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onSeok Heo(허윤석)
YoonSeok Heo
13 m ·
< 자본주의를 바라보는 하나의 시선, 그 미래성에 관하여> : 『자본주의는 왜 멈추는가?』 해설(下)
* 아주 긴 글입니다.
5. 임금격차는 어떻게 줄일 수 있는가?
앞서 전편 글의 말미에 한국경제는 자본생산성의 지속적 감소와 과잉투자의 정상화에 따라 초래된 국가부도사태 이후, 기업 규모별 임금격차의 심화과정을 지적하면서 이를 고려하지 않는 임금의 일률적 인상이나 노동시장 규제는 필연적으로 자본의 반격을 야기 시킴을 지적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개선시킬 수 있는 다른 정책적 방향성에 대해 한지원 선생이 책에서 내세우고 있는 해법은 다소 원론적이라 독자입장에서는 조금 아쉽운 마음이 들었다.
그간 재벌개혁이나 중소기업 지원정책 등이 진보진영에 의제로 올라오면서, 대기업 주도의 경제력 집중심화와 원·하청 불공정 거래 등으로 인한 시장경제의 불완전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저자는 사실 대부분 대-중소기업 간 발생하는 상당 수 ‘거래 관행’ 의 문제는 자본 간 격차, 즉 경쟁력 자체의 열위관계가 주 원인이라 분석한다.
높은 자본집약에 성공한 기업은 생산성 우위를 바탕으로 생산성 낮은 기업을 지휘하는 원·하청 관계가 자연스레 형성되는데 당시 경제성장이 보장된 시기인 만큼, 자본은 노동 측이 요구한 ‘한정된’ 울타리 안의 고용안정과 지속적 임금상승을 보장할 수 있었다. 각 개별기업 실력 자체는 공평한 시장경쟁의 보장을 위한 독과점 규제나 일방적 지원 등으로 길러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림 4,5,6에서 알 수 있듯이 고급 직무지식이나 자본집약도가 떨어지는 도소매·음식·숙박업 등은 저임금 노동자가 밀집해있는 분야이다. 세계적으로도 제조업에 비해 서비스업종의 자본집약도에 한국은 낮은 축에 속한다. 자본생산성의 격차는 노동생산성 격차로 이어지고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수출제조업에 집중되어 있는 노조의 치열한 임금인상 투쟁은 더욱이 내수서비스업과 제조업 간 임금격차를 더 크게 벌렸다.
이러한 점을 지적하며 대기업 노조의 투쟁으로 확립된, 연차가 쌓일수록 임금이 상승하는 ‘연공제’ 개혁에 대한 노동·사회학자들(이철승, 정승국 등)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사실 저자가 주장하는 해법도 이 같은 맥락에 맞닿아있다. 모든 저임금 노동자의 최저임금이 1만원으로 인상되고 비정규직을 철폐하자는 주장은 늘어난 자본투자만큼 노동생산성이 오르지 않는 현대경제체제에서는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시장법칙에 종속적인 임금노동제의 궁극적 지양에 관한 생각만 갈릴 뿐, 노동자의 윤리와 사회적 합의에 따른 임금의 평등성과 연대성을 높이는 방향<하후상박(下厚上薄)>으로 임금격차의 점진적 축소를 제안한다.
그러나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는 대기업과 공공부문에서의 고용을 어떻게 극대화 할 수 있는 있는지, 고용에 친화적이며 사회전체로 합의 가능한 ‘직무급’ 등으로의 임금체계나 임금수준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혹은 연공급 축소에 따른 기존 기득권층의 반발과 그에 대한 정치적 대응은 어떤 전략으로 가져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방법론이 다소 부족하다.
한 가지 국가적 차원에서 해야 할 산업정책의 방향으로 저부가가치 서비스 영역으로의 대기업 진출을 통한 ‘규모의 경제’ 촉진전략과 사회복지 분야 등에서의 공공영역 확장 내지 ‘국영화’ 전략의 조합을 내세운 것이 저자가 언급한 유일한 정책적 차원의 언급이었다.
