공공의 선’으로서의 정치와 법에 때로는 모순관계에 놓이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모순적 관계를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사고가 ‘인문적 사고’ 이다. 이는 인간 현실을 그대로 밝히는 동시에 한편으로의 그 정신적 의미를 다시 되새김하고자 하는 실천이자 노력이다.
인문적 사고를 통해 우리 인간은 어떠한 도덕적 기준을 갖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사람은 세계에 대해 또는 그와 관계된 행동에 대해서 일정한 방향을 가지며 살아간다고 한다면 양심은 인간 자기의 삶의 규범을 찾고 동의하는 자유를 부여해준다. 이를 통해 양심의 구체성 안에 보편성이 확립되면서 인류평화와 공존을 위한 발판이 만들어진다.
순수한 법률적 판단이 가능할 것 같은 사안에도 개인적 주관에 의존하는 판단이 없을 수 없다. 법률가 역시 인간과 사회와 역사에 대한 심층적 이해가 필요하며 거기에 기초적 층위가 되는 것은 양심이므로 법관들의 판단은 “법체계가 발언하는 동시에 개인의 양심의 판단”이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구체적 인간사에는 “성찰적 균형” 의 합리적-이성적 원리와 인간의 감각과 감정을 고려해 인간적 판단을 가능케 하는 “지각적 균형” 의 조화를 모색하는 통합작용을 통해 더 원숙한 도덕적-윤리적 질서를 그리는데 있어 법이 제 역할을 하는 세상을 상상해본다.
3.
한국사회에서는 도덕적으로 정직하게 사는 일이 어렵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단기간에 쟁취한 나라로서 높은 수준의 개인소득과 GDP, 민주적 제도와 기구의 공고화는 우리나라를 자랑스럽게 만드는 요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높은 자살률이나 최하위권 수준의 사회적 신뢰도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왜 서로 못 믿고, 살기 버거운 사회로 변모하고 있는 것일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한국사회는 짧은 기간 ‘압축성장’ 이라 불릴 수준의 하부구조의 변화를 겪는 사이, 거기에 맞추어 상부구조의 사회문화, 윤리, 규범은 그 속도에 따라가지 못했다는 점이다. 인문학의 역할은 그러한 문화, 윤리, 규범의 정초(定礎)를 다지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김우창 선생이 말하기를, 현대사회의 사회적 균열의 대부분은 확신의 체계가 정치적 이념에 기인한 것이라고 한다. 자신이 생각하는 이념적 정의에 대한 확신이 극단적 대결과 양극화에로 몰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주지의 사실인 듯하다. 한편으로 이러한 믿음의 차이를 넘어서는 방법은 인간의 삶에 대한 도덕적 이해, 일정한 이념에 의한 이해를 사회의 공적 질서의 기초에 삼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합리적 ‘자유주의자’ 들의 답변이다. 자유주의자들의 이러한 답변은 최소한의 사회적 협약과 평화공존의 질서유지를 목적으로 한다는 측면에서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 자유주의가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는 일정한 사회적 규제 아래에서 물질적 자기이익의 추구의 자유는 인간의 존재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사회적 갈등의 원인이 되고 그 끝에 한 인간 공동체의 상품화 내지 비인격화, 붕괴 직전까지 밀고 갈 수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생존의 근본이 되는 사회적 평화(협약)에서 추구해야할 정신적 가치추구의 방향을 우리는 다시금 생각해봐야 한다. 인문학의 부재, 도덕-윤리-규범의 약화는 또 다른 경쟁과 분열의 원인이 되고 삶의 가능성을 더 협소하게 만든다. 그 속에서 인간은 극단적 갈등을 무릅쓰면서도 삶의 도덕적 의의를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이 일어남과 동시에 갈등의 소용돌이에 빠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기본적으로 오늘날의 민주사회에서는 시민적 권리에 대한 동의 이외에 인간적 존엄성을 유지케 하는 여러 현실적 조건(고용, 주거, 건강, 교육 등)이 넓은 도덕적 이해 속 사회 제도 내에 포괄되어야 한다. 제도 확립을 위한 개인이익의 조정 속 전제되어 있는 상호 인정은 바로 삶에 대한 도덕적 이해가 개입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사회적 협약은 나의 삶이 이미 살 만한 것, 또는 삶 자체가 살 만한 것이라고 개인이 받아들일 수 있어야 참다운 의미에서의 ‘사회적 유대감(social solidarity)'을 바탕으로 성립되다. 이는 모든 인간의 존엄성 존중으로 나가기 위한 정신적 토대로 나아가게 한다. 결국 김우창 선생이 말하고자 하는 더 나은 사회를 위한 토대는 첫째로 사회평화, 둘째로 적절한 수준의 생활을 유지케 하는 물질적 조건의 개선이다. 모든 사람들이 날마다 투쟁과 갈등을 통해 나를 배제시키려 하는 의심을 할 필요가 없도록 하는 사회적 신뢰와 규범 확립. 또한 자발적으로 나의 자비심에 의해 다른 사람에게 내가 가진 부를 일정부분 공유할 수 있는 윤리적 감각. 이러한 것들이 우리 문화 속에 살리며 반성하는 훈련이 안 되어 있다는 게 선생의 문제의식이다. 그 끝에 남는 것은 절망과 냉소, 분노의 감정이다.
4.
한권의 귀중한 책을 말미암아 진영논리의 이분법을 벗어나 인간의 삶과 사회를 복합적이고 심층적으로 사유하는 훈련의 본보기를 생생히 배운 것 같아 기쁘다. 그간 나는 현대 문명의 합리적 진화 밑에 가려진 그늘을 들여다보기를 추구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세계-국가-사회의 구조적 형상을 이해하는데 진력했다.
나는 현대 자본주의 문명의 번영에 기저가 되었던 합리성과 이성 등에 내재한 그 비인간성과 모순관계를 비판했지만, 선생은 역설적으로 나에게 이성의 양면성에 주목하면서도 그 이성에 의지해 더 나은 사회를 모색할 수 있음을 가르쳐주셨다. 유동적 현실에 밀착해 개인의 구체성을 이성의 질서 안에 손상시키지 않은 상태로 편입시켜 그 다원성과 자율성의 살릴 수 있는 그의 사상적 기반인 “심미적 이성” 은 그의 책 <법과 양심> 에서도 그대로 체화되어 있다.
개인적 삶의 구체성과 보편성의 결합, 이를 통해 다원화된 개인의 평화공존, 사회적 질서유지를 뛰어넘어 개인의 인격적 소양 완성에 기여하는 양심과 도덕의 역할, 이를 사라지지 않도록 지켜야할 의무가 있는 법의 영역 등 그의 인문주의의 성취는 앞으로 예측 불가능한 미래 사회의 변화에 있어 개인과 그를 둘러싼 세계의 관계를 끊임없이 묻고 탐색하여 그 길을 잃지 않도록 하는 나침반의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것이다.
20Chee-Kwan Kim, 許修禎 and 18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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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희
20대 유시민을 다시 본 착각이 드는 명문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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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YoonSeok Heo
이창희 과찬이십니다. 좋게 봐주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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