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모토 다카아키와 츠 루미 슌스케 : 구마 에이지의 전후 일본 사상론 |
새끼는 전후 일본 사상을 재빨리 리드 마루야마 마사오와 다케우치 요시미를 전전 파라고 평가 후속 세대를 전중 파이라고 명명. 전중 파라고하는 것은, 패전 무렵 스무 살 전후의 청년이었다 세대이다. 이 세대는 마루야마 등 전중 파와 달리 전쟁이 시작될 때 아직 소년에서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취할 수 없었다. 전쟁은 그들에게 처음부터 주어진로 있었다. 그 전쟁에 졌을 때, 마루야마 등이 해방 받아 들였다 반면, 그들은 붕괴로 받아 들였다. 그리고 그러한 붕괴를 가져왔다 연장자들을 강하게 미워했다. 전중 파의 대표로 새끼를 채택하는 것은 요시모토 다카아키와 츠 루미 슌스케이다. 특히 요시모토 다카아키는 마루야마等戦전 파에 대한 강렬한 비판을 확장하고 거기에서 전후 민주주의에 대한 거절로 붙 진행되었다. 이러한 요시모토의 자세는 미시마 유키오에도 공통하면 새끼는 말한다. 요시모토와 미시마 등에게는 철이 들었을 때부터 일본은 전쟁 상태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기억하는 최초의 정치적 사건은 2 · 26 사건이었다고 회상하고있다. 그들에게는 전쟁 이야말로 정상이고 평화 쪽이 이상하다는 느낌이 있었다. 그런 그들이 패전에 직면했을 때 자신들의 지금까지 갖고 있던 감각이 붕괴하고 무엇이든 의미를 잃었다 고 받아 들인 것은 무리도 아니다. 전중 파는 이러한 전제에 서 패전의 책임과 그들이 생각하는 연장자를 엄격히糺弾하게된다. 또한 그것은 모든 권능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졌다. 그들의 그러한糺弾은 한편으로는 자신들의 전쟁 책임을 전혀 인정하지 테이의 것이었다. 저들은 전쟁 중 지도적 지위에 없었으니 전쟁 책임은 없다는 논리 다. 그러한 입장에 서서 그들은 자신들을 기존의 권위에 서서 건너편 반역자로 연출했다. 예를 들어 요시모토는 마루야마 등 고위 세대를 "이전 세대"라고 불러, 자신을 "반역의 아들"이라고 불렀다. 이 전중 세대에서 미시마처럼 "천황과 국가에殉ずる죽음을 미화하고 '천하태평'의 전후 사회를 비판하는 '조류와 요시모토처럼'천황제 국가와 공산당의 이념을 쏴 "라는 조류에 헤어졌다. 천황제와 공산당을 동렬에 두는 것은 기이에 비치지만, 요시모토에게 양자 모두 타도되어야 질서의 상징으로 파악 웠어요 것이다. 여기 새끼는 요시모토와 섬 사이의 이상한 공통점에 대해 언급한다. 그것은 두 사람 모두 병역의 경험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미시마의 경우에는 「가면의 고백」에 의하면, 꾀병 의해 폐결핵의 진단을 받아 병역을 피해 요시모토의 경우에는 당시 병역을 면제 된 이공계 대학에 진학하여 병역을 달아났다. 이것이 그들에게 어떤 심리적 영향을 미쳤는지를. 적어도 말할 수있는 것은 그들이 실제 병역을 경험하지 않은 것으로, 전쟁에 대한 현실적인 인식을 가질 수 없었던 것이라고 새끼는 암시. 미시마와 요시모토가 전쟁을 지나치게 미화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은 이러한 그들의 병역 비리에 기인하고있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요시모토 대해 말하면, 그는 전쟁을 자명으로 전제하면서 자신은 전쟁의 대의를 위해 목숨을 버릴 각오를했다 "황국 소년 '이었다는 식의 담론을 흘려 계속 그 담론을 그대로 받아들이 것도 많았다 것이지만, 사실을 말하면, 그는 병역 기피자로 전쟁에서 도망 것이다. 실제로 전쟁을 기피하면서 말로는 전쟁을 미화하고 자기 목숨을 바치는 등한다는 것은기만적인 방법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비판적인 견해를 새끼는 요시모토에 찍은 것이다. 가장 요시모토는 사기에 맹목적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와 같은 견해도 보이고있다. 요시모토가 그런 사기를 굳이 한 것은 병역 기피에 대한 죄책감없는 비결 이었다는 것이다. 여하튼 요시모토는 "자신은 전쟁에 헌신하고 항복에 의해 배반 상처라는 체험담을 오히려 과장으로 발표하게됐다" 그런 입장에서 요시모토는 "자신들 이야말로 전쟁에서 일방적으로 상처받은 세대이며, 고위 세대는 전쟁을 무사히 보냈다 방관자 였다는 인식을 품은 '가장 한 셈이다. 그런 요시모토의 기만성을 새끼는 사카구치 안고의 말을 빌려 강하게 비판한다. 