저자는 스웨덴 사례로 노동조합 주도의 ‘연대임금 모델’을 소개하며 한국 역시 현재 처한 경제적 환경에 적합한 연대임금, 연대고용 정책이 필요하다고 글을 맺는데 아무래도 저생산성-저임금 부분을 구조조정하고 고생산성-신산업 부문으로 인력을 숙련, 배치, 전환시키는 일련의 과정에 개입할 수 있는 최종적 경제주체는 사실 강한 ‘국가’ 이다.
하지만 다원주의적 시민사회의 저발전과 국가-사회 간의 일원적이고 수동적 관계를 탈피하지 못한 한국의 정치사회적 토양에서, 정교한 제도적 프로그램이나 사회경제적 집단의 미세 이익조정·타협이 결여된 채 행하는 국가의 일방적 확장이 오히려 잠재적인 자본생산성의 하락을 초래할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과거에 비해 자본통제가 극히 어려운 21세기를 맞아 국가의 기능 확대 이전에 박정희 시대에서 비롯된 ‘발전국가’적 유산을 어떤 방향으로 대체할 것인지에 관한 논의가 먼저 선결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는 결국 국가와 시민 간의 관계설정에 관한 철학적 영역에서부터 시작해 국가적·사회적 차원의 행정·복지·정치적 전략 및 방법론에 이르기까지 앞으로 학제 간의 통합적 연구와 논의가 더 진행되어 풀어나가야 할 문제라고 본다.
6. 마르크스의 <화폐론>과 한국의 재정지출을 제약하는 요소에 관해서
통화주의 경제학의 대부인 밀턴 프리드먼은 ‘화폐’ 는 실제가치와 관계없는 ‘교환수단’ 에 불과하고 이에 대한 사람들의 확고한 ‘믿음’ 이 있다면 어느 것이든 화폐기능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대부분의 경제 분석가들 역시 이에 근거해 교환수단으로서 화폐가 교환대상보다 그 양이 많아지면 돈의 상대가치가 하락하는 ‘인플레이션’ 이 발생한다고 말한다. 이는 <화폐수량설> 에 근거한 주장이기도 하다.
얼핏 당연해 보이는 화폐수량설의 결함 중 하나는 물가상승과 인플레이션을 구분하지 않는 점이다. 사실 이 점은 나름 부분적으로 경제학을 공부하고 있는 사람으로서의 직관으로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사실 지금도 이 부분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는지 스스로 의구심이 든다.)
저자의 주장에 의하면 <물가상승> 은 단순히 ‘상품’의 가치가 변하면서 그것과 교환되는 화폐의 양 역시 변화하게 됨을 의미하는데, 화폐의 수량증가는 상품생산에 필요한 ‘노동 의 증가’(노동생산성↓)로 이해하면 된다. 즉, 생산에 필요한 노동의 증가가 화폐로 표현되는 것을 물가상승으로 정의를 내릴 수 있다. 역사상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노동생산성이 하락하는 경우는 전쟁이나 공황 등을 제외하면 극히 드물다.
반면 <인플레이션> 은 ‘화폐’ 자체의 가치변화에 의해 그것과 교환되는 화폐량의 변화를 가리킨다. 화폐가치의 하락은 ‘가치척도 기능을 하는 등가물’의 상품의 가치하락을 나타내며 화폐로 표현되는 ‘노동의 감소’(노동생산성↑)를 의미한다.
이러한 특성 탓에 인플레이션은 급격한 물가상승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결과로 정부의 지급능력을 기반으로 한 중앙은행 부채가치의 실질적 하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중앙은행은 적절한 화폐의 유통을 통한 경기침체(디플레이션)의 방어가 주 목적으로 하는 통화정책을 구사하기 때문에 현대경제체제에서 인플레이션은 항상 존재한다고 봐야한다.
직관적 이해를 위해 극단적인 경우를 빌려와 논의하자면, 하이퍼인플레이션의 사례로 거론하는 과거 짐바브웨나 독일 모두 내-외부적 변화로 인해 촉발된 생산체제의 붕괴로 인한 생필품 부족으로 이와 연동된 다른 상품으로까지의 급격한 ‘물가상승’ 이 일어났는데 이 물가상승에 대응해 정부는 식량 등 공공물품 조달을 위한 화폐발행이 난무하면서 화폐가치가 하락하는 ‘인플레이션’ 이 발생했다고 이해할 수 있다.
특히 과거에 비해 현대 자본주의는 단순한 돈(화폐)이 아닌 ‘부채(신용)’을 통해 조직되고 순환되는 경제체제인 만큼 금융에 대해 이론적 배경을 더 자세히 정리해보겠다.
노동가치설의 논리에 의하면 화폐의 본질은 단순한 교환수단이 아닌 강력한 발권력을 갖는 경제주체(흔히 정부)에 의해 ‘보증’된, 확고한 믿음을 바탕으로 하는 상품에 대한 ‘보편적 등가물’(general equivalent)로 정의할 수 있다.
화폐를 발행하는데 있어 많은 노동이 필요치 않지만, 중앙은행은 자신이 보유한 자산과 강제통용권을 기반으로 국가 내에서 국채와 같이 미래에 시민들이 지출한 노동에 대한 청구권에 가격을 붙여 ‘가공(fictitious)’화된 자본의 형태로 미래노동을 앞당겨 쓸 수 있다. 이러한 메커니즘이 금융자본의 운영원리를 설명하는 핵심근원 중 하나이다.
이렇게 경제활동의 채권·채무관계가 확립되면서 ‘신용’을 바탕으로 한 가치창조가 일어난다. 가령 자금을 차입해 공장을 짓고 공장을 가동해 일자리창출과 이윤추구가 이루어져 빚을 갚는 것이 사회적으로 모두 이득인데 이러한 신용관계에서는 빚을 최종적으로 청산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 바로 화폐이다.
화폐는 기본적으로 앞서 언급했듯 보편적 등가물이기 때문에, 빚을 청산하지 않고 다른 빚으로 대체해 나가며 지불시기를 늦출 수 있겠지만 이러한 사슬이 영원히 이어질 수는 없다. 근본적으로 신용과 화폐는 구분되기 때문에 경제위기시에는 모두가 지불수단으로서 화폐를 찾는다. 즉 화폐가 채권과 채무관계를 청산하지 못하면 채권, 채무자가 줄줄이 파산하는 부도의 사슬은 나타나기 마련이다.
가공자본 특성 상, 미래에 대한 경제주체들의 기대로부터 말미암아 시장에서 화폐로 표현되는 노동의 가치는 크게 널뛰기할 수 있다. 즉, 가공자본을 자산으로 발행되는 현대화폐는 필연적으로 그 시간이나 기대의 크기에 제한이 없을뿐더러 근본적인 불안정성을 띄고 있는 것이 주요 특징이다.
특히 미국 주도로 달러가 세계화폐로서 기능하고 있는 시기에 한국은행의 주요 자산의 90퍼센트가 국외자산으로 달러로 표시된 금융상품이다. 여기서 무제한적 양적완화와 재정확대를 주장하는 MMT이론의 전제, ‘화폐의 가치는 정부의 지불능력’ 이라는 주장은 한국의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한국의 화폐는 미국 시민의 노동을 기반으로 발행되고 있기 때문에 화폐가치 역시 수출대기업의 국제경쟁력에 의존하고 있으며 동시에 미국의 경기변동에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여전히 97년 IMF 체제관리 이후, 한국 주식 및 채권시장에서 한국의 원화가 갖는 지위는 ‘위험자산’ 에 가깝기 때문에 우리나라 정부가 자국 화폐가치를 토대로 한 자국의 국채를 자산으로서 보유 및 지지하지 못한다. 이는 정부의 지불능력에 대한 신뢰가 아직 상대적이지만 국제적으로 낮은 편에 속한다는 점을 의미한다.