안고는 "계속 타락 론」속에서기만적인 언사를弄する무리를 향해"거짓말, 거짓말, 거짓말」라고 매도했지만, 그 안고 저주에 요시모토도 또한 가치라는 것이다. 요시모토의 그러한 기만성은 그의 담론을 왜곡 한 것에했다. 그는 황국 소년을 가장하면서도 천황제의 권위를 부정했다. 또한 공산당을 거절했다. 그 이유는 천황제도 공산당 기성의 권위의 상징 이었기 때문이다. 요시모토가 기성의 권위를 거절하는 것은 그들이 정의를 내세우는 때문이었다. 그 정의가 요시모토 사기를 누출하는 생각이 들고, 요시모토는 정의라는 것이 자신에게 적대적인 것 같이 느껴졌이다. "우리는 옳은 일을하는 놈이 싫다. 올바른 것은 종종 교활 짜여진 욕심" 요시모토는 이렇게 말하고 옳은 일 이라든지, 그 후 성립 공공 질서 같은 것에 크게 반발했다. 그리고 공중에 내 가치를 주장했다. 그 결과, "인간을 구속하는 모든 질서와 이념, 그리고 국가와 하나님으로 대표되는 권위에 대한 반항이 요시모토의 기본 지향 '을 이루고 갔다. 그러한 것은 요시모토에게 자신의 양심을 움직여 자신의 기만성을 폭로하려는 위험한 것으로 비친 때문일 것이다. "그에게 자신에게 죄책감을 돋우는 존재는 때려 부술 때까지 싸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 요시모토가 당시 일본인들이 선호 한 것은 때마침 퍼져 있던 공산당 싫어하는 풍조를 탔다 몸과 새끼는 분석한다. 전후 한동안 많은 국민의 존경받는 정의의 상징과 같은 존재였다 공산당이 노선의 잘못도있어 많은 국민으로부터 버림지고 있었다. 그러한 풍조에 편승하고 공산당을口ぎたなく욕하는 것이 대체적인 박수 갈채를 얻었다는 것이다. 어쨌든도 요시모토 비꼬 인 담론은 병역 비리는 그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에 기인하는 바가 컸다. 그렇게 새끼는 결론 것 같다. 요시모토 마찬가지로 전중 파였다 츠 루미 슌스케는 요시모토와는 꽤 다른 활동을했다. 그것을 단순화하고 말하면, 요시모토가 공개를 거부하고 개인의 무 제약의 자유를 주장한데 대해, 츠 루미는 새로운 형태의 공식을 추구하고 공공 하에서 새로운 연대를 모색하려고 한 것이 었다고 말할 수있다. 이 둘의 차이는 역시 자신의 전쟁 경험의 차이에 따라 있었다고 새끼는 말한다. 요시모토가 병역 기피를하고 실제 전쟁 경험이없는 것에 대해, 츠 루미는 그 나름의 전쟁 체험을 가졌다. 그리고 그 경험을 통해 인간끼리 서로 죽이는의 부조리에 주목하고 인간끼리 죽이고 행복하지 않아도에는 민족주의를 넘어 보편적 인 인간의 연대를 모색 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 따라서 루미는 코스모 폴리탄의 입장에서 민족주의의 극복을 겨냥한해도 좋다. 츠 루미는 양가의 탄생했지만 일본 사회에 적응하고, 소년 때 미국에 유학했다. 미일 전쟁이 시작되자 미국에서 박해를 받기도했다. 그리고 자신의 의지로 일본에 돌아왔다. 일본인으로서 전쟁의 시대를 보내고 싶었다는 게 그 이유 다. 츠 루미는 몸이 허약했기 때문에 병역은 피하고 있지만, 군속으로 자바에 파견되어 그곳에서 일본군 과연 무엇인가를 자신의 눈으로 보았다. 그는 자바 위안부 시설의 관리 운영에 종사해, 그래서 네덜란드 인 여성을 일본군 장교에あてがう이라는 뚜 장이스러운 일에 종사 한 것이다. 그 일을 통해 루미가 느낀 것은 인간끼리 서로 죽이는 것보다 고기와 고기를 결합시켜 훨씬 낫다는 것이었다. 이런 이유로 츠 루미의 경험은 매우 독특한 것이었다. 그는 요시모토와 미시마처럼 전쟁 중 일본의 공기를 너무 모르고, 그로 인해 이른바 황국 소년 같은 감성은 없었다 한편, 미국에 유학 한 적도 있고, 국제적인 감성을 몸에 익혀도 있었다. 그러한 감성으로 체험 한 군대에서의 생활은 그의 인간의 시각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인간은 국가의 일원이기 전에 인류의 일원이며, 그러한 것으로서 인간의 공통적 인 보편적 가치를 공유 할 것임을 확신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동시대 인은 말하면서, 요시모토와 츠 루미는 상당히 다른 방향을 향하고있다. 요시모토는 일체의 공적 가치를 부정하고 개인의 제한없는 자유를 주장하고 그것으로 인간끼리의 연대를 믿지 않았지만, 루미는 인간끼리의 연대를 믿고 싶다는 자세를 가지고 있었다 . 인간끼리를 연결하는 것은 그러한 보편적 인 가치를두고는 아무것도 없다, 그렇지 츠 루미 믿습니다 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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