이러다보니 자국의 신뢰를 바탕으로 기축통화로 자국화폐를 사용할 수 있었던 미국이나 일본, 일부 유로국가를 제외하면 한국처럼 무역비중이 높고 화폐가치의 변동성에 취약한 국가들(스웨덴, 호주, 대만 등)은 국가채무 비율에 민감히 반응할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물론 2020년과 같이 바이러스 충격 등으로 인한 경제봉쇄로 야기된 심각한 불황 등 위기의 상흔이 완전히 치유되지 않는 현실에서 불평등과 잠재성장률의 촉진을 위해 정부주도의 낮은 금리수준을 유지하기 위한 국채매입 등의 통화정책과 총수요 확대를 위한 적극적인 재정정책의 조기추진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는 진보적 경제학자들(이강국, 홍장표 등)의 주장도 존재한 만큼, 앞으로의 글로벌 금융시장의 전망과 맞물린 재정확대에 대한 논쟁은 어떠한 결론으로 귀결될지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한다.
그러나 저자가 소개한 마르크스의 경제학의 금융이론에 따르면, 재정확대의 선결조건으로 장기 저성장을 유지하는 저인플레-저금리 상황이 (뒷부분에서 구체적으로 살펴볼 예정이지만) 언제까지 유지될 것일지 먼저 짚어봐야 할 부분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천문학적인 정부부채와 달리 60프로에 머무르는 일본의 가계부채에 비해 한국의 가계부채는 GDP 대비 100프로, 선진국 중 최고수준에 달한다. 향후 일본보다도 빠르게 진행되는 고령화에 대응하기 위해 늘어나는 사회복지 중장기적 지출 등을 감안한다면 민간저축을 기반으로 정부가 국채를 더 많이 발행해 채무를 늘리는 선택지에도 세대 간 세(稅)부담 등을 둘러싼 갈등 내지 위험성의 잠재성이 존재한다.
마지막으로 국제금융 시장에서 갖는 한국화폐의 신용도 상, 은행이 양적완화와 같은 방법으로 국채를 사 모은 것도 모험에 가깝다. 여러 논의가 진행 중이지만 아직 한국의 대내외적 경제 환경(금리, 환율 등)을 고려한, 국가 채무비율을 어느 선까지 지탱할 수 있는지 정확하게 예측하거나 기준을 세우기는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한 가지 명확한 사실은 국가부채의 증가는 궁극적으로 가계부채와 기업부채 문제가 야기 시킬 수 있는 경제위기에 대한 정부의 대응역량을 훼손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확장 재정으로 미래성장률을 끌어올리는 해법은 일시적일지언정, 전편에 언급하듯이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속성에 기인한 현실 문제의 궁극적인 해법이 되지 못한다. 또한 부채 지불의 사슬(잠재적 위험)을 미래세대로 전가되는 측면에서 윤리적으로도 타당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7. 글로벌 금융시장 이슈, 인플레이션과 금리인상의 전망
앞서 살짝 언급했지만 현재 학계나 경제기관 등 세계 금융시장의 동향과 전망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이들의 논의를 먼저 이해하기 위해 먼저 미국경제가 갖고 있는 금융화의 특성과 달러화의 패권이 확립되어가는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기본적으로 미국경제는 1971년 이후 근 50년간 대부분의 시기를 재정적자로 버텼다. 재정적자로 인한 GDP 대비 정부 채무도 꾸준히 향상되어 2007년 말 60%대에서 2019년 말 100%대로 상승했는데, 코로나19 위기 이후에는 130%대에 이른다.
더불어 2008년 초 1조 달러 수준이던 연준 자산 역시 금융위기 이후 2015년 4.5조 달러, 코로나19 이후 2020년 말 7조 달러 수준으로 팽창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빚이 늘어난 만큼 미국이나 세계의 경제 규모가 커진 것도 아닌 점이다.
그러나 지속해서 증가하는 재정적자와 국가채무는 미국정부의 지불능력을 위협해 화폐가치에까지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이는 세계 각국이 달러를 비축하는 것이 금융시장의 불안과 위기로부터 자국을 지키는 길이라는 인식이 공통으로 확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세계금융시장을 지배하는 제이피모건, 골드만삭스, 시티, 모건스탠리 등의 미국의 대형은행들을 통해 거래되는 자본과 금융자산 규모는 미국주도 금융세계화의 파워를 상징하며 2000년대 들어서 가파르게 증가한 무역적자, 세계 군비의 절반을 단독으로 지출하며 갖춰진 수준 높은 첨단무기 등의 군사화 전략은 과거서부터 현재까지 달러화의 가치를 보장하고 있다.
2000년대 들어서 금융시장이 팽창한 데는 미국과 유럽의 금융기관들이 주도한 ‘증권화(securitization)'에 있다. 대출자금 조성을 위해 주택담보증서를 다시 담보로 잡아 시장에 판매하는 ‘모기지증권’ 등의 연쇄적 파생상품의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신용이 팽창하며 부동산 시장 등 자산가격을 끌어올리는 거품이 형성된 것이다. 그 끝은 모두가 아는 2008년 금융위기이다.
그러나 미국 연방 준비은행(Fed)의 양적완화 정책 덕에 금융위기가 더 큰 불황으로 번지지 않았다. 모기지 증권의 가격폭락으로 인한 채무청산 과정에서 나타난 화폐 기근 현상을 방지하고 민간은행의 파산을 막고자 2008년부터 2012년에 이르기까지 추가적으로 화폐를 발행해 2조 달러가량의 부실채권을 연준이 사들인 까닭이다.
단, 연준의 자산매입 정책이 즉각적으로 시장에 현금을 푼 효과를 갖지 못했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은행은 연준이 지급한 본원통화를 유통 및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해 ‘법정지급준비금’ 이외에 엄청난 양의 현금을 ‘초과지급준비금’으로 다시 연준으로 예금했다. 결과적으로 은행파산을 막기 위한 자산구성의 대체에 그쳤기에 정부의 기대에 부합하는 인플레이션은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표4)
대신 금융위기 이후 여러 차례 걸친 양적완화로 촉발된 엄청난 유동성의 공급 대부분은 주식이나 부동산 등 자산시장으로 흘러갔다. 이에 시장의 과열양상을 진정시키고자 2014년 하반기에 미국 연준이 본격적으로 금리인상 등의 출구정책을 의제에 올리기 시작했다.
역사적으로 연준의 금리인상 사이클을 보면, 과거 한 번 금리인상을 단행하면 여러 차례 무서운 속도로 인상한 패턴을 갖고 있었던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를 본능으로 직감한 시장참여자들이 느끼는 지불사슬의 부담감은 상당했다. <그래프 49, 책 『환율과 금리로 보는 앞으로 3년 경제전쟁의 미래, 저자 오건영』 참조>
연준의 기대와 달리 금융시장의 극단적인 조정 국면과 함께 나타난 <달러화 강세 → 수입 물가 및 국제 유가의 하락 → 중국과 산유국 등 신흥국의 부채 부담 증가 혹은 자본유출 → 미국 수출 및 내수소비의 정체 발생> 의 패턴이 나타나기 시작하며 국내외 실물경제에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국내를 포함한 세계 각국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이에 금융시장의 정상화를 위한 긴축을 쉽사리 단행할 수 없었고 코로나19 위기에 이르기까지 번번이 실패했다.
원론적으로 연준이 결국 국채보다 가공성이 더 큰 모기지 증권의 채무 해소를 하지 못한 상태를 유지하게 되므로 화폐 불안정성은 더 크게 키우는 셈이 된 것이다. 또한 보편적 등가물로서 화폐의 최종기반인 노동을 위시한 채 커진 화폐량의 규모를 감안해보면, 달러가치가 보장된 조건에서의 변화가 찾아올 시 추후 화폐가치의 폭락을 초래할 위험성도 제기된다.
저자는 궁극적으로 인플레이션 발생은 은행의 대출증가에 따른 시장에 유통되는 통화증가 속도의 증가(통화승수의 상승)여부와 최종 대부자인 ‘정부’의 지불능력에 대한 신뢰의 지속가능성에 달려있음을 주장하며 경제활동의 정상화가 찾아올 것으로 예고한 올 하반기에는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질 것이란 예측을 내놓는다. (물론 다수의 이코노미스트 등의 전망과는 동떨어져 보이는 측면이 있지만 기본적인 앵글이 다르기에 이에 대해 자세히 언급하지는 않겠다.)
번외이지만 앞서 길게 설명한 마르크스적 관점뿐만 아니라 논거와 팩트 중심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일관된 논리체계와 분석도구를 사용해 자본주의 30년 장기동향을 다룬 런던 정경대 교수 찰스 굿하트의 인플레이션 전망 역시 짐짓 흥미롭다. 책 『인구 대역전』 중 ‘생산가능인구와 피부양자의 인구구조’ 변화로 인한 인플레이션과 고금리 시대를 전망하는 방법론의 측면은 가히 신선하고 ‘혁명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미래 저출산·고령화가 고착화된다는 가정 하에 전 세계의 생산가능인구의 ‘노동자’ 보다 피부양자의 ‘고령자’ 가 많아지게 된다면, 생애주기 사이클 상 생산을 담당하는 노동자 세대의 저축은 줄어들지만 수요를 담당하는 고령자의 소비는 증가하는 추세로 전환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장기적으로 저축의 감소(투자↑)는 고금리를, 소비의 증가는 인플레이션을 초래하게 된다는 것이 핵심논지이다.
하지만 바로 이웃나라에서 알 수 있듯이, 굿하트 교수가 언급한 전형적인 인구구조의 변화를 그대로 보여주는 ‘일본’ 경제를 두고 앞으로 고금리와 인플레이션의 가능성을 논하기에는 아직 시기상조일 듯싶다.
기본적으로 아직 고령자가 취업전선에 뛰어들고 있으며, 청년세대의 완전고용이 이루어져도 과거 20년 동안 임금인상의 폭이나 추이는 정체되어 있는 상황이다. 이는 자본주의의 내적 모순이 결합된 경제성장 종착지인 경제체제의 필연적 결과로서의 ‘작동중지’ 로 다가서는 자본순환의 메커니즘을 이해하지 못한 까닭에 발생한 오류이다.
과연 앞으로 세계 금융시장의 동향은 어떠한 방향으로 움직일까? 현재 나타나는 물가상승 지표는 단기적이고 일시적 물가상승에 그칠까? 구조적 인플레이션 서막의 시작일까?
8. 부동산 문제를 바라보는 마르크스적 입장 정리
기본적으로 부동산 문제를 바라봄에 앞서 마르크스주의 입장의 설명은 명료하다. 마르크스주의 연구자이신 손민석 선생이 말했듯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내 모두가 집주인이 되려는 욕망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 이유 중 도시라는 공간은 자본의 흐름 속 생성-발전-소멸을 거듭하기 때문에 국가가 이러한 자본의 흐름에 개입 및 통제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오히려 자본의 흐름을 잘 좇아 개인들이 주택마련에 들이는 비용을 낮추고 주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국가가 보조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일반적으로 경제와 인구가 팽창하는 시기에는 도시화와 자본집약이 진행되며 도시로의 인구이동이 일어나기 때문에 대도시의 토지가격은 빠르게 상승한다. 하지만 반대로 경제와 인구가 감소할 때도 토지가격이 상승할 수 있다.
예컨대 호황시기 자본이 ‘집적(conccentration)’되는 양상이 불황기에는 ‘집중(concentralization)’ 으로 이동함에 따라 미래 전망이 좋다고 판단되는 도시로의 자본과 인구가 흡수되어 관련 토지가격이 상승한다. 이런 식으로 한국은 서울이 초집중화 되는 반면 지방은 서서히 몰락하는 것이 도시 생성과 소멸의 메커니즘인데 국가는 이 흐름을 지연시키거나 가속화시킬 뿐 문제해결의 주체가 되기는 상당히 어렵다.
토지가격은 현재가 아닌 미래 수요공급에 대한 기대, 청구권(임대료, 이자, 배당 등)을 기준으로 형성된다는 측면에서 가공적인 성격을 갖는다. 특히나 토지는 생산이 불가능해 현재나 미래에 대한 공급이 제한된 반면(공급의 비탄력성), 가격에 대한 기대는 무제한이므로 수요 측 요인에 상당히 영향을 받는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정부의 주택시장 개입이 자칫 균형가격을 무너뜨릴 정도로 주택수요자와 공급자의 심리적 위축이나 왜곡을 초래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결국 가공자본의 확대와 미래 수입에 대한 청구권 가격의 끊임없는 변동은 근본적인 자본주의 소유법칙에서 파생되는데 이를 철폐하지 않는 한, 유동성 과잉공급 시대에 공공주도 주택공급이나 세금부과 및 대출규제 등 수요억제 정책 등도 일시적일 뿐 궁극적인 주거문제의 대책이 될 수 없다. 오히려 그 과정서 발생하는 문정부의 어정쩡한 정책은 집값 상승 및 경제주체들 간의 비용전가만 초래했다.
9. 자본주의의 혁신인가 변혁인가
이제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한국경제와 세계정세를 조망한 글을 마무리해야겠다. 오늘날 한국을 포함한 세계 자본주의 경제체제는 윤소영의 ‘S’자 궤도(그림16, 로지스틱 곡선)에서 볼 수 있듯이 편향적 기술진보로 인한 이윤율 하락은 현재진행형이다. 이윤율 위기 속 경제성장은 일시적일뿐 하락추세인 자본생산성을 반등시킬 수 있는 자본 측의 혁명이 나오지 않는 한 국민경제의 정체 및 축소 단계에 이를 수밖에 없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는 이러한 자본순환의 메커니즘 위기를 더욱 가속화시켰다. 그림 17에서 도식화하듯이 상품화폐 경제에서는 필요에 따른 생산조직이 아닌 화폐→화폐로 자본이 순환하며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원리를 바탕으로 움직인다.
그러나 코로나 방역으로 인해 경제의 불안정성이 커지자 화폐-생산-상품으로 이어지는 자본순환의 흐름이 폐쇄되기 시작했다. 그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각국 정부는 팔 걷고 나서 통화와 재정정책의 조합으로 유동성 공급에 매진했지만, 이는 금융경제와 실물경제의 괴리만 심화시켰다.
자본축적이 이루어지지만 이윤율이 하락되어 생산에 이용되지 못한 과잉자본과 과잉인구는 자본주의적 내적 모순의 집합체이다. 과잉자본은 금융화를 통해 경제의 예측가능성을 떨어트리고 혼란을 가중시킨다면, 과잉인구는 “상대적 빈곤과 노동의 고통, 무지, 포악 도덕적 타락”을 심화시킨다.
이미 한국은 심화된 자산불평등과 함께 2016년 촛불시위가 그 전조의 본격적 시작으로 서막을 올렸고, 문재인 정부 들어서 팬덤 및 혐오정치, 반(反)자유주의적 포퓰리즘의 심화로 귀결되고 있다.
현재까지는 어느 정치·사회세력도 이 같은 체제의 위기를 제어하고 대응할만한, 정치적 역량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현실과 유리된 진보-보수 간 대립과 투쟁의 언어는 ‘갈등의 사회화’를 통한 정치적 이익 합의의 도달은 고사하고 적대적 분노의 상호 분출로 귀결되고 있다. 오늘날 세대교체와 청년정치 등의 레토릭과 슬로건도 정확히 언표화되지도, 이념과 가치적으로도 무엇을 위한 것인지 명확히 정의되지 않은 채, 성별·계층·세대 간 불안-분노-냉소의 감정은 해소되지 않은 채 잔존하고 있다.
자본주의적 구체제를 뒤로 할 새로운 형태의 대안적 생산 및 소비 양식으로 등장한 20세기 사회주의는 실패로 끝났다. 사회주의는 사회적 분업에 참여하는 개인의 인격과 노동능력을 극대화시킬 만한 동기나 유인을 설계할 제도적 측면이나 문화적 규범을 창출하지 못하였다.
또한 계급을 지양하는 것이 아닌 공산당 등의 계급을 ‘대체’ 하는 독점적 경제체제를 유지하였는데 그 운영으로부터 발생하는 비효율성과 부패 등은 체제몰락을 앞당겼다. 개인을 완성하는 사회가 아닌 개인을 억압하는 사회로의 타락만을 보여주었다.
결국 대안적 생산 및 소비체제의 설계 및 준비를 위해 먼저 해결해야 할 선결조건으로 첫째, 시장의 결함과 한계를 어떻게 보완하고 효율적 자원배분과 공정한 결과분배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인가? 둘째, 개인의 자유로운 공동체로서 계급 사회를 어떻게 지향하고 사적소유라는 유인이 없어도 지적·물리적 생산력을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인가? 셋째, 시민이 생산의 전 과정에서 소외되지 않은 채, 어떻게 노동과정과 분배를 조직하는 경영자적 기능을 수행할 주체와 역량을 길러낼 것인가? 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이에 대한 해답은 미래세대를 짊어질 시민들 자신들의 몫이 될 것이다.
10. 에필로그 - 일본의 사례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다만 나의 관점에서 하나 결곡한 제언을 간단히 드릴까 한다. 책에서 언급했듯이 『자본』에서 상품화폐를 지양한 경제를 연합적(association) 생산양식으로 설정한다. 생산과 분배과정에서의 노동자들이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으며 경영조직에 참여할 수 있는 사회적 과정을 강조하는 말이다.
최근에 우연히 알게 된 드라마 중 일본의 『육왕陸王』의 일부분을 보면서 느꼈던 점은 한국과 달리 생산과 분배를 담당하는 ‘기업’ 이라는 사적조직을 바라보는 한 차원 더 높은 수준의 사회적 시선이었다. 일본은 기본적으로 기업가를 모토로 다루는 영화나 문화가 한국보다 많이 나오는데 기본적으로 가업을 소중히 여기며 대대로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문화가 있어 그런 듯하다.
비록 규모가 영세한 중소기업이며 매출 및 수익이 떨어져 은행 등으로부터의 자금융통에 어려움을 겪는 시기임에도 회사를 이끄는 경영자와 종업원들 간의 상호 신뢰도 및 주인의식은 여전히 끈끈하다. 스스로 생산과 분배를 담당하는 주체로서 종업원들은 결코 소외되지 않는 모습이다. 또한 조직의 번영과 유지를 위한 책임의식을 경영자뿐만 아니라 조직의 종업원 역시 마찬가지로 공유한다. 그렇게 어려운 시기임에도 정도(正道)를 걸으며 기능 좋은 상품을 만들어 시장에서 인정받은 끝에 대박을 터트려 무너져가는 기업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는 ‘뻔한’ 스토리다.
하지만 한국의 그 어느 드라마 중 이러한 기업과 종업원의 연합적 관계를 묘사한 작품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내 입장에서 신선한 충격이었다.
저자의 말대로 ‘일본형’ 자본주의가 장기침체의 연속선상인 자본주의의 작동중지 상태에서 선진국이 도달할 최선의 경제체제일지 모른다면 이 같은 기업인과 종업원 간의 관계와 규범, 문화적 측면은 체제 위기를 극복하지는 못할지언정, 위기를 공동체적 조화로 위기를 제어하고 개인의 행복을 함께 지켜줄 수 있는 하나의 일례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이에 대한 고민은 다음 글에 적어두기로 기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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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ghyeon Lee
음... 평 써주신 것에만 비추어보면 책은 일단 전통적인 정치경제학에서의 상품화폐 내지 상품화폐와의 태환가능성이 보장된 태환화폐와 불환화폐를 명확하게 구별하고 있지 않아서 혼동을 일으킬 우려가 있어보입니다. 맑스의 얘기는 상품화폐 내지 태환성이 보장되는 태환화폐에서는 교환의 일반적 등가물(그리고 이것은 상품)으로서의 화폐의 사회적 재생산에 필요한 필요노동시간(예컨대 금화라면 금을 캐서 주조하는데 드는 사회적필요노동시간)이 변동하지 않는 한, 보편